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목양에 대한 주님으로부터의 부담


생명의 말씀 2011-04-2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Stream/27665.html

 사실 이번에 처가에서는 두 번의  상을 치르게 되었답니다...

 

처남이 주님 품으로 떠난 날 장례식장에서 처가 외삼촌에게 가족들이 주님을 믿고 신앙을 가질 것을 권했는데, "죽어봐야 알지"하셨던 외삼촌이 며칠 후 일하시던 중 사고로 돌아가셨답니다. 그 날이 외삼촌에게 복음을 전 할 우리의 마지막 기회였던걸 나중에서야 알게되었지요...

 

처남 장지에서 돌아와 며칠을 조카의 죽음에 대해 애도하셨다는 분이, 자녀 중 출가한 딸은 기독교에서 신실하게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셨던 분이 급작스레 세상을 떠나실 줄 아무도 몰랐습니다...워낙 술을 좋아하셔서 저도 그리 친근하게 대해드리지 못했고 뵐 기회도 처가 행사에서 연중 잠간 뵈었을 뿐이어서 복음에 부담을 갖지 못했었답니다.

 

이 일로 처가는 슬픔 중에 슬픔을 당하여 누구도 위로할 수 없는 환경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처남이 우리 곁을 떠난 후 어린 아이와 함께 홀로 남은 처남댁에게도, 슬픔 중에 매일 눈물로 보내시는 장인 장모님께도, 그리고 쌍둥이 형제인 남아있는 처남과 그 가족에게도 복음의 부담을 갖게 되었습니다.

 

주님 품에 먼저 간 쌍둥이 형인 처남은 고등학생 때 아내의 인도로 함께 교회생활 하였고 대학 때도 주관적으로 주님을 누리고 체험하는 생활을 했었는데... 군대 갔다 와서 교회생활이 중단되더니 결혼도 이방인과 하고... 오랜동안 주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다가 회복되지 못한 채 주님께 갔습니다.

 

처가는 장모님이 천주교를 강하게 주장하셔서 처남들이 교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우리의 의도대로 이끌수가 없게 되어 저도 워낙 반대하는 처가에 대해 부담을 내려놓고 있었답니다... 처남이 떠나고 조문오셨던 한 형제님에게서 처남이 잠간이라도 주님을 얼마나 누렸고 사모했었고 추구했었는지 들었을 때 우리의 목양이 부족했었던걸 정말 돌이켰습니다...

 

갈대처럼 연약하여 상하기 쉽고 안개처럼 어느순간 덧없이 사라질 인생들에게 복음과 목양의 절실한 필요를 채우기 위한 기회는 신속히 지나간다는 사실을 확인했고...깨어서 예비되어 항상 기회를 붙잡아야 겠다고 돌이켰습니다.

 

우리 또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항상 주어진 매일 매순간에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얻고 추구하며 복음과 목양을 위해 수고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멘!

이 모든 환경을 통해 선하신 그분의 뜻을 이뤄가실 주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영안에서 불타서 주님을 섬기십시오"


생명의 말씀 2011-02-28 / 추천수 2 / 스크랩수 2 http://blog.chch.kr/Stream/26514.html

로마서 12:11『열심을 내어 게으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로마서 12:11『열심을 내어 게으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영안에서 불타서 주님을 섬기십시오.』

몸의 생활을 위해서는 몸을 드리는 것과 혼의 변화로 말미암아 생각이 새롭게 되는 것과 영이 불타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의 전체-영과 혼과 몸-는 교회 생활 안에 포함되어 있다. 교회 생활을 위하여 우리의 몸은 드려져야 하고, 우리의 혼은 변화되어야 하고, 우리의 생각은 신진대사로 말미암아 변화되어야 한다. 우리의 생각은 가르침을 받음으로가 아니라 변화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요소가 그 안으로 퍼져들어와 신진대사의 변화로 새로워져야 한다. 우리 혼의 변화는 맨 먼저 생각이 새롭게 되는 데 달려 있다.

 

우리가 교회 생활을 실행하는 데 신실하다면 우리의 몸을 드리고, 우리의 혼이 변화되고, 영 안에서 불타야 한다. 우리가 교회 생활에 대하여 마음은 있지만 우리 몸을 교회에 드리는 데 있어서 실패한다면 실제적으로 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몸으로는 교회 생활을 하고 있으나 우리의 생각은 낡은 관념과 사고와 전통으로 가득 차 있고, 타고난 영리함과 상상과 관념으로 점령되었다면, 몸으로는 교회에 오지만 매우 골칫덩어리인 생각을 가지고 오는 것이다. 새롭게 되지 않은 그러한 생각은 교회에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우리의 몸은 드려져야하고 우리의 생각은 새롭게 되어야 한다.

 

주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몸이 드려지고 우리의 생각이 새롭게 되었으나 우리의 영이 차갑다 하자. 그것은 결코 교회 생활을 위하여 역사할 수 없다. 몸이 드려지고 생각이 새롭게 된 후에 우리는 영이 불타야 한다. 우리는 회복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기를 갈망한다. 즉 몸은 교회 생활을 위하여 절대적으로 드려지고, 생각은 혼 안에서의 신진대사의 변화로 말미암아 완전히 새로워져서 세상적이고 자연적이고 종교적인 사고에서 자유롭게 되어 온전히 주님의 생각으로 적셔지고 순수하게 주님을 위하게 되며, 영은 불타고 있는 것이다. 주의 회복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이와 같으면 교회 생활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로마서 L-S M. 27>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림


생명의 말씀 2011-02-28 / 추천수 0 / 스크랩수 1 http://blog.chch.kr/Stream/26510.html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들로 너희에게 간구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가장 합당한 봉사니라』

우리가 올바른 생각을 하고, 합당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교회 생활을 해야 한다. 교회 생활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교회 생활 외에 다른 것을 실행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교회 생활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합당한 것이다. 2 달러를 세상적인 일이나 오락에 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교회 생활에 2백만 달러를 사용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만일 나에게 100 개의 생명이 있다면 나는 그것들을 모두 교회 생활을 위해 바치고 싶다. 그러나 나는 내 생명의 가장 작은 한 조각도 세상적인 것들에는 바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보 같은 짓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교회 생활에 드리는 것이 얼마나 합당한 봉사인가! 나는 40년 이상 주님의 일을 해 왔지만 조금도 후회함이 없음을 간증할 수 있다. 나는 교회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뛴다. 교회 생활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교회 생활을 위한 나의 사역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하늘에 있는 느낌을 갖는다. 이것이 얼마나 합당한 봉사인가!

바울은 교회 생활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을 때 믿는이들에게 그들의 몸을 드리라고 간구했다. 그 이유는 사람에게서 몸보다 더 실지적이고 실제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의 몸이 교회 생활 안에 있지 않다면 당신 자신이 얼마나 교회 생활을 위하는지를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형제님, 나는 당신과 하나입니다. 나는 사업이 너무 바쁘기 때문에 교회 생활을 할 수 없지만 당신이 하고 있는 것과 하나입니다.』『나는 너무 피곤해서 집회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집회에 가십시오. 그러면 나는 집에서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육신은 집회에 갈 수 없지만 내 마음과 영은 당신과 함께 집회에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말들은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하나의 속임수이다. 우리는 우리 몸 안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몸이 있는 곳에 우리가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의 몸들을 드리라고 간구했다. 만일 당신이 진정으로 주님의 목적을 위한다면 당신의 몸을 드려야 한다.

<로마서 L-S M.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