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죄들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
하나님의 복음
2011-09-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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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구원받았을 때 '죄'의 악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되고서도 당신은 '죄들'이 악하다는 느낌을 가졌을 뿐이다. 당신이 갓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당신으로 하여금 마음에 괴로움을 느끼게 한 것은 '죄들'이지 '죄'가 아니다. 그 때 당신을 괴롭게 한 것은 '죄들'이지 '죄'가 아니다. 가령 당신이 구원받고 나서 거짓말 하고 화를 내며 질투하며 교만하다 하자. 혹 당신의 부주의로 다른 사람의 물건을 망가뜨려 놓았다 하자. 당신은 이런 한 가지 한 가지 일들이 당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럼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낱낱이 자백하며 그분의 사하심을 구할 것이다. "하나님, 오늘 저에게 또 문제가 있습니다. 죄를 범했으니 저를 용서해 주옵소서." 어제 당신은 좋지 않은 일을 열 두 가지나 행한 후에 마음이 괴로웠는데 오늘은 두 가지 밖에 행하지 않았다면 마음 속으로 즐거워하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은 많은 죄를 범하지 않았고 당신 몸에서 죄들이 줄어들었다고 말할 것이다. 내가 말하거니와 이것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초기 단계의 상태이다. 이 때 당신은 당신의 죄들에 대해 괴로움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되고서 몇 년이 지났을 때, 당신은 당신을 괴롭히고 저지하는 것이 죄들이 아닌 죄라고 느낄 것이다. 나중에 당신은 이러한 행한 일들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사람의 어떠함이 문제임을 발견한다. 당신이 행한 일이 나쁜 것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사람이 나쁜 것이다. 당신은 겉에서 당신의 행한 일만 보는데, 사실은 당신 자신이 악한 것이다. 당신 안에 당신으로 하여금 범죄케 하는 자연적인 원칙이 있다. 겉에서 행한 각종 일들은 교만이라고 칭할 수 있고, 질투, 더러움 등 여러 가지로 칭할 수 있다. 당신은 겉으로 많은 종류의 죄들을 가지고 있지만, 당신 안에는 죄를 좋아하는 어떤 법과 어떤 존재가 있다. 당신 속에는 당신으로 하여금 죄를 향하게 하는 뜻과 밖의 죄들을 향하게 하는 어떤 존재가 있다. 당신 속에서 당신으로 하여금 죄를 향하도록 당신을 지배하고 유혹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뿐이다. 이 죄는 우리의 행위가 아닌 우리의 성품을 가리킨다. 이 죄는 우리의 천성 안에 있다. 우리는 이 죄로부터 해방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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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결과와 죄들의 결과
하나님의 복음
2011-09-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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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죄'의 권세에 굴복당할 때 그는 '죄들'을 범하게 된다. 사람에게 '죄들'이 있을 때 하나님 앞에서 그는 '죄과'를 갖게 된다. 이것은 영어 guilty와 같은 단어로서 '유죄'라는 뜻이다. 우리에게 죄들이 있을 때 즉시 죄과의 문제가 발생하고 유죄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 '유죄'라는 단어는 당신에게 죄가 있느냐 없느냐를 의미하지 않고 법정에서 당신에 대해 '유죄' 또는 '무죄'로 선포하는 문제이다. 이것은 법률상 유죄인가 무죄인가의 문제이다.성경은 우리더러 '죄'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하지 않고 '죄들'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 있음은 하나님 앞에서 '죄과'의 문제를 야기시키지 않고 우리가 '죄들'을 범할 때 만이 하나님 앞에서 '죄과'의 책임을 지게 된다. 그러므로 성경은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더러 "죄의 책임을 지라"고 하지 않는다(요일 1:8). 도리어 성경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들을 자백하면 그가 우리를 사하실 것이며"라고 말한다(요일 1:9). 여기서 우리는 죄들은 마땅히 우리가 담당해야 하는 것임을 볼 수 있다.'죄들'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죄과'가 있다. '죄과'가 있을 때 '형벌'의 문제가 야기된다. '형벌'의 문제가 있을 때 양심의 불안이 있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죄들'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정죄된 사람'이 되게 하며, '하나님의 노하심의 나타남'을 기다리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함'을 얻어야 양심에 평강이 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담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죄들'만 해결되고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여전히 '죄들'이 생기고 '죄과'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죄들'을 사하신 후 또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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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죄 (2)
하나님의 복음
2011-09-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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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더러움을 죄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죄로 여기시는 것을 중요시 하지 않는 데 있다. 주님은 믿지 아니하는 자는 벌써 정죄를 받았다고 말씀하신다. 사람이 많은 죄들을 범하는 이유는 주 예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사람은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잃었기 때문에 허다한 죄를 범했다. 신약에서 사람은 주 예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갖지 않았기 때문에 허다한 죄를 범하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여러분 중 어떤 사람은 마음 속으로, "당신이 나를 죄인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허다한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죄를 범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주님을 믿지 않는 죄를 범한 적이 없다고 말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누가복음 15장에 탕자와 그 아버지가 있음을 기억할 것이다. 탕자는 아버지를 떠나 재산을 다 허비하였다. 그러나 탕자는 언제부터 탕자이었는가? 그가 먼 나라에서 호주머니 속에 돈이 많고 생활이 넉넉할 때에는 탕자가 아니었는가? 그가 재산을 다 허비하고서 돼지를 치고서 배고파 할 때라야 탕자였는가? 내가 말하지만, 아버지를 떠난 그 날부터 그는 이미 탕자였다. 그가 재산을 다 허비하기 전에도 이미 탕자였다. 그가 탕자 된 때는 재산을 다 허비하고서 돼지를 치며 쥐엄열매를 먹고 옷이 낡아지고 배가 고플 때가 아니라 아버지 집을 떠날 때인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묻겠다. 만일 그 작은 아들이 먼 나라에 가서 재산을 허비하지 않고 도리어 돈을 벌었다면, 혹은 장사하여 큰 돈을 벌어서 심지어 그의 소유가 아버지의 소유보다 더욱 많다면 그가 탕자가 아니겠는가? 아니다. 그는 여전히 탕자이다. 아버지 눈에서 볼 때 그는 탕자이다.
오늘 우리는 사람이 선을 행하지 않기 때문에 죄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머리 속에서 제해야 할 가장 잘못된 생각이다.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난 즉시 죄인 되었다. 설령 그의 도덕성이 남보다 열 배나 더 선하다 하더라도, 그가 하나님을 떠났다면 그는 이미 죄인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당신이 그리스도인이 되고서 밖의 일들 곧 기도하고 성경 읽고 집회에 참석하며 모든 행실을 전과 똑 같이 행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문제가 있다면 당신은 범죄한 것이다. 처음 사랑을 잃었다면 모든 것이 문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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