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가을 국제 장로 동역자 훈련집회 전달 요약
00형제님
할렐루야 이번에 두 번째로 유럽에서 국제집회를 가졌습니다.
현재 북유럽에서의 주님의 움직은 활발합니다.
지금 유럽의 교회들의 수는,
23개 나라에 73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73개의 교회들이 있고 62개의 도시에 모임이 있습니다.
런던에서는 현재 24명의 훈련생이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주님이 새롭게 움직이고 역사하고 계심을 찬양합니다.
전제제목을 선포하겠습니다.
주님의 회복 안의 네 가지 큰 기둥!
메시지1
진리와 생명과 교회와 복음
건축물에는 기둥이 필요합니다.
주의 회복의 네 기둥은 진리,생명,교회,복음입니다.
요한복음 8장 37절에는 주님과 빌라도와의 대화에서 진리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진리에 속한 사람은 내 음성을 듣습니다.
요11:1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디모데전서 3장 15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기반입니다.
교회는 큰 경건의 비밀입니다.
이 땅에서 주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나타내셨습니다.
교회는 확대된 경건의 비밀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이 표현되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1장에서 진리의 말씀이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진리의 말씀은 복음으로 전해져야합니다.
진리와 복음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회복의 네 가지 큰 기둥은 진리 생명 교회 복음입니다!
진리는 생명을 가져오고
생명은 우리로 교회가 되게 하며,
우리는 교회 안에서 진리를 복음으로 전해야합니다.
1. 주님의 회복은 주로 네 기둥 (진리,생명,교회,복음)위에 세워집니다.
우리는 이 네 기둥을 매우 주의해야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으로 조성된다면,
즉 진리 안에서 배우고 인식하고 체험하며,
생명을 누리고 생명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에 이르러야합니다.
2. 주님의 회복 안에서 첫 번째 기둥은 진리입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으로 조성되어야합니다.
주님의 회복은 신성한 진리들의 회복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책망하고 온전케합니다.
진리의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열어놓아야합니다.
말씀은 반드시 합당한 해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신약경륜의 관점에서 성경을 합당하게 해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곧게 잘라야합니다.
목수가 나무를 곧게 자르는 것처럼 말씀을 왜곡하지 않고 곧게 잘라야합니다.
우리는 또한 진리에 대해 절대적이어야합니다.
우리 자신과 상황으로 진리를 변개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의 회복은 우리가 제시하는 진리에 달려있습니다.
가장 기준이 되는 것은 진리입니다.
우리가 제시하고 살아내는 진리가 어떠하냐에 따라 주님의 회복이 정해집니다.
사도요한은 요한 삼서에서 이런 표현을 씁니다.
"여러분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볼 때 내 마음이 기쁩니다."
우리는 진리 안에서 행하고 진리를 살아내어야합니다.
왜 하락이 찾아옵니까?
진리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분의 신실한 사람들을 통해 진리의 말씀을 해방해오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살아있는 진리가 절박하게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이 진리에 신실하고 진리를 살아내기 원합니다!
우리는 하루에 두 메시지씩 라이프스터디를 추구해야합니다.
우리가 진리로 조성된다면 성벽이 되어 신성의 풍성의 권익을 보호할 것입니다.
3. 주님의 회복 안의 두 번째 큰 기둥은 생명입니다.
주님은 진리이고 생명이십니다.
말씀이신 주님은 하나님을 정의하고 설명하고 표현하십니다.
성경을 읽을 때 생명이신 그분을 접촉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진리는 담는 그릇이고 생명은 그 안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진리이신 그분을 알아야하고 생명이신 그분을 받아들여야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먹고 누려야합니다.
그럴때 우리는 하나님을 표현하고 그분의 권위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00형제님
이 회복은 주님의 회복입니다.
4. 하나님의 왕국인 교회
왕국은 왕이 다스리는 영역입니다.
왕국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성취되는 영역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을 누리는 영역입니다.
정상적인 교회 생활은 왕국의 생활입니다.
왕국을 위해 우리는 열쇠를 사용하여 음부의 문들을 닫아야합니다.
그 열쇠들은 바로 자아를 부인함, 십자가를 짐, 혼 생명을 잃음 입니다.
