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눈은 자연히 이 사람은 좀 선하고 저 사람은 좀 악하다고 봅니다. 또 좀 선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은혜를 덜 주셔도 되고 좀 악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은혜를 더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많이 해어진 옷은 많은 천으로 깊고 적게 해어진 옷은 작은 천으로 깁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런 사실이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범합니까? 나는 여러분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라는 말씀을 다 외우리라고 생각합니다. 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합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기"(롬 3:24) 때문입니다. 만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한 것이 십계명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라면 이 세상에는 크고 작은 죄인의 구분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그 중에서 아홉 가지를 범한 사람도 있고 한 가지밖에 범하지 않은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한 것이 사회의 풍습을 어기고 국가의 법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라면 여기에도 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구분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실지 상황은 매우 기이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무엇입니까? 은혜는 가장 낮은 데로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고, 영광은 가장 높은 곳으로 사람을 이끄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구원은 하나님이 한 죄인을 죄의 진흙구덩이에서 끌어올려 영광 안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았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충분치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칭의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영광에 들어가지 않는 한 하나님은 그분의 역사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의 죄과로 인해 은혜를 주지 않으실 수 없고 또한 사람의 죄과로 인해 은혜를 적게 주실 수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한면으로는 주지 않으실 수 없고 다른 면으로는 적게 주실 수도 없으십니다. 은혜는 죄과와 무관합니다. 공적과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은혜 안에 공적의 성질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빚을 지셔서 그 빚을 갚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나에게, "저희는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습니다. 내가 공적을 힘입어 하나님 앞에 나온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공적이 조금도 없다고 말할 수야 있나요? 조금은 공적이 있다고 믿습니다. 저희에게 조금이나마 행위가 있어야지요. 그리고 우리가 미치지 못한 부분은 하나님이 보충해 주시면 됩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지만 할 수 없는 부분을 하나님은 보완해 주셔야겠지요." 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말해서는 안됩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빚을 갚으시는 것이 아니며 또한 결코 하나님이 무언가를 더하여 빚을 갚으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본래 당신에게 오 원을 빚졌는데 이제 당신에게 십 원을 갚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당신에게 옷 한 벌을 선물하는 것과 같습니다. 은혜는 당신의 옷이 해어져서 그 부분을 보수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럴 때 이미 은혜의 위치는 상실되고 은혜의 성질은 이미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로마서 11장 6절에도 한 마디 분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한 번은 우리 집안의 어떤 사람이 올해 연말에는 아무게 의사에게 무엇을 좀 선물해야겠다고 말햇습니다. 내가 그에게 왜 선물을 하려고 하느냐고 물으니까 그는, "자네, 잊어버렸나? 지난 달 내 두 동생이 병에 걸려서 아무게 의사를 모셔왔는데 우리와 잘 아는 사이여서 돈을 받지 않았지. 그것 때문에 선물을 하려는 것이라네." 라고 말햇습니다. 왜 그에게 갚아줍니까? 이는 수고의 행위가 있기 때문에 빚의 문제가 있어서입니다. 그러므로 정확히 말해서 그것은 빚을 갚는 것입니다.
친구여, 만일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 공적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크든 작든 공적의 문제가 생길 때 하나님이 당신을 구원하시는 것은 은혜가 아니라 당신에게 빚을 갚아주는 것이 됨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하나님 앞에서 공적이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음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만일 내가 공적으로 인해 구원을 받았다면, 나는, "하나님, 당신이 나에게 은혜 주셨음을 인해 감사드립니다." 라고 말하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도리어 나는, "내가 구원받은 것은 당신이 내게 빚을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라고 말할 것입니다. 나는 가슴을 펴고 내가 공적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왜 자기 공적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까? 이는 하나님이 사람의 모든 교만을 제하시기 원하시고, 그분께 감사하고 찬미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공적의 문제가 발생할 때 은혜는 은혜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