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5장 10절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성경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공중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심판대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다 휴거된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휴거됩니까? 성경에서 볼 때 오직 그리스도인만이 휴거되고 그리스도인이 아닌 자는 휴거되지 않습니다. 구원받지 않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들은 그러한 심판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이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의 심판입니다.
이 구절은 장래 그리스도인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하게 될 것인가를 말해 줍니다. 그분은 각 사람의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그들에게 보응하실 것입니다. 각 사람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선악 간에 보응을 받게 됩니다. 만일 당신이 몸으로 선을 행하면 선한 보응을 받게 되고 몸으로 악을 행하면 악한 보응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행함이 합당한 사람은 심판대 앞에서 상급을 얻게 되고 합당치 않은 사람은 상급을 잃게 되며 또한 악한 보응을 받게 됨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줍니다.
장래 심판이 있기 때문에 성경에는 사람들이 장래 긍휼하심을 얻을 수 있도록 사도가 기도한 것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18절: "원컨대 주께서 저로 하여금 그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또 저가 에베소에서 얼마큼 나를 섬긴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여기서 바울은 오네시보로 라는 사람이 그날에 긍휼을 얻기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심판대 앞에 설 때 기껏해야 상급을 얻지 못할 뿐이고 형벌과 징계는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듯 합니다. "나는 오네시보로가 주님의 심판을 받을 때 긍휼하심을 얻기 원한다. 저가 얼마큼 나를 섬겼고 나와 함께 복음에 참여하였는지.... 그날 심판대 앞에서 그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면 주께서 저를 긍휼히 여기시기 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현재 사함을 받는 것이 다 필요할 뿐 아니라 천년왕국의 시작 곧 심판의 때에도 하나님의 질책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긍휼을 얻는 것이 필요함을 보아야 합니다.
4장에서 또 한 구절을 봅시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6절에서 바울은 그가 아시아에 있을 때에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버렸다고 말합니다. 그가 왕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여 그를 피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이 이렇게 자기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장래 하나님이 우리의 허물을 심판하실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성경의 충분한 빛은 우리에게, 구원받은 후에 이생에서 징계를 받아도 돌아서지 않거나 이생에서 제멋대로 행해도 징계를 받지 않은 사람은 장래 심판대에서 상급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확실히 질책을 받게 됨을 보여 줍니다.
나는 여기서 은혜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 이것은 누구도 전복시킬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후 우리의 행위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치 않다면, 장래 우리는 질책을 받게 됩니다. 나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성경에서 말한 것을 전파할 뿐 성경이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왜 장래에 질책을 받게 되느냐고 묻습니다. 이에 대하여 나는 모릅니다. 주님께 가서 물어보십시오. 나는 다만 성경이 말한 것을 말할 뿐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또한 골로새서 3장 23절-25절을 보기로 합시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 이 부분의 문맥은 여기서 언급된 사람이 불신자가 아닌 그리스도인임을 분명히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이 구절들 앞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아내 또는 남편이 되고, 부모와 자녀가 되며, 주인과 종이 되는가에 대해 말합니다. 이러한 것을 말한 후 바울은 행위가 의롭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불의에 대한 보응을 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십니다. 이 부분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보응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있을 것임을 분명히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만일 오늘 우리가 불의를 행한다면, 그날 우리는 불의의 보응을 받게 됩니다. 만일 오늘 우리가 의를 행한다면 또한 의의 보응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장래 그리스도인이 어떤 처벌과 질책도 받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일 구원받은 사람이 불행하게도 악한 종이 되었다면, 그의 종말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46절: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않은 자의 받을 율에 처하리니". 이 질책은 이생의 것입니까, 내생의 것입니까? 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은 언제를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주인이 올 때를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장래의 일입니다. 주 예수님은 종 된 자가 충성스러울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충성스럽지 못한 종에 대해서는 주인이 오셔서 그에게 상을 주지 않으실 뿐 아니라 그의 죄를 심판하시고 또한 엄한 질책을 하시게 됩니다.
47절, 48절의 말씀은 46절에 근거한 것입니다. 주님께 속하고 주님의 일을 하는 우리가 장차 당하게 될 일들은 무엇입니까?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알지 못한 사람은 매를 맞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고 적게 맞는다고 말했습니다. 어쨌든 매는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그분은 알지 못한 사람을 용서하실 수 없습니다. 아는 사람은 하나님ㅇ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하겟지만, 알지 못한 사람이 매를 맞을 일을 행한다면, 그는 매를 맞기는 맞아도 남보다 적게 맞을 것입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고 많이 맡은 자에게는 ㅁ많이 달라고 하는 이것이 하나님이 장래 질책하시는 원칙입니다. 누가복음 12장 47절, 48절은 장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받을 질책을 결정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