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창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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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기록은 매우 간결하다. 겨우 두 구절뿐이다. 창세기 1장 26절은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고, 다음 구절은 모세의 기록이다. 이 두 구절 속에 세 가지 중요한 요점이 들어 있다.



첫째로 26절은 거룩한 삼일성을 가리킨다. 엘로힘(하나님)이라는 단어는 복수이며, 하나님은 그분의 대화에서 「우리」와 「우리의」라는 대명사를 사용한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을 가리키는 그 대명사는 복수이다. 이것이 거룩한 삼일성을 내포함을 깨닫기는 쉽다.
 
어떤 교사들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하신 말씀이 회의에서의 대화였다고 지적해왔다. 거룩한 삼일성은 사람의 창조를 생각하기 위하여 회의를 열었다. 다른 것들을 창조하는 데 있어서는 그러한 대화가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을 만드는 데는 중요한 문제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는 것은 사람을 만드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았다. 창조에 있어서 사람은 하나님의 목적의 초점이었다.
 


두번째로,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어졌다. 호랑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것이 아니다. 코끼리도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어진 것이 아니었다. 창세기 1장 26절에서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말한다.
 
형상은 내면적인 것을 의미한다. 모양은 밖의 표현을 말한다. 여러분은 골로새서 1장 15절을 언급할지 모른다. 그곳에서는 그리스도를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 밖의 모양을 가질 수 있는가? 나는 이것을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비밀이다. 그것은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이 되셨다고 하는 요한복음 1장 14절과 같다. 그러나 창세기 18장에서 그분은 사람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아브라함은 그분의 발을 씻어 드렸으며 그분을 위하여 떡을 준비했다(4-8절). 그분은 사사기 13장에서 다시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삼손의 어머니에게 나타났다. 그 여자는 이 사람을 보았는데, 그분은 그녀와 그녀의 남편에게 말한 후에 하늘로 올라가셨다(20절). 여기에 사도행전 1장보다 먼저 하나의 승천이 있다! 구약의 이러한 부분들과 신약을 우리는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우리는 할 수 없다.
 
똑같은 식으로,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형상을 따라서 창조하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요 비밀이다. 고린도후서 3장 18절에서는 우리가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로마서 12장 2절에서는 우리가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고 말한다. 이러한 구절들은 형상이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이루어진 내적인 것임을 가리킨다. 생각하는 기관, 사랑하는 기관, 결정하는 기관이 내적인 것을 이룬다. 사람은 놀랍게 만들어졌다. 심지어 타락된 후에도 사람은 여전히 기묘하다(시 139:14). 우리는 기묘한 존재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에 의하여 이렇게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사람은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형상과 모양은 둘 다 표현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을 따라 그분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그분은 거룩한 생명을 사람 안에 넣지 않으셨다.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실 때까지는 거룩한 생명이 창조된 사람 속에 부어지지 않았다. 이제는 그분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된다(요 3:16). 우리에게 아들이 있으면 이 거룩한 생명이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아들이 없으면 이 생명이 없는 것이다(요일 5:12).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속이 성취될 때까지 하나님의 생명은 창조된 사람 속에 들어가지 않았다.
 


하나님은 어느날 그분이 사람 속에 들어가고 사람은 그분 자신을 받게 되리라는 의도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로마서 9장에서는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이 무엇인가를 담도록 의도된 하나의 그릇임을 계시한다. 컵이 물을 담는 그릇인 것처럼, 사람은 하나님을 담는 그릇으로 만들어졌다.
 
창세기 2장 7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만들었는지를 말해준다. 먼저 그분은 땅의 흙으로 사람의 몸을 지으셨다. 그 후에 그분은 흙으로 된 이 몸의 코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셨고, 사람은 산 혼이 되었다. 여기 이 한 구절에 몸과 혼과 생명의 호흡이 있다. 창세기 2장 7절에 나오는 호흡에 대한 히브리어 단어가 잠언 20장 27절에서는 「영」으로 번역된다. 그곳에서는 『사람의 영은 여호와의 등불이라』(축어역)고 말한다. 이것은 아담 속으로 들어간 그 생명의 호흡이 사람의 영이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만드는 데 두 가지 재료가 사용되었다. 즉 흙과 생명과 호흡이다. 흙은 몸이 되었고, 생명의 호흡은 영이 되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졌을 때 한 가지 부산물이 나오게 되었는데 그것이 혼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서 사람이 세 부분, 즉 영과 혼과 몸으로 되었다고 말한다.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을 따라 자기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담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어떤 용기는 그것이 담을 물건의 모양에 따라야 한다. 물건이 사각형이라면 그것을 담는 용기를 둥글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물건이 둥글다면, 그것을 담기 위해 네모진 용기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용기의 모양은 그 내용물의 모양에 따라서 만들어진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 따라 만들어졌다.
 
