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지체들의 태도'


생명의 말씀 2013-01-15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43400.html
교회에서 보다 큰 지체들은 반드시 다른 지체들을 온전하게 하는 것을 배워야 하고, 한 편 더 작고 어린 지체들은 더 큰 지체들의 온전하게 함을 받아들이는 것을 배워야 한다. 어린 지체는 단순히 복종할 뿐만 아니라 온전하게 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일찍이 나는 주님의 긍휼로 인해 배우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나는 다만 배우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사람들이 나의 의견은 어떠냐고 물을 때마다 나의 대답은 다만 "저는 특별히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할 뿐이었다. 나는 나를 온전하게 하는 지체들이 내게 뭐라고 말하든 따르고자 하였다. 다른 사람들의 온전하게 함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지체가 여러분에게 "형제님, 메시지를 전해주시겠어요?"라고 청한다면 가장 훌륭한 대답은 "제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나요?"라고 묻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을 온전하게 하는 형제가 "속생명에 대해 무언가 공급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면, 여러분은 "속생명의 어떤 점에 대해 말해야 할까요? 무엇을 말해야 될지 아는 것이 없습니다. 제가 배울 수 있도록 저에게 뭔가를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물어봐야 한다. 먼저 그 형제는 "속생명이 그리스도라는 점을 말하면 좋겠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은 다시 "그 말 외에 또 말해야 할 내용이 있습니까?"라고 물을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배우고 전진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항상 워치만 니 형제님을 대하던 방식이다. 심지어 그에게 메시지 분량은 어느 정도 해야 할지도 물었었다. 그러면 니 형제님은 "형제님께서 알아서 하십시오."라고 말했고, 나는 "얼마나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었다. 만일 형제님이 삼십 분이라고 말하면 나는 반드시 삼십 분 내에 모든 메시지를 끝냈었다. 때때로 이런 방식으로 형제님과 이야기를 마치는데 세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나는 참으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자세로 임했고 이를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어떤 때는 세 시간에 걸쳐 형제님에게 배운 후, 다음날 한 시간도 안 되는 메시지를 전한 적도 있었다.

우리는 모일 뿐 아니라 반드시 배워야 한다. 여러분들은 대부분 어리고 작은 지체들이다. 설령 여러분이 뭔가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더 큰 지체들은 여러분보다 더 많이 갖고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가진 것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은 여러분의 배움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여러분은 가르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은 배우기 위해 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한다는 말은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항상 배우려는 자세를 취했다. 무언가를 배우려면 반드시 백 퍼센트 배우는 이가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더 많이 배울 것이고 심지어 가장 많이 배울 것이다.

교회에서 기능을 발휘하는 데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보다 큰 지체, 더 연장한 지체들은 다른 지체들을 대치하지 말아야 하고, 반면에 그들을 재생산하고 온전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보다 작고 어린 지체들은 항상 배우는 입장을 취해야 한다. 이 두 방면을 주의한다면 몸의 기능은 신속하고 적절하게 발휘될 것이다.

그러나 교회생활에 있어서 가련한 상황은 보다 큰 지체들이 재생산하고 온전하게 하지 않는 것과 더 작은 지체들이 배우지 않는데 있다. 이러한 가련한 상황에 대해 배우는 이들이 큰 지체들을 비난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배우는 이는 단순하게 배우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리하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나에게 운전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하자. 내가 훌륭한 학생이라면 여러분이 뭐라고 말하건 토를 달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이 나에게 어떤 도로를 주행해 보라고 시키면 "거기에 장애물이 있습니다."라는 시긍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여러분이 시키는 것을 따라 할 때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합당한 원칙들이다. 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들은 더 크고 더 성숙했다. 물론 이것은 상대적이다. 누군가는 어떤 사람에 비해서는 어리지만 또 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더 성숙했을 수 있다. 나는 여러분보다는 작지만 나보다 더 작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린 사람으로서 배워야 하고 더 큰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재생산하고 온전하게 해야 한다. 다시 말하는데, 그럴때 모든 기능이 적절하고 풍성하며 매우 신속하게 산출될 것이다. 이 두 가지 원칙은 작은 문제가 아니다.

출처: 1965,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W. Lee, '그리스도의 몸에게 주어진 은사로서 생명 안에서 기능을 발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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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지체, 복종, 성숙, 연장한 지체, 배움


'점유되지 않고 우리의 존재를 돌보는 원칙을 지킴'


생명의 말씀 2013-01-14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43390.html
그런데 모든 형제자매들이 어떤 문제에 사로잡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젊은 형제자매들은 학업과 학위에 사로잡혀 있다. 처음에는 학사학위에 사로잡히고 그다음에는 석사학위, 그다음에는 박사학위 그리고 그다음에는 또 다른 것에 사로잡힌다. 어머니들은 자녀에게 몰두해 있고 가정주부들은 집안일에 사로잡혀 있으며 형제들은 사업에 점유되어 있다. 그럴 때 우리가 몸을 가질 수 있겠는가?

우리는 모두 공부를 위해, 집안일을 돌보기 위해, 혹은 사업을 위해,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이 땅에서 주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이다. 우리는 제사장들처럼 주님을 섬기고 증거 하기 위해 이 땅에 살고 있다. 물론 생계를 위해서도 무언가 해야 한다. 우리는 음식도 필요하고 옷과 집도 필요하며 결혼도 해야 하고 자녀도 두어야 한다. 당연히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생계를 이유로 섬김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생계는 섬김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해방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섬기겠는가?