우리는 교회 생활 안에서 자아를 부인함을 체험하게됩니다.
5. 네 번째 기둥인 복음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이중 죄를 해결해주십니다.
죄를 씻어주시고 죄의 권능에서 해방해주십니다.
바로 피와 물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문제로 인해 하나님 앞에 갈 수 없었습니다.
주님의 오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피로써 우리의 법리적인 구속을 이루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또한 유기적인 구원이 필요합니다.
우리 안에 죄의 본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이 필요합니다.
죄의 본성은 생명에 의해서, 유기적인 구원안에서 구원되어야합니다.
우리는 높은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이 복음은 피와 물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의 복음과 같이 한 놀라운 인격을 제시하는 복음입니다.
00형제님
교통을 들을 때 우리 영이 솟아오릅니다.
주님이 바로 진리이십니다.
진리이신 분이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00형제님
이러한 전달을 감사합니다.
진리를 통하여 우리는 생명을 풍성히 얻게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왕국인 교회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교회 생활 안에서 진리인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00형제님
우리가 제시하는 진리의 표준에 따라 주의 회복의 어떠함이 정해집니다.
진리로 조성되고 생명을 누리고 교회를 건축하며 복음을 전하기 원합니다.
우리는 로마서에 있는 복음을 알아야합니다.
오, 주의 회복의 네 기둥, 진리 생명 교회 복음!
00형제님
진리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절대적이어야합니다.
우리의 상황에 따라 진리를 바꾸지 말아야합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는 양육받고 조성되어야합니다.
진리를 통해 자양분을 얻기 원합니다.
기도는 일종의 봉사이므로 응당 기도를 첫째 위치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사탄의 궤계는 항상 주님과 관계되는 어떤 일을 기도앞에 두고
기도를 맨 마지막에 두게 한다.
기도의 중요성을 아무리 여러번 일깨워 준다 하더라도 기도를 중요시 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지 않다.
말씀을 전하는 집회나 사경회나 교회의 다른 많은 집회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즐거이 참석하고
취미를 가지며 시간을 내서 참석한다. 그러나 기도 집회에는 놀랄 만큼 적은 인수가 참석한다.
우리의 주된 봉사가 기도라는 것을 강단에서 여러번 말하고
,우리의 기도 생활이 실패하면 기타 모든 일들도 잇달아 실패한다고 알려 주었건만,
여전히 기도는 중요시되지 않고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어려움이 쌓여 있을 때 우리 입으로는 기도해야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말이 기도보다 많고 염려가 기도보다 많으며
방범이 기도보다 많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어떤 것도 기도 앞에 놓을 수 있고 다른 것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오직 기도만은 맨 마지막에 놓여지고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주님을 깊이 아는 어느 형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다 기도를 소홀히 하는 죄를 범했다. 우리는 자신에게, [너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
그렇다 우리는 다 자신에게 [너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이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다고 원망하거나 저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다고 나무라지 말아야 한다.
우리 자신이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에 의해 눈이 밝아져서 새로이 기도의 중요성과 가치를 깨달을 필요가 있다.
또 한면으로 우리는 만약 사탄이 우리를 미혹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렇게 기도를 소홀히 하지 않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깨어서 사탄의 각종전략을 발견하고 사탄의 모든 궤계를 꿰뚫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기도에 있어서 사탄이 우리를 풀어놓게 하고 우리를 가리는 것을 하락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기도의 중요성을 깨닫고 우리 자신을 드려서 기도의 봉사를 하고 기도의 일을 하려고 할 때에
사탄의 공격이 연달아 우리에게 임하게 된다.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 할 기도의 씨름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위치에 강하고 힘 있게 서서 십자가의 승리를 의지하여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주 예수의 완전한 승리로 기도를 쟁취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기도의 위치를 지키도록 기도의 위치에서 대적을 쫒아내야 한다.
형제자매여, 우리는 반드시 기도 시간을 위해 싸워야 하고 반드시 기도 시간을 획득해야 한다.
앤드류 머레이는 [일정한 시간에 하지 않는 기도는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여, 우리는 기도할 시간을 갖도록 깨어 있어야 하고
또한 이 시간이 마귀의 궤계로 빼앗기지 않도록 기도로 지켜야 한다.
