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0장 26절을 근거로 한 반론 (5)


생명의 말씀 2012-04-16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38970.html
이 많은 구절들을 읽고 나서 당신은,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는 의미를 깨달을 것입니다. 7장으로부터 시작하여 8장을 거쳐 9장, 10장에 이르기까지 예수께서 단번에 속죄의 역사를 이루셨고 영원히 속죄의 역사를 이루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를 거절한다면 당신에게는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단번에 당신을 위하여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만일 당신이 속죄 역사를 거절하고 유대교로 돌아간다면, 당신은 다시 속죄하는 제사를 찾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다루는 것은 구원과 멸망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역사가 단번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거절한다면 당신에게 두 번째의 어떤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라는 단어를 주의한다면 당신은 '다시'가 무엇과 연관되어 있는지를 볼 것입니다. 앞에 장들에서는 '단번에', '단번에', '단번에'라고 말했고, 뒤에서는 '다시'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내가 8장에서 여기에 연필 하나가 있다고 말하고, 9장에서는 여기에 연필이 하나밖에 없다고 말하며, 10장에서도 여기에 연필이 하나밖에 없다고 말하고 나서 뒤에 이것을 설명하면서, 만일 이 연필을 버리면 다른 것으로 바꾸려 해도 더 이상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당신이 이 연필을 가지려면 받아 가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원치 않는다면 더 이상 연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주님을 영접한 후에 고의로 죄를 범하면 다시 죄 사함을 얻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죄를 범하는 문제가 아니라 교리적인 문제요 그리스도의 신앙에 관한 문제입니다.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의 신앙을 버리고 따로 구주를 찾는다면, 따로 속죄하는 제사를 찾는다면, 다시는 없다는 말입니다. 당시의 히브리 믿는 이들 중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앙을 떠나도 다시 성전에 갈 수 있고 제단에 갈 수 있고 우리를 위해 소와 양을 드려 달라고 제사장에게 부탁할 수 있다면 이것은 곧 속죄하는 제사가 아니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 가운데에는 아직 제사장과 제단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은 믿어도 좋고 안 믿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우상을 숭배하는 우리와는 달랐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원할 때는 하나님을 택하지만 하나님을 원치 않을 때는 세상을 택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갈 세 번째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고 그리스도 없이도 속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그들에게 제사를 드려 줄 제사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돈이 많으면 소를 사고 적으면 양을 살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사도는 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이미 단번에 드리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속죄의 일을 이루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구약을 폐하셨고 구약의 제사를 폐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는 소와 양이 우리 죄를 속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는 소와 양의 제사가 우리 죄를 속량할 수 없게 되었고, 이것은 폐해 졌습니다. 이것이 히브리서 7장과 10장이 말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제물로 삼으셨을 뿐 아니라 또한 소와 양의 제사를 폐하셨습니다. 10장 앞부분에서는 황소와 염소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고 번제함과 속죄제도 그분이 기뻐하지 않으시므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예비하셨다고 말합니다. 소와 양은 죄를 속량하지 못하고 오직 그의 아들만이 죄를 속량하실 수 있습니다. 구약의 소와 양의 제사는 예표와 대표로서 제물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니은 이제 구약은 지나갔고 예표도 지나갔으며 실제가 이미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을 거절하고 실재를 거절한다면 예표만 소유하게 되기 때문에,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속죄제는 오직 하나이므로 그분을 거절하면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0장 26절은,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 외에 따로 구주를 찾는다면 더 이상 구주가 없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받음


생명의 말씀 2012-04-10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38832.html
사도행전 2:21『‘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10장에서 바울은 두 가지 문제-의롭다 함을 받는 것과 구원받음-에 대해 말한다.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어느 정도 내적인 문제이고, 구원받는 것은 어느 정도 외적인 문제이다. 바울은 의롭다함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한다. 만일 우리가 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음과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 중에서 일으키셨음을 마음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 면전에서 의롭다 함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구원받기 위해서 우리는 여전히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할 필요가 있다.

복음을 전하여 다른 사람들을 구원받도록 도울 때 우리는 그들이 『오, 주 예수여!』라고 주의 이름을 부르도록 격려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주 예수의 이름을 강하게 부르면 부를수록 그의 구원에 대한 체험이 더욱더 강해진다는 것을 우리는 체험으로 알고 있다.

가령 복음 전파를 듣고 구원받기 원하는 어떤 이가 이렇게 부드럽고 약하게 기도한다 하자, 『주 예수님, 당신은 저를 사랑하십니다. 당신은 저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그렇게 힘없이 기도하는 사람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인지하기란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령 어떤 사람이 주 예수의 이름을 강하게 부르며 이렇게 말한다 하자. 『주 예수여! 오, 주 예수여! 나는 죄인입니다. 주여, 그러나 당신이 저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오, 주 예수여 당신을 사랑합니다!』 의심할 바 없이 주의 이름을 강하게 부르며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구원받는다. 어쩌면 그는 그분의 구원으로 인해 주 안에서 기뻐서 심지어 제 정신이 아닐지도 모른다.
구원


하나님을 신뢰하는가?


생명의 말씀 2012-04-10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38831.html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아브라함의 체험 중 두 번째 방면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었다. 그는 매일의 필요를 위해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살아야 했다. 12장 10절은, 그 땅에 큰 기근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 기근은 생계의 문제, 곧 매일의 생활 문제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신뢰하는가의 여부를 보기 위한 하나의 시험이었다.

12 장 10절부터 20절까지를 살펴볼 때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 아브라함이 연약했고 비천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이 정해 주신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애굽으로 내려갔다. 가나안의 뒤는 바벨이고 옆은 애굽이고 가나안 근처에는 소돔이 있었다. 아브라함은 점점 남쪽으로 이동하여 결국에는 애굽으로 내려갔다. 앞으로 보겠지만, 애굽에서 그는 거짓말함으로써 죄를 범했다. 아브라함이 그처럼 연약하고 비천해질 수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르에서, 하란에서, 세겜에서 그에게 나타나셨다. 세겜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12:7)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그 땅을 그의 후손들에게 주시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은 누구이셨는가? 그분은 하늘과 땅의 창조자요 소유자이셨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은 바로 이런 하나님이셨다. 기근이 왔을 때 아브라함은 의심하지 말고 마땅히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나에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기근을 염려하지 않는다. 나는 양식이 부족한 것을 우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를 부르시고 이곳으로 인도하시고 나의 여행에 대한 확증으로 수차 나타나셨던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을 신뢰하며 지금도 매일의 필요를 위해 그분을 의지함으로써 살고 있다. 나는 양식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기도했어야 했다.

그러나 기근이 올 때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는가? 그는 기도했는가? 그는 아내에게, 『여보, 우리 기도합시다.』라고 말했는가? 아니다. 아브라함은 기도하기를 잊었던 것 같다. 그런 시험의 시기가 왔을 때 그는 기도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을 비웃지 말라. 만사가 잘되어 갈 때 당신은 기도하기가 쉬울 것이다. 그러나 기근이 올 때 당신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오직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만을 기억한다. 당신은 자신에게 나타나셨던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망각하고 오직 당신에게 위(胃)가 있다는 것만을 기억한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위(胃)를 염려했다. 그는 그 상황-그 땅에는 기근이 있고 애굽에는 양식이 풍족함-만을 보았다.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는 많은 말을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즉시 애굽에 가기로 합의했다. 나는 그들이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하향길을 가고 있었으리라 믿는다. 남편과 아내가 다 하나님을 잊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이 어디로 가기를 원하시는지를 고려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 같았다.
시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