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의 구원을 위한 심겨진 말씀


생명의 말씀 2012-04-0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38490.html
야고보서 1:21『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능히 너희 혼을 구원할 수 있는 심긴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존재 안으로 심겨져서 우리의 혼의 구원을 위한 과실을 맺기 위해서 우리 안에서 자라고 있는 생명의 식물로 비유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 저항없이 온유함과 순종함으로 받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혼을 구원할 수 있는 심긴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 야고보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 바울은 그의 저서에서 「심긴 말씀」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이 표현은 말씀이 생명에 속함을 나타낸다. 야고보는 여기에서 말씀을 우리 마음의 토양 안에 심겨진 산 식물에 비유한다. 이렇게 하여 말씀은 심긴 말씀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의 토양 안에 심겨진 후에 말씀은 자라서 우리 혼을 구원하기 위한 능력을 소유한다. 

21 절은 심겨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말한다. 이 구절에서 온유함은 공손함을 뜻하지 않는다. 여기의 온유함은 저항없는 순종함을 뜻한다.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는 것은 거절하지 않고 말씀에 대해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존재 안에 심겨진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한 순종함으로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든지 「아멘」함으로 받아야 한다. 찬송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심긴 말씀을 온유함과 순종함으로 받는다면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열려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농부에게서 씨를 받고 하늘로부터 비를 받기 위해서 열려 있는 땅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우리 마음 안으로 심고 뿌리셨으며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야 한다. 이것이 심긴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는 것이다. 이 말씀은 살아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이 우리 마음 안에 심겨진 후에는 자란다. 더 나아가서 말씀이 자랄 때 우리의 혼을 구원할 것이다.


여러가지 시련을 기쁘게 여김


생명의 말씀 2012-04-0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38489.html
야고보서 1:2『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련에 빠질 때마다 모든 기쁨으로 여기라』 

온 세상은 악한 자 사탄 안에 처해 있다(요일 5:19). 사탄은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계속해서 하나님을 반대한다. 사람이 하나님께 돌이킬 때마다 사탄은 싫어하며 이것을 참지 못한다. 일단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돌이키면 사탄은 그 사람을 핍박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부추길 것이다.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받기로 작정되었다고 말했다(빌 1:29). 그러므로 핍박은 그리스도 안의 믿는이들인 우리에게 주신 몫이다. 

핍박은 고통이다. 그러나 시련(trials)은 다만 고통만이 아니라 우리를 시험하거나 인정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학교의 학기말 고사를 예로 들 수 있다. 학생들은 학기말 고사가 심한 고통과 시련임을 안다. 그러나 그런 시련은 사실상 학생들을 돕는다. 만일 학교에 학기말 고사가 없다면 학생들은 아마 공부에 주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기말시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 때 매우 부지런히 공부에 몰두한다. 그러므로 기말시험은 필요한 과목들을 배우도록 학생들을 돕는다. 따라서 학생들의 부모는 이로 인해 자녀들이 교육에서 유익을 얻음을 알고 기말시험에 감사해야 한다. 

「영적 교육을 하는 학교」에도 「기말」 시험들과 다른 종류의 「시험들」이 있다. 이 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하늘에 속한 우리 아버지이시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많은 시련들과 많은 시험들을 안배하신다. 이 모든 시련들은 우리에게 유익하다. 시험이 학생들에게 유익하듯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하는 많은 시련들도 우리에게 유익하다. 

주 예수님을 믿은 후에 당신은 아마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고통이나 시련이 없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신은 스스로 이렇게 말했을지 모른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 예수님을 사랑한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확실히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고 내게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것이 수많은 믿는이들의 관념이다. 그러나 결국 시련이 온다. 어떤 시련은 가족과 친구의 반대에서 온다. 이런 시련은 핍박 이상의 것이다. 핍박은 핍박하는 자의 목적을 이루지만 시련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분에 의해 사용된다. 어떤 사람이 당신을 핍박할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시험하고 인정받게 하기 위해서 그 핍박을 시련으로 사용하신다.


거룩한 생활 방식과 경건


생명의 말씀 2012-04-0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38488.html
베드로후서 3:11『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거룩한 생활 방식과 경건 안에서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사탄의 반역과 사람의 타락에 의해 더럽혀졌다. 하늘이나 땅의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분의 피에 의해 하나님께로 화목되었고(골 1:20), 하늘에 속한 것들이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 정결케 되었다 해도(히 9:23), 그것들은 하나님의 새 우주 안에서 그 본성과 모습이 새롭게 될 수 있도록(벧후 3:13), 여전히 하나님의 통치적인 다루심 안에서 불태워져 말끔하게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거룩한 생활 방식과 경건 안에서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한가? 즉 우리가 그분의 거룩한 통치에 부합될 자격을 갖출 수 있으려면 그분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의 행실과 경건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어떤 변화를 가져야 하겠는가? 신성한 능력이 우리에게 거룩한 행실과 경건 안에서의 그런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가(1:3)! 

12 절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기대하고 재촉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열에 녹아지리라』고 말한다. 거룩하고 경건한 행실 가운데서 변화된 삶을 사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기대하고 고대하고 재촉하고 있는 중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해체시킬 정도로 매우 거룩하시다는 것을 알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기대하고 재촉하면서 마땅히 거룩한 생활 방식과 경건 안에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날을 기대할 뿐만 아니라 재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