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말씀공급 2012-08-2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cenetre/41796.html
양주교회에서는 자매집회때 요한복음을 하고 있습니다.
외부 교회에서 형제님께서 오셔서 열어 주시는데 많은 은혜와 감사가 있습니다.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매일  한 단락을 올리겠습니다.

요한복음 : 1장 - 영원하신 하나님의 시작과 완결(생명과  건축의 서문)

요한복음 1장의  여섯가지 추출물은 여섯 가지 - 말씀, 장막, 하나님의 어린양, 비둘기, 돌, 하나님의 집- 를 포함한다.
이 여섯 가지는 1절의 말씀으로부터 시작해서  51절의 하나님의 집-벧엘로 완결된다.

1. 말씀(1:1)
A. 로고스, 곧 말씀은 만들어지지 않고 창조되지 않았다. 말씀은 시작도 끝도 없이 지존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말씀은 스스로 존재하시며 시작이 없으시며 영원하시다.(히7:3)  말씀은 살아있는 신성한 인격, 살아있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계;19:13)

B. 요한복음 1장 1절의 말씀은 기록된 말씀과 함께 그 실제인 산 말씀을 포함한다.
   산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기록된 말씀을 필요로 한다. 기록된 말씀없이는 산 말씀을 이해할 수 없다.

C. 그리스도는 우주적인 인격으로서 하나님의 산 말씀이고 성경은 기록된 말씀이다.(히10:7, 눅24:27,44)
    그 책은 그 인격의 정의이다. 기록된 말씀인 성경은 산 말씀임 그리스도의 정의이다.
    기록된 말씀과 함께하는 산 말씀을 가질 때 정의된 하나님을 갖는다.

D. 하나님은 추상적이고 비밀하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설명하고 정의하고 계시하기 위하여 
    말씀이 되실 필요가 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있는 말씀은 정의된 하나님, 설명된 하나님, 표현된 하나님, 계시된 하나님
    사람들에게 알려진바 된 하나님을 가리킨다.

E. 이 말씀을 통하여 만물이 생겨났다.(요1:3, 히11:3)  요한복음 1장 4절과 5절에 의하면 그분 안에 신성한 생명
   (분배되시는 하나님) 과 신성한 빛(비취시는 하나님)이 있다.
  


위트니스 리 가 성경에서 본 계시의 요점


말씀공급 2012-08-20 / 추천수 0 / 스크랩수 1 http://blog.chch.kr/cenetre/41782.html

위트니스 리가 성경에서 본 계시의 요점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만 높여야 한다며 사람의 이름이 거론되는 자체를

터부시 하는 분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쓰임받은 주의

종들의 위치'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그분의 뜻을 계시하시고 또 이뤄가십니다.

그러므로 성경본문이나 교회 역사를 볼 때 하나님과 더불어 수 많은 사람들의

이름들이 거론되기도 합니다.

물론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성도들은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하나님과

동등하거나 심지어 하나님을 대치하는 자격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무조건 그들을 무시하고 경멸하지도 않습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도 어느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주의 종)을 편의상 성경 66권을 형성하는데

기여한 경우와 이미 이렇게 완성된 성경본문을 바르게 해석하고 실행하는데

기여한 경우 둘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성경본문을 형성하는데 기여한 경우

신 구약 66권은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되 약 40여 명의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즉 하나님은 그분이 쓰시고자 하신 사람들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고

또 그 뜻을 수행하게 했습니다. 그런 과정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오늘날 우리 손에

들려진 성경이 되게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 안에 있던 <성막>의 식양을

<모세>에게 계시하시고 또 그를 통해 건축해 가시는 과정들이 상세하게 적혀져서

구약의 출애굽기가 된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출25-40장).

그런데 구약을 읽으면서 사람 모세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신약도 마찬가지 입니다. 한 예로 하나님은 <바울>이라는 사람을 통해

<신약의 성전에 해당되는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계시를 주셨고(계9:4-5, 26:19)

또 그 몸을 세우는 일에 바울을 사용하셨습니다(엡4:11-16, 골1:24-29, 고후11:28).

이런 모든 과정들이 다 기록되어 오늘 날 우리가 보는 신약성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거의 신약의 절반에 해당되는 바울서신을 읽으면서 바울을 언급하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2. 성경본문을 바르게 해석하고 가르쳐 전파하는데 기여한 경우

천주교를 제외한 신약의 믿는 이들에게 성경 66권은 이미 정경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소위 직통계시를 보았다고하여 이에 더하거나 어떤 부분은 문제가

있다며 이에서 뺄 권리가 없습니다(계22:18-19).

그러나 주님은 교회 역사상 이처럼 이미 완성된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거나

성경이 말하는 바를 실행함에 있어서 특정한 주의 종들을 불러 사용하셨습니다.

이 안에는 아타나시우스 이레니우스 등의 초대 교회 교부들을 비롯하여

루터, 칼빈, 쯔빙글리 등의 종교개혁자들 그리고 스펄전, 무디 등등의

주의 종들이 있습니다.

