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3장에 이와 유사한 말씀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3장 6절: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이 구절에서 볼 때, 우리가 그의 집이 되는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입니다. 사도는 만일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집과 이 소망은 무엇입니까? 이 복된 소망은 다름 아닌 주 예수님이 영광 안에서 다시 오셔서 이 땅 위에 세우실 왕국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있고, 주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영광 안에서 그분의 왕국을 세우실 것과 충성된 자들과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는 자들이 주와 함께 왕 노릇 할 것임을 알고 이것을 견고히 붙들면 그의 집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미 주님의 집입니다. 우리는 다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베드로전서 2:5).
그러나 장래 왕국 안에서 어떻게 될 것인가는 당신이 얼마나 끝까지 견고히 붙잡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이것은 영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관하여 성경 다른 곳에서도 분명합니다. 영원 안에서의 문제는 이미 완전히 해결되었지만, 왕국 안에서 지위와 상급을 얻는 문제는 오늘 당신이 어떻게 붙잡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성경에서 상급에 대해 분명한 곳은 고린도 전서 3장 14, 15절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이 구절들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상실될 수 있는 것과 상실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사람이 한 번 구원을 받으면 영원히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상급을 얻는가의 여부는 오늘 결정할 수 없는 사항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영원히 구원받는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장래 상급을 얻는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터이신 주 예수님에 위에 어떻게 건축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문제는 우리 자신의 공적이 어떠한가에 있습니다. 그분의 공적은 완전하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상급을 얻게 되는가 해를 입게 되는가는 우리의 공적이 어떠한가에 달려있습니다. 만일 주 예수님이신 터 위에 사람이 금과 은과 보석 곧 영원히 가치 있는 것으로 건축한다면 상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 반면에 만일 사람이 나무와 풀과 짚으로 건축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상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가 사람들 앞에서는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상급을 얻을 수도 있고 그의 공적이 불태워 질 수도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내가 다시 말하거니와 우리가 영원히 구원받는 문제는 천 구백여년 전에 이미 해결되었습니다. 이것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당신과 내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의 문제는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상급을 얻을 수 있는가의 여부는 우리의 공적이 어떤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진리는 매우 균형잡혀 있습니다. 구원의 안식은 절대로 주 예수님께 있는 것이고 구원함을 얻는 것도 주 예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상급을 얻을 수 있는가의 여부는 당신의 공적이 어떤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믿음 뿐 아니라 또한 공적이 필요합니다. 이 공적은 당신의 것이 아니라 당신 안에서 성령이 이루어내신 것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상급을 잃을 가능성도 잇고 왕국과 면류관을 빼앗길 가능성도 있음을 봅니다. 그러므로 왕국 안의 지위는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이며 불확실함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면류관은 숫자가 한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계시록 3장 11절을 보십시오.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성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상급과 은사를 분명히 구분하지 못합니다. 또한 면류관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그들은 구원은 빼앗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빼앗긴다는 것은 구원을 빼앗긴다는 것이 아니라 면류관을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았으나 면류관을 잃을 수 있습니다. 요즘 신문에 충격적인 기사가 하나 실렸는데, 그것은 바로 한 나라의 국왕이 그의 왕관을 잃었다는 것입니다(영국의 에드워드 8세가 퇴위하여 공작이 됨). 만일 구원받은 사람이 자기가 소유한 것을 붙들지 않고 주 예수님의 인내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며 주 예수님의 이름을 버린다면, 그는 어느 날 면류관을 잃게 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자신을 풀어놓고 소유한 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당신은 면류관을 잃게 되고 당신의 면류관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것입니다.
계시록 2장 10절의 말씀은 앞의 말씀과 거의 비슷합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여기서 주님은 생명을 준다고 하지 않고 생명의 면류관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생명은 충성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얻은 후에 충성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 생명의 면류관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구원받은 후에 행위가 좋지 않다면, 생명은 잃지 않겠지만 상급은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