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혼이 잘됨같이...


생명의 말씀 2012-04-0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38475.html
요한삼서 2『사랑하는 자여 네 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범사」는 외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을 가리키며,「간구하노라」는 기도의 의미로 사용됐을 것이다.「잘되다」는 갈망했던 목적에 도달하는 데 성공하는 것이며,「강건함」은 육신의 건강을 말한다. 

사람은 영과 혼과 몸의 세부분으로 되어 있다(살전 5:23). 혼은 몸과 영 사이를 중재하는 기관으로서 자의식을 가지며 그 목적은 사람으로 개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혼은 몸 안에 포함되며 영을 담는 그릇이다. 영이신 하나님은 믿는이의 거듭난 영 안에 거하시며(롬 8:9, 16) 영으로부터 퍼져서 혼을 적신다. 그 목적은 그의 혼이 변화되어 그분을 표현하는 것이다(롬 12:2, 고후 3:18). 이것이 믿는이들의 혼이 잘되는 것이다. 우리의 혼이 우리 영을 통해 하나님의 영에 의해 점령되고 통제를 받아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우리 몸을 통제하고 사용할 때, 그것이 잘되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건강함에 있어서 잘될 수 있고 우리의 생활은 많은 물질적인 것들에 있어서 잘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혼은 신성한 생명 안에서 잘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혼이 잘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혼이 잘되는 것은 신성한 생명이 혼 안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거듭남을 통해 신성한 생명이 우리 영 안에 분배되었다. 이제 우리 영으로부터 이 생명이 우리 혼 안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 혼 안으로 신성한 생명이 확장된다면 우리 혼은 잘될 것이다. 나는 신성한 생명이 우리 모두의 혼 안으로 확장됨으로 말미암아 우리 혼이 잘되는 것을 충분히 체험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이것을 추구하기 바란다.


온전한 상을 얻음


생명의 말씀 2012-04-0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38474.html
요한이서 8『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사도들이 일한 것은 그들이 믿는이들에게 분배하고 넣어 준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이다.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이단론의 영향을 받는 것은 사도들이 믿는이들 안에 넣어 준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귀중한 것들을 상실하고 파괴하고 망치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도는, 믿는이들이 이단론의 영향을 받아 진리에 속한 것들을 상실하지 않도록 자신들을 지키라고 그들에게 경고한다. 

「온전한 상」이란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진리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에 관한 이단론의 영향을 받지 않아 그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은 신실한 믿는이들에게 주시는, 온전한 누림이신 아버지와 아들임에 틀림없다. 이 해석은 마태복음 5장 12절, 16장 27절, 고린도전서 3장 8절, 13절-14절, 히브리서 10장 35절과 36절, 계시록 11장 18절, 22장 12절에서처럼 이 상이 장래에 주어지리라는 언급이 없다는 사실로 증명된다. 만일 우리가 이단들에게 미혹되지 않고 하나님이자 사람이요, 창조자이자 구속자인, 만유를 포함한 놀라운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 안에 신실하게 거한다면 우리는 오늘 이 땅에서도 온전한 상이신 삼일 하나님을 그분 안에서 최대한으로 누릴 것이다. 

만일 우리가, 사도들이 우리 안에 넣어준 귀한 것들을 상실한다면 이는 우리가 진리 안에 거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그럴 때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의 누림을 놓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진리 안에 머문다면 아버지와 아들의 누림인 온전한 상을 얻을 것이다. 우리가 누릴 수 있도록 그런 상이 기다리고 있음을 인해 주님을 찬양하자! 이 상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신성한 진리 안에 머물고 거해야 한다. 이 진리 안에 거하지 않는, 오늘날의 현대주의자들과 같은 자들에게는 확실히 이런 누림이 없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누림인 아버지와 아들의 상이 없다. 만일 당신이 그들을 만나본다면 그들이 영적으로 굶주리고 메말라 있음을 볼 것이다.


그분을 향하여 담대함


생명의 말씀 2012-04-0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38473.html
요한일서 5:14『또한 그분을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분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여기의 「담대함」은 하나님과의 교통 안에서 우리의 기도에 대해 우리가 갖는 담대함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써 이루어진 신성한 출생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영접했다는 사실을 기초로 하여,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교통 안에서 하나님을 접촉함으로써 거리낌 없는 양심의 담대함(행 24:16)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분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줄을 확신하며 기도할 수 있다. 

이 구절은 우리의 갈망이나 기호나 방법에 따라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함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는 사람은 거듭났고 신성한 생명을 가졌으며 신성한 생명의 교통 안에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3장에서 보았듯이 그런 사람에게는 거리낌 없는 양심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가 신성한 생명의 교통 안에 있음으로써 거리낌 없는 양심을 가졌기 때문에 그의 마음이 그를 꾸짖지 않음을 뜻한다. 우리가 신성한 생명의 교통 안에 거하는 한, 우리의 양심은 분명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할 수 있고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신성한 생명의 교통 안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진실로 주님과 하나임을 본다.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 되고 그분 안에 거하고 신성한 생명의 교통 안에 있음으로써 그분의 뜻을 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른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이 신성한 생명의 교통 안에 거하고 있으며 또한 주님 자신 안에 거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런 믿는이는 주님과 하나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담대함을 가지게 한다. 우리가 신성한 생명의 교통 안에 있고 우리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을 때 하나님과 화평이 있으며 또한 우리의 느낌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할 담대함을 가진다. 우리가 그분의 뜻을 따라 기도하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