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선하심을 맛봄
생명의 말씀
2011-0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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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2:3『너희가 주의 선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어느 중년 부인이 2년 전에 구원받았다. 그녀는 구속되었고 거듭났다. 우리 집회를 몇 번 참석한 후 그녀는 일어나서 간증을 했다. 그녀는 남편이 직장을 잃었고 집세를 지불하기가 불가능했었다고 말했다. 더욱이 아들은 병이 들었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이 상태에 대해 주님께 기도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주님이 남편에게 더 좋은 직장을 주셨고 더 좋은 거처를 공급하셨으며 심지어 아들이 치료되었음을 인해 주님을 찬양했다. 그녀는, 『할렐루야, 주 예수님은 살아 계시고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라고 선포했다. 나는 이것이 주님의 선하심을 맛본 사람의 간증이 아니라고 강하게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무엇이 주님을 맛본 참된 간증인가? 가령 그 자매가 이렇게 간증한다 하자. 『내 남편이 직장을 잃었고 우리는 거처를 잃었으며 아들은 병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수록 문제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형제 자매님들, 우리의 환경이 어려울수록 안에는 기쁨이 넘칩니다. 오, 나는 얼마나 주님을 누리는지! 나는 바울이 주님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구했을 때 그가 체험한 것을 약간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때 주님은 그분의 은혜가 바울에게 족하다고 말씀하심으로써 거절하셨습니다. 주님은 바울이 그분의 은혜를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주님은 은혜를 누려야만 하는 특별한 환경 안에 바울을 넣으셨습니다. 그분은 가시를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한면으로 바울은 가시 때문에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면으로 그는 주님의 부축하는 은혜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경우에, 몇 달이 지났어도 여전히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외적으로 어떤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분을 내 은혜로 누리고 있음을 간증할 수 있습니다. 나의 어머니가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말하기를 「이게 뭐냐? 너의 예수님이 어디 있느냐? 그분은 생생하고 살아 계시냐? 왜 그분은 너를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느냐? 차라리 부처님에게 가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뭐라고 말씀하시든지 나는 계속해서 주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을 맛본 간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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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허리를 동임
생명의 말씀
2011-07-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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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2:13『그러므로 너희 생각의 허리를 동이고 청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에 너희 소망을 온전히 둘지어다』
우리 생각의 허리를 동이는 것은 우리의 생각 안에서 느슨하지 않음을 뜻한다. 그러나 우리들 중 대부분은 우리의 생각 안에서 매우 느슨하다. 우리의 생각은 이것에서 저것으로 뛰어다닌다. 몇 초 안에 우리는 생각 안에서 온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 우리는 한 가지를 생각하다가 갑자기 다른 것을 생각할지 모른다. 예를 들면, 주님의 만찬에서 주님을 찬양하는 중에 갑자기 가게에서 방금 샀던 어떤 것을 생각할지 모른다. 우리의 생각은 그처럼 빠르게 여행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생각의 허리를 동일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베드로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형제들아, 나는 방금 놀랍고 신성한 많은 항목들을 보여 주었다. 여러분은 삼일 하나님께 관한 나의 찬미를 읽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곧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산 소망에 이르도록 거듭나게 하셨다. 나는 그분의 미리 아심에 따른 하나님의 선택과 그리스도의 구속과 영의 적용에 관해 말했다. 이제 나는 너희 생각의 허리를 동이라고 권한다. 너희 생각을 느슨하게 하지말라.』
이 시대는 미리 맛봄의 시대이다. 그러나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는 완전한 맛봄을 누릴 것이다. 미리 맛봄을 누리고 있는 동안 우리는 장래의 완전한 맛봄에 우리 소망을 두어야 한다. 미리 맛봄의 본성, 본질, 실제는 완전한 맛봄의 본성, 본질, 실제와 같다. 차이점은 분량이다. 오늘날 우리는 견본, 미리 맛봄인 작은 분깃을 누리고 있다. 결국 우리는 완전한 분깃을 누릴 것이며 완전한 맛봄을 체험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 면으로 우리는 지금 은혜를 누리고 있으며, 다른 면으로 우리는 장래의 완전한 맛봄을 기대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미리 맛봄을 누리고 있는 한편 또한 완전한 맛봄을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장래의 완전한 맛봄에 우리의 소망을 두게 한다. 장래의 완전한 맛봄은 이 유일한 은혜의 완성이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다만 미리 맛봄, 즉 작은 분깃을 누릴 뿐이지만 완전한 맛봄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은혜의 완성이 될 장래의 이 완전한 맛봄에 우리의 소망을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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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오래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생명의 말씀
2011-0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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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5:7『그러므로 형제들아 주님이 오시기까지 오래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오래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우리가 주님의 오심을 오래 참음으로 기다리는 동안 참 농부이신 그분도 첫 열매이며 그분의 들판의 수확물인 우리가 생명 안에서 성숙되기까지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고 계신다. 생명 안에서의 우리의 성숙은 우리의 오래 참음과 인내의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우리가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는 것과 같이 참 농부이신 그분은 우리의 성숙을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는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다. 그러나 그분은 『내 자녀들아, 빨리 성숙하라. 너희가 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나는 너희의 성숙을 기다리고 있다. 너희는 거의 이천 년이나 지났는데도 내가 아직 오지 않는 이유를 아느냐? 그 이유는 내 백성들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너희의 성숙만이 나의 임함을 재촉할 수 있다. 너희는 너희의 오래 참음을 사용하고 나는 나의 오래 참음을 사용하겠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만일 우리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데 진지하다면, 생명 안에서 자랄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 것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오심을 완전히 객관적으로, 우리의 영적인 상태나 영적인 성장과 아무 상관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주님이 오시는 것이며 그분의 오심이 그들의 성숙과 아무 상관없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다시 오심에 관하여 붙잡고 있는 관념이 사실상 주님의 오심을 지연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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