이 때 특정 성경본문의 해석에 있어서 존 칼빈은 그가 쓴 기독교 강요에서

이렇게 말했다는 식으로 특정인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우며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런 연장 선상에서 성경진리 항목들 중 특히 <생명과 건축> 또는 <그영과 몸>

또는 <그리스도와 교회> 방면의 진리에 대해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주님의 긍휼을 입어 뭔가를 본 것이 있다는 것을 조금 언급하는 것은 허용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3. 위트니스 리는 성경에서 무엇을 보았고 또 강조했는가?

워치만 니에게 배웠고 그와 20년 이상 가장 가까이서 동역했던 위트니스 리는

약 70년 동안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또 가르침으로 교회 역사상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신실한 성경교사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한국 복음서원)을

통해 수 백권의 영적 서적들을 출판했습니다.

현재 이러한 그의 책들은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쉽게 접근하여 무료로 읽을 수

있도록 인터넷 상에 모두 공개되어있습니다.

( http://www.ministrybooks.org/witness-lee-books.cfm (영문))

그런데 위 수백 권의 책들에서 위트니스 리가 크게 강조하여 가르친 것은 다음 세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1) 계시방면 : '신화'

위트니스 리가 가르친 <신화>

즉 <하나님이 사람되신 것은 사람이 하나님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말은

언뜻 듣기에는 신성모독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통교부들 중 하나였던 아타나시우스가 그가 쓴 <성육신에 관하여>란 책에서

이와 정확히 똑같은 말을 한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학을 좀 아는 분들은 이러한 표현

자체를 문제삼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알고자 합니다.

따라서 위트니스 리는 '우리 믿는 이가 하나님이 된다고 할 때 그 의미는 생명과

본성에 있어서 그러하며 피조물인 우리는 경배받는 대상이 되는 <신격>(Godhead)에

있어서는 결코 하나님이 될수 없다 라고 균형있게 말합니다.

이것은 성경본문 상의 표현대로라면 <각 사람이 그 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진 것>

(골1:28) 또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되어 장성한 사람이 된 것>

(엡4:13) 또는 <어린양의 신부로 단장된 새 예루살렘>(계21:2, 9-10)을 가리킵니다.


2) 생활방면 : '하나님-사람 생활'

위트니스 리는 우리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첫번째 하나님-사람인 주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셨던 바로 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성경본문의 표현으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

(갈2:20) 또는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셨느니라>(벧전2:21)를 실행하는 것입니다. 즉 다만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이 표현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3) 봉사방면 : '목양'

위트니스 리는 위 1)과 2)의 토대 위에 주님이 요한복음 21장에서 베드로에게 권하셨던

목양의 삶을 사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삶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목양이란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 주는 방면(인성방면)과

그렇게 해서 마음을 연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방면

(신성방면, 요10:10하 참조)을 가리킵니다(엡5:29).

이러한 참된 목양은 우리의 천연적인 사람은 결코 할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친히 우리를 통해 사람들을 사랑으로 품으시고

또 그분 자신을 생명으로 공급하시는 것이 되어 합니다.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세우기 위해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골1:28-29).


결론적으로,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과 실행은 '신화'(deification), '하나님-사람의 생활'

(God-Men living), '목양'(Shepherding)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세 가지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고 교회 역사상 보지못했던 최고,

최대의 부흥이 이뤄질 것으로 굳게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이기는자들에서



신언


말씀공급 2012-08-20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cenetre/41776.html
블로그를 개설한후에 처음으로 올리는 글입니다.
회복에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아서  아직도 신언에 대하여 부족함을 느껴왔는데
거룩한 말씀 5주 6일자에 정확하게 나와 있어서 올립니다.
계속 볼수있도록 하기 위함.
신언 : 신언하는 것은 다만 예언하는 것이 아니다.
         웨스트는 그가 번역한 신약성경에서 '신언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를 '다른 사람에게 신성한 계시를 나누어 주다.'
         로 번역했다.(고전 14:4),...  신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고 소유할 수 있었으며, 그런 다음 이러한 말씀을 유기적인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건축을 위하여 말해낼 수 있다.

         신언할때 우리는 반드시 신언을 구성하는 세 요소를 가지고 말해야 한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 곧 배움이라는 인간적인 요소를 갖고 있어야 한다.
         둘째 우리는 성령의 즉각적인 영감, 곧 영감이라는 신성한 요소를 갖고있어야 한다.
         셋째 하나님의 권익과 경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지방교회들, 개개인의 성도들, 우리 자신 등에 관한 이상,
                 곧 신성한 빛 비춤을 통한 조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본 것을 성령의 영감을 받아,  성령의 빛 비춤과 함께, 이 생명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말해야 한다.
         교회를 건축하기 위하여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게 함으로서 주님의 말씀을 말하는 습관을
         세워야 한다. 

         신언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탁의 말씀(신성한 계시를 전달해 주는 하나님의 말씀하심, 곧 하나님께서 직접하신 말씀)을
         갖는 것이다.  우리에게 말씀에 대한 사람의 배움, 그 영의 신성한 영감, 분명한 조망이 있을때 우리는 신언할수 있을것이다.
         신언은 항상 이 생명의 살아 있는 말씀, 성령의 감동, 그리고 신성한 빛 비춤을 통한 분명한 조망으로 이루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