깊은 속에 있는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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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속에 있는 뿌리

말씀을 전하거나 들을 때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이 원칙은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씨 뿌리는 비유 안에 들어 있다. 씨를 뿌릴 때 더러는 길 가에, 더러는 흙이 앝은 돌밭에, 더러는 가시덤불에, 더러는 좋은 밭에 뿌려졌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말씀을 받는 사람의 네 종류의 다른 태도를 보여준다. 이처럼 여러 가지 다른 상황에서 주 예수님은 흙이 얕은 돌밭, 곧 위에는 흙이고 아래는 돌인 밭이 있음을 말씀하신다. 이러한 곳에 뿌려진 씨는 매우 빨리 자라지만 해가 돋은 후에는 뿌리가 없기 때문에 즉시 말라 버린다.

뿌리란 무엇인가? 뿌리는 밑으로 자라는 것이다. 잎이란 무엇인가? 잎은 땅 위에서 자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보이지 않는 생명을 뿌리라 하고 보이는 생명을 잎이라 말할 수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보이는 생명은 있으나 보이지 않는 생명이 매우 결핍된 데 있다. 바꿔 말해서, 감추어진 생활이 부족함을 말한다. 여러 해 동안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해 오면서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 생명의 부분은 어떤 것인가? 여러분이 밖의 좋은 행위를 주의하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밖의 좋은 행위 외에 보이지 않는 부분은 얼마나 되는가?

만약 여러분의 모든 영적 체험을 다른 사람이 다 알고 있다면 여러분에게 뿌리가 없는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의 모든 미덕을 사람 앞에 다 드러내 보이는가, 아니면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만약 여러분의 모든 체험이 드러나고 나타난 것이라면 여러분의 모든 것은 위로 자란 것이디, 밑으로 뿌리내린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은 잎만 있고 뿌리가 없는, 흙이 얕은 사람이다.

영적 생명에 있어서, 우리는 한 면으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는 몸의 생명이 있어야 할뿐 아니라, 또 한 면으로 지체인 내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그 분량이 매우 개인적인 것임을 보아야 한다. 이 점은 나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얻은 것이며, 마땅히 지켜야 할 부분이다. 만약 이 부분을 지키지 않는다면 나의 지체로서의 특징을 잃게 되며, 하나님 앞에서 아무 특별한 용도가 없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께서 주신 여러분의 특징을 드러내고 나타내려 할 때, 여러분은 곧 메마르게 된다.

주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가르치신 것은 매우 특별하다. 주님은 한 면으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마 5:14)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공개적인 것이다. 다른 면으로 주님은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3-4, 6)라고 말씀하셨다.

한면으로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공개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며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공개적으로 선포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공개적인 시선으로부터 보존된 그리스도인의 미덕이 있어야 한다. 깊은 속에 감추어진 것이 없이 사람 앞에 나타난 것만 있는 사람은 연단과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뿌리가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지 여러 해 된 우리 자신에게 다른 사람이 모르는 체험이 얼마나 되며 다른 사람이 아는 것 외에 내게 남아 있는 체험이 얼마나 되는지를 우리의 눈이 열려서 볼 수 있기를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아래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출처: 깊은 곳과 깊은 곳이 서로 부름    
뿌리, 공개적인 그리스도인, 감추인 그리스도인


깊은 곳과 깊은 곳이 서로 부름


생명의 말씀 2013-07-15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49307.html
깊은 곳과 깊은 곳이 서로 부름

시편 42편 7절은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라고 말한다. 오직 깊은 곳에서 나오는 부름만이 깊은 곳에서 나오는 만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얕은 것은 결코 깊은 것을 만질 수 없고 외면적인 것은 결코 내면적인 것을 만질 수도 없다. 깊은 곳은 오직 깊은 곳과 서로 부를 따름이다. 깊은 곳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깊은 곳을 만질 수 없다. 여러분의 깊은 곳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의 깊은 곳을 만질 수 없다. 다른 사람의 깊은 곳은 오직 여러분의 깊은 곳과 반향할 수 있을 따름이다.

여러분이 어떤 지방에 가서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가장 깊이 만지는 것은 사람의 깊은 속에서 나온 것뿐이다. 만약 어떤 것이 깊은 곳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이 받은 도움이 얕은 것에 불과하고 내면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깊은 곳의 중요성을 보아야 한다. 깊은 곳에서 나오지 않은 모든 것은 결코 깊은 곳에 이르지 못한다. 만약 여러분이 깊은 곳으로부터 유익과 도움을 받지 않으면, 여러분의 깊은 속에서 어떤 것이 나올 수 없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영적인 일에서 남을 도우려면 반드시 무언가가 깊은 속에서 나와야 한다.

만약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이 깊은 곳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얻을 수 없게 된다. 만약 여러분의 말이 깊은 곳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감정과 이상을 얻고 다른 사람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고 즐겁게 하고 일시적으로 흥분하게 할 수 있더라도 사람의 깊은 곳을 만질 수는 없다. 오직 깊은 곳만이 깊은 곳을 부른다. 얄팍한 말은 결코 다른 사람의 깊은 곳을 만질 수 없다.

출처: 깊은 곳과 깊은 곳이 서로 부름 
깊은 곳, 뿌리


어떻게 해야 좀 더 빨리 순복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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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좀 더 빨리 순복할 수 있는가?

어떤 때에 하나님의 성령은 감동을 의지하여 일하시며, 또 어떤 때에 하나님의 성령은 시간을 사용하여 일하신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을 이용하실 때에는 여러분이 즉시 순복할 것을 요구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성령으로 여러분의 내면에서 일하실 뿐 아니라 또한 성령을 이용하여 밖의 징계를 통해 일하신다. 이것은 즉각적인 것이 아니며, 매일매일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어느 날이 되면, 여러분도 이것을 원하게 되고 변화된다. 이것은 단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순복하게 하시기를 구하는 기도는 두 가지의 응답이 있다. 하나는 내면의 감동으로서 즉각적인 것이며, 하나는 외적인 환경으로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순복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데, 만일 빛 비춤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면, 성령의 징계를 의지하는 것이다.

장래에 교회는 에베소서 4장에 묘사된 것과 같이 장성한 분량에 이를 것이며, 또한 5장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경지에 이를 것이다. 여기에는 두 방면의 일이 있다. 요한은 두루마리를 열 자격이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고 울었다(계 5:4). 우리는 요한과 같지는 않지만,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에베소서 4장과 5장에 대해 매우 염려한다. 그것은 마치 한 달란트나 되는 무화과나 우박같은 별이 땅에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교회가 성숙하여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에 이르러 더 이상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그런 것들이 없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쉬운 것 같다. 교회가 장성한 사람이 되고,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에 이르고, 점과 티와 주름 잡힌 것이 없고, 거룩하고 흠이 없으며 책망할 것이 없다는 점에 있어서 누가 흠을 잡거나 비평해도 아무 결함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다소 염려를 갖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께서 내면에서 일하실 뿐만 아니라, 외적인 징계로 우리를 이러한 책망할 것이 없는 경지로 이끄실 수 있음을 본다. 성령의 징계는 실로 실지적인 일이다. 많은 일들은 우리가 필사적으로 애써서 벗어나지만, 또한 많은 일들은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벗어나게 되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장래를 위하여 각양의 일들을 안배하신다. 이것이 분명한 그리스도인의 복음이다! 기묘한 일은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징계를 체험한다는 것이다.

출처: 일시적인 은혜와 축적된 은혜
성령의 징계, 성령의 감동, 순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