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함
생명의 말씀
2011-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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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4:5『우리 속에 거하시는 그 영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너희가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배우자로 얻으셨을 때 우리를 그분과 하나되게 하기 위해서(고전 6:19, 16-17) 그분은 그분의 영을 우리 안에 넣으셨다.
그분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며(출 20:5), 그분의 영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대적자와 벗되지 않고 그분을 사랑하는 자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우리에 대해서 사모하며 질투하기까지 갈망한다.
4 장 5절에서 「거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또한 「가정을 만들다」로도 번역될 수 있다. 내주하는 영은 우리의 전존재를 하나님을 위해 점유할 수 있도록, 우리가 전적으로 우리의 남편을 위할 수 있도록 우리 안에 그분의 가정을 만드신다.
번역자들은 「우리 속에 거하시는 그 영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의 헬라어를 달리 번역한다. 나는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를 가장 정확한 번역이라고 믿는다. 이 사모함은 사랑에서 나온다. 예를 들면,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은 아내를 향한 사모함으로 가득 차 있으며 만일 그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시기할 것이다. 그는 아내가 자신 외의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를 원치 않는다.
4 절과 5절에서 야고보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결혼을 사용한다. 하나님은 남편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배필이다. 하나님의 배필로서 우리는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그분 대신 어떤 것이나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간음하는 여자들이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넣어 주신 내주하는 영은 우리가 그분 자신을 위해 홀로 있도록 보존하기를 사모한다. 우리가 그분을 위해 홀로 있지 않고 세상을 사랑할 때마다 이 내주하는 영은 근심할 뿐 아니라 시기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 속에 거하시는 그 영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고 한 야고보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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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없는 심판
생명의 말씀
2011-0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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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2:13『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가난한 형제를 멸시하는 것은 긍휼이 없는 것이다. 가난한 형제를 이렇게 멸시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날 때 긍휼을 받지 못할 것이다.
야고보는 여기에서 형제를 멸시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형제를 멸시하면 이것은 우리에게 그 형제에 대한 긍휼이 없음을 뜻한다. 후에 우리가 심판받기 위해 주님 앞에 올 때 그분은 우리에게 긍휼을 보이지 않으실 것인데, 이는 우리가 형제에게 긍휼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을 보일 필요가 있다. 이는 야고보가 말한 대로 긍휼이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기 때문이다. 만일 오늘날 우리가 형제에게 긍휼을 베푼다면 우리는 주님의 심판대에서 그분으로부터 긍휼을 받을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사랑의 행함이 없다면 이것은 그가 형제 자매를 사랑하지 않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때 긍휼 없이 심판받을 것이다. 긍휼 없는 심판에서 구원받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긍휼과 사랑의 행함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14절에 있는 구원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의 긍휼 없는 심판으로부터의 구원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동료 신자들에게 긍휼을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의 심판대에서 그분으로부터 긍휼을 받지 못할 것이다.
어느 날 우리는 그리스도에 의해 심판받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성도들의 쓸것을 보살피고 그들에게 긍휼을 베푼다면 우리는 우리에 대한 주님의 심판을 위해 우리 자신을 보살피고 있는 것이다. 성도들을 향한 우리의 긍휼과 자비의 행함으로 인해 우리는 주님의 심판대의 긍휼 없는 심판에서 구원받을 것이다. 교회 생활 안에서 가난한 성도들의 쓸것을 보살피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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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을 구원할 수 있는 심긴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생명의 말씀
2011-06-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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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21『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능히 너희 혼을 구원할 수 있는 심긴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존재 안으로 심겨져서 우리의 혼의 구원을 위한 과실을 맺기 위해서 우리 안에서 자라고 있는 생명의 식물로 비유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 저항없이 온유함과 순종함으로 받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혼을 구원할 수 있는 심긴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 야고보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 바울은 그의 저서에서 「심긴 말씀」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이 표현은 말씀이 생명에 속함을 나타낸다. 야고보는 여기에서 말씀을 우리 마음의 토양 안에 심겨진 산 식물에 비유한다. 이렇게 하여 말씀은 심긴 말씀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의 토양 안에 심겨진 후에 말씀은 자라서 우리 혼을 구원하기 위한 능력을 소유한다. 21 절은 심겨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말한다. 이 구절에서 온유함은 공손함을 뜻하지 않는다. 여기의 온유함은 저항없는 순종함을 뜻한다.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는 것은 거절하지 않고 말씀에 대해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존재 안에 심겨진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한 순종함으로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든지 「아멘」함으로 받아야 한다. 찬송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심긴 말씀을 온유함과 순종함으로 받는다면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열려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농부에게서 씨를 받고 하늘로부터 비를 받기 위해서 열려 있는 땅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우리 마음 안으로 심고 뿌리셨으며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야 한다. 이것이 심긴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는 것이다. 이 말씀은 살아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이 우리 마음 안에 심겨진 후에는 자란다. 더 나아가서 말씀이 자랄 때 우리의 혼을 구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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