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선하심을 맛봄
생명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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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2:3『너희가 주의 선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어느 중년 부인이 2년 전에 구원받았다. 그녀는 구속되었고 거듭났다. 우리 집회를 몇 번 참석한 후 그녀는 일어나서 간증을 했다. 그녀는 남편이 직장을 잃었고 집세를 지불하기가 불가능했었다고 말했다. 더욱이 아들은 병이 들었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이 상태에 대해 주님께 기도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주님이 남편에게 더 좋은 직장을 주셨고 더 좋은 거처를 공급하셨으며 심지어 아들이 치료되었음을 인해 주님을 찬양했다. 그녀는, 『할렐루야, 주 예수님은 살아 계시고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라고 선포했다. 나는 이것이 주님의 선하심을 맛본 사람의 간증이 아니라고 강하게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무엇이 주님을 맛본 참된 간증인가? 가령 그 자매가 이렇게 간증한다 하자. 『내 남편이 직장을 잃었고 우리는 거처를 잃었으며 아들은 병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수록 문제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형제 자매님들, 우리의 환경이 어려울수록 안에는 기쁨이 넘칩니다. 오, 나는 얼마나 주님을 누리는지! 나는 바울이 주님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구했을 때 그가 체험한 것을 약간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때 주님은 그분의 은혜가 바울에게 족하다고 말씀하심으로써 거절하셨습니다. 주님은 바울이 그분의 은혜를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주님은 은혜를 누려야만 하는 특별한 환경 안에 바울을 넣으셨습니다. 그분은 가시를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한면으로 바울은 가시 때문에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면으로 그는 주님의 부축하는 은혜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경우에, 몇 달이 지났어도 여전히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외적으로 어떤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분을 내 은혜로 누리고 있음을 간증할 수 있습니다. 나의 어머니가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말하기를 「이게 뭐냐? 너의 예수님이 어디 있느냐? 그분은 생생하고 살아 계시냐? 왜 그분은 너를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느냐? 차라리 부처님에게 가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뭐라고 말씀하시든지 나는 계속해서 주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을 맛본 간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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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허리를 동임
생명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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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2:13『그러므로 너희 생각의 허리를 동이고 청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에 너희 소망을 온전히 둘지어다』
우리 생각의 허리를 동이는 것은 우리의 생각 안에서 느슨하지 않음을 뜻한다. 그러나 우리들 중 대부분은 우리의 생각 안에서 매우 느슨하다. 우리의 생각은 이것에서 저것으로 뛰어다닌다. 몇 초 안에 우리는 생각 안에서 온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 우리는 한 가지를 생각하다가 갑자기 다른 것을 생각할지 모른다. 예를 들면, 주님의 만찬에서 주님을 찬양하는 중에 갑자기 가게에서 방금 샀던 어떤 것을 생각할지 모른다. 우리의 생각은 그처럼 빠르게 여행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생각의 허리를 동일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베드로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형제들아, 나는 방금 놀랍고 신성한 많은 항목들을 보여 주었다. 여러분은 삼일 하나님께 관한 나의 찬미를 읽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곧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산 소망에 이르도록 거듭나게 하셨다. 나는 그분의 미리 아심에 따른 하나님의 선택과 그리스도의 구속과 영의 적용에 관해 말했다. 이제 나는 너희 생각의 허리를 동이라고 권한다. 너희 생각을 느슨하게 하지말라.』
이 시대는 미리 맛봄의 시대이다. 그러나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는 완전한 맛봄을 누릴 것이다. 미리 맛봄을 누리고 있는 동안 우리는 장래의 완전한 맛봄에 우리 소망을 두어야 한다. 미리 맛봄의 본성, 본질, 실제는 완전한 맛봄의 본성, 본질, 실제와 같다. 차이점은 분량이다. 오늘날 우리는 견본, 미리 맛봄인 작은 분깃을 누리고 있다. 결국 우리는 완전한 분깃을 누릴 것이며 완전한 맛봄을 체험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 면으로 우리는 지금 은혜를 누리고 있으며, 다른 면으로 우리는 장래의 완전한 맛봄을 기대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미리 맛봄을 누리고 있는 한편 또한 완전한 맛봄을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장래의 완전한 맛봄에 우리의 소망을 두게 한다. 장래의 완전한 맛봄은 이 유일한 은혜의 완성이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다만 미리 맛봄, 즉 작은 분깃을 누릴 뿐이지만 완전한 맛봄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은혜의 완성이 될 장래의 이 완전한 맛봄에 우리의 소망을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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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한 믿음 안에 건축함
생명의 말씀
2012-0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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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 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우선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 말씀에 의해 전달되는 진리를 가리킨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참되고 합당한 전파자들과 교사들이 한 말은 진리를 포함하며 우리에게 진리를 전달한다. 실제인 진리는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하나님이 거치신 것과 하나님이 성취하시고 이루시고 얻으신 모든 사실을 포함한다. 이 모든 것은 신약에 계시되어 있다. 실제는 거룩한 말씀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 말씀에 의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진리를 포함한 말씀을 우리가 들을 때 그리스도의 영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 그리스도의 영은 항상 말씀을 따라서, 말씀으로 역사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말씀과 동역한다는 뜻이다. 이 동역의 결과 우리의 체험 안에는 카메라 셔터와 같은 「찰칵」이 있게 되며 말씀 안에 포함된 「풍경」이 우리의 영에 새겨져서 우리의 믿음이 된다. 이 믿음은 객관적이고도 주관적이다. 우리가 자신을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건축할 때 우리는 객관적일 뿐 아니라 특히 주관적인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하는 것이다. 주관적인 믿음은 객관적인 믿음에서 나온다. 다시 말하면, 믿음은 우리가 믿는 그것과 우리의 믿음을 포함한다. 이것이 지극히 거룩한 믿음(faith)이다.
이 믿음은 우리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 안에는 그런 믿음이 없다. 지극히 거룩한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축복이며 또한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다. 이 믿음이 우리 안에 올 때 하나님과 함께 오며 하나님의 모든 어떠하심과 하나님이 통과하신 모든 것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을 통하여 성취하신 모든 것과 하나님이 이루시고 얻으신 모든 것과 함께 온다. 우리에게 이 믿음이 있는 한 우리에게는 과정을 거치신 하나님, 구속, 거듭남, 신성한 생명,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이 있다. 우리에게는 또한 신성한 본성에 참여하고 누릴 위치와 특권이 주어졌다.
지극히 거룩한 믿음 안에 건축하는 것은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단체적인 일이다. 유다가 믿는이들을 권면하여 그들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안에 자신을 건축하라고 말할 때 그는 단체적인 의미로 말하는 것이다. 믿음 안에 자신을 건축하려 한다면 우리는 단체적인 방법으로 해야 한다. 즉 우리는 그것을 몸 안에서, 교회 생활 안에서 해야 한다. 교회 생활을 떠나서는 믿음 안에 자신을 건축할 수 없다. 교회 생활 밖에는 그런 건축이 없다. 사실상, 지극히 거룩한 믿음 안에 자신을 건축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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