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생활은 영을 따라 행하는 것의 결과임


생명의 말씀 2012-09-1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42081.html
로마서 12장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은 로마서 8장에서 영을 따라 행하는 체험의 결과이다.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바울의 조망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들은 영을 따라 행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믿는 이들이 육체를 따라 행한다면 그들은 여전히 몸의 지체들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체험 안에는 몸이 없을 것이다. 육체적인 행함으로 말미암아 몸의 생활이 폐해진다. 오늘날 수많은 믿는 이들이 있지만 영을 따라 행하는 이들은 극소수이기 때문에 그들 안에 몸의 생활은 매우 적다. 

몸의 생활은 집회들 안에서 영을 훈련하는 것에 달려있지 않고 성도들의 행함, 곧 매일의 생활에 달려있다. 집회에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하기 위해 영을 훈련하는 것은 성도들이 몸의 생활을 살도록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그러한 것들 자체가 몸의 생활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다....어떤 집회에서는 그 영께서 참석한 모든이들을 자연스럽게 눈물을 흘리게 하시기도 했다....그러나 부흥이 몸의 생활이 아니다. 부흥은 어느 정도 일시적이지만 몸의 생활은 영속적이다. 1904년 웨일즈 지역에서 이반 로버츠의 사역을 통해 큰 부흥이 시작되었다. 그 부흥은 웨일즈 전 지역에 영향을 주었지만 곧 끝나고 말았다. 

오늘날 주님은 어떤 부흥을 시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몸의 생활, 곧 그리스도의 몸의 실현과 생활을 회복하기 원하신다....말씀을 기도로 읽기, 주님의 이름 부르기, 찬송하고 찬양하는 것과 같은 실행들은 도움이 되며 부흥도 역시 도움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 집회에서 강하게 영을 해방했던 많은 이들이 주님의 회복 안에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오직 영을 따라 행했던 이들만이 남았다. 우리는 영을 해방하는 것은 어떤 방식이든 반대하지 말아야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강조할 필요도 없다.집회에서 영을 해방하는 것은 영을 따라 행하는 것과 똑같은 정도의 영적 가치나 무게를 갖고 있지 않다....집회의 상태는 끊임없이 변하는 날씨와 같다. 나는 집회에서 갖는 외적인 실행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어떤 곳들은 부흥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부흥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 부흥은 성도들을 영을 따라 행하는 것으로 안내해야 한다. 로마서 8장과 12장은 오직 그러한 행함만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의 실행 안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계시하고 있다.  
(신간/ 영을 따라 행함으로 그리스도를 사는 것의 중요성/ 7장. 몸의 생활을 삶)    
부흥, 영을 따라 행함, 그리스도의 몸, 몸의 생활, 주의 회복, 영을 해방함


하나님의 경륜의 성취를 위해 우리의 협력이 필요함 (2)


생명의 말씀 2012-09-06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42036.html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우리는 생존할 필요가 있다. 인간 존재 없이 우리는 그리스도를 살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타락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생존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하지 않는다. 생존하는 것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생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존하도록 정하신 목적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살고 하나님을 살아내고 하나님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생존하기만 할 뿐 목적이 없다. 결국에는 생존 자체를 생존의 목적으로 삼는다. 그들은 생존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 사탄은 사람의 생존, 사람의 생활을 장악하고, 이 생존의 문제를 이용해 사람들을 강탈함으로 오늘날 온 세상으로 하여금 생존만을 관심할 뿐 생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을 관심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은 신성한 제한 아래 있을 필요가 있다. 우리의 필요를 초과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다 세상에 속한 것, '이집트'의 것, 바로의 것이 되며, 우리를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경륜에서 벗어나게 한다. 모든 일에서 반드시 하나님의 경륜이 결정요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은 '이집트 사람들', 즉 세상적인 사람들의 삶과 같아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생활을 위한 장소가 필요하고 집을 깨끗이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집회에 갈 시간이 되어도 청소만 계속 한다면 우리가 하는 청소는 '이집트'의 것, 즉 하나님께서 뜻하신 경륜으로부터 떨어진 것이 된다. 우리는 청소를 위해 땅에 있지 않고, 주님 앞에서의 절기를 위해 땅에 있다. 심지어 자녀에게 얼마만큼의 사간을 소비해야 하는지도 하나님의 경륜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행동할지 모르나 우리는 거룩한 백성들, 분별된 백성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생활과 생존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공급이 아닌, 하늘에 속한 근원으로부터 오는 식량에 의존한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는 이상이 필요하며, 우리의 믿음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세는 이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이집트에서부터 광야, 즉 그들의 생존을 위한 땅에 속한 공급이 없는 곳으로 인도해 낼 수 있었던 큰 믿음의 사람이었다. (출애굽기 라이프스타디, 13장) 
생존의 필요, 하나님의 목적, 이집트의 것, 바로의 것, 하늘에 속한 근원


하나님의 경륜의 성취를 위해 우리의 협력이 필요함


생명의 말씀 2012-09-05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42024.html
언약궤는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의 예표였다. 그것은 또한 땅 위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는 그분의 경륜을 수행하기 위해 그분의 백성과 함께하시는 삼일하나님의 임재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했다. 궤를 가져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시내 산에서부터 궤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 했을 때, 모세는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을 흩으시고"(민 10:35)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궤는 앞서서 여정을 인도했다. 궤의 움직임은 땅 위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임의 그림이었다. 

사무엘상 4장에서 이스라엘 장로들은 하나님을 탈취하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은 움직이실 의도가 없으셨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하나님의 경륜을 위하는 생각이나 관심이 전혀 없었으며, 그들이 궤를 가져간 것은 그들의 안전과 평화와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탈취하고 있었음을 가리킨다. 그들은 하나님을 탈취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하나님께 그들과 함께 나가달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경륜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그들의 형통과 건강과 가정을 위해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탈취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치료해 주시기를 구할 때, 우리의 기도는 전적으로 그분의 경륜과 관련되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병들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탈취하는 방식으로 치료하심을 구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당신은 영 안의 깊은 곳에서 "주님, 저는 저의 건강과 번영과 자녀와 일을 위해 땅 위에 있지 않습니다. 저는 주님의 경륜을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은 주님의 경륜을 위해 여전히 제가 땅 위에서 살기를 원하십니까? 저는 주님의 경륜을 보았고 또 주님께 나실인이 필요하시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제게는 주님을 위해 나실인이 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거듭나서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제가 주님께 묻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저에 대하여 마음속에 품으신 계획이 무엇입니까?"라고 말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경륜을 위해 당신이 땅 위에서 계속 살기를 원하신다면, 당신의 의사를 통해서나 어떤 다른 방법을 통해서 치료받을 것이다. 여기서의 요점은, 우리는 하나님을 탈취해서는 안 되며, 그보다 하나님의 마음에 따라 하나님의 경륜을 위하여 기도하고 생활하고 처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 언약궤, 하나님을 탈취함, 기도, 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