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 있는 생명을 의지하여 주님을 섬김


생명의 말씀 2013-06-2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48818.html
안에 있는 생명의 근원을 의지하여 주님을 섬김

어던 사람이 주님의 생명에 얼마나 지위를 갖게 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유용성이 결정된다. 내가 개인적으로 약간의 간증을 한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어린 시절의 내 모습과 완전히 다르다. 어렸을 때 나는 소심하고 독립적이며 다른 사람과 같이 있지 못했다. 나는 언제나 한쪽에 앉아 있다가 사람을 보면 도망쳤다. 학교에서도 말이 없었고 호라동도 좋아하지 않았으며 어던 사람과도 거의 접촉하지 않았다. 집에 손님이 오면 기회를 틈타 몰래 도망갔는데, 왜냐하면 사람을 보면 얼굴이 빨갛게 되고 말을 하면 입술이 떨렸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타고난 나였다. 그러나 어느날 주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나에게 일어나 그분을 위해 말하도록 하셨다. 그날부터 나는 날마다 헌신하였고 날마다 처리하였으며, 날마다 주님 앞에서 사는 것을 배웠다. 1947년에 나는 상해로 가서 허 형제님을 만났다. 그는 "이 형제님, 당신은 어렸을 때에는 분명 매우 적극적이었거나 연설을 잘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허 형제님, 형제님의 판단이 틀렸습니다. 형제님이 만약 내 어린시절의 친구들에게 물어본다면 제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당신의 타고난 존재가 어떠하든 당신이 그리스도의 생명에게 지위를 줄 때 그분은 당신 안에서 살아 나타나실 것이다. 그분께서 당신을 바꾸실 것이고 당신을 전과 다른 사람으로 만드실 것이다. 주님은 활동하기를 싫어하는  당신을 활동적으로 만드시고, 잠잠한 것을 싫어하던 당신이 입을 열게 하실 것이다. 그분은 사람을 접촉하는 것을 싫어하던 당신을 이제 사람을 접촉하는 것을 좋아하게 만드신다. 그분은 철두철미하게 당신을 변화시키실 것이다.

초기에 내가 주님을 위해 말할 때 거의 매번 내 위장은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로 아팠다. 나는 이렇게 주님의 손에서 돌파구를 찾았고 필사적이었다. 우리의 유용성은 우리의 타고난 것, 즉 태어나면서 가지고 온 것에 있지 않으며,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하나의 출로와 기회와 출구를 얻으시는 것에 있다. 그분께서 이렇게 흘러 나오실 때 비로소 우리는 유용하게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주님을 섬기는 것은 우리 자신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시는 그분을 의지하는 것이다. 우리의 밑천과 자본은 우리의 타고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생명과 살아 계신 그리스도와 무한하신 그리스도이다. 문제는 우리에게 이러한 그리스도가 있으나 우리가 그분께 지위를 드리지 않는 데 있고, 우리에게 이러한 생명이 있으나 우리가 이 생명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것에 있다. 우리는 철저하게 헌신하지 않았고 온전하게 처리받지 않았으며 파쇄되지 않았다. 우리가 그분께 지위를 드리지 않고 기회를 드리지 않기 때문에 그분은 나오실 길이 없으며 우리는 사람들을 섬길 수도 없게 된다. 모든 섬김은 그분의 샘영에 달려 있다. 공급되는 것이 그분의 생명이고 섬김의 능력도 그분의 생명이다.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지위를 얻으실 때 우리는 기능을 갖게 되며 섬길 수 있게 되고 봉사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가!

출처: W. Lee '주님께 유용하게 되는 길'     
생명, 주님을 섬김


파쇄를 받아들이는 길


생명의 말씀 2013-06-2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48817.html
파쇄를 받아들이는 길

파쇄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여기 유리컵이 있는데 원래는 완전했으나 지금 그것이 깨졌다면 그것이 바로 파쇄이다. 이것에 대해 여러분은 모두 분명할 것이다. 당신의 혈기는 완전하고 당신의 성질도 완전하며, 당신의 성격과 육체도 완전하다. 그런 당신이 지금 구원받아 그리스도의 생명이 당신 안으로 들어오고 당신의 영 안에서 나오려고 하지만 무엇인가에 둘러싸여 있다. 무엇에 둘러싸여 있는가? 혈기와 육체와 성질과 기질이다. 당신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생명을 포위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흘러 나올 수가 없다. 그러므로 지금 당신에게 속한 완전한 그 모든 것은 파쇄될 필요가 있다. 오직 파쇄만이 그리스도의 생명이 흘러 나올 수 있게 한다.

여러분 안에 있는 빛은 먼저 당신 속을 비추며, 여러분의 혈기와 육체, 여러분의 성질과 기질이 모두 그리스도의 생명의 대적이자 방해이며 제한임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또한 당신에게 그것들이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보여 주신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거절하신 것이고, 하나님의 대적이며 그리스도의 생명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빛을 본 후 즉시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서, 그리고 여러분의 일상생활에 있는 크고 작은 모든 일에서 이 빛을 집행하신다. 이 빛을 보기 전에 여러분은 화를 내고 육체를 드러내도 별 느낌이 없었고 무엇을 책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제 여러분이 빛을 봄으로 성령은 여러분 안에서 이 빛을 집행하도록 여러분을 이끌어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여러분의 혈기와 성질이 나올 때 성령은 여러분에게 책망하는 느낌을 주실 것이고, 이러한 혈기와 자아와 성질이 이미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것을 보여주실 것이다. 그후 여러분은 성령의 능력으로 이것들을 책망하고 십자가의 못 박힘을 집행하게 된다. 이 때 못박힘은 십자가 위의 객관적인 교리일 뿐만 아니라 여러분 안에서 주관적인 체험이 된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 8장 13절에서 말하고 있는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이고, 또한 고린도후서 4장 11절과 12절에서 말하고 있는 예수의 죽음이 우리 몸 안에서 일하게 하는 죽음이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지위를 갖고 우리를 인도하시며 날마다 우리의 혈기를 죽이시고 우리의 육체를 죽이신다. 이렇게 죽이는 것이 바로 파쇄이다. 이뿐 아니라 우리를 돕기 위하여 하나님은 성령의 다스림으로 밖에 환경을 안배하셔서 안팎이 서로 협력하여 우리의 몸에서 일하게 하신다. 생명은 안에 있고 환경은 밖에 있으므로 우리에게 파쇄를 받아들일 마음만 있다면, 즉시 안팎에서 협력하여 성령은 우리의 몸에서 파쇄의 일을 시작하신다. 그러나 만약 우리 안에 있는 마음의 원함과 안에 있는 영이 성령의 죽이는 일을 집행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밖의 어떤 환경도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외적인 환경은 성령의 내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받아들여야 한다. 

