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반드시 처음 사랑이어야 한다


생명의 말씀 2011-08-04 / 추천수 0 / 스크랩수 1 http://blog.chch.kr/Stream/32197.html
요한계시록 2:4『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으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라』교회 생활을 하기 위한 기본 요건은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다. 물론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또 계속 사랑하고 있다. 문제는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에 있다. 설사 우리가 과거에 그분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할지 모르지만 주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쇠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험이 있다. 에베소 교회에 보낸 서신은 이것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이 편지는 또한 교회 생활이 타락한 근원-즉 첫 사랑의 쇠퇴-에 대한 분명한 계시를 제시한다. 우리는 주를 위해 일하고 수고하거나 교리적으로 순수하고 성경적으로 정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님에 대한 첫 사랑을 갖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우리는 지금 그분을 사랑하는 것만큼 장래에도 사랑하지 않을지 모른다. 이것을 조심하라. 주님에 대한 사랑을 잃는 것보다 약간의 일을 잃는 것이 훨씬 낫다. 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반드시 처음 사랑이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주여,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위해서 하는 일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을 위해 소모하는 수고를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주여,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만일 당신을 위한 수고가 당신을 사랑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저는 수고하기를 멈추겠습니다.』 그 어느 것도 당신을 주님에 대한 사랑에서 분리시키지 못하게 하라. 우리는 반드시 처음 사랑을 유의해야 하며 주님을 항상 사랑해야 한다. 다비(J. N. Darby)가 매우 연로했을 때 여행 중 밤을 지내기 위해 호텔에 묵었다고 한다.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 그는 간단하게 기도했다. 『주 예수여, 저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합니다.』그는 젊었을 때부터 주님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60여 년이 훨씬 지난 후에도 그는 여전히 그분을 사랑했다. 우리는 모두 날마다 이렇게 말해야 한다. 『주 예수여, 저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여, 저는 다른 모든 것에 있어서는 변할지 몰라도 당신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결코 변치 않겠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당신에 대한 제 사랑이 내내 증가되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혼이 잘됨같이...


생명의 말씀 2011-07-28 / 추천수 0 / 스크랩수 1 http://blog.chch.kr/Stream/32007.html
요한삼서 2『사랑하는 자여 네 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범사」는 외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을 가리키며,「간구하노라」는 기도의 의미로 사용됐을 것이다.「잘되다」는 갈망했던 목적에 도달하는 데 성공하는 것이며,「강건함」은 육신의 건강을 말한다. 사람은 영과 혼과 몸의 세부분으로 되어 있다(살전 5:23). 혼은 몸과 영 사이를 중재하는 기관으로서 자의식을 가지며 그 목적은 사람으로 개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혼은 몸 안에 포함되며 영을 담는 그릇이다. 영이신 하나님은 믿는이의 거듭난 영 안에 거하시며(롬 8:9, 16) 영으로부터 퍼져서 혼을 적신다. 그 목적은 그의 혼이 변화되어 그분을 표현하는 것이다(롬 12:2, 고후 3:18). 이것이 믿는이들의 혼이 잘되는 것이다. 우리의 혼이 우리 영을 통해 하나님의 영에 의해 점령되고 통제를 받아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우리 몸을 통제하고 사용할 때, 그것이 잘되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건강함에 있어서 잘될 수 있고 우리의 생활은 많은 물질적인 것들에 있어서 잘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혼은 신성한 생명 안에서 잘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혼이 잘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혼이 잘되는 것은 신성한 생명이 혼 안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거듭남을 통해 신성한 생명이 우리 영 안에 분배되었다. 이제 우리 영으로부터 이 생명이 우리 혼 안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 혼 안으로 신성한 생명이 확장된다면 우리 혼은 잘될 것이다. 나는 신성한 생명이 우리 모두의 혼 안으로 확장됨으로 말미암아 우리 혼이 잘되는 것을 충분히 체험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이것을 추구하기 바란다.


그분을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생명의 말씀 2011-07-26 / 추천수 0 / 스크랩수 1 http://blog.chch.kr/Stream/31945.html
요한일서 5:14『또한 그분을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분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여기의 「담대함」은 하나님과의 교통 안에서 우리의 기도에 대해 우리가 갖는 담대함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써 이루어진 신성한 출생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영접했다는 사실을 기초로 하여,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교통 안에서 하나님을 접촉함으로써 거리낌 없는 양심의 담대함(행 24:16)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분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줄을 확신하며 기도할 수 있다. 이 구절은 우리의 갈망이나 기호나 방법에 따라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함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는 사람은 거듭났고 신성한 생명을 가졌으며 신성한 생명의 교통 안에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3장에서 보았듯이 그런 사람에게는 거리낌 없는 양심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가 신성한 생명의 교통 안에 있음으로써 거리낌 없는 양심을 가졌기 때문에 그의 마음이 그를 꾸짖지 않음을 뜻한다. 우리가 신성한 생명의 교통 안에 거하는 한, 우리의 양심은 분명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할 수 있고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신성한 생명의 교통 안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진실로 주님과 하나임을 본다.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 되고 그분 안에 거하고 신성한 생명의 교통 안에 있음으로써 그분의 뜻을 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른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이 신성한 생명의 교통 안에 거하고 있으며 또한 주님 자신 안에 거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런 믿는이는 주님과 하나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담대함을 가지게 한다. 우리가 신성한 생명의 교통 안에 있고 우리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을 때 하나님과 화평이 있으며 또한 우리의 느낌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할 담대함을 가진다. 우리가 그분의 뜻을 따라 기도하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