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지방 교회는 성경 읽기를 사모하는 마음을 형제자매들의 마음 안으로 넣어 형제자매들이 성경 읽기를 사랑하고 좋아하게 해야 합니다. 비록 많은 형제자매들이 성경을 읽고 말하지만, 마지막에 교통하는 형제는 단지 읽은 것에 제한 받지 말고 그 장의 한 구절이나 반 구절이나 한 마디에서 혹은 한 단락에서 받은 영적인 빛에 근거하여 최선을 다 해 생명을 공급해야 합니다.
성경을 추구하는 집회에서는 한 주에 성경을 한 장씩만 추구하여 내용이 너무 많지 않은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음식을 먹으면서 통째로 삼켜버리면 아무 맛도 음미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이가 개인적으로 하루에 성경을 한 장씩 추구하여 한 주에 여섯 장을 추구하더라도 함께 모여 교통할 때는 여전히 한 장을 교통하는 것이 적합합니다. 메시지를 전하든 성경을 추구하든 절대로 많은 것을 하려고 욕심 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의 공급은 중점이 있어야 하고 보편적이어야 합니다. 진리와 빛을 성도들 안에 넣어줄 때, 대강 가볍게 한 번 말하고 지나쳐서는 안 되고, 거듭해서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말해 넣어야 합니다. 말씀은 반드시 중심이 있어야 하고, 중심에 집중해야 하며, 거듭하여 그 중심을 강타해야 합니다. 동시에 기타 다른 방면들도 돌봐야 합니다.
떡 떼는 집회, 기도집회, 교통집회 등과 같은 집회에는 마땅히 인도가 있어야 하며 약간의 말씀의 공급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결코 판에 박힌 방식이 아닌 살아있는 방식으로 해야합니다. 떡 떼는 집회에서 떡을 떼기 전이나 뗴는 과정에서 가르치는 방식으로 교통을 하게 되면 집회가 즉시 죽게 됩니다. 떡 떼는 집회에서 주님의 인격과 일을 말할 때 가르치는 말투로 해서는 안 되고, 일반적인 어조로, 사랑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사랑스런 어조로 말해야 합니다.
말씀의 사역을 다하려면 시간을 들여 연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할수록 사람들이 주님을 더 보도록 하며, 더욱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짧은 말을 해야 합니다. 말씀의 사역을 수행하려면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말씀은 사람의 어려움을 해결하거나 혹은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과 필요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지, 단지 사람들에게 어떤 사상이나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의 사역의 기본 자료는 개인적으로 배운 공과와 주님께 받은 부담에 근거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사역을 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공과를 배워야 합니다.
말씀의 사역을 위한 자료의 근원이 올바르다면 그 다음으로 주의해야 할 또 한 가지는 교만하게 되지 않는 것입니다. 공과를 배운 적이 없고 체험이 없으며 부담도 없는 사람이 말씀의 사역을 수행하며 메시지를 전한다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고 임의로 말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사역을 준비할 때 절대적으로 신기한 것을 피해야 하며 신기한 것을 말하려는 동기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비록 거듭남이 오래된 주제여서 조금도 신기한 것이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는 자료를 사용하여 거듭남이라는 주제를, 공급이 있고 성도들의 입맛이 살아나는 방식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엄숙한 문제이기 때문에 당신이 자료들을 찾을 때 성경을 해석하는 책들은 가급적 피해야 합니다. 성경을 해석한 모든 자료들은 생명 공급이 매우 적고 또한 매우 쉽게 잘못된 결론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말씀의 사역의 자료를 선택하는 근거와 원칙은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고 어려움을 해결하며, 사람 안에 느낌과 필요를 만들어 내는 것인데, 말씀의 사역이 일종의 교육과정으로 떨어지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주일학교가 하나의 교과 과정이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외우고 기억해야 한다는 관념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매번 집회에 올 때마다 속 부분이 만져졌고, 속에 어떤 공급이 있다는 느낌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청년들을 목양하는 일을 하는 형제자매들은 반드시 온전하게 하는 집회만 의지해서는 안 되고 청년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부담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두뇌를 사용하여 계속해서 외우게 하는 것들은 죽은 문자에 속한 것이므로 그렇게 많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훈련의 성질을 가진 것을 집회 안으로 가져오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형제자매들을 대할 때 훈련생처럼 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집회에 와서 개요나 성경의 장절을 모두 잊을 수 있지만 무언가 만졌다는 느낌을 가졌다면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어떤 지방에서 건축됨 사람이 되었다면 그가 그 지방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여전히 그는 건축된 사람입니다. 건축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는 형제자매들을 '번거롭게 하는' 능력을 갖기를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우리가 말한 제목은 잊어버리고 내용 또한 그다지 많이 기억하지 못할 지라도 그들 속에 모기가 문 것 같이 어떤 것에 만져진 것이 잇을 것입니다. 그 결과 돌아가서 편안히 지낼 수 없는데, 그것은 그들 속에서 누군가가 계속해서 귀찮게 하고 무언가가 마음 문을 두드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와 고려 그리고 봉사하는 사람들과의 교통을 통해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할지, 무엇을 말해야 할지를 연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고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을 의지하고 서로 함께 동역하며 봉사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형제자매들이 함께 동역할 수 있도록 단독적인 사람들을 단체적인 몸이 되게 하는 것을 건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건축의 참된 의미는 그리스도를 형제자매들 안으로 건축하여 형제자매들이 그들 안에 건축된 그리스도로 인해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우주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건축은 '거처와 성' 두 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대적 사탄은 모든 수단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파괴하려고 했는데, 사탄은 거룩한 성과 성전을 파괴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파괴하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것이 성전과 성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방면을 강조하므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을 강조합니다. 교회의 행정의 목적은 바로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의 결과를 산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되지 못하게 만드는 부분이 처리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연합될 수 있고 우리 속에 하나님의 성전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연합되신 분량 만큼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건축되고 하나님의 임재를 갖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메시지가 하나님께서 사람 안으로 연합되도록 하지 못했다면 우리의 일은 건축의 일이 아니며 성전을 건축한 것도 아닙니다.
성전은 임재의 문제이고 성은 주권과 권위의 문제로, 새 예루살렘이 출현할 때 이 둘이 하나로 합해질 것입니다. 성을 건축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건축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권위를 사람 안에 건축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임재를 건축하고 나중에 하나님의 주권을 건축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전쟁의 문제가 아니지만 권위는 전쟁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건축되어 어느 정도까지 이르렀을 때 서로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으며, 서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을 때 우리는 연결되어 한 성이 될 수 있습니다. 오직 이 땅에서 성전을 가지실 때 하나님은 비로소 땅 위에 거하실 수 있으며, 이 땅 위에 성을 가지실 때 하나님의 뜻은 땅 위에서도 이뤄지고 비로소 땅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가 권위와 질서가 있는 곳임을 보아야 할 뿐만 아니라 온 우주가 권위의 문제라는 것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1절에서 마귀의 계략에 대항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교회 안에 질서를 세우고자 할 때마다 사탄의 교묘한 방법을 사용하여 이것을 파괴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건축의 일을 하려면 세 가지에 대해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로 사람을 알아야 하고, 두 번째는 일을 알아야 하며, 세 번째는 대적의 계략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배워야 할 공과는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서로 의견을 말하고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다툼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육체의 행위를 조장해서는 안 되고, 사람의 의견이 표현되도록 해서도 안 되며, 하나님의 처리를 받아 하나님께서 우리 안으로 건축되실 수 있게 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