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으로부터 한 인격 예수를 주목함
생명의 말씀
2012-04-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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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3:16『그분의 이름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이름이 여러분이 보고 듣는 이 사람을 강건하게 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적을 행했으므로 사람들은 그것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말하는 도중에 사람들의 주의를 기적으로부터 한 인격 곧 예수께 돌렸다. 비록 베드로와 요한이 기적을 베풀었으나 베드로는 기적에 관해 전혀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그의 청중들을 그리스도께로 돌아서게 할 토대로서 기적을 사용했다. 그는 사람들의 주의를 치료로부터 치료자에게로 돌렸던 것이다.
베드로의 메시지는 앉은뱅이를 치료한 기적에 입각한 것이다. 신유(divine healing)에 관해 말하는 것은 베드로의 부담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부담은 그리스도를 번식시키려는 데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말해 내야 하는, 곧 그리스도를 말해야 하는 부담을 느꼈던 것이다.
베드로의 부담은 그리스도를 다른 이들에게 직접 말해서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번식이 되게 하여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하나의 몸을 가지시도록 그들을 그분의 살아 있는 지체들로 만드는 것이었다. 오순절은 기적과 이적과 표적과 신유 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번식을 위한 것이다. 그러한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다. 비록 한 사람의 앉은뱅이가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서 치유되었지만, 베드로의 강조점은 치료에 있지 않고 주 예수의 이름에 있었다. 먼저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그는 자신의 메시지에서 『그분의 이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강건하게 하였다』고 계속 말했다(16절). 그러므로 베드로는 신유나 기적을 전파한 것이 아니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전파한 것이다.
비록 베드로는 사람들의 주의를 치료로부터 치료하시는 분으로 돌렸지만, 오늘날 치료를 강조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의 주의를 치료하시는 분으로부터 치료로, 심지어는 거짓 치료로 향하게 한다. 그것은 참 치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사람들을 치료자 곧 주 예수께로 향하게 했다. 우리 역시 우리의 주의를 치료로부터 치료하시는 분에게로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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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산물 이스마엘
생명의 말씀
2012-04-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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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없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아브라함을 좋아한다. 구원받은 후에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같은 생활, 하늘에 속한 생활, 승리하는 생활,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생활을 하기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생활을 하기 원하시지만 그분은 우리가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하늘에 속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넣어주신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의도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은혜를 무시한다. 의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늘에 속한 생활을 하는 것이고 은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넣어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자신의 천연적인 배경에서 데리고 나온 우리의 롯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늘에 속한 생활 안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그를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하나님께서 롯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실 때, 우리는 엘리에셀에게 가서, 그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늘에 속한 생활을 하게 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는 그를 원치 않는다. 나는 객관적인 것을 원치 않으며 네 자신 안에서 나온 주관적인 것을 원한다.』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깨달은 후에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우리 자신의 힘과 강함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우리 모두는 하갈, 곧 언제든지 기꺼이 우리와 동역하기 원하는 여자를 소유하고 있다. 우리에게 모세가 준 율법은 없을지 모르나 자신이 만든 많은 율법이 있다. 우리 모두는 율법을 주는 사람이며 자신을 위해 율법을 만드는 사람이다.
자신이 만든 율법의 예를 들어보자. 가령 당신이 지금부터 남편에게 결코 화를 내거나 소극적인 태도로 대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하자. 이것은 당신의 첫 번째 계명이다. 두 번째 계명은, 당신이 그리스도인인 여자와 그리스도인인 아내로서 훌륭하고 상냥하고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의 세 번째 계명은 남을 비평해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네 번째 계명은 항상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고 미워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만든 이 율법들이 하갈이다. 이 율법을 지킴에 있어서 우리가 성공하건 실패하건 하나님의 눈에서는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그분의 시각에서는 우리의 성공까지도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수 년 동안 몇몇 자매들은 자신이 만든 율법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강한 성격과 강한 의지와 강한 의도를 가지고 자신의 성질을 다스려서 훌륭하고 상냥하고 겸손해지려고 하루 종일 최선을 다했다. 이 면에 있어서는 성공했지만 그 자매들이 산출한 것은 이스마엘이었다. 그 자매들은 자기의 이스마엘을 기뻐했으며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그를 자랑했다. 이 원칙은 형제들에 있어서도 똑같다.
우리가 자기 눈에 좋은 이스마엘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나 우리 속에는 어떤 것을 놓치고 있다는 깊은 느낌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놓쳤다. 더욱이 이 이스마엘은 항상 영적인 것들을 조롱한다(21:9). 한면으로 우리는 영적인 것들을 조롱하는 이 요소를 싫어하지만, 다른 면으로는 이스마엘이 우리에게서 산출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느낀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놓친 후에 우리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발견한다. 마치 오늘날 이스마엘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문제인 것처럼 우리가 산출한 이스마엘은 우리에게 문제로 남아 있다. 이것에 대해 분명하다면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것이다. 『주여, 나를 당신의 은혜 안에 보존하소서. 나를 약속 안에 보존하소서. 당신의 약속이 오늘 성취되건 수 년 후에 성취되건 문제 없습니다. 나는 오직 당신의 약속만을 주의하기 원합니다.』 이렇게 말하기는 쉽지만 그렇게 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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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자와 구주
생명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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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31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높이 올리시어 영도자와 구주가 되게 하셨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들이 용서받도록 하기 위한것입니다.」
오늘날 누가 땅을 다스리고 있는가? 우리는 땅이 왕들과 대통령들에 의해서 다스려지고 있다고 말할지 모르나 최고 지배자이신 주 예수님은 그들 위에 계신다. 계시록 1장 5절에 따르면, 그분은 땅의 왕들의 지배자이시다. 당신은 어떤 명칭이 더 높다고 생각하는가? 지배자(Ruller)인가 왕(King)인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왕이 지배자보다 더 높은 명칭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은 그리스도가 왕들의 지배자이시라고 말하고 있으며, 베드로는 그분이 지도자요 최고 지배자라고 말한다.
매우 참된 의미에서 왕들의 지배자이신 그리스도는 모든 왕들을 폐위시킨다. 오직 그분만이 지배자이시다. 더욱이 계시록 19장 16절에 따르면, 그분은 왕 중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시다. 그분은 지배자인 동시에 왕이시다. 지배자로서 그분은 온 땅을 지배하신다. 마치 왕들과 대통령들이 땅을 지배하고 있고, 주 예수님은 보좌 위에 계시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좌 위에 계시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 분이 바로 보좌에 앉은 모든 자들의 지배자이시다. 오늘날 전세계는 주님의 지배 하에 있다. 그분은 진실로 지도자시요 최고 지배자이시다.
그러면 무슨 목적으로 주 예수님은 땅을 다스리고 계시는가? 지도자요 지배자로서 그분은 우리의 구원을 목적으로 땅을 다스리신다. 그분은 우리가 구원받도록 다스리고 계신다. 미국으로 이민 온 중국인들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우리가 발견한 것은 이 이주민들 가운데 상당히 많은 이들이 주님께 활짝 열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냥 중국에 남아 있었더라면 이처럼 열려 있게 될 것 같지 않다. 주 예수님은 그분의 권위를 행사하시어 수많은 외국인들을 이 나라에 오게 하셨다. 그들이 일단 도착하면 그분께 열려 있게 된다. 이것은 주님이 사람들을 구원시키려는 목적으로 땅을 지배하신다는 것에 대한 실례이다.
<사도행전 L-S M.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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