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2:7,8 :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징계는 오직 자녀에게만 국한됩니다.
9절: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받을진대,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의 징계를 더욱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10절: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이 말씀은 징계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징계하기 좋아해서가 아니고 또한 우리로 고통당하게 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목적은 그분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그리스도인이 지나치게 방자히 행동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지 않고 거룩하지 않다면, 하나님은 그분의 손으로 그러한 사람을 무겁게 억누르실 것입니다. 하나니은 우리를 질책하기를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의 목적은 그분의 거룩하심이 우리에게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분의 거룩하심이 우리에게서 나타날 때 그분은 징계를 멈추십니다.
그러므로 징계는 우리가 주님께 속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주님께 속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주님은 그분께 속하지 않은 사람을 징계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 속한 사람이라야 징계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2:5,6 :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나라".
여기서 우리는 징계의 동기가 하나님의 사랑임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징계를 받는 이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그를 징계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이방인을 징계하신다는 말씀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을 징계하는 데에 힘이나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결코 이웃집 아이들을 꾸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옷을 단정하게 입지 않았든 일을 잘 하지 못했든 우리는 그들을 꾸중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자녀라야 꾸중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징계의 범위는 그리스도인에게만 한정되어 있습니다.
또한 징계의 동기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징계하심은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9절도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단락의 말씀은 주 예수를 믿고서 고의로 죄를 범하면 멸망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학설은 앞뒤 문구와 일치하지 않고 히브리서 전권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교리적인 것을 말해 주는 것으로 예수 외에는 천하 인간 가운데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시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사도행전
4:12). 이 부분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하면 지옥에 간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또 27절을 읽기로 합시다.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당신이 진리의 지식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세우신 속죄제물임을 안 후에, 만일 모이기를 폐하고 그리스도를 버리며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 속죄하는 제사를 찾는다면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게 됩니다.
구원받기 전에 당신은 소와 양을 의지하여 속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이 유일하신 구주라는 것을 안 이상, 당신은 다시 소와 양을 의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주 예수님을 버린다면 당신에게는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하는 맹렬한 불만 있게 됩니다. 당신에게는 주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분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모든 소와 양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일 뿐입니다. 소와 양은 모두 그분의 예표입니다. 그리스도는 소와 양의 실재이십니다. 소와 양의 실재를 거절하고 그 대신 예표를 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 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0장 26절과 27절은 사람이 구원 받은 후에도 멸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성경 안에 있는 것을 읽어 내야지 결코 성경에 없는 것을 읽어 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해야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나의 답변은 이러했습니다. "성경을 이해하려면 먼저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른다고 할 때 성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이것도 알고 저것도 아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균형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균형을 잡지 못할 때 당신은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히브리서 6장과 10장은 요한복음 3장 16절과 같이 본래 이해하기 아주 쉬운 말씀입니다. 사람의 사상이 이에 대해 분명하지 않은 이유는 사람의 말을 그 안에 첨가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성경을 읽을 때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성경 자체가 분명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사람 머리 속에 자기의 견해와 주장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