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함


하나님의 복음 2012-09-05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42023.html
요한 일서 1: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구약 시대에 하나님은 휘장으로 싸인 은밀한 곳에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지성소 안에 계신 하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성소 안에는 등이 있고 바깥 뜰에는 햇빛이 있었으나 지성소 안에는 전혀 빛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지성소 안에 계신 하나님을 알 길이 없었고 오직 상상으로 추측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오늘 하나님께서 이미 나사렛 사람 예수에게서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빛 가운데 계십니다. 오늘 하나님은 더 이상 휘장으로 싸인 캄캄한 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알려진 하나님이요 계시된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당신이 그분을 볼 때 그분이 곧 하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의 복음은 곧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복음의 빛이 비침으로써 하나님을 비추어 내었습니다. 복음의 빛이 비침으로써 우리로 하나님을 보게 하였습니다(고후 4:4).

오늘 그분은 빛 가운데 계시며, 이미 알려진 분이십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는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오늘 빛 가운데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구약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추측하는 것과 다릅니다. 오늘 하나님이 이미 나타났으므로 더 이상 추측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빛 가운데 계십니다. 복음 안에서 그분은 이미 자기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만일 내가 이 계시 안에서 행한다면 결국 교통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도 서로 교통이 있게 되고 그리스도인과 하나님 사이에도 교통이 있게 됩니다. 

내가 이 복음 안에 있고 하나님도 이 복음 안에 계시기 때문에, 그 아들 예수의 피가 내 모든 죄를 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참으로 복음 안에서 하나님을 안다면,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지속적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는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원문에서 여기의 뜻은 영구적으로 우리의 죄를 씻고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우리를 정결케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분의 중보의 역사입니다. 십자가의 역사는 단번에 이루어지지만, 죄를 씻는 그분의 보혈의 효능은 지속적인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끄분의 효능이 영원하며, 그분의 보혈이 계속 우리를 씻을 수 있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 그분이 이루신 역사를 계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두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죄를 다시 씻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그분이 이미 죽었고 이 죄인들이 이미 처리된 사람임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그분은 계속 우리 죄를 씻고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는 이미 그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 예수님이 하늘에서 계속 중보로 계시기 때문에 보혈의 효능은 영원까지 지속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방면입니다.            
빛 가운데 행함, 죄를 씻음, 십자가의 역사, 보혈의 효능, 중보 역사


주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을 위해 중보가 되신다


하나님의 복음 2012-09-0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41997.html
주 예수님의 구주로서의 모든 역사는 죄인을 위한 것이고 중보로서의 역사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구주 되심은 십자가의 역사를 이루셨고, 중보되심은 십자가의 역사를 적용하십니다. 죄인의 죄가 사함받은 것은 십자가의 구속으로 인한 것인 반면에, 그리스도인의 죄가 사해진 것은 십자가의구속에 대한 변호에 근거한 것입니다. 주 예수님은 십자가의 역사를 하나님 앞에 두사 그분이 이미 모든 것을 이루었으니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를 형벌하실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는 한 중보자가 계십니다. 그분의 죽음이 하나님 앞에 놓여 있습니다.  

주 예수님은 일찍이 모든 범죄한 사람을 위해 구주가 되신 것처럼 범죄한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해 중보가 되셨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믿고 거듭나야 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분은 이미 우리를 위해 구주가 되어 주셨습니다(롬 5:8).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회개할 때에야 그분이 중보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범죄할 때에 그분은 이미 중보가 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백할 때 그분은 우리의 중보가 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범죄할 때에 그분은 이미 우리의 중보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중보)가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죄를 자백하며 하나님의 사하심을 구해야만 그분이 우리의 중보가 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한 중보가 계신 것입니다. 언제든지 당신이 죄를 범할 때, 주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중보가 되십니다. 그때 주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십자가 위에서의 그분의 역사를 보이면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당신의 죄를 지나가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 죄를 자백하고 회개할 수 있는 이유는 주 예수님이 중보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범할 때 우리의 중보이신 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변호하며 말씀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마침내 통회하고 죄를 자백하며 용서하심을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의 중보의 역사는 당신이 회개한 그 순간에 발생하지 않습니다. 주 예수님의 중보의 역사는 당신이 범죄할 때 시작됩니다. 언제든지 당신이 죄를 범하면 주 예수님은 중보가 되십니다. 그럴 때 당신은 회개하고 죄를 자백할 수 있게 됩니다. 주 예수님이 그날 이루신 역사 안에 모든 것이 이미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 주 예수님은 그 역사를 하나님 앞에 두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빚이 다 갚아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를 벌하실 수 없습니다. 과거의 빚과 장래에 우리가 지게 될 빚이 이미 다 갚아졌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는 주 예수님의 보혈 아래서 이미 정결케 되었습니다. 

