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생명의 말씀
2011-0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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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2:15『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사람 속에 있지 아니하니』 「세상」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코스모스(kosmos)로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물질적인 우주, 사탄의 악한 세상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사탄에 의해 부패되고 탈취당한 타락한 인류, 장식 혹은 단장, 질서, 정해진 형식, 정돈된 배열, 하나님의 대적인 사탄에 의해 정해진 정돈된 조직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사람을 창조하여 땅에 살도록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은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을 빼앗기 위해 정욕과 쾌락과 추구 안에 있는 사람의 타락된 본성을 통하여, 그리고 심지어 음식, 의복, 주택, 교통 수단 등과 같은 생활 필수품에 빠지게 함으로써 사람의 종교, 문화, 교육, 공업, 상업, 오락 등을 통해 사람들을 조직화하여 이 땅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조직을 형성했다. 사탄의 그런 조직은 온통 악한 자 안에 처해 있다(요일 5:19). 이러한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악한 자를 이기는 근거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사랑하는 것은 악한자에게 우리를 패배시키고 점령하도록 근거를 주는 것이다. 모든 것, 모든 사람, 모든 일은 하나님의 대적인 악한 자에 의해 조직화되었으며 그의 세상 조직의 일부분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 대답은 우리가 삼일 하나님께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삼일 하나님만이 사탄에 의해 조직화되지 않았다. 삼일 하나님께 가야 할 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 앞에 가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것, 모든 사람, 모든 일이 사탄에 의해 조직화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삼일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로 피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피난처이며 우리의 보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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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계신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생명의 말씀
2011-0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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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2:1『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계신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대언자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이다. 그것은 어떤 사람을 돕기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 곧 돕는 자를 가리키며, 법적 도움을 주는 사람, 혹은 다른 사람을 위해 중재하는 사람, 즉 대언자, 변호자, 중재자이다. 이 단어는 위로함, 위로 곧 위로자, 안위자를 의미한다. 보혜사(paraclete)는 그것이 영어화된 형태이다. 이 단어는 요한복음에서 우리의 문제나 일을 돌보시는, 우리 안에 계신 보혜사이신 실제의 영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14:16, 26, 15:26, 16:7). 「파라클레토스」는 마치 우리를 돌보고 우리를 섬기는 간호사처럼 우리 곁에 서 계신다.「파라클레토스」는 또 상담자(counselor)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올바른 진로 선택에 도움을 주는 상담자를 갖고 있다. 우리의「파라클레토스」도 역시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우리를 돕는다. 우리가 특별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우리는 문제 전체를 변호사의 손에 맡긴다. 그럴 때 변호사는 우리의 사정을 돌본다. 요한이 여기서 아버지라는 신성한 칭호를 사용한 것은 우리의 대언자이신 주 예수님이 떠맡으신 우리의 소송건은 가정의 일, 즉 자녀들과 아버지 사이의 문제라는 것을 가리킨다. 거듭남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태어났다. 거듭난 후 우리가 죄를 짓는 경우는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범죄하는 문제이다. 우리의 화해제물이신 우리의 대언자께서는 아버지와의 중단된 교통을 회복시키기 위해 우리의 범죄를 떠맡으시는데, 이는 우리를 신성한 교통의 누림 안에 거하게 하려는 것이다. 어린 아이는 그의 아버지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집에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물론 사실은 그렇지 않다. 비록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긴 하지만 우리가 짓는 죄들은 그분을 거스르는 것들이다. 그렇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짓는다면 그분은 우리에 대해 소송(문제)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영적인 가정에서 때때로 우리에게는 대언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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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교통이 있고
생명의 말씀
2011-0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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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1:7『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교통이 있고』 신성한 빛 안에서 행하는 것은 단지 이 빛 안에 거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하나님 자신이신 신성한 빛 안에서 살고, 행동하고, 일들을 행하고, 처신하는 것이다. 신성한 빛이 비췰 때, 우리는 각종 모든 진리들을 보는데, 이 진리들은 실제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신성한 빛을 갖고 있지 않고 오히려 어두움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만사가 헛되고 공허함을 느낄 것이다. 신성한 교통 안에 있으려면 우리는 빛이신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하며 신성한 빛 안에서 행해야 한다. 신성한 빛은 사탄의 어둠과 대립된다. 실로 여기서의 문제는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빛이냐 어둠이냐이다. 당신이 어둠 안에 있다면 이는 당신이 신성한 교통 밖에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깨어진 교통을 회복하려면 반드시 어둠을 정죄해야 한다. 어둠은 도로 모퉁이에 있는 신호등에 비유될 수 있다. 어둠은 우리가 어느 면에서 잘못되었다는 표시이다. 비록 우리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지만 우리 속에 어둠의 표시가 있기 때문에 주님께 우리의 상태를 고해야 한다. 『주여, 저를 용서하소서. 비록 제가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당신께 용서를 구합니다. 주여, 저는 제 속에 어둠을 느낍니다. 나는 완전히 어둠으로 둘러싸였으므로 그것을 견딜 수 없습니다. 주여, 저는 어둠 속에 있기 때문에, 당신이 저를 용서하시고 당신의 보혈로 씻어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만일 당신이 이런 식으로 주님께 자백한다면 빛이 올 것이다. 그러면 빛이 어떤 점에서 당신이 잘못되었는지를 보여 줄 것이다. 당신이 주님께 그 문제를 자백한다면 빛을 더 많이 받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안에 있게 하는 길이다. 또 이것은 깨어진 교통을 회복하고 복구하는 길이기도 하다. 만일 우리가 이 길을 취한다면 신성한 빛 안에서 합당한 교통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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