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회] 지방교회에 대한 비판은 공정한가?


지방교회 진리 2012-09-0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churches/41990.html

 

지방교회에 대한 비판은 공정한가?

이 글은 큰기쁨새샘교회(구 큰기쁨이있는교회)에 올려진 지방교회 관련 비판글에 대해 지방교회의 한 지체가 위 교회의 목사님께 드린 반론글입니다. 지방교회측이 믿고 있는 바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정수 목사님께,


목사님 안녕하세요.


큰 기쁨이 있는 교회 홈페이지에 올려진 「지방교회」 관련 글을 읽고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서 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믿고 있는 것에 비성경적인 것이 있다면 마땅히 비판을 받아야 겠지만, 사실과 다른 부분은 공정한 판단을 위해 바로 잡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한 지방에 한 교회만 있으면 된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그 한 교회는 지방교회를 뜻하며, 자신들을 회복교회라고도 부릅니다.


--> 아래 내용에 비추어 봤을 때 위 글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한 지방에 있는 「모든 믿는이들"을 그 지방 교회의 구성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주장하는 지방교회의 범위입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를 지방 교회라 하지만 이는 지나친 말이다. 물론 입장으로 보나 원칙 본질 증거 등 각 방면으로 보아 지방 교회임에는 틀림없으나 양적으로 말할 때 지방 교회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예컨대 대북(臺北)의 지방 교회는 응당 대북의 전신도를 포괄 망라하고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위트니스 리, 성경에 나타난 교회, p.99-100, 한국복음서원)


정통신학적인 삼위일체를 부정하며 양태론을 주장합니다. 즉 성부하나님이 직접 육신을 입고 예수로 왔다가 죽었으며, 부활하여 살려주는 영이 되었다는 한 인격의 세 단계와 세 과정으로 주장합니다.


--> 저희는 정통적인 삼위일체를 부정하지 않으며 양태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위와 같이 주장하는 근거가 있으시다면 소개해 주시기 원합니다. 저희는 성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셨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완전한 하나님이 육신이 되셨다고 믿습니다. 즉 아들 하나님(말씀)이 육신이 되셨다고 믿으며 이 아들 하나님은 신격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는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저희가 양태론을 믿지 않는 것에 대해 아래 글이 참고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성경이 아들이 오셨을 때 아버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 영이 오셨을 때 아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것은 [삼위는 한 하나님의 세 형태에 불과하다는] 삼위양식설(三位樣式說)이라 불리는 그릇된 신학의 가르침이다. 삼위양식론자들은 아버지는 구약에 계셨지만 신약, 곧 아들이 오신 복음서에서는 아버지는 존재하기를 그치셨고, 그 다음 복음서 후에 그 영이 오셨을 때 아들은 더 이상 계시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이단이다.』(위트니스 리, 그리스도의 탁월성, p.81-85, 한국복음서원)


또한 그들은 구약의 하나님의 신과 신약의 성령, 부활 후의 살려주는 영이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양태론은 십자가에서 죽은 분을 성부하나님이라고 하므로 성부고난설로 불리우며 교회사 2000년 동안 줄곧 이단적인 신론이었습니다.


--> 요 7:39은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성)령이 아직 계시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태초부터 계셨지만 그 안에는 신성 뿐 인성이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로 말미암아 영화롭게 되었을 때 성령은 또한 예수님의 영(행 16:7), 그리스도의 영(롬 8:9)이 되었고, 이 영은 단순히 신성만 있는 영이 아닌 인성도 포함하는 영이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구약의 하나님의 영과 신약의 성령은 동일한 영이지만 그 안에 인성이 포함되었다는 면에서 차이점도 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못박히신 분은 아들 하나님(예수님)이시지만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도 본질적인 면에서 그 과정에 참여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셋이 서로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의 두번째 단계인 성취의 단계에서 아들은 모든 역사를 이루셨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들과 함께 영에 의해 성취하는 역사를 이루셨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또한 영이 아들로서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계획을 이루셨다고도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다만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영에 의해 아버지의 계획을 이루는 모든 역사를 하셨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아버지께서 십자가로 가셔서 우리의 구속을 위해 죽으셨다고 말할 수 없으며, 십자가 위에서 흘려진 피가 아버지 예수의 피라고도 말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피를 흘리셨다고 말해야 한다(요일1:7). 우리는 아버지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고 말할 수 없으며, 아버지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고도 말할 수 없다.』(위트니스 리, 장로훈련 Ⅲ. 이상을 실행하는 길, p.109-113, 한국복음서원)


