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숨기시는 하나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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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숨기시는 하나님』(4)

 

우주의 역사, 구약과 신약의 역사, 인류의 온 역사를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숨기시는 분”이라는 동일한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 우주는 그분에 의해 창조되었고 하늘과 땅은 그분의 손으로 지으신 것들이다. 그러나 육천 년 동안 사람들이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아 왔지만 하나님을 본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성경은 구약 시대에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독생자)이 나타내셨느니라”고 말한다(요 1:18). 그러나 이 독생자는 아버지를 나타내려고 오셨을 때 “상한 얼굴”을 지니고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는” 그러한 인생(사 52:14, 53:2) 안에 자신을 감추셨다. 그분은 보잘것없는 갈릴리 지방의 작은 읍인 나사렛 출신이었다. 유대인들은 그곳에서 어떤 선지자나 선한 사람이 나올 수 없다(요 1:46, 7:52)고 말하였다. 따라서 그분이 나타나셨을 때 사람들이 그분 안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기란 어려웠을 뿐 아니라 그분이 선지자였다는 것조차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사렛 사람인 예수 안에 숨으셨다.

 

내가 언젠가 이것을 깊이 생각하고 있었을 때, 분명히 그분 자신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셨던 하나님께서 창조로부터 구약 말기까지 사천 년 동안 사람들에게 그분 자신을 숨기셨다는 것이 놀랍게 여겨졌다. 그리고 그분은 신약 시대에, 사람들에게 그분 자신을 계시하려는 특별한 목적으로 하늘로부터 땅으로 오셨을 때 한번 더 한 사람 안에 그분 자신을 숨기셨다. 그분은 나타나신 후에 곧 숨으셨다. 그분은 너무나 잘 숨기셔서 어느 누구도 도저히 그분을 알아볼 수 없다. 그분은 그러한 방식으로 행하기를 좋아하시는 것 같다. 나는 이것을 그분의 취향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주님께서 나의 말을 경건하지 못하다고 하지 않으시리라 믿는다.

 

예를 들어 무엇을 하든지 대체로 눈에 띄지 않게 행하는 형제 자매들이 있다 하자. 만일 그들이 여러분에게 물 한 컵을 가져다준다면, 그들은 여러분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기회를 잡아 살짝 들어와서 조용히 물을 내려놓고 나갈 것이다. 여러분은 되돌아서 물 한 컵을 보지만 누가 그것을 거기에 두었는지는 전혀 모른다. 나는 이와 같이 일을 행하는 많은 형제 자매들을 만났다. 그들은 여러분을 위해 어던 것을 행할 때 아주 조용하고도 비밀스럽게 행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누가 그것을 행했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이 그들의 취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과 전적으로 다른 기질을 소유한 여러 형제 자매들도 있다. 그들은 항상 지나치게 과시한다. 만일 그들이 여러분에게 물 한 컵을 가져다준다면 그들은 물을 내려놓기도 전에 여러분에게 소리가 들리도록 컵을 요란하게 다룬다. 그런 다음 걸어 나오면서 큰 소리로 “아무게 형제, 물!”이라고 말한다.



계시를 받기 위해 관념들을 내려놓음


생명의 말씀 2012-04-0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38543.html
갈라디아서 1:16『내가 그분의 아들을 이방인들에게 복음으로 전파하도록 하시려고, 그분의 아들을 내 안에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오늘날 하나님은 모든 곳에서 비추고 계신다. 이 은혜의 시대는 빛의 시대이다. 하나님은 빛을 비추시고 성경도 빛을 비추고 있다. 성경은 빛으로 가득 차 있고 수백 가지 언어로 인쇄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지구 위에 운행하고 있는 만유를 포함한 성령은 은혜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성경이 빛을 비추고 영이 운행하고 있어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계시를 받지 못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어떤 관념들을 붙잡고 있고 그 관념들에 가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여러 나라로부터 온 사람들을 접촉할 때, 당신은 그들 모두가 그들의 관념이 강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면으로, 나는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자람과 향상을 인해 주님을 경배하지만 다른 한면으로는, 많은 베일들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깨닫는다. 이런 베일들은 우리를 눈멀게 하는 관념들이다. 계시를 받는 데 있어서 주님 편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 주님 편에서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 문제는 모두 우리 편에 있다.

우리는 베일들, 즉 우리의 관념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는, 『주여, 모든 베일들을 내려 놓도록 도우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을 읽는 동안 관념에 붙잡혀 있다면, 당신은 성경을 읽을 때마다 그 생각에 베일이 가리워진 고대 유대인들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읽을 때 관념을 내려 놓는다면 베일이 없어진 얼굴로 읽게 될 것이고, 빛이 주관적으로 당신 안에 비취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주님을 살기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살려면 계시가 필요하다. 『주여, 나는 당신이 이 시대의 신을 폐하시기를 의뢰합니다. 나는 당신 외의 어떤 것도 경배하지 않습니다. 주여, 내 마음을 당신께 돌이키고 나의 모든 관념을 내려 놓습니다. 나는 당신 외의 누구도 경배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L-S M. 4>


더 이상 내가 살지 않음


생명의 말씀 2012-04-0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38542.html
갈라디아서 2:20『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이제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생명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 안에서 사는 생명입니다.』

로마서 6장 6절은 우리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내가 옛 「나」, 즉 옛 사람이다. 거듭난 사람인 우리에게는 옛 「나」와 새 「나」가 다 있다. 옛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끝났다. 그러므로 바울은 『더 이상 내가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새 「나」는 여전히 살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내가 사는 것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옛 「나」안에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 없지만 새 「나」는 거룩한 생명을 받았다. 하나님이 그 안에 생명으로 더해졌기 때문에 옛 「나」가 새 「나」가 되었다. 끝나버린 「나」는 신성이 없는 「나」이고, 지금 살고 있는 「나」는 하나님이 더해진 「나」이다. 한편으로 바울은 끝났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부활한 바울은 그의 생명이신 하나님과 하나이고 여전히 살아 있다.

요한복음 6장 57절에서 주 예수님은,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고 말한다. 아들은 스스로 살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아들이 밖으로 밀려나서 존재하기를 그쳤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아들은 계속 존재하지만 자신의 생명으로 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아버지의 생명을 살았다. 이렇게 아들과 아버지는 한 생명과 한 삶을 가졌다. 그들은 같은 생명을 나누었고 같은 삶을 가졌다.우리와 그리스도는 두 생명을 갖지 않는다. 우리와 그리스도는 한 생명과 한 삶을 갖는다. 우리는 그에 의해 살고 그는 우리 안에 산다.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사시고 우리는 그와 함께 산다. 그러므로 우리와 그는 한 생명과 한 삶을 갖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L-S M.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