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많은 구절들을 읽고 나서 당신은,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는 의미를 깨달을 것입니다. 7장으로부터 시작하여 8장을 거쳐 9장, 10장에 이르기까지 예수께서 단번에 속죄의 역사를 이루셨고 영원히 속죄의 역사를 이루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를 거절한다면 당신에게는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단번에 당신을 위하여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만일 당신이 속죄 역사를 거절하고 유대교로 돌아간다면, 당신은 다시 속죄하는 제사를 찾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다루는 것은 구원과 멸망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역사가 단번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거절한다면 당신에게 두 번째의 어떤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라는 단어를 주의한다면 당신은 '다시'가 무엇과 연관되어 있는지를 볼 것입니다. 앞에 장들에서는 '단번에', '단번에', '단번에'라고 말했고, 뒤에서는 '다시'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내가 8장에서 여기에 연필 하나가 있다고 말하고, 9장에서는 여기에 연필이 하나밖에 없다고 말하며, 10장에서도 여기에 연필이 하나밖에 없다고 말하고 나서 뒤에 이것을 설명하면서, 만일 이 연필을 버리면 다른 것으로 바꾸려 해도 더 이상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당신이 이 연필을 가지려면 받아 가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원치 않는다면 더 이상 연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주님을 영접한 후에 고의로 죄를 범하면 다시 죄 사함을 얻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죄를 범하는 문제가 아니라 교리적인 문제요 그리스도의 신앙에 관한 문제입니다.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의 신앙을 버리고 따로 구주를 찾는다면, 따로 속죄하는 제사를 찾는다면, 다시는 없다는 말입니다. 당시의 히브리 믿는 이들 중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앙을 떠나도 다시 성전에 갈 수 있고 제단에 갈 수 있고 우리를 위해 소와 양을 드려 달라고 제사장에게 부탁할 수 있다면 이것은 곧 속죄하는 제사가 아니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 가운데에는 아직 제사장과 제단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은 믿어도 좋고 안 믿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우상을 숭배하는 우리와는 달랐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원할 때는 하나님을 택하지만 하나님을 원치 않을 때는 세상을 택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갈 세 번째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고 그리스도 없이도 속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그들에게 제사를 드려 줄 제사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돈이 많으면 소를 사고 적으면 양을 살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사도는 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이미 단번에 드리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속죄의 일을 이루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구약을 폐하셨고 구약의 제사를 폐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는 소와 양이 우리 죄를 속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는 소와 양의 제사가 우리 죄를 속량할 수 없게 되었고, 이것은 폐해 졌습니다. 이것이 히브리서 7장과 10장이 말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제물로 삼으셨을 뿐 아니라 또한 소와 양의 제사를 폐하셨습니다. 10장 앞부분에서는 황소와 염소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고 번제함과 속죄제도 그분이 기뻐하지 않으시므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예비하셨다고 말합니다. 소와 양은 죄를 속량하지 못하고 오직 그의 아들만이 죄를 속량하실 수 있습니다. 구약의 소와 양의 제사는 예표와 대표로서 제물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니은 이제 구약은 지나갔고 예표도 지나갔으며 실제가 이미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을 거절하고 실재를 거절한다면 예표만 소유하게 되기 때문에,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속죄제는 오직 하나이므로 그분을 거절하면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0장 26절은,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 외에 따로 구주를 찾는다면 더 이상 구주가 없다는 것을 알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