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망을 받아들임
생명의 말씀
2012-0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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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5:13『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에 의해 드러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일들을 드러나게 하는 것마다 빛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을 드러내거나 책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망을 거부하며 자기를 책망하는 사람에게 적대감을 느낀다. 타락한 사람의 본성 안에는 책망하고 꾸짖고 드러나는 것을 거절하는 어떤 성분이 있다. 그러므로 가능하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도 드러내거나 책망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책망하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럴때 책망하는 사람은 자신이 매우 깨끗하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마치 그 사람은 수술에 들어가기 전 모든 세균들로부터 자신을 깨끗케 해야 하는 외과 의사와 같다. 만일 당신이 깨끗하게 되지 않았다면 당신은 책망하거나 드러냄으로써 어떤 사람을 수술할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당신 안에 있는 세균들이 그 사람을 오염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책망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책망하는 사람들이 순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수술」을 끝내자마자 전염병이 발생한다. 어떤 사람을 책망하거나 드러낼 수 있기 전 우리는 반드시 순수하게 되어야 하며 살균되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생각과 동기와 느낌과 의도에 있어서 깨끗해야 하며 마음 안에서 또한 영 안에서 순수해야 한다.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책망을 받고 있다면 그 사람이 순수한가 아닌가를 분별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단순히 그 책망과 드러냄을 받아들이라. 이렇게 한다면 당신은 축복받을 것이며 잠자는 데서 일어나게 되고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비추실 것이다. 모든 책망은 순수하든지 불순하든지 깨끗하든지 더럽든지 그리스도의 비춤이다. 책망받을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주여, 나는 당신의 비춤으로 인해 당신을 경배합니다. 이 책망은 당신의 비추심입니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책망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빛 안에서 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기꺼이 책망받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두움 가운데서 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진실로 빛 안에서 행하고 있다면 어떤 종류의 책망으로부터도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에베소서 L-S M.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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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확대함
생명의 말씀
2012-0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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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어떤 일에서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항상 그러하였듯이 지금도 매사에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확대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감옥에 있을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인들에게 멸시를 받았다. 로마인들은 정복자들이었고 유대인들은 정복당한 자들이었다. 정복당한 이러한 자들 중에 예수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아무리 크고 놀라운 분이라 하더라도 로마인들의 눈에 그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로마의 감옥에 포로로 잡혀온 바울은 그리스도를 확대했고, 그를 체포한 사람들의 눈에 주님을 위대하게 나타나게 했다. 당신이 일하는 곳이나 다니는 학교에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멸시할지 모른다. 그들은 십계명의 세 번째 계명을 범하여 주님을 조롱하고 주님의 이름을 훼방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당신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그렇게 작게 보지 않고 확대하여 크게 보게 할 필요가 있다.
어떤 젊은 청년들의 부모님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오히려 멸시할지 모른다. 그럴 때 이러한 젊은 청년들은 그들의 부모님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확대케 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들의 부모님에게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대신, 그분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안에 생명이 필요할 뿐 아니라 밖으로 생활이 필요하다. 합당하게 그리스도를 살 때 그리스도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크게 나타날 것이다. 젊은 청년들이여, 당신의 부모님으로 하여금 당신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을 보게 하라.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해 말할 자유를 갖지 못하거나 자유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그리스도를 확대할 수 있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더라도 학생들은 교실에서 그리스도를 확대할 수 있다. 나는 바울이 감옥에 있었을 때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 많은 자유가 있었으리라고 믿지 않는다. 반대로 바울은 매우 제한되어 있었고 엄한 통제 아래 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환경 속에서도 그리스도는 그의 몸에서 확대되었다. 바울은 온전히 담대하여 항상 그리스도를 확대하기를 원했다.
<빌립보서 L-S M.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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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룸
생명의 말씀
2012-0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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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1:12『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우리가 어떻게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룰 수 있는가? 만일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간다면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내가 구덩이에 빠졌다 하자. 어느 누군가가 나를 구출했다면 그것은 구원이다. 그러나 만일 나 스스로 구출되는 데 성공했다면 그것은 구원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이다. 여기에서의 구원은 불 못으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다. 우리의 본이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이다. 우리가 받은 구원이 아니라 우리가 이루어나가는 구원이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하나님의 정죄로부터의 구원이고 불 못으로부터의 구원이다. 여기서의 구원은 사실상 살아 있는 인격이다. 이 인격은 우리가 살고 체험하고 누리는 그 그리스도이다. 다만 객관적인 본은 우리의 이러한 구원이 될 수 없다. 구원이 살아 있는 인격이며 이 인격이 우리의 본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본이 객관적일 뿐 아니라 주관적임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너희 안에 역사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13절.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어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므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이룰 수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객관적인 본으로 삼은 후에 그를 모방하라고 명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모방하기를 시도하는 것은 원숭이가 사람을 흉내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 구절의 문맥을 생각해 볼 때, 그 본은 우리를 실제적으로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자신이다. 우리 스스로는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나갈 수 없지만 능력 있는 분이 지금 안으로는 소원을 두고 밖으로는 행하게 하기 위하여 역사하고 계신다. 우리의 책임은 그분과 협력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협력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본으로 취하는 것이다.
<빌립보서 L-S M.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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