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재림을 재촉하는 길


생명의 말씀 2012-04-0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38487.html
베드로후서 3:8『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주님의 마음은 약속 이행의 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특별히 보물로서 소유하고 있는 그분의 백성들(벧전 2:9, 딛 2:14)에 있다. 이는 그분의 귀한 구속받은 자들인 우리 중 누구도 그분의 통치적 심판에 의해 처벌받지 않고, 그분의 형벌로부터 보존되기 위해 회개할 수 있도록 연기된 시기를 갖게 하시려는 것이다. 만일 필요하다면, 주님은 그분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또 다른 날, 이와 같이 천 년을 기다리실 수 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 예수께서 곧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주님의 오심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임박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계시록 22장에서 주님은, 『내가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그 말씀을 하신 이래로 거의 이천 년이 지났다. 주님에게는 천 년이 하루 같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이것이 겨우 이틀인 것이다. 

주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그분은 소극적인 것들을 심판하실 뿐만 아니라 그분의 신부도 맞이하실 것이다. 이는 그분이 심판자로서, 동시에 신랑으로서 오신다는 의미이다. 신랑의 오심을 위해 신부가 준비되었는가? 주님이 오늘날 신랑으로 오시는 것이 가능한가? 신부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오심은 어떤 이들이 추측하는 것만큼 금방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신부는 오직 생명 안에서의 성장을 통해서만 준비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말하면서 주님을 책망하지 말라. 『주여, 당신은 계시록 22장에서 속히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리 오래 걸립니까?』 그분의 오심이 지연된다 해서 주님을 책망하는 대신 우리는 그분을 만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준비하는데 힘써야 한다. 또 우리는 다른 이들이 자라서 예비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생명을 공급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주님의 재림을 재촉하는 유일한 길이다.


하나님의 통치적인 심판


생명의 말씀 2012-04-0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38486.html
베드로후서 2:5『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 곧 여덟째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의롭고 경건한 것, 혹은 불의하고 경건치 않은 것은 하나님의 통치적인 심판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하다(벧후 2:5-9). 의롭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에게 올바른 것이요, 경건하다는 것은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노아와 롯이 살았던 생활 방식이었고, 그것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의에 따른 그분의 통치적인 심판으로부터 보존되었다. 

노아가 의를 전파한 것은 하나님의 통치와 관계있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그분이 세상을 휩쓸어 버리실 것과 노아가 그의 세대에게 의를 전파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경건치 않은 자들의 세상 위에 홍수를 내리심으로써 그 부패한 세대에게 그분의 심판을 행하셨다. 

6 절은,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키기로 정죄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한 생활을 하려는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라고 말한다. 경건치 않은 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지 않고 사람의 정욕 가운데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이다. 그것은 이방인의 욕정을 행하는 것이요(벧전 4:2-3), 헛되고 경건치 않은 생활 방식대로 사는 것이다(벧전 1:18). 

9 절에서 베드로는, 『주께서 어떻게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며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가두실지를 아시느니라』고 말한다. 경건한 자들은 불경건한 생활과는 대조적으로 경건한 삶을 살았던 노아와 롯과 같은 이들이다. 불의한 자들은 노아 시대에 살았던 자들과 소돔과 고모라에 있던 자들처럼, 불의한 생활, 즉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방식대로 사는 자들이다. 심판 날은 크고 흰 보좌의 최종 심판의 날일 것이다. 노아와 롯의 시대에 살았던 불의한 자들은 틀림없이 크고 흰 보좌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 심판이 있은 후에 그들은 불 못으로 내던져질 것이다.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


생명의 말씀 2012-04-0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38485.html
베드로후서 1:19『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를 때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 

베드로는 성경에 있는 예언의 말씀을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으로 비유하고 있다. 이것은 이 시대가 어두운 밤 가운데 있는 어두운 곳이며,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움직이며 행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또 그것은 성경의 예언의 말씀이 믿는이들에게 비취는 등불같이 그들의 어두움을 비추기 위한 영적인 빛(단지 정신적인 이해를 위한 의문의 지식이 아닌)을 전달해 주며 그들을 밝은 대낮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주님의 나타나심의 날이 샐 때까지 어두운 밤을 통과하도록 인도한다. 

온 세상이 어두운 곳이요 이 현 시대가 어두운 밤임을 말하고 있다. 만일 우리에게 성경의 예언들이 없다면 등불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역시 어두움 안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언의 말씀은 어둠에서 빛나는 우리의 등불이다. 이 예언의 말씀을 주의할 때 우리는 빛의 비춤을 받는다. 결국 이 빛은 우리 속에 영적인 날이 새고 우리 마음 속에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비출 것이다. 

만일 우리가 성경의 예언들을 주의한다면 우리 속에서 비추는 등불을 체험할 것이요 우리 마음 속에 떠오르는 샛별을 누릴 것이며 우리 속에서 밝아오는 영적인 날을 맞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 예수님이 새벽별로 나타나실 때인 실제의 때가 올 때까지, 의의 해이신 그분과 함께 날이 밝게 될 때까지 이런 상태에 머물 것이다. 

먼저 우리는 예언의 말씀의 비춤을 갖는다. 그런 다음 이 비춤은 우리 속에서 밝아 오는 낮이 된다. 겉으로 볼 때 우리는 어둠의 시대에 살고 있으나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주님이 깨어 있는 자들에게 샛별로 나타나시고 의의 해로 동틀 때까지 우리는 샛별과 영적인 날의 밝아옴을 계속 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