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됨


생명의 말씀 2011-07-07 / 추천수 1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31287.html
베드로전서 4:17『왜냐하면 때가 이르러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심판이 먼저 우리에게서 시작된다면,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이들의 마지막은 어떠하겠습니까?』 15절과 16절에서 베드로는 우리가 행악하는 자들이나 남의 일에 간섭하는 자들로서 고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 대신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받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17절에서 그는 계속해서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될 때라고 말한다. 이것은 베드로의 깨달음에 의하면 믿는이들이 당하는 핍박조차도 하나님의 심판임을 암시한다. 믿는이들이 당하는 핍박들이 그들에게 가해지는 하나님의 심판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많지 않다. 나는 최근에 이 서신을 연구하기까지는 6절에 관하여 이러한 깨달음이 없었다. 연구의 결과 나는 6절에 언급된 심판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택한 백성들에게 부여하시는 핍박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우리로 죄를 삼가도록 하기 위해, 혹은 우리로 우리의 정욕에 빠지는 것을 그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종류의 핍박을 부여하실 수 있다. 이러한 핍박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적인 심판이다. 그것은 그분의 경륜적인 징계 안에 있는 그분의 심판이다. 그러므로 핍박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택한 백성들에게 가하는 경륜적인 징계일 수가 있다. 6절의 심판은 명백히 영원한 멸망, 영원한 정죄에 관계된 심판이 아니라 오히려 경륜적인 징계에 관계된 심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적인 다루심이 서로 다른 종류의 심판을 통하여 행사됨을 보았다. 그분은 반역적인 천사들과 소돔과 고모라 성, 그리고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심판하셨다. 하나님은 또한 신약의 성도들을 심판하신다. 핍박은 믿는이들이 어떤 것들에 있어서 잘못함으로써 그들에게 올 수 있다. 하나님은 핍박을 경륜적인 징계로 사용하실 수 있다. 이러한 경륜적인 징계는 우리를 완전케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가해지는 하나님의 통치적인 심판이다. 이러한 심판의 목적은 우리로 영 안에서 하나님을 좇아 살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생각으로 무장됨


생명의 말씀 2011-07-06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31244.html
베드로전서 4:1『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신 안에서 고난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생각으로 너희 스스로를 무장하라 이는 육신 안에서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한, 우리에 관한 모든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념에 의하면, 우리는 축복을 받을 것이며 좋은 직장과 멋진 집을 얻고 뛰어난 가정 생활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관념에 사로잡힌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모든 자녀들이 잘 교육받은 부유한 전문가들이 될 것을 기대할런지 모른다. 성공하고 부유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주께 받은 축복은 어떤 축복인가! 내가 이 모든 것을 소유하고 얻은 것은 내가 주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축복하셨는지 보라.』고 말할지 모른다. 베드로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빼앗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 행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문제를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직장으로 인해, 우리의 재정으로 인해, 그리고 우리의 가정 생활로 인해 괴로워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의 생각으로 무장하라는 베드로의 명령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질 때 우리는 우리가 반역적인 시대에, 왜곡되고 사악한 세대에 살고 있음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시대가 반역적이고 세대가 악하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그리고 그분의 뜻을 행하면 행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고난을 당할 것이다. 우리가 이 시대의 유행과 함께하지 않음으로 인해 우리는 고난을 당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관심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이 시대의 유행이나 조류에 절대적으로 반대된다. 우리는 주 예수를 사랑하려 하지만 이것은 이 타락된 세상 유행을 전적으로 거스른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우리는 고난당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진다면 이러한 것이 바로 우리의 사고 방식일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의식 때문에, 부당한 고난을 당하여도 슬픔을 참는다면, 그것은 은혜입니다.


생명의 말씀 2011-07-05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31211.html
베드로전서 2:19,20『하나님을 향한 양심으로 인해, 애매하게 슬픔과 고난을 참으면, 이는 은혜이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은혜니라』 여기의 요점은, 만일 우리가 신성한 생명이 없는 자들이라면 아무리 서로 사랑하더라도 결혼 생활에서 문제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최소한 다섯 가지의 문제를 가질 것이다. 그것은 혈기, 기질, 습관, 배경, 그리고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남편과 아내가 아무리 닮았다 해도 그들은 혈기, 기질, 습관, 배경, 이해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남편에게는 사물에 대한 자신의 관점이 있고 아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와 같이 아내에게는 자신의 습관과 기질이 있고 남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문제를 일으키는 다섯 가지의 요인인 혈기, 기질, 습관, 배경, 이해하는 방식 등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 남편과 아내가 깊이 사랑하고 세련되고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런 상황이 있을 것이다. 최소한 그들은 참을 수 없는 상황을 접할 것이며 가끔 서로 언쟁을 할 것이다. 그럴 때 만일 시어머니가 방문한다면 그녀는 전적으로 불쾌하며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을 접할 것이다. 그녀는 심지어 그런 고상하지 않은 상황을 보기도 싫어할 것이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에게 신성한 생명이 있고 이 생명에 의해 산다고 가정해 보자. 혈기, 기질, 습관, 배경, 이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은혜는 내적으로 남편과 아내를 움직인다. 더욱이 이 은혜는 그들의 생활에서 표현된다. 만일 시어머니나 장모가 남편과 아내의 생활 방식을 본다면, 그녀는 그것이 고상하고, 기쁘고, 받을 만한 것임을 발견할 것이다. 이것이 은혜이다. 믿는이들이 고난을 당하고 핍박을 받는 상황에서 이렇게 생활하는 것을 보는 모든 사람은 이것이 은혜임을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만일 장모가 그녀의 딸과 사위가 그런 생활을 하는 것을 본다면, 그녀는 『주 예수여, 당신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