합당한 원칙은 우리가 균형이 잡혀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은 열심히 공부해야 하지만 가능한 공부를 약간 줄여 시간적으로 몸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물론 몸을 자유롭게 하는데 시간을 따로 떼어놓은 만큼, 학업을 끝내는데 시간이 좀 더 걸려야 할지 모른다. 돈을 버는 사람도 호화롭지 않아도 매달 일정 금액의 돈을 벌며 합당하게 생활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돈을 더 벌려고 일을 더 하지 말라. 이것은 자신을 돈의 노예로 파는 행위이다. 어느 정도 수준에 맞고 합당하며 건강하며 좋은 삶을 사는 것으로 충분하다. 생활의 수준을 높이려고 하지 말라. 수준을 높인다면 더 높은 수준의 생활의 노예로 자신을 팔게 될 것이다. 이것이 대적의 간교함이다. 우리는 항상 육체적인 생명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생활을 간소하게 유지해야 한다. 건강하게 산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런 다음에는 시간과 에너지를 비축해 섬겨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은혜를 위한 역량을 갖게 될 것이다.

물론 자녀도 소홀히 대할 수 없다. 우리는 자녀를 키우고 돌보아야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돌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균형을 잡아야 한다. 우리는 이 땅에서 자녀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있다. 우리의 집과 음식과 옷과 결혼과 가정과 자녀는 모두 우리가 존재하는데 필요하지만,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섬김을 위해서이다.

주님의 회복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이 문제를 함께 포함시켜야 한다. 미국에는 진정으로 주를 위해 사는 한 무리의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합당하게 살아야 하고 거지처럼 궁핍한 방식으로 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혹 부유하게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것도 우리를 사로잡지 못한다(딤전 6:6-10). 우리는 신성한 섬김을 위해 이 땅에 있다. 물론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하고 합당한 교육을 받아 학교를 조업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자매들을 격려하여 합당아게 집안일을 돌보고 자녀를 키우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균형을 잡아야 하고 원칙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공부나 가족, 혹은 자녀를 키우고 집안일을 돌보기 위해, 혹은 사업을 하기 위해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기 위해 있다. 살기 위해, 존재하기 위해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필요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합당한 수준 내에 있어야 한다. 어떤 것도 우리를 사로잡아서는 안 된다.

출처: 1965,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W. Lee, '그리스도의 몸에게 주어진 은사로서 생명 안에서 기능을 발휘함'

점유됨, 기능발휘, 집회, 자녀교육


'우리의 몸을 드리기 위해 사로잡힘에서 해방됨'


생명의 말씀 2013-01-14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43389.html
어떻게 우리는 생명이신 그리스도, 즉 은혜를 우리 안에 담을 역량을 가질 수 있는가? 로마서 12장에 보면 우리 존재의 세 부분과 관련해 세 가지 사항이 제시된다. 먼저 우리는 우리 몸을 드려야 한다(1절). 이것은 우리 몸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 외의 다른 어떤 것으로 우리 몸이 점유되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 몸은 점유되고 해방 받지 못한다. 나는 젊은 사람들이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것에 동의한다. 나는 항상 사람들이 합당한 교육을 받기를 격려한다. 하지만 젊은 형제들이 공부에 완전히 사로잡힌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그들은 심지어 너무 바쁘다는 이유로 집회에 오지 않을 때도 있다. 이들의 몸은 공부에 완전히 점유되어 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견딜 수 없다. 물론 공부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공부에 완전히 점유되는 것은 옳지 않다.

집을 가꾸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합당한 방식으로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관리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 몸을 집안일에 사로잡히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 몸이 집안일로 사로잡혀 있다면 어떻게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가? 만일 시간이 많지 않다면 공부와 집안일을 조금 희생하여 당신의 몸을 어떤 점유됨에서도 자유롭게 하고 기능을 발휘하여 주님을 섬기도록 권하고 싶다. 미국이든 아시아든 집을 놀랍게 가꿔놓는 형제자매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주님을 접촉할 시간이 없다. 어떤 자매는 주일이 되어서야 겨우 시간을 내어 집회에 오고 헌금함에 돈을 집어넣을지 모른다. 이렇게 하는 것은 그 자매에게 있어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많은 시간을 들여 장식들로 집을 꾸미고 마룻바닥을 광낸다.

집을 가꾸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드리는 것은 일종의 사치이다. 우리는 합당하게 집을 가꿔야 하지만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주 예수님과 제자들이 살았던 삶과 우리의 삶을 비교해 보라. 그들은 아름다운 집을 갖기 위해 시간을 쓰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집을 새 예루살렘 안으로 가져갈 수 없다. 따라서 의심할 바 없이 그것은 쓰레기이다. 결국 집은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쓰레기통'에 들어갈 것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는 대신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 그렇다고 집을 엉망으로 내버려두는 것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합당한 집이 있어야 하지만, 단지 어느 정도면 된다. 우리의 몸은 너무나 제한적이다. 따라서 주님을 섬기기 위해, 곧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우리의 몸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왜 우리는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가? 학업과 집과 일에 너무나 많이 점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형제들은 사업에 너무 몰두해 있다. 작년에 오백만 달러를 벌었다면 올해에는 팔백만 달러를 벌기를 원하고 내년에는 천만 달러를 원한다. 형제들이 이렇게 한다면, 봉사를 할 수 ㅇ벗을 것이다. 몸을 자유롭게 해방하는 것을 배우라. 주님 아닌 다른 많은 것들로 몸을 속박하지 말라. 이것이 우리 몸을 살아있는 제물로 드리라는 로마서 12장 1절의 의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추상적인 방식으로 드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반드시 구체적으로 드려야 한다. 구체적인 드림이란 몸을 통해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모든 드림이 몸 안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속박과 사로잡힘에서 우리 몸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출처: 1965,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W. Lee, '그리스도의 몸에게 주어진 은사로서 생명 안에서 기능을 발휘함'
몸을 드림, 사로잡힘, 해방, 기능발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