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많은 시련들과 많은 시험들을 안배하심
생명의 말씀
2011-06-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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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2『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련에 빠질 때마다 모든 기쁨으로 여기라』 온 세상은 악한 자 사탄 안에 처해 있다(요일 5:19). 사탄은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계속해서 하나님을 반대한다. 사람이 하나님께 돌이킬 때마다 사탄은 싫어하며 이것을 참지 못한다. 일단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돌이키면 사탄은 그 사람을 핍박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부추길 것이다.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받기로 작정되었다고 말했다(빌 1:29). 그러므로 핍박은 그리스도 안의 믿는이들인 우리에게 주신 몫이다. 핍박은 고통이다. 그러나 시련(trials)은 다만 고통만이 아니라 우리를 시험하거나 인정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학교의 학기말 고사를 예로 들 수 있다. 학생들은 학기말 고사가 심한 고통과 시련임을 안다. 그러나 그런 시련은 사실상 학생들을 돕는다. 만일 학교에 학기말 고사가 없다면 학생들은 아마 공부에 주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기말시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 때 매우 부지런히 공부에 몰두한다. 그러므로 기말시험은 필요한 과목들을 배우도록 학생들을 돕는다. 따라서 학생들의 부모는 이로 인해 자녀들이 교육에서 유익을 얻음을 알고 기말시험에 감사해야 한다. 「영적 교육을 하는 학교」에도 「기말」 시험들과 다른 종류의 「시험들」이 있다. 이 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하늘에 속한 우리 아버지이시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많은 시련들과 많은 시험들을 안배하신다. 이 모든 시련들은 우리에게 유익하다. 시험이 학생들에게 유익하듯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하는 많은 시련들도 우리에게 유익하다. 주 예수님을 믿은 후에 당신은 아마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고통이나 시련이 없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신은 스스로 이렇게 말했을지 모른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 예수님을 사랑한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확실히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고 내게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것이 수많은 믿는이들의 관념이다. 그러나 결국 시련이 온다. 어떤 시련은 가족과 친구의 반대에서 온다. 이런 시련은 핍박 이상의 것이다. 핍박은 핍박하는 자의 목적을 이루지만 시련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분에 의해 사용된다. 어떤 사람이 당신을 핍박할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시험하고 인정받게 하기 위해서 그 핍박을 시련으로 사용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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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밖으로」 그분께 나아가 거룩케 하는 십자가의 길에서 그분을 따르기 위해 그분의 능욕을 짊어짐
생명의 말씀
2011-0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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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3:13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능욕을 지고 진영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만일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우리는 그분의 능욕을 지고 진영 밖으로 나가는 방법으로 거룩케 하는 십자가의 길 안에서 그분을 따름으로 그리스도를 체험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특별한 방면에서 그리스도를 체험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방면 안에서 그리스도를 체험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휘장 안에」, 즉 지성소 안에 들어가서 그분의 하늘에 속한 거룩한 제사장 직분 안에서 우리의 하늘에 속한 거룩케 하시는 분이신 그리스도를 누려야 한다.
은혜는 경주 위에 곧 길 위에 있다. 우리는 이 경주의 어떤 길에서도 빗나가서는 안 되며 은혜의 경주를 계속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것들이 이 경주의 길, 즉 은혜를 누리는 데서 우리를 미혹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성막 안에 있는 기구들의 배열이 계시하는 것처럼 이 경주의 모든 길은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의 한 방면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누리는 이 경주를 달리기를 계속해야 한다. 결코 칭호나 지위나 종교적인 현혹물이나 단지 종교적인 「음식」에 불과한 모든 것들에 의하여 미혹되지 말라. 우리는 교회 생활을 위해 우리의 은혜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그와 같은 방법으로 그분을 체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교회 생활을 할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방면에서 그리스도를 체험하려 한다면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취해야 하며, 종교로부터 오는 핍박과 배척과 반대를 당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영문 밖에서 고통을 받으셨으며 우리도 그를 따라서 그의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가야 한다. 만일 우리가 오늘날 그분의 고통에 동참한다면 장래 우리는 그분의 영화롭게 됨에 동참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이러한 방법으로, 즉 십자가의 오솔길 위에서 그분의 능욕을 지는 방법으로 체험한다면 우리는 부요한 교회 생활 안에 지켜질 것이며, 교회의 모든 집회는 높이 올리워지고 부요하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은 교회 생활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장자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장차 오는 왕국에서 우리로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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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하는 불이신, 거룩하신 하나님!
생명의 말씀
2011-06-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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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2:29 "우리 하나님은 또한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거룩은 그분의 본성이다. 그분의 거룩한 본성과 부합되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지 소멸하는 불이신 그분에 의해 소멸될 것이다. 하나님은 의로우실 뿐 아니라 또한 거룩하시다. 하나님의 의를 만족케 하기 위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의롭게 될 필요가 있다. 그의 거룩함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 우리는 하늘에 속한 현재의 살아 계신 그리스도에 의해 성별되어야 하며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히브리서의 초점은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으로 이끄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것에 있어서 하나님과 동역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분의 행정을 범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행정을 범하는 것은 하나의 다스림의 문제이다. 하나님은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행정적인 경륜에 그분과 동역하지 않고 도리어 그분의 행정을 범한다면 우리를 징계하시리라는 것을 계시하셨다. 이것은 우리가 적극적인 면에서 왕국의 보상을 잃어버리게 되고 소극적인 면에서 징계를 당하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늘에 속한 계시의 빛 비춤 아래 우리는 곧바른 길 위에서 경주를 달리는 데 심각하고 진지해야 한다. 오늘 우리가 달리는 길은 우리의 장래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장래의 운명에 대하여 염려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주님께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 은혜를 얻어야 한다. 「주여, 당신의 은혜로 나는 나의 운명을 염려하지 않으며 나는 오직 당신의 경륜을 관심합니다. 당신은 나의 운명을 관심해 주십시오. 나는 당신의 경륜을 관심할 것입니다. 주여, 나는 나의 장래 때문이 아니라 오늘날 당신의 경륜을 인하여 당신과 동역하기 원합니다. 나는 수 세기를 통하여 수행되지 않았던 당신의 경륜이 오늘날 성취되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주여, 당신의 긍휼과 은혜로 나는 여기에서 당신과 동역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전진을 위하여 준비되어 있습니다. 주여, 당신이 하실 수 있는 것과 당신이 좋아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십시오. 나는 내 장래의 운명을 주의하지 않습니다. 나는 오직 오늘날 당신의 회복의 경륜과 합당한 교회 생활의 회복을 주의합니다. 주여, 당신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이 길 안으로 당신을 추구하는 모든 이들을 인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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