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함
생명의 말씀
2012-0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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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2:8『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각처에서 기도하라는 요구는 무시로 기도하라는 요구보다 더한 것이다. 만일 우리가 모든 장소에서 기도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무시로 기도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세상적인 장소에서는 기도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당신은 그러한 곳들에서 기도할 수 없기 때문에 그곳에 가지 않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어떤 곳에서 기도할 수 있다면 당신이 그곳에 있는 것은 허락될 만한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어떤 곳에서 기도할 수 없다면 당신은 그곳에 있지 말아야 한다. 일할 때나 집에서나 당신의 차 안에서도 기도하라. 만일 당신이 각처에서 기도한다면 당신의 생활은 변화될 것이며 여러분의 지방에 있는 교회도 또한 변화될 것이다. 당신의 지방에 있는 교회가 당신에게 만족이 되는 유일한 길은 당신이 매시간 모든 장소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거룩한 손은 거룩한 생활, 즉 하나님께로 거룩케 되고 분별된 생활을 상징한다. 우리의 손이 거룩하지 않을 때 우리의 생활은 하나님께로 분별되지 않은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기도를 강하게 유지하지 못하며 기도 안에서 거룩한 손을 들 수 없다. 기도에 있어서 우리는 다른 이들을 살피기 위하여 우리의 눈을 들어서는 안 되며 거룩한 손을 들어야 한다. 당신이 비판적인 방법으로 장로들과 성도들을 살핀다면 당신의 기도 생활은 끝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거룩한 손을 든다면 당신의 기도는 강하게 될 것이다.
기도하는 생활을 하고 끊임없는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감정과 생각이 우리 영 안에서 성령의 통제 아래 정상적인 상태로 조절되어야 한다. 내가 합당한 기분 안에서 나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나의 기도 생활은 사망에 넣어진다. 성질 내는 것은 언제나 얼마 동안 우리의 기도 생활을 파괴한다. 우리가 기도 생활을 하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짜증내거나 화내지 않기를 배워야 한다. 주님의 은혜로 우리는 우리의 영으로 우리의 감정을 엄격하게 통제하기를 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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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입으로 두 말을 하지 않음
생명의 말씀
2012-0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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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 전서 3:8 「마찬가지로 집사들도 정중하고,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지 않으며, 술에 중독되지 않고,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않으며,」
뱀은 혀가 둘이다. 교회 안에 있는 집사는 모든 성도들을 봉사하는 데 있어서 그들을 접촉할 때 쉽게 일구이언을 할 수 있다. 그러한 경우에 그는 마귀의 본성을 행하는 것이며 교회 생활 안으로 사망을 가져온다.
오늘날 우리는 종종 일구이언을 하는 대신에 위선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은 위선적이다. 그는 어떤 형제에게 그의 면전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그가 없을 때는 그에 대하여 저렇게 말한다. 집사는 두 얼굴을 갖거나 일구이언을 해서는 안 된다. 만일 당신이 어떤 형제에게 그의 상황에 대하여 친절하게 말할 주님의 인도하심이 없다면 단지 조용히 있어라.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어떤 것을 말하지 말라. 더욱이 당신은 그의 등 뒤에서 그에 대하여 소극적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집사들은 말을 많이 하지 말고 그들의 직임을 완수해야 한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은 하나의 커다란 유혹이다. 집사들은 장로들을 접촉함으로 어떤 문제에 대하여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소식을 퍼뜨리는 것은 유혹이다. 어떤 집사가 이러한 방법으로 행할 때 그는 교회의 소식통이 된다. 집사들은 정보통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필요 없는 소식들이 돌고 도는 것을 제한하는 것은 교회 생활 안에 있는 사망의 벌레들을 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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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양심 안에서 하나님을 섬김
생명의 말씀
2012-0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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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 후서 1:3『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순수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바울은 순수한 양심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그의 조상들의 발자취를 따랐다. 타락의 때에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려면 순수한 양심 곧 어떠한 혼합으로부터도 정결케 된 양심이 필요하다.
나는 주님께 매우 정직하고 진실하며 신실한 모든 성도들이 단지 선한 양심 뿐 아니라 또한 순수한 양심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원수의 거짓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가 순수한 양심을 갖고 있는지를 의심할수록 우리는 더욱더 우리의 양심이 순수하지 않다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선포할 필요가 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나는 순수한 양심을 갖고 있다. 사탄아, 너는 내가 주님을 위하고 다른 어떤 것을 위하지 않음을 아느냐? 나는 주님을 위하고, 그의 교회를 위하고, 그의 유익만을 위한다.』
우리가 정직한 방법으로 순수한 양심을 가지고 있다고 증거할수록 우리의 양심이 순수하다는 우리의 깨달음은 더욱더 강해질 것이다. 우리가 순수한 양심을 갖는 길은 믿음과 정직함과 진실함과 견고함으로 선포하는 것이며,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을 향하여 순수한 양심을 갖는다. 당신의 의심을 듣지 말고 원수의 거짓말을 믿지 말라. 주님의 피는 원수를 이긴다. 원수가 당신이 약하다고 말할 때나 당신이 불순하다고 송사하거나 선한 양심을 갖지 않았다고 할 때 송사하는 원수를 믿지 말라. 당신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가? 당신은 주님과 그의 교회를 위하지 않는가? 원수에게 이와 같이 말하기를 배우라. 『사탄아, 네가 나를 속인 것이 지금까지로 족하다. 나는 더 이상 너를 믿지 않으며 나는 네가 억압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 나는 주님을 위하여 있으며 선한 양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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