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세 방면 - 두번째 방면: 양심 안에 있는 죄 (1)
하나님의 복음
2011-0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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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양심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양심은 닫혀있기 때문에 빛이 그 안으로 투시될 수 없다. 어떤 사람의 양심은 부엌 유리창처럼 기름이 두껍게 끼어 있다. 그 뒤에서 움직이는 그림자는 볼 수 있지만 누구인지는 볼 수 없다. 당신의 양심 안에 하나님의 빛이 비췰 수 없기 때문에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고 즐거워한다. 그러나 당신이 복음을 듣고서 죄를 보고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위치를 보며 하나님 앞에서의 당신의 죄안을 안 후에는 당신의 양심에 문제가 생기고 괴롭고 불안하며 양심에 참소가 있을 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하여야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통과될 수 있는지를, 의롭다 함을 얻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보게 된다.
기묘한 사실은 양심이 잠을 잘 뿐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양심은 너무 늦게 깨어나 더이상 믿을 기회가 없고 구원받을 기회가 없다. 양심은 아무렇게나 지나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어느 날엔가 양심은 당신을 통과시키지 않을 것이고 당신에게 말할 것이다. 나는 많은 악한 일을 하고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가 어느 날 양심이 깨어나 문제가 된 많은 사람을 보았다.
양심에 문제가 있을 때 사람은 선을 선을 행하려고 한다. 사람이 선을 행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양심을 달래기 위한 것이다. 당신의 양심에 대해 "비록 내가 잘못을 범했지만 선한 일도 많이 행했다."고 말하려고 할 것이다. 선을 행함은 양심의 참소가 있기 때문에 양심을 달래고 양심의 참소를 막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사람이 스스로 생각해 낸 구원의 방법이다.
그러나 이것이 근본적으로 잘못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는 죄가 당신의 '양심' 안에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도 있다는 것을 잊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의 죄가 양심 안에 있다면 한 번 잘못을 범하고 열 번 선을 행하면 갚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문제는 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되었는가에 있다. 우리는 양심 안의 죄를 처리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죄도 해결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있는 죄안을 처리한 후에야 양심 안의 문제를 처리할 수 있다. 당신이 자신을 속여서 양심으로 평강을 갖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먼저 처리할 문제는 양심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양심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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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세 방면 - 첫번째 방면: 하나님 앞에서 죄가 있음.
하나님의 복음
2011-0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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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활 속에서 죄가 발생할 때 첫째로 하나님 앞에서 죄안(범죄 조항)이 있게 된다. 가령 요즘은 차를 몰고 다니다 함부로 길 옆에 주차시킬 수 없다. 만일 오늘 한 형제가 차를 몰고 오다 길 옆에 잘못 주차시키고 이 집회에 왔다 하자. 교통부의 주차단속반 직원이 이것을 보았다면 교통부에 즉시 한 안건이 기록되게 된다. 당신이 이것을 알든 모르든 그 안건은 도로에 있지 않고 교통부에 올라가 있다. 사건은 길 옆에서 발생하였으나 안건은 교통부에 기록되어 있다.
죄의 역사는 사람에게 있다. 그러나 일단 사람이 범죄하면 하나님 앞에 죄안이 있게 된다. 하나님은 세상의 통치자로서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 생명의 역사 안에서 만일 우리가 율법을 어긴다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 죄가 있다. 그러므로 구약 성경에는 거듭 "여호와 앞에 내가 득죄하였다.",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다"는 말씀이 있다. 죄의 사실이 무섭고 두려운 이유는 일단 죄를 저지르면 죄안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죄를 범한 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분은 죄에 대한 형벌을 집행하지 않을 수 없다. 죄안이 이미 발생했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벗어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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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세 방면 (1)
하나님의 복음
2011-0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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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의 세 방면 혹은 세 범주를 보여주신다. 첫째로는 하나님 앞에 있고, 둘째로 죄는 양심 안에 있으며, 세째로 죄는 육체 안에 있다. 전 성경은 죄에 대해 일관성 있게 이 세 노선을 보여준다. 이것은 마치 세 줄기의 물이 합류하여 하나의 강으로 흐르는 것과 같다. 만일 당신이 이 세 노선에 대해 분명치 않고 분별하지 못한다면 죄에 대한 문제가 결코 분명해 질 수 없게 된다. 만일 이 세 노선을 섞어 놓는다면, 당신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이 어떻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어떻고 얼마나 완전한지를 알 수 없다. 만일 그 필요성을 인식한다면 그런 대응이 얼마나 옳은 것인지를 알게 된다. 만일 당신이 그런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그러한 대응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죄를 알아야만 하나님의 구원이 완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시고 우주 행정의 최고 통치자이시기때문에 죄에 대해 일정한 율법과 규정을 갖고 계신다. 하나님은 사람의 행실에 따라 갚으시고 보응하신다. 하나님은 통치자의 위치에서 온 세상 사람들을 다스리신다. 아담의 때에 그런 명칭은 없었으나 실지로 아담의 율법이 있었다. 노아 이후에도 그런 명칭은 없었으나 노아의 율법이 있었다. 모세 이후에야 비로소 율법이라는 명칭이 생겨났고 그때부터 정해진 율법이 사람 앞에 놓여졌다. 모세 이후의 정해진 율법에서든 모세 이전의 정해지지 않은 율법에서든 하나님은 죄를 범한 사람은 반드시 죽도록 규정하셨다. 하나님은 만일 사람이 율법을 어겼다면 형벌을 받아 영원히 죽도록 규정하셨다. 사람이 살아있을 때 육체는 살았지만 그의 영은 이미 죽은 것이다. 결국 사람의 육체도 죽게 된다. 영원 안에서 사람의 영과 혼과 몸은 다 죽게 된다. 만일 사람에게 죄가 없다면 하나님은 형벌을 내리시지 않고 죄가 있다면 형벌을 내리신다. 사람의 범죄에 대해 그분은 조항을 갖고 계시며 율법을 갖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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