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8장 11절을 근거로 한 반론 (3)


하나님의 복음 2012-03-22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38193.html
원문에서 '침륜'이라는 단어는 요한복음 3장 16절 외에도 누가복음 13장, 15장, 21장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용된 방식은 전혀 다릅니다. 13장에서 빌라도가 많은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피를 제물에 섞어 놓았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주 예수님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는냐...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같이 망하리라"고 하셨습니다(누가복음 13:2-5). 여기서 말하는 망함은 밖의 육신이 죽임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영혼과 무관합니다. 또 주님은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을 말씀하시면서, "만일 너희가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도 역시 밖의 육신의 죽음을 말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있는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는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나는 여기서 침륜하는구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영혼의 침륜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중국어 성경은 이 단어를 '주려 죽는구나'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영원한 죽음을 가리키지 않고 육신이 죽거나 죽임당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것도 침륜했다고 하고 사람이 주려 죽는 것도 침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1장에서 주님은 너희의 머리카락 하나도 상치 아니하리라(18절)고 하셨습니다. 해를 입는다는 단어도 원문에서는 침륜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머리카락도 멸망당한다는 말입니까? 그러므로 여기서는 분명 영원한 죽음을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이 세 군데 말씀에서 바울이 말한 것은 어떤 사람의 행위는 약한 형제의 양심을 침륜하게 하고 그들로 집회에서 담대히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이 끝났다고 생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다시 우상을 숭배하고 우상의 집에 가서 우상의 제물을 먹었으며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버렸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들의 양심은 다른 사람으로 인해 파괴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 11절을 근거로 한 반론 (2)


하나님의 복음 2012-03-2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38166.html
고린도전서 8장 4절부터 7절: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을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여기서 '습관'이라는 단어를 주의하십시오. 이것은 그들의 습관이라는 말입니다. 12절: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이 단락의 말씀은 형제를 사랑함으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삼가며, 지식이 있다고 해서 제멋대로 행동하여 형제를 넘어지지 않게 하라고 가르칩니다.

7절부터 마지막 구절까지에서 주의하는 바는 양심의 문제이지 영혼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서 바울은 사람이 영원히 구원받느냐 아니면 멸망하느냐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양심이 약한 형제를 어떻게 대해 주어야 하는가를 말합니다. 사람의 양심은 결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참소하지 않습니다. 만일 사람이 스스로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느끼는 것을 하게 되면 그의 양심은 계속 그를 참소하고 책망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일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주일날 물건을 사고 일하는 것이 가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의 양심은 이에 대해 조금도 책망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신약이 우리에게 준 은혜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안식일의 짐을 지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 지식이 없기 때문에 주일날 물건 사는 것을 큰 죄를 범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는 그렇게 행한 후에 양심에 평강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죄의 문제는 때때로 단지 양심의 문제일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양심은 그에게 있어서 사람의 죄를 결정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과거에 우상을 숭배했던 약한 형제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는 당신이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보고 자기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먹으려고 합니다. 당신 속에는 그것에 대한 분명한 지식이 있기 때문에 먹어도 아무 상관이 없고 먹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그는 속에 확실한 지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당신이 먹는 것을 보고 먹게 된 것입니다. 그는 먹을 때 마음이 불안합니다. 당신은 기쁜 마음으로 먹으나 그는 두려워하고 떨며 먹습니다. 그것을 먹은 후에 그 약한 형제는 더 이상 기도할 수 없게 되고, 그의 양심은 그에게 조금 전에 죄를 범했으며 전과 같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다고 말합니다. 그의 양심은 하나님 앞에서 침륜하게 되었습니다. 전에 범했던 죄를 또 범하였으므로 그는 하나님 앞에서 거리낌을 느끼고 끝장났다고 느낍니다.  
      


고린도전서 8장 11절을 근거로 한 반론 (1)


하나님의 복음 2012-03-20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38157.html
고린도전서 8장 11절: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 구절은 우리에게 어려움을 줍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 사람은 분명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는 바울이 그를 형제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약한 형제이지만 여전히 형제요 주께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사람이 멸망한다고 했습니다. 멸망이라는 단어 아폴루미(apollumi)는 원문에서 두 가지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멸망(침륜)이고 하나는 파괴입니다. 이 단어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멸망과 같은 단어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저를 믿는 자마다 아폴루미(apollumi)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합니다. 만일 여기의 아폴루미(apollumi)를 파괴로 고칠 수 있다면 요한복음 3장 16절의 멸망도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 점에서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결코 성경 말씀을 대충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상하 문장을 분명히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가에서 남의 말을 엿듣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둔한 일은 바로 열쇠 구멍으로 남의 말을 엿듣는 것입니다. 이렇게 들을 때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에서 일부만을 취하여 읽는다면 그 말씀을 분명히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상하 문장을 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8장의 주제는 그리스도인이 우상의 집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있는에 관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늘과 땅 사이에 하나님이 유일하시며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우상 앞에 음식을 차려 놓을 때 우상이 실재한다면 제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나 우상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제사하는 것이 아니고 음식을 차려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만일 제사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먹는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 만일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우상의 집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만일 제사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먹는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 만일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우상의 집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상의 집에 차려 놓은 제물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먹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고린도인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먹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의 이유는 우상과 우상의 집이 실지인가에 있지 않았습니다. 8장 시작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우리'는 고린도의 믿는 이들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들은 지식이 있는고로 먹을 수 있었습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사랑의 목적은 덕을 세우기 위한 것이나 지식은 사람을 교만케 한다. 너희가 아버지는 하나님이시고 예수는 주시라고 말하는 것은 옳으나 너희 고린도 교회에는 많은 약한 형제들이 있다. 그들은 지식이 없고 머리가 총명하지도 않다. 너희(고린도인들)에게는 말을 돌려서 할 수 있는 재주가 있으나 그들은 너희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고 그렇게 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희는 그들이 어떤 사람이고 그들의 출신이 어떤지를 알아야 한다. 오늘 너희는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과거에 우상에게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우상을 신으로 생각한다. 너희는 먹을 때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들은 먹을 때 과거에 범한 죄를 답습하는 것이 된다. 너희는 지식이 있어서 먹고 떠나겠지만, 그들은 과거에 범했던 죄를 다시 범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죄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다른 그리스도인을 위해 그들을 사랑함으로 먹지 않는 것이 낫다. 너희에게는 지식이 있으나 그들에게는 지식이 없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양심의 참소를 받고 또 큰 죄를 범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넘어진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을 위한 연고로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이 부분의 개략적인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