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실 뿐 아니라 또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것이 바로 은혜이다. 하나님은 긍휼에 머물기를 원치 않으신다. 우리는 긍휼만 있고 하나님이 우리 죄를 간과하시며 따지지 않으시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을 긍휼히 여기시거나 그냥 지나치지 않으신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모든 행사는 그분 자신과 부합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긍휼에만 머물러서는 안되고 은혜에 까지 이르러야 하며 우리의 죄 문제를 철저히 해결해야만 한다. 만일 죄 문제를 소홀히 여기는 것으로 끝난다면 하나님에게는 긍휼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분이 보실 때 대충 계산하거나 간과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그러므로 긍휼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반드시 죄를 깨끗이 청산해야만 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본다.
그러므로 신약 성경에서 긍휼을 언급했지만 더욱 충만한 것은 은혜이다. ㅇ리는 신약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세상에서 은혜를 나타내시고, 어떻게 세상에서 은혜를 이루시며 어떻게 우리로 은혜를 얻게 하셨는지를 볼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육체에 속한 사람과 혈기에 속한 사람은 항상 긍휼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구약에는 긍휼의 말씀이 가득하고 은혜의 말씀은 별로 없다. 이는 육체 안에 있는 사람은 긍휼로 족하고 은혜는 필요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이것은 사람들이 죄를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일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이 없고 거할 곳도 없는 상황이라면 긍휼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은헤가 필요하다. 그러나 죄 문제는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이나 거할 곳이 없는 문제가 아니다. 죄 문제는 사람 속의 양심이 불안해 하는 문제요 하나님 앞에서의 형벌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조금만 간과하시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내 죄를 지나쳐 가시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그냥 지나가 주시기를 바란다. 사람은 하나님이 그냥 지나치시고 보지 않은 것으로 계산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그냥 지나치거나 긍휼을 베풀어 간과하실 수 없다. 그분은 우리 죄를 철저히 처리하셔야만 한다.
원천인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구원의 강물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귀히 여긴다. 구원의 강물은 사랑에서 발원하여 흐른다. 동시에 만일 하나님의 긍휼이 없다면 은혜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의 실지적인 표현이다. 그러므로 사랑도 사랑스럽고 긍휼도 참으로 사랑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임할 때 가장 보배로운 것은 은혜이다. 사랑은 아주 좋은 것이나 우리에게 실지적인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긍휼도 아주 좋은 것인 우리에게 직접적인 유익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은혜는 우리에게 직접적인 유익이 되기 때문에 더 보배로운 것이다.
신약 성경에 충만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나 하나님의 긍휼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이다. 왜냐하면 은혜는 타락한 사람, 멸망할 사람, 잃어버린 사람 위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흘러나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추상적인 사랑과 충만한 긍휼의 느낌이 있을 뿐 아니라 필요를 채우기 위해 실지로 흘러나온 은혜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