중보, 십자가의 역사, 범죄, 회개, 자백, 변호, 용서


구원받은 후에 계속 씻음 받아야 함 (3)


하나님의 복음 2012-08-27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41884.html
그러므로 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변호하시는 방법은, 어떤 시험이 너무나도 커서 어린아이들인 우리가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은 힘이 작고 지식이 얕으며 육신이 심히 연약한 반면 사탄의 유혹은 아주 맹렬하고 사탄의 궤계는 아주 간교한데 어떻게 그들이 거절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주 예수님은 이렇게 변호하지 않으시고 은혜를 구하지도 않으십니다. 이 점에서 그분은 은혜를 베푸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이 이미 역사를 이루셨기 때문에 그분은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실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중보자는 우리를 위해 어떻게 변호하십니까? 다음 구절은 우리에게 이것을 알려 줍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함이라"(요일 2:2). 주 예수님은 그분이 성취하신 일 곧 십자가에서 그분이 화목제물이 되신 것에 근거하여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변호하십니다. 이것은 완전한 화목제물로서, 동서고금의 모든 그리스도인의 죄를 포함합니다. 그분이 이 화목제물을 하나님께 보이실 때 하나님은 다시 그리스도인을 형벌할 다른 이유를 가지실 수 없습니다. 

주 예수님의 화목제물은 과거의 모든 죄들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오늘, 심지어 장래의 모든 죄를 위한 것입니다. 여기의 동사는 현재 시제이지 과거 시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탄의 참소로 인해 우리를 정죄하실 수 없습니다. 이는 그분이 십자가 상에서 이루신 구속 역사 안에 현재의 모든 죄와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까지 우리가 범할 모든 죄가 포함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그분의 역사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하실 것이고 사함의 근거가 있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를 사하지 않으실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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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후에 계속 씻음 받아야 함(2)


하나님의 복음 2012-08-22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41825.html
여기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다고 말합니다. '대언자'라는 단어는 원문에서 '파라클레토스'(Paracletos)로서, '파라'(para)는 평행을 뜻합니다. 평행이란 당신이 어디에 있으면 그도 어디에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상해에 있으면 그도 상해에 있고, 당신이 광주에 가면 그도 광주에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차의 철로와 같이 결코 한 쪽은 사천에 있는데 다른 쪽은 남경에 있을 수 없습니다. 'cletos'는 돕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Paracletos'는 계속 병행하면서 돕는 자라는 뜻입니다. 당신이 도망칠지라도, 당신이 어디로 가든 그는 거기에 있습니다. 많은 도움의 손길이 있어도 때가 맞지 않으면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상해에 쌀이 많아도 남경은 바로 그 옆에 있지 않기 때문에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헬라어 'paracletos'는 법정에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법정에서 당신에게는 변호사가 필요합니다. 당신이 법률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남이 욕해도 모르고 당신이 그를 다룰 길도 없습니다. 이제 한 'paracletos'가 당신을 돕기 위해 왔다면,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죄가 있다고 말할 때, 당신의 'paracletos'는 당신이 무죄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는 변호사와 같이 당신을 위해 답변할 것입니다. 여기의 뜻은 당신 곁에 당신을 위해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범죄한다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대신하여 말씀하는 한 분이 계십니다. 

사탄은 영원히 그리스도인을 참소하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계시록 12장 10절은 그가 밤낮으로 우리를 참소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밤낮으로 참소를 받고, 그는 밤낮으로 계속 우리를 참소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변호하시는 한 분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여기서는 그분을 대언자(중보)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 아니라 의로운 분이십니다. 왜 여기서는 그분을 은혜로운 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는 땅의 법정에서 은혜를 말하지 않은 것같이 하늘의 법정에서도 은혜를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을 용서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법관은 다 의롭지 못합니다. 공의를 말하는 자만이 ㅃ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공의를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우리 죄를 불의하게 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간과하거나 소홀히하지 않으시고 경솔하게 대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분은 공의로 우리 죄를 심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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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후에 계속 씻음 받아야 함 (1)


하나님의 복음 2012-08-2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41800.html
이제 문제는 만일 우리가 다시 죄를 범하면 어떻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더렵혀지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구원받기 전의 죄는 그분의 피로 씻어졌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후의 죄는 어떻게 됩니까? 나는 질책당하고 싶지 않고 왕국을 잃고 싶지 않으며 둘째 사망의 해를 받고 싶지도 않은데,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요한일서 2장 1절을 봅시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죄를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이 이 말을 한 것은 우리로 범죄치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격으로 말하면, 그는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리스도인의 역사로 말하면, 그는 자주 죄를 범합니다. 우리의 위치로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의 체험상으로는 자주 죄를 범합니다. 죄를 범하는 것은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또한 뒤집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은 그리스도인의 범죄의 문제를 말합니다. 여기 하나님께 속한 한 사람이 죄를 범했다면, 그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여기서는 '하나님 앞에서'라고 말하지 않고 '아버지 앞에서'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 구절이 하나님의 자녀에 대해 말한 것이고 이미 구원받은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임을 우리에게 뚜렷이 보여줍니다. 구원받은 사람 곧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서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 한 대언자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법정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의 문제입니다. 

다시 죄를 범함, 구원받은 후의 죄, 대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