<교회의 기도사역>
First, we need to spend time specifically to pray that the saints would have more of a heart for the Lord. This means that we have to pray to the Lord that the saints would have a heart that is sufficiently inclined toward the Lord and that every one of them would love the Lord. We should not only pray that they would be saved and participate in the church life but that they would also be touched by the Lord and have a heart for Him; not just any heart but a heart sufficiently inclined toward Him. The first issue concerning man is his heart. Today educators regard man as an animal of thought, but there is a part in man-his heart-which is more subjective and which better represents him than his mind.
For three and a half years our Lord Jesus was on the earth with the disciples every day, leading and teaching them. The most important matter that the Lord focused on was the matter of touching their hearts. Although we cannot find such a word in the Gospels, we can draw the conclusion that the Lord was touching their hearts. The Lord touched James's heart, Peter's heart, and Andrew's heart; He touched the hearts of all twelve disciples. What the Lord paid attention to in those three and a half years was their hearts. Why was this? This was because if they had not inclined their hearts toward God and had not fixed their hearts on the Lord, they would have had no future in spiritual matters, and the Lord would not have been able to do anything.
The Lord became flesh that He might work through the disciples, but if the disciples had not had a heart for the Lord, how could the Lord have done anything? Suppose James, Peter, John, and Andrew had no heart for the Lord and had simply gone fishing. Suppose they had been saved and blessed yet had no heart for the Lord's work. How could the Lord have worked through them? If the Lord had been unable to bring the disciples to the upper room in Jerusalem, the day of Pentecost could have come and the Holy Spirit could have been outpoured, but there would have been no vessel on the earth to receive the leading of the Holy Spirit. However, on the day of Pentecost when the Holy Spirit descended, there were a hundred and twenty people whose hearts were ready and were for the Lord. Hence, when the Holy Spirit descended, He was able to find one hundred and twenty people on the earth whose hearts were for the Lord and were sufficiently inclined toward the Lord.
When the Lord appeared to the disciples in the Gospels, He appeared as the lovely One. We see in the Gospels that the Lord manifested His power, but we also see that the Lord showed His loveliness. One woman anointed Him with precious ointment and kissed His feet (Luke 7:37-38). This shows us how lovely the Lord was and how sweet and precious He was among His disciples. He did not compel the disciples; rather, He drew them with His grace, His love, His sweetness, and His glory. Which part of the disciples did He draw? He drew their hearts. The Lord touched the disciples' hearts with His loveliness.
The Lord touched people's hearts with His loveliness to the extent that they did not care for anything. Two of the sisters ;Mary the Magdalene and Mary of Bethany ;forsook everything to love the Lord. Why? It was because the Lord was lovely and precious to them. Thus, they forsook everything to love and seek the Lord absolutely. However, after the Lord's death the brothers, such as Peter, were still weak, even though they knew that the Lord had resurrected. Peter took the lead to go fishing, and the rest of the disciples went with him. That night they caught nothing. As soon as the morning broke, the Lord appeared in their midst. Did the Lord rebuke them? No. The Lord came to them, was gentle before them, and cared for them. The Lord asked them on the shore, "You do not have any fish to eat, do you?" How lovely the Lord was, and how caring He was toward them! After Peter heard that voice, he disregarded everything, forsaking the boat and the fish, and threw himself into the sea. At that time did the Lord rebuke him? No. The Lord did not rebuke him; rather, He asked Peter gently and sympathetically, "Do you love Me more than these?" What the Lord meant was, "Do you love Me more than the sea? Do you love Me more than the world? Do you love Me more than your boat? Do you love Me more than your occupation? Do you love Me more than your fishing skill? Do you love Me more than your capability? Do you love Me more than your companions? Do you love Me more than the one hundred and fifty-three fish? Do you love Me more than these?"
Instead of rebuking and blaming Peter, the Lord simply asked him, "Do you love Me more than these?" How did Peter reply? Peter answered, "Lord, You know that I love You." Then the Lord asked him again, "Simon, do you love Me?" Peter did not know how to answer, so he simply told the Lord, "You know that I love You." The Lord did not ask him this only once or twice but asked him three times. This is recorded in John 21. The sole emphasis and purpose of the Lord"s work in those three and a half years was to touch the disciples' hearts and lead them to love H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