정통 기독론을 부정하며, 예수와 그리스도를 구별하므로서 인성과 신성을 분리시킵니다. 또 그리스도의 인성은 부활 후에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주장하며 예수를 육과 혼으로, 그리스도는 영이며 성부하나님 자신이라고 분리시킵니다.


--> 저희는 인성과 신성을 구분하지만 분리시키지는 않습니다. 신성과 인성의 두 성품이 한 인격 예수님 안에 존재하며 제 3의 성품을 산출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죄만 없으시지 우리와 동일한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이러한 육신이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셨을 때 영화롭게 된 몸으로 변형되었는데, 롬 1:4은 그분이 부활 시에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음을 말하고 있고 행 13:33은 부활이 예수님에게 또 하나의 출생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육과 혼으로, 그리스도는 영이며 성부하나님 자신이라고 분리시킵니다."라는 부분은 저희의 주장과 무관합니다. 이렇게 주장하시는 근거가 있으신지요?


또한 예수님도 인성은 혼과 육이며, 신성은 영이라고 삼분법으로 분리시켜 주장하는데, 그들은 예수도 혼과 육을 가진 인간이라고 보며, 예수가 영(하나님 자신)을 받아서 하나님이 되었다고 보며, 그것을 God-man 이라고 부릅니다.


--> 고대에 예수님의 인성이 불완전하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는데(아폴리내리안) 저희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영"을 가지고 계시며 그분은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한 분이 사람이 되시고 육신이 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이셨고 육체 되심으로 사람이 되신 하나님-사람이십니다. 우리들은 주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생명과 본성에서 주님과 동일한 하나님-사람들이 되는데, 우리들은 먼저는 사람이고 주님을 영접함으로 신격에서는 아닌 생명과 본성에서 그분과 동일한 하나님-사람들이 됩니다.


워치만 니는 구원이 개인이 아니라 단체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습니다.


--> 위 주장은 한 감리교 권사의 개인 주장일뿐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그분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는 말씀 그대로 믿는 것을 '단체구원'을 주장하는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는 것이 왜 이단이 되어야 하는지요?

물론 구원은 누구든지 주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영접함으로써 참여하게 되며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다만 성경에 믿는이들의 구원과 관련하여 가정이 한 단위가 된 사례들을 많이 볼 수 있으며(창 7:1, 출 2:18, 12:3, 행 10:24, 16:31) 저희는 이러한 사례에 따라 개인에게 복음을 전파할 뿐 아니라 그 집안의 모든 사람이 함께 구원에 참여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예수의 가시적인 재림과 신체적인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며, 죽어서 가는 천국의 장소적 개념도 부정합니다. 그들은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것을 재림이며, 곧 부활이고, 거듭남이며 천국이라고 봅니다.


