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가 말한 것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는 기초(터)와 같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첫째로 죽은 행실을 회개해야 하고 자기의 죄를 심판해야 하며 그런 다음 하나님을 믿고 침례를 받고 안수를 받으며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 등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기초에 관한 문제입니다. 만일 기초가 한 번 닦여졌다면 다시 닦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위로 쌓아갈 때 당신의 발이 미끄러져 넘어졌다 하더라도 다시 터를 닦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이 닦으려고 하더라도 다시 닦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가령 호 형제가 좀전에 집회장소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골목에 들어서서 거기서 돌아 현관에 다 왔는데 넘어졌다고 합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의 목적은 집회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이제 넘어졌다고 해서 집회장소에 오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출발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넘어진 곳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됩니다.
사도가 뜻한 바는, 만일 네가 한 번 비췸을 얻고 한 번 은사를 맛보고서 미끄러져 넘어졌다면 다시 죽은 행실을 회개할 것 없고 다시 하나님을 믿고 침례 받고 안수 받을 것 없으며 다시 죽은 자의 부활과 심판을 믿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구원받은 사람은 멸망할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가 뜻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거듭난 후에 다시 삼생할 필요가 없고 중생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가 뜻하는 것은 회개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으로 돌아가 회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6절 하반절은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라고 합니다. 누가 주님을 십자가에 다시 못 박을 수 있단 말입니까? 주 예수님의 역사는 영 단번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 예수님은 필요할 때 다시 잡을 수 있는 소나 양이 아니십니다. 당신 편에서 다시 새롭게 회개할 수 없는 것같이 주 예수님 편에서도 다시 새롭게 십자가에 못박히실 수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새롭게 회개할 필요가 있다면, 이것은 주 예수님도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현저히 주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주 예수님이 한 번 못 박히신 것으로 부족하고 계속적으로 못 박히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의 문제는 구원과 침륜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지막 단락인 7절과 8절은 '할 필요가 없고', '할 수 없나니'라고 말했을 뿐 아니라 '해서는 안 된다'고 더 엄중하게 말했습니다. 왜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까? 만일 새롭게 터를 세운다면 이것은 주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 앞에 크나큰 위험과 형벌이 있게 됩니다.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컨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이 단락의 말씀에 대한 나의 해석은 나중에 더 자세히 보기로 합시다. 어쨌든 히브리서 6장 6절을 읽은 후에 여러분은 이 장이 진보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를 말하는 장이지 결코 구원과 침륜의 문제를 다룬 장이 아님을 보았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6장은 결코 구원받은 사람이 멸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