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롭게 하심
생명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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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30『또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셨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맏아들이며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이다(히 2:10).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맏아들로서 그의 모든 형제들, 곧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에게 본과 실례(출 77)와 모형과 원형이 되며 그들은 그분의 형상을 본받게 될 것이다. 이 본받음은 장래에 올 영화롭게 하심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먼저 생명의 성장 없이,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음 없이 영화롭게 되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장래에 올 영화롭게 하심은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데 달려 있다. 그러므로 영화롭게 하심은 우리의 생명이 성장하는데 달려 있는 것이다.
카네이션 씨가 땅에 뿌려져 싹이 나는 것이 거듭남이다. 그리고 나서 자라는 것이 생명의 성장, 곧 변화의 단계이다. 결국 그 카네이션은 성장하여 꽃 피는 단계에 이른다. 이것이 변형이요, 영화롭게 하심이다. 만일 카네이션이 싹트는 단계에서 생명의 성장 없이 꽃 피고 영화롭게 되기를 기대한다면, 꽃 피는 시간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만일 당신의 생명이 성장하지 않고 꽃 피는 시간, 즉 영화롭게 되는 시간만 기다린다면 당신은 꿈꾸는 자이다.
우리가 생명의 성장 없이 들림 받기를 기대한다면 우리는 꿈꾸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휴거란 실제로 우리의 변형이요 영화롭게 됨이기 때문이다. 어떤 카네이션 싹이 하룻밤 사이에 싹이 나서 꽃 필 수 없다. 어떤 카네이션 싹이 하룻밤 사이에 싹의 단계에서 꽃 피는 단계로 성장하는 꿈을 꾸었다고 상상해 보라. 이런 것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며 실제 생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생명의 법칙에 의하면, 카네이션은 점차적으로 자라서 성숙된 단계에 도달해야 한다. 그때, 오직 그때라야 꽃이 나타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점차적으로 자라서 완전히 성장한 사람에 이르러야 한다(엡 4:13 원문 참조). 우리는 꽃 피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변형되고 영화롭게 된다. 그러므로 변형을 포함하는 영화롭게 하심은 우리가 성숙한 후에라야 가능하다.
<로마서 L-S M.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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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결혼
생명의 말씀
2012-0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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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17-18『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라』
왜 창세기 24장은 이삭의 결혼에 대한 이런 기록을 우리에게 제시하는가? 우리가 다만 24장만을 읽는다면 이 기록의 목적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우리는 앞에 있는 석 장을 읽어야 한다. 창세기 21장 12절은,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목적을 가지고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좋은 땅과 땅의 기업인 씨를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단체적인 방법으로 그분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단체적인 표현을 가지기 위해 하나님은 사람을 가지셔야 한다. 이 사람이 아브라함의 씨이다. 또한 단체적으로 하나님을 표현하는 사람을 가지기 위해서는 땅이 필요하다.
그러면 창세기 24장에 있는 결혼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 결혼은 다만 한 독신자가 행복해지고 안락한 삶을 갖는 것인가? 아니다. 만일 당신이 전체적인 측면에서 성경을 살펴본다면, 당신은 이삭의 결혼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임을 보게 될 것이다. 결혼하지 않고 이삭이 어떻게 씨를 낳을 수 있었겠는가? 이 독신자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씨를 가지려면 결혼해야 했다.
그러므로 이삭의 결혼은 그의 인간 생활을 위한 단순한 일이나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창세기 L-S M.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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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계신 그리스도
생명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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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0:8『그러면 이 의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이 너에게 가까이, 곧 네 입에 있으며 너의 마음에 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부활한 그리스도는 사신 말씀으로 우리와 가까이 있고 우리 입에 있으며 우리 마음에 있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갑자기 그리스도에 대한 말로 「말씀」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것은 이 말씀이 분명 그리스도 자신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부활한 그리스도는 생명 주는 영으로서 산 말씀이시다. 이것은 말씀이 그 영이라는 신약의 계시에 해당된다. 헬라어로 쓰인 에베소서 6장 18절을 읽어본다면 그 영이 말씀인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한 그리스도는 그 영이요 말씀이다. 그분은 우리가 접촉하기 위한 그 영이며 우리가 이해하기 위한 말씀이다. 우리는 그분을 그 영으로 영접할 수 있고 말씀으로 영접할 수 있다. 부활한 그리스도는 생명 주는 영으로서 우리와 매우 가까이 있는 산 말씀이다. 그분은 우리 입에 있으며 우리 마음에 있다. 우리의 입은 부르기 위한 것이고 우리의 마음은 믿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입으로 부를 수 있으며 마음으로 믿을 수 있다. 우리는 그분을 부를 때 구원받고, 그분을 믿을 때 의롭게 된다.
성육신과 부활로 과정을 거친 후 그리스도는 오늘 하늘에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있는 주님이며 땅에서 움직이는 생명 주는 영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와 가까이 있고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분이다. 그분은 매우 가까이 있어, 우리 입에까지 있으며 마음에까지 있다. 누구도 이분보다 더 가까울 수 없다. 그분은 누리기에 매우 편리하다. 누구든지 그분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부르는 자는 그분을 얻을 수 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성취하셨고, 모든 과정을 통과하셨다. 그분은 이제 땅 위에서 운행하고 있으며 그분을 영접하는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된 분이다.
<로마서 L-S M.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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