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트니스 리가 성경에서 본 계시의 요점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만 높여야 한다며 사람의 이름이 거론되는 자체를
터부시 하는 분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쓰임받은 주의
종들의 위치'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그분의 뜻을 계시하시고 또 이뤄가십니다.
그러므로 성경본문이나 교회 역사를 볼 때 하나님과 더불어 수 많은 사람들의
이름들이 거론되기도 합니다.
물론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성도들은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하나님과
동등하거나 심지어 하나님을 대치하는 자격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무조건 그들을 무시하고 경멸하지도 않습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도 어느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주의 종)을 편의상 성경 66권을 형성하는데
기여한 경우와 이미 이렇게 완성된 성경본문을 바르게 해석하고 실행하는데
기여한 경우 둘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성경본문을 형성하는데 기여한 경우
신 구약 66권은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되 약 40여 명의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즉 하나님은 그분이 쓰시고자 하신 사람들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고
또 그 뜻을 수행하게 했습니다. 그런 과정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오늘날 우리 손에
들려진 성경이 되게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 안에 있던 <성막>의 식양을
<모세>에게 계시하시고 또 그를 통해 건축해 가시는 과정들이 상세하게 적혀져서
구약의 출애굽기가 된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출25-40장).
그런데 구약을 읽으면서 사람 모세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신약도 마찬가지 입니다. 한 예로 하나님은 <바울>이라는 사람을 통해
<신약의 성전에 해당되는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계시를 주셨고(계9:4-5, 26:19)
또 그 몸을 세우는 일에 바울을 사용하셨습니다(엡4:11-16, 골1:24-29, 고후11:28).
이런 모든 과정들이 다 기록되어 오늘 날 우리가 보는 신약성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거의 신약의 절반에 해당되는 바울서신을 읽으면서 바울을 언급하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2. 성경본문을 바르게 해석하고 가르쳐 전파하는데 기여한 경우
천주교를 제외한 신약의 믿는 이들에게 성경 66권은 이미 정경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소위 직통계시를 보았다고하여 이에 더하거나 어떤 부분은 문제가
있다며 이에서 뺄 권리가 없습니다(계22:18-19).
그러나 주님은 교회 역사상 이처럼 이미 완성된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거나
성경이 말하는 바를 실행함에 있어서 특정한 주의 종들을 불러 사용하셨습니다.
이 안에는 아타나시우스 이레니우스 등의 초대 교회 교부들을 비롯하여
루터, 칼빈, 쯔빙글리 등의 종교개혁자들 그리고 스펄전, 무디 등등의
주의 종들이 있습니다.
이 때 특정 성경본문의 해석에 있어서 존 칼빈은 그가 쓴 기독교 강요에서
이렇게 말했다는 식으로 특정인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우며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런 연장 선상에서 성경진리 항목들 중 특히 <생명과 건축> 또는 <그영과 몸>
또는 <그리스도와 교회> 방면의 진리에 대해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주님의 긍휼을 입어 뭔가를 본 것이 있다는 것을 조금 언급하는 것은 허용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3. 위트니스 리는 성경에서 무엇을 보았고 또 강조했는가?
워치만 니에게 배웠고 그와 20년 이상 가장 가까이서 동역했던 위트니스 리는
약 70년 동안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또 가르침으로 교회 역사상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신실한 성경교사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한국 복음서원)을
통해 수 백권의 영적 서적들을 출판했습니다.
현재 이러한 그의 책들은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쉽게 접근하여 무료로 읽을 수
있도록 인터넷 상에 모두 공개되어있습니다.
( http://www.ministrybooks.org/witness-lee-books.cfm (영문))
그런데 위 수백 권의 책들에서 위트니스 리가 크게 강조하여 가르친 것은 다음 세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1) 계시방면 : '신화'
위트니스 리가 가르친 <신화>
즉 <하나님이 사람되신 것은 사람이 하나님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말은
언뜻 듣기에는 신성모독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통교부들 중 하나였던 아타나시우스가 그가 쓴 <성육신에 관하여>란 책에서
이와 정확히 똑같은 말을 한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학을 좀 아는 분들은 이러한 표현
자체를 문제삼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알고자 합니다.
따라서 위트니스 리는 '우리 믿는 이가 하나님이 된다고 할 때 그 의미는 생명과
본성에 있어서 그러하며 피조물인 우리는 경배받는 대상이 되는 <신격>(Godhead)에
있어서는 결코 하나님이 될수 없다 라고 균형있게 말합니다.
이것은 성경본문 상의 표현대로라면 <각 사람이 그 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진 것>
(골1:28) 또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되어 장성한 사람이 된 것>
(엡4:13) 또는 <어린양의 신부로 단장된 새 예루살렘>(계21:2, 9-10)을 가리킵니다.
2) 생활방면 : '하나님-사람 생활'
위트니스 리는 우리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첫번째 하나님-사람인 주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셨던 바로 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성경본문의 표현으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
(갈2:20) 또는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셨느니라>(벧전2:21)를 실행하는 것입니다. 즉 다만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이 표현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3) 봉사방면 : '목양'
위트니스 리는 위 1)과 2)의 토대 위에 주님이 요한복음 21장에서 베드로에게 권하셨던
목양의 삶을 사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삶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목양이란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 주는 방면(인성방면)과
그렇게 해서 마음을 연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방면
(신성방면, 요10:10하 참조)을 가리킵니다(엡5:29).
이러한 참된 목양은 우리의 천연적인 사람은 결코 할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친히 우리를 통해 사람들을 사랑으로 품으시고
또 그분 자신을 생명으로 공급하시는 것이 되어 합니다.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세우기 위해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골1:28-29).
결론적으로,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과 실행은 '신화'(deification), '하나님-사람의 생활'
(God-Men living), '목양'(Shepherding)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세 가지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고 교회 역사상 보지못했던 최고,
최대의 부흥이 이뤄질 것으로 굳게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이기는자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