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죄 (2)


생명의 말씀 2012-04-02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38425.html
오늘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더러움을 죄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죄로 여기시는 것을 중요시 하지 않는 데 있다. 주님은 믿지 아니하는 자는 벌써 정죄를 받았다고 말씀하신다. 사람이 많은 죄들을 범하는 이유는 주 예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사람은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잃었기 때문에 허다한 죄를 범했다. 신약에서 사람은 주 예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갖지 않았기 때문에 허다한 죄를 범하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여러분 중 어떤 사람은 마음 속으로, "당신이 나를 죄인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허다한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죄를 범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주님을 믿지 않는 죄를 범한 적이 없다고 말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누가복음 15장에 탕자와 그 아버지가 있음을 기억할 것이다. 탕자는 아버지를 떠나 재산을 다 허비하였다. 그러나 탕자는 언제부터 탕자이었는가? 그가 먼 나라에서 호주머니 속에 돈이 많고 생활이 넉넉할 때에는 탕자가 아니었는가? 그가 재산을 다 허비하고서 돼지를 치고서 배고파 할 때라야 탕자였는가? 내가 말하지만, 아버지를 떠난 그 날부터 그는 이미 탕자였다. 그가 재산을 다 허비하기 전에도 이미 탕자였다. 그가 탕자 된 때는 재산을 다 허비하고서 돼지를 치며 쥐엄열매를 먹고 옷이 낡아지고 배가 고플 때가 아니라 아버지 집을 떠날 때인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묻겠다. 만일 그 작은 아들이 먼 나라에 가서 재산을 허비하지 않고 도리어 돈을 벌었다면, 혹은 장사하여 큰 돈을 벌어서 심지어 그의 소유가 아버지의 소유보다 더욱 많다면 그가 탕자가 아니겠는가? 아니다. 그는 여전히 탕자이다. 아버지 눈에서 볼 때 그는 탕자이다. 

오늘 우리는 사람이 선을 행하지 않기 때문에 죄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머리 속에서 제해야 할 가장 잘못된 생각이다.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난 즉시 죄인 되었다. 설령 그의 도덕성이 남보다 열 배나 더 선하다 하더라도, 그가 하나님을 떠났다면 그는 이미 죄인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당신이 그리스도인이 되고서 밖의 일들 곧 기도하고 성경 읽고 집회에 참석하며 모든 행실을 전과 똑 같이 행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문제가 있다면 당신은 범죄한 것이다. 처음 사랑을 잃었다면 모든 것이 문제 있는 것이다.


가장 큰 죄 (1)


생명의 말씀 2012-04-02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38424.html
신약과 구약 성경에서 특별히 주의하는 몇 가지 죄가 있다. 구약에서 특별히 주의하는 한 가지 죄는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신약에서 특별히 주의하는 죄는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성경에서 사람이 정죄되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의 분노를 격동케 하는 죄를 범하였기 때문이 아니다. 당신이 살인하고 불을 지르고 간음하고 교만하고 놀고먹으며 도박하는 등 사람들에게 고할 수 없는 더러운 죄들을 범했기 때문에 당신이 죄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성경에서 중시하는 것들이 아니다. 성경에서 중시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문제가 있는 것을 중요시한다. 율법의 총강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당신이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사람을 죽이거나 불을 지르는데 있지 않고, 당신의 정욕이 어떻고 생각이 어떻고 말이 어떤가에 있지도 않다. 문제는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 어떤가에 있다.

많은 죄들 중에 다른 죄들을 가져오고 다른 죄들로 뒤따르게 하는 우두머리 죄가 있다. 성경은 죄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 한 사람이 범한 죄가 어떤 죄인가를 물어야 한다. 간음인가? 도적질인가? 살인인가? 불을 지르는 것인가? 에덴동산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다.

