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기도를 해야 구원받을 수 있고 간절히 구해야만이 구원받을 수 잇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주 예수님이 이미 오셔서 죽으셨고 이미 부활하심으로 모든 죄의 문제를 다 해결하셨으며 구원에 방해되는 모든 것을 이미 다 제거하셨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많은 죄인들이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는데, 이것은 마치 주 예수님께 다시 한 번 죽어 달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주 예수님께서 이미 모든 속죄 사업을 완성하신 것을 모릅니다. 그분이 이미 모든 역사를 이루셨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그분께 간구해야 할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오늘은 감사의 말을 할 때이지 결코 간청할 때가 아닙니다.
오늘 하나님은 당신의 죄가 이렇게 저렇게 중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누가 당신에게 물건을 줄 때 감사하지 않고 도리어 간구한다면, 이것은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당신은 기도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주 예수님의 역사를 깨달았다면 당신은 기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들에서 기도는 아무런 지위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 좋은 것은 무릎을 꿇고 지금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로마서 10장 9~13절)
많은 사람들은 구원에 어떤 조건을 추가합니다. 선한 행위가 아니면 회개 혹은 죄의 자복을 추가합니다. 그들은 사람이 기도해야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이는 성령이 대대적으로 나를 감동시키사 주 예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시도록 무릎 꿇고 간구하게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지금 그는 아직 구원을 받지 않았는데, 성령이 그를 한 번 감동시켜야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기도로 애걸해야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모르기 때문임을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인간을 미워하는 분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켜 그를 구원하시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더 괴롭게 하고 자신을 더 고통스럽게 하여 하나님이 자기를 불쌍히 여기실 때까지 간절히 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복음을 전혀 보지 못한 사람이고, 복음의 빛 가운데서 하나님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구하고 간구해야만이 하나님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상 하나님의 마음은 돌이킬 필요가 없이 벌써부터 우리에게로 돌이켜 졌습니다. 마음을 돌이켜야 할 사람은 당신입니다. 당신은 그분을 거절하고 믿지 않으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오늘 문제는 하나님 편에 있지 않고 우리 편에 있습니다. 복음을 깨닫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고 그분 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위해 간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십자가 위의 강도는 적지 않은 사람의 물건을 빼았고 수많은 사람에게 죄를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그에게는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고 죄를 자복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는 과거에 남의 물건을 약탈한 것을 배상할 수도, 돌려줄 수도 없는 처지였으며 한 걸음도 걸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비록 그가 죄를 자복하지도 않고 배상하지도 않았지만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주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의 강도는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죽으신 후 그가 첫번째로 구원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구원받는 방법은 '죄를 자백하는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십자가 위의 그 강도가 과실을 사죄받을 기회가 없었지만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만일 그가 아직 이 땅에 살아있다면 공의를 위하여 마땅히 자기 과실을 시인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의 구원의 문제는 십자가의 그 순간에 해결된 것입니다. 죄를 자백한 것은 구원받은 후의 일입니다. 그는 이미 구원을 받았는데 그 구원은 전혀 그가 죄를 자복하거나 배상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장래에 죄를 자복한다고 해서 그로 더욱 구원받게 하지는 못합니다.
여기서 명백히 구원받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인 반면에 죄를 자백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자연적인 표현임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의로우신 우리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 가운데서 죄를 깨끗이 처리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주 예수님과의 문제이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얻는 것입니다. 결코 죄를 자백하는 것을 지나치게 높이지 마십시오. 성경은 죄를 자복하는 것을 구원받는 방법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것을 구원받는 방법으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를 구원한 것은 내 자신이 아닌 주 예수님이십니다. 나의 십자가가 나를 구원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를 구원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