영은 안에 있고 환경은 밖에 있으며 우리는 이 둘 사이에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집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럴 때 날마다 매순간 우리의 혈기와 육체와 자아는 파쇄될 것이다. 우리가 다시 화를 내려고 해도 화를 낼 수 없게 되는데, 이는 우리의 몸에 많은 상처가 있고 우리가 파쇄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출처: W. Lee '주님께 유용하게 되는 길'        
파쇄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행하고 처신함


생명의 말씀 2013-06-2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48816.html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행하고 처신함

마태복음 4장 1절은 "그 후에 예수님께서 그 영께 이끌리시어 광야로 가셔서 마귀의 유혹을 받으셨다."라고 말한다. 앞 단락에서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안도 영이시고 밖도 영이셨다는 것을 보았지만, 그분은 여전히 한 '사람'이셨다. 그분은 사람이셨기 때문에 그분의 행동은 사람의 행동이셨다. 그러나 그분의 움직임은 성령의 인도에 따른 움직임이셨다. 영께서 그분을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그분은 그대로 따르셨다. 그분은 영 안에서 사신 사람이셨으며, 영을 따라 움직이셨던 사람이셨다.

그분이 광야로 가서 유혹을 받으셨을 때, 사탄의 목적은 그분을 사람의 위치에 서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사탄은 그분을 유혹하면서,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도록 말해 보시오."(3절)라고 말했다. 이것은 그분을 사람의 위치에서 떠나 하나님의 아들의 위치에 서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4절)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여전히 사람의 위치에 서 계셨다. 비록 주님께서 사람이셨지만 그분은 성령의 인도를 받으셨다. 비록 주님은 사람이셨지만 그분은 영 안에 사셨다. 

어떤 사람은 "나는 지금 성령으로 충만되었으므로 더이상 아내로 살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내가 전에는 남편으로서 마치 소처럼 온 가족을 이끌었지만, 이제 나는 성령으로 충만되었으므로 더 이상 늙은 소가 아닙니다. 나는 남편으로 살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전부 잘못된 것이다. 남편된 사람은 여전히 남편으로 살아야 할 뿐 아니라, 더욱 잘 해야 하고 더욱 제대로 해야 한다. 이전의 당신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서 행했지만, 지금은 영을 따라서 행해야 한다. 아내인 사람도 아내의 일을 사직할 필요가 없으며 아내의 역할을 더 잘해야 한다. 이전에는 자신. 안에서 아내의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영 안에서 아내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전에는 영이 없이 아내로 살았지만, 지금은 영으로 충만되고, 영으로 옷 입고, 영을 따라서 아내로 살아야 한다. 이럴 때, 사탄은 당신을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영이 없이 아내로 사는 것은 실패하는 것이며, 영은 있지만 아내로 살지 않는 것도 실패하는 것이다. 사탄의 방법은 영이 없이 아내로 살게 하는 방향으로 당신을 당기지 않으면, 영은 있지만 아내로 살지 않는 쪽으로 밀어낸다. 어떤 사람은 "나는 밥을 하지 않고 집안 일도 상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복음을 전하러 가기를 원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사람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상황이 어찌 되든지 가정을 잘 돌보아야 하고, 영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으며, 가정을 잘 관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언제나 아내의 역할을 잘 해야 한다고 하는데, 두 방면이 다 올바르지 않다.

성령의 인도가 우리를 좋은 곳으로만 인도할 것이라고 여겨서는 결코 안 된다. 성령께서 주 예수님을 인도하실 때 가장 먼저 인도하신 곳이 바로 광야이며, 그곳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게 하셨다. 청년들은 영으로 충만하게 된 후에 아마도 "할렐루야! 주님께서 나를 돌봐주시어 내 안은 영으로 충만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면 아버지께서 틀림없이 환영해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돌아가보니 아버지가 제일 많이 반대하고, 다음으로는 어머니가 싫어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청년들은 "그만 하세요. 다 필요없습니다. 아버지가 억지를 쓰시고 어머니도 보기 싫어하시니, 됐습니다. 저는 영을 따라, 교회에 가서 예수님을 따르겠어요."라고 말할 것이다. 당신이 예수님을 따르기 원한다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신의 집이 바로 광야이다. 그러나 절대로 당신의 아버지를 마귀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절대로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당신의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이고 당신의 어머니는 더욱 좋은 어머니이므로, 당신은 반드시 영 안에 있는 자녀가 되어야 한다. 영 안에 산다면 집안 일을 더욱 잘 해야 하고, 더욱 탁월하고 고상하게 해야 하며, 더욱 효과적으로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 영을 따라 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