창세기 1장에서는 모든 것이 그 종류에 따라 생기도록 창조되었다고 말한다(11절 -12절, 21절, 24절-25절). 사과나무는 그 종류에 따라 나왔고 호랑이도 그 종류대로 나왔다. 사람은 하나님의 종류에 따라 만들어졌다. 두 나무를 한데 접붙이면 그들은 같은 종류로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 접붙임은 되지 않을 것이다. 할렐루야! 사람은 하나님과 같은 종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류에 따라 창조되었고, 하나님과 한데 접붙이려는 의도로 창조되었으므로, 이 「접붙임」은 이루어질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다.


우림과 둠밈을 가지고 있는 제사장 직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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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으로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그 가슴 위에 있게 하라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판결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둘지니라(출 28:30) 
 
And you shall put in the breastplate of judgment the Urim and the Thummim; and they shall be on Aaron's heart when he goes in before Jehovah, and Aaron shall bear the judgment of the children of Israel on his heart before Jehovah continually.(Exo. 28:30)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있는 주님의 임재는 인도를 위한 것인 반면, 우림과 둠밈을 가지고 있고 기름부음 아래에 있는 제사장 직분은 판정을 위하여 있다. 제사장 직분은 세가지, 즉 주님과의 교통, 성령의 기름 부음, 우림과 둠밈을 포함한다. 히브리어에서 우림은 '빛' 을 의미하고 둠밈은 '완전함' 을 의미한다. 한 히브리 기자가 쓴 기사에 따르면 둠밈은  히브리 알파벳 네 글자가 새겨진 보석이다. 그리고 대제사장의 흉패 위의 열두 개의 돌 위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 열두 지파의 이름은  히브리 알파벳 스물두 자 중에 열 여덟자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의 흉패에는  네 글자가 부족했다. 

 

그러나  이 네 글자는  둠밈위에 새겨졌고  이 돌이 흉패에 붙여 졌을 때 완전함과 완성이 있게 되었다. 그때서야  스물두 글자가 있게 되었다. 히브리 알파벳의 모든 글자가 그곳에 있었다. 또 우림은 빛을 비추기 위하여 흉패에 붙여진 돌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림과 둠밈은 빛과 완전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어떤 일이나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대 제사장은 주님 앞에 가며,  어떤 글자가 새겨진 한 돌이 빛나고  어떤 때는 다른 글자가 새겨진 다른 돌이 빛날 때, 빛나는 돌들에 새겨진 모든 글자를 받아 적고  그후에 단어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문장을 만든다. 

 

 결국 대제사장은  주님에게서 완전한 말씀과 판정을 얻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죄를 지은 아간을 이스라에 백성에서 붙잡을 수 있었다고(수 7장)말한다. 주님의 백성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통제하는 원칙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들 가운데  주님의 모든 자녀들을  가슴에 품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제사장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사장들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주님의 임재 안으로 데려가 그곳에서 그들을 글자처럼 읽어야 한다. 이와같이  성경의 빛으로 제사장들은 주님의 마음을 알고 주님에게서 주님의 상황에 관하여 어떤 말씀을 받게 된다.

 

  싸우고 있는 형제들에 대해서 "형제님들, 잠시 조용한 시간을 갖고,  주님께로 갑시다." 라고 말해 줄 수 있다. 그런 다음 이 문제를 주님께로 가지고 가서 성경 말씀의 빛을 가지고 그분의 임재안에서  이 형제들을 읽어 볼 것이다. 이것이 우림과 둠밈의 흉패를 가지고 있는 제사장들이 수행하는 일이다. 이것에 의해 우리는 결정을 내려야 할 문제에 관하여 주님에게서 글자와 단어와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에 있는 많은 문제에 부딪쳤다. 분열, 징계, 결혼, 부활의 교리등 거의 온갖 문제들이 있었다. 그는 어떻게 했는가?  

 

 그는 교회안의 모든 문제와 모든 형제자매를 마음에 품고 주님께로 갔다. 그래서 주님의 임재 안에서 말씀의 빛으로 그들을 읽었다. 그리고 그 상황의 본질과 답변을 알게 되었다.  그는 주님에게서 판정과 결정을 받았다.  그리하여 고린도전서를 쓰게 되었다. 사도들이 쓴 모든 책은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쓰였다. 모든 서신서들은 사도들이 방에 앉아서 읽고 논리적으로 생각한 후에  쓴 것이 아니다. 그들은 주님의 임재 안에서 이 문제들을 연구하며 주님의 말씀의 빛 안에서 성도들을 한 사람씩 읽어갔다. 그리고 빛을 받았다. 그들은 주님에게서 단어와 문장과 생각을 얻었다.

 

 ―만유를 포함하신 그리스도. 제 11장 땅을 점령하는 법



자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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