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으로서 장래 심판대 앞에서 공의로 우리를 심판하실 것임을 압니다. 물론 심판대 앞에서는 공의를 말하지만, 여전히 긍휼이 있게 됩니다. 오늘 당신이 사람들을 긍휼로 대한다면, 주님도 당신을 긍휼히 여기실 것입니다. 오늘 만일 당신이 사람을 가혹하게 대하고, 남의 실패와 약함에 대해 엄격하며 공의를 말한다면, 그날 주님도 당신을 공의로 대하실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남을 긍휼히 여긴다면, 그분도 당신을 긍휼히 여기실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3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오늘 어떤 그리스도인은 말을 너무 박정하게 합니다. 남을 비판할 때그는 그 사람의 잘못을 하나 하나 자세히 따집니다. 남을 판단하고 비평할 때 그는 장래 하나님도 그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으로 그를 대하실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당신도 헤아림을 받게 됩니다. 만일 당신이 사람들에게 누르고 흔들어 후히 준다면, 주님도 당신에게 누르고 흔들어 후히 주실 것입니다(눅 6:38). 남을 용서하는 자는 사함을 받게 되고, 나을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기심을 받게 됩니다.
성경은 많은 하나님의 자녀가 특정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을 말합니다. 많으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사는 동안 행위가 합당치 않고 생활이 경건치 않으며, 세상을 사랑하고 자기 뜻대로 행동하며, 자의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 하는 일을 하며, 사람을 기쁘게 하고 사람의 영광을 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며, 주 예수님의 수치 받으신 위치에 서 있기를 꺼려하고, 많은 실수와 죄를 범합니다.
만일 그들이 이생에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았다면, 죽은 다음 그날 부활할 때 그들이 단지 주 예수님과 더불어 함께 왕 노릇 하지 못하게 될 뿐이라고만 생각합니까? 주 예수님은 우리가 먼저 그분과 함께 죽고 함께 수치를 당한 다음에야 함께 왕 노릇 하고 함께 영광을 얻게 된다고 하셨습니다(딤후 2:12).
많은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당해본 적이 없을 뿐아니라 더욱이 그들에게는 많은 범죄와 세상을 사랑함과 육체를 좇아 행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에상을 떠날 때 그들에게는 많은 불의와 처리되지 않은 많은 죄들이 남아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러한 사람이 특별하고도 실지적인 질책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의 많은 부분은 왕국 대신 '영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그 때에 사라아있는 사람들은 곧 왕국에들어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예룰 들어 마태복음 7장 14절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협착한 길을 가라고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만일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협착한 길을 걸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면, 그 구원은 은혜에 속하지 않고 사랆의 행위 즉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협착한 길을 걷는 그의 공적에 달려 있게 됩니다.
마태복음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영생은 오늘날 우리가 얻은 영생을 가리키지 않고 천년왕국에서의 생명을 가리킵니다. 사람이 왕국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 하려면 반드시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협착한 길을 가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명령과 그분의 뜻을 지키지 않는다면, 당신의 영생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멸망한다는 뜻이 아니라 왕국 안에서 영생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당신은 성경 안의 시대의 문제에 대해 분명해 질 것입니다. 교회 시대에서는 모든 것이 다 은혜에 의한 것입니다. 교회 시대의 끝 무렵, 하나님은 그 아들로 말미암아 그분의 왕국을 세우실 것이니다. 왕국 안에서 오직 주님을 신실하게 섬긴 사람들만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게 됩니다. 성경은 이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