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0:26-29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이 말씀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떠나서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당신이 몇십 불로 소나 양 한 마리를 사서 당신의 속죄제물로 삼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를 안 후에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그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분을 그 많고 많은 소와 양들 중에 하나로 여기는 것입니다.
끝으로 "또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이는 성령께서는 당신에게 은혜를 주시는데 당신은 그분을 욕되게 하고 유대교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배도하는 사람의 길을 보여줍니다. 나는 이러한 사람이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람이 구원받았을 가능성도 있고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는 우리에게 이 사람이 구원받았는가의 여부를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사도는 다만 사람이 그리스도께 나아온 후에 다시 유대교로 돌아간다면, 그 사람은 더 중한 형벌을 받게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의 종말은 심판과 맹렬하게 타는 불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에 맹렬한 불이 있음을 봅니다.
여기서는 '불사름'이 있다고 말했으나 다른 곳에서는 지옥 불을 피하지 못하리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이 두 부분을 합해 본다면 서로 일치되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앞에서 말한 것들을 얻은 후에 하나님께 좋은 열매를 맺지 않고 도리어 가시와 엉겅퀴를 낸다면, 그는 불살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불사름은 일정 기간 동안만 지속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밭에 자란 가시와 엉겅퀴를 불사르려 한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리겠는가? 초등 학생들도 알듯이, 엉겅퀴는 일단 불살라지면 다시 불사를 수 없습니다. 왕국의 불사름은 길어야 천 년입니다. 사실상 얼마 동안 불살라지는가는 당신의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가시와 엉겅퀴를 많이 내었으면 보다 오랫동안 불살라질 것이고 적게 내었으면 보다 적게 불살라질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얼마나 남아 있습니까? 아직 주 예수님의 보혈 아래 두지 않은 일들이 얼마나 됩니까? 아직 자백하지 않고 처리하지 않은 일들은 얼마나 됩니까? 아직 형제자매 사이에 해결하지 않은 일들은 얼마나 됩니까? 이것은 바로 주 예수님이 말한 가시와 엉겅퀴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주 예수님은 만일 호리라도 갚지 아니하면 거기서 나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26절). 당신은 당신의 빚을 다 갚아야 합니다. 모든 가시와 엉겅퀴를 다 불사르는 것이 바로 모든 빚을 다 갚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밭과 같고 그의 악한 행위는 가시와 엉겅퀴 같습니다. 내가 산 5 에이커의 땅이 불살라진 후에 3 에이커는 사라지고 2 에이커만 남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불살라지는 것은 가시와 엉겅퀴이고 밭은 불살라지지 않습니다. 바꿔 말하면, 아담 안에서 당신의 저주받은 것들 곧 응당 제거되어야 하나 제거되지 않은 것들은 불살라져야 하며, 그것들이 바로 지옥불이 태우는 대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은 불로 태워지지 않습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다 태워져도 밭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당신이 구원받은 것에는 아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서 자라나온 것들, 당신의 육신 안에서 자라나온 것들은, 주 예수님의 보혈을 거치지 않았다면 상당한 처리를 받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6:4-6 "한 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여기에 이런 많은 자격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는 비춤을 얻었고, 계시된 하나님을 보았으며, 아버지 품 속의 독생자와 하나님의 사랑을 알며, 하늘의 은사를 곧 유일한 은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맛보았습니다. 성경에서 은사가 복수로 사용되었을 때는 성령의 은사를 가리키고, 단수일 경우에는 유일한 은사로서 요한복음 3장 16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독생자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성령의 은사와 다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과 주 예수를 소유했을 뿐 아니라 또한 성령에 참여한 바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고 주 예수를 얻었으며 성령의 내주하심을 갖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맛보았고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습니다. 내세의 능력은 바로 천년왕국의 능력입니다. 천년왕국에서 성령의 은사와 능력은 더욱 흥왕되고, 각종 능력과 기사와 기적이 충만할 것입니다. 이때문에 여기서 내세의 능력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는 것은 천년왕국에 속한 것을 맛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확실히 구원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만일 오늘 이 사람이 진리를 버리고 미끄러지고 넘어졌다면, 다시 그를 회개케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그로 하여금 다시 예수를 믿고 새로운 시작을 갖도록 할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은 많은 역사를 거치고 많은 비를 흡수하였지만, 넘어졌으며 하나님께 드리는 합당한 것들을 내지 않고 가시와 엉컹퀴를 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은,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컹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히 6:7-8)는 말씀과 같습니다.
이 사람의 종말은 다음 세 가지 입니다. 첫째로 그는 '버림을 당합니다'. 이 버림당함은 바로 고린도전서 9장 27절의 버림당함입니다. 바울은 그가 복음을 전한 후에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를 쓰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분은 왕국 시대에도 나를 사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사람이 버림을 당하거나 버림이 되는 것은 바로 왕국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쓰임받지 못하고 버림받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는 '저주함에 가깝습니다'. 그가 저주를 받는다는 말이 아니라 그가 받은 형벌이 저주함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몇 주 전에 우리는 진여에 있는 땅을 불사르려는 계획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땅을 영원히 불사를 수 있습니까? 당신은 땅을 오 년 동안 불사를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여기의 '불사름'은 일시적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