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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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징계

성령의 징계는 우리 안에서의 성령의 요구이며, 성령 자신께서 우리 환경 안에서 어떤 목적을 이루실 때까지 일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성령의 징계라 부른다. 그러므로 순복하지 않는 것은 그분의 목적을 이룰 수 없게 한다. 여러분이 순복하지 않을지라도 그분은 결국 어느 날엔가는 여러분을 순복하게 만드실 것이다.

많은 경우에 성령의 징계는 우리를 순복하게 한다. 스스로 순복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징계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이다. 여러 해 동안 주님을 믿어 온 형제자매들은 많은 때에 주님께서 "너는 순복했다. 너는 또 순복했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되돌아 볼 수 있다. 이러한 일이 여러분에게 있다. 여러분이 되돌아 보면, 아주 많은 일들을 주님께서 명령하셨는데 여러분이 처음에는 할 뜻이 없었다가 결국 후에는 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성령의 징계의 결과이다.

어떤 때에 우리는 마음이 순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는 채 이삼 년을 보냈을 때 우리의 저항은 사라지고 더 이상 복종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징계의 결과이다. 여러분이 순복할 때 일은 곧 종료된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때로 여러분은 순복할 마음이 없고, 여러분에게 믿음이 없지만, 그분께서 결국 여러분을 그러한 경지로 이끄실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성령의 징계의 결과이다. 나는 늘 성령의 징계가, 많은 경우에 우리의 순복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보충한다고 생각한다.

성령의 징계에는 두 방면이 있다. 첫째는 우리를 순복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분은 환경을 안배하셔서 우리를 순복하게 하신다. 둘째는 성령의 징계가 우리의 순복을 대신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자의로 순복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경지까지 성령께서 일하심으로 말미암아 순복하게 되는 것이다.

한 형제가 있었는데, 그는 정말로 금전을 좋아했다. 여러 차례 성령께서 그를 다스렸지만, 그는 여전히 금전을 좋아했다. 지난 삼사 년 동안 많은 일들이 발생하여 그는 무척 화가 났다. 그러나 오늘날 그는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돈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질문은 이것이다. "내가 순복하여서 돈을 좋아하지 않게 된 것인가? 아니면 순복하지 않으면서 돈을 좋아하지 않게 된 것인가? 나의 대답은 돈을 좋아하지 않게 되기만 하면 다 좋은 것이라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우리의 순복은 빠르고 신속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를 좀 더 일찍 순복하게 하실 것을 구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를 좀 더 적게 맞게 할 수 있고, 많은 다룸을 줄일 수 있게 하여 좀 더 일찍 어떤 경지에 이르게 한다. 성령의 징계 안에 있을 때, 여러분이 시간을 주님께 드리고 단지 그분의 시간 안에 있기만 하면, 그분은 자연스럽게 여러분을 그런 경지로 이끄신다. 이것이 성령의 징계이다. 그러므로 내면에서의 성령의 일하심은 보배로운 것이며 성령께서 밖에서 환경을 의지하여 하시는 일 또한 매우 귀한 것이다.

출처:
일시
적인 은혜와 축적된 은혜    
성령의 징계


빛 비춤을 받아야 함


생명의 말씀 2013-07-15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49303.html
빛 비춤을 받아야 함

'그래서 나는 너에게 권면한다. 불에 제련한 금을 나에게서 사서 풍성하게 되도록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음으로 너의 벌거벗은 수치가 보이지 않도록 하며, 안약을 사서 너의 눈에 발라서 보도록 하여라.' (계 3:18)

여러분에게 배움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영 안에서 주님께서 여러분을 비추시어 여러분이 무엇을 배웠는지 여러분에게 깨딛게 하셔야 한다. 이 일은 여러분 안에 진리로 조성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여러분은 여러분이 배운 것을 말로 표현하여 다른 사람에게 공급할 수 있다. 여러분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또한 여러분은 배운 것을 다른 사람 앞으로 가져갈 수 있다. 빛이 있을 때 우리는 말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공급할 수 있다.

많은 경우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다루시지만 여러분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때로는 여러분이 알기도 한다. 이렇게 아는 것은 그 다룸의 결과를 강화시킨다. 빛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믿을 수 있고 또한 순복할 수 있으므로 여러분은 능히 그 다루심의 결과를 강화할 수 있다. 열매가 있어 성숙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사람의 결과이다. 여기서 말하는 빛 비춤은 바로 계시록 3장 18절에서 말한 안약으로서 여러분을 볼 수 있게 하고 밝아지게 한다.

출처: 일시적인 은혜와 축적된 은혜 
빛 비춤, 제련, 다루심


반드시 결과가 있어야 함


생명의 말씀 2013-07-15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49302.html
욥은 단지 어떤 일을 체험한 것만이 아니다. 어느 날, 하나님은 그에게 결국의 때가 왔다는 것을 보셨다. 이것은 욥 안에 새로운 조성이 있으며 그에게 변화가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이것은 생명이 들어오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과 사람의 생명이 짜이는 문제이다.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옛사람은 결코 변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오해하곤 한다. 하나님은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는데 이것은 사실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새로운 생명을 우리 안에 넣으셨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이 생명을 가져가시면 옛사람은 여전히 옛사람이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사람이 변화될 수 있으며, 생각이 새롭게 되고 변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은, 새 생명이 우리 안에 있어 우리를 다른 사람과 같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우리 안에서 생명이 운행함으로써 변화가 있게 되고 다른 사람과의 분별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과 함께 오랫동안 살면 그의 모습을 좀 닮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과 오랫동안 함께 사는데, 조금도 변화가 없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하물며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데, 여러분은 다소 그분의 모양을 닮기를 배우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새롭게 됨이며 변화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움이 있고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시간을 들여 한 가지를 배운다면 어떤 결과가 있게 될 것이다. 주님은 그분의 영을 우리 안에 넣으셔서 우리에게 배움이 있게 하고, 결과가 있게 하신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주님도 우리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실 수 있다. 우리는 말씀을 읽어서 된 것이 아니고, 바울의 말을 들어서 된 것도 아니며, 오직 주님에게서 배운 것이다(엡
4:20
). 단지 성경이 이와 같이 말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도 또한 그렇게 배웠다. 나는 나 자신이 배운 적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하며, 다른 사람에게 공급할 말을 갖게 될 것이다.

출처:
일시
적인 은혜와 축적된 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