오늘 이 세상에 흉악하고 더러운 일들과 사람을 놀라게 하는 일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그 때의 아담의 범죄로 인한 것이다. 그런데 대체 당시에 아담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아담은 살인하지 않았고 간음하지 않았으며 흉악하고 더러운 일들을 범하지도 않았다. 아담이 저지른 죄는 아주 깨끗하고 청결했다. 그 때 아담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지 않고 남겨 둔 것이 한 가지 있다고 생각했고 그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하나님같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아담이 범한 죄는 그와 하나님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하나님은 아담이 자기 위치에 서기를 바라셨지만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것이 그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의심을 품었고 문제를 가졌다.

그 때 아담은 그렇게 많은 죄들과 관련되지 않았다. 당시 아담은 도박하지 않았고 길거리를 다니며 좋지 않은 것을 보지 않았으며 좋지 않은 책을 읽지도 않았다. 그 때 아담의 범죄는 하나님과 문제가 생긴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때문에 나중에 많은 죄들이 뒤따라왔다. 아담의 범죄로 각색의 죄들이 들어왔다. 죄가 각기 종류대로 함께 들어왔다. 그러나 우리는 아담이 처음에 범한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 그 죄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구약의 유일한 문제가 생긴 죄였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사람에게 문제가 있었고, 에덴동산 밖에서는 형이 동생을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각종 죄들이 발생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가 우리가 상상하듯이 심각하고 더러운 죄로 시작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성경은 죄가 아주 깨끗한 죄로 시작된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사실상 처음에 시작된 그 죄가 가장 심각한 죄이다. 그 죄는 바로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히브리서 6장 6절을 근거로 한 반론 (4)


하나님의 복음 2012-04-02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38422.html
사도가 말한 것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는 기초(터)와 같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첫째로 죽은 행실을 회개해야 하고 자기의 죄를 심판해야 하며 그런 다음 하나님을 믿고 침례를 받고 안수를 받으며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 등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기초에 관한 문제입니다. 만일 기초가 한 번 닦여졌다면 다시 닦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위로 쌓아갈 때 당신의 발이 미끄러져 넘어졌다 하더라도 다시 터를 닦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이 닦으려고 하더라도 다시 닦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가령 호 형제가 좀전에 집회장소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골목에 들어서서 거기서 돌아 현관에 다 왔는데 넘어졌다고 합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의 목적은 집회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이제 넘어졌다고 해서 집회장소에 오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출발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넘어진 곳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됩니다. 

사도가 뜻한 바는, 만일 네가 한 번 비췸을 얻고 한 번 은사를 맛보고서 미끄러져 넘어졌다면 다시 죽은 행실을 회개할 것 없고 다시 하나님을 믿고 침례 받고 안수 받을 것 없으며 다시 죽은 자의 부활과 심판을 믿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구원받은 사람은 멸망할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가 뜻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거듭난 후에 다시 삼생할 필요가 없고 중생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가 뜻하는 것은 회개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으로 돌아가 회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6절 하반절은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라고 합니다. 누가 주님을 십자가에 다시 못 박을 수 있단 말입니까? 주 예수님의 역사는 영 단번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 예수님은 필요할 때 다시 잡을 수 있는 소나 양이 아니십니다. 당신 편에서 다시 새롭게 회개할 수 없는 것같이 주 예수님 편에서도 다시 새롭게 십자가에 못박히실 수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새롭게 회개할 필요가 있다면, 이것은 주 예수님도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현저히 주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주 예수님이 한 번 못 박히신 것으로 부족하고 계속적으로 못 박히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의 문제는 구원과 침륜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지막 단락인 7절과 8절은 '할 필요가 없고', '할 수 없나니'라고 말했을 뿐 아니라 '해서는 안 된다'고 더 엄중하게 말했습니다. 왜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까? 만일 새롭게 터를 세운다면 이것은 주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 앞에 크나큰 위험과 형벌이 있게 됩니다.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컨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이 단락의 말씀에 대한 나의 해석은 나중에 더 자세히 보기로 합시다. 어쨌든 히브리서 6장 6절을 읽은 후에 여러분은 이 장이 진보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를 말하는 장이지 결코 구원과 침륜의 문제를 다룬 장이 아님을 보았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6장은 결코 구원받은 사람이 멸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6장 6절, 반론(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