--> 저희는 예수님의 육신적인 부활과 가시적인 재림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희는 예수님의 재림이 믿는이들의 생명의 성숙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관점에서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명의 성숙 안에서 오십니다"라고 표현한 것이 예수님의 가시적인 재림을 부정하는 것으로 한 감리교 권사님에 의해 오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사람의 눈에 보이게 올리브 산(행 1:12)에서 구름을 타고 승천하셨다. 동일하게 그분은 눈에 보이게 구름을 타고(마 24:30) 올리브 산에(슥 14:4) 돌아오실 것이다.』(위트니스리, 신약성경 회복역 사도행전 1:11 각주 4, 한국복음서원)

지방교회는 카톨릭과 개신교의 모든 기독교의 교회를 사탄과 음녀의 교회라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교리와 사상이 기존교회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다르기 때문이며, 스스로 자신들은 기독교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저희의 의도는 계 2-3장, 16-17장의 성경 해석 과정에서 큰 바빌론을 로마 천주교로 해석하며 이러한 해석은 많은 종교개혁자들과도 동일한 관점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교회가 로마 천주교를 거치면서 비성경적인 실행과 제도, 그리고 조직이 이루어진 것에 대해 성경에 따라 비판적인 관점을 갖고 있지만 그 안의 믿는이들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의 몸 안의 지체들로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태가 카톨릭이나 개신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지방교회 안에도 있을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비판은 저희 내부를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전통적으로, 개신교회는 로마 카톨릭 교회를 우상숭배적이고 변질된 적그리스도적 집단으로 간주해 왔다. 종교 개혁자 말틴 루터는 선언하기를, "교황은 귀신들이 충만한 자요 하나님의 원수요 적그리스도"라고 했고, 교황 제도를 마귀적이라고 했다(Church and Ministry III, p.363). 존 칼빈도 로마 교인들을 "그리스도의 치명적인 대적자들"로 여겼고, 로마 교황을 마귀 왕국의 지도자로, 그리고 교황의 복음을 복음의 "무서운 변질"로 간주했다.』(Institutes, IV. ii. 4. 12 : Commentary on the Galatians, p. 32)."(김효성, 현대교회 문제, 기독교 문서 선교회, 1993년, 108쪽)


『바벨론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예표이다. 성경을 권위 있게 설명하는 많은 역사학자들과 신학자들도 그렇게 말한다. 많은 대형 교단들이 이 교회로부터 분리된 후, 어머니 교회의 전통과 실행들을 본받아 실행해 왔다. 이들 중 상당수가 세상의 맛과 은사들을 추구함에 있어서 어머니 교회의 실행을 따르고 있다.』(Walter Lewis Wilson, Wilson's Dictionary of Bible Types. Grand Rapids: Eerdmans, [1979], c1957, p 241(entry on "Harlot"))


그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 주여”라고 주문을 외우며 그 이름을 부르면 ‘살려주는 영’이 들어와서 구원을 받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 믿음 외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저희가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실행을 권면하는 이유는 롬 10장에 근거한 것인데,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3절)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미 마음으로 믿은 것을 외적으로 시인함으로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신 주님"(12절)을 체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저희는 "믿음" 외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성경은 믿음 외에 다른 구원받는 조건이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신약에서는 115차례나 사람이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고,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으며, 믿기만 하면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외에 명사 신앙(faith)을 사용하여 사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으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말하는 곳은 도합 35군데이다. 그러므로 전 신약 성경에서 적어도 150번은 사람이 구원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으며 영생을 얻는 것이 그 사람의 어떠함이나 그가 한 일이나 무엇을 할 줄 알아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인한 것임을 우리에게 말해준다.』(워치만 니, 하나님의 복음 제 2권, p.10, 한국복음서원)


이상 부족하지만 저희가 믿고 있는 바에 대해 짧게나마 답변을 드렸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목사님과 큰기쁨새샘교회에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의 한 작은 지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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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재평가 된 지방교회 중에서..


지방교회 자료 2012-08-21 / 추천수 0 / 스크랩수 1 http://blog.chch.kr/churches/41790.html


「재평가 된 지방교회」란 책을 읽어 보셨나요?
아직 읽어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서 「재평가 된 지방교회」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스크랩 해 보았습니다.
 

 

 재평가 된 지방교회

 

미국의 저명한 이단 변증 기관인 CRI는 지방 교회에 대해 6년 간 연구하여 100쪽 분량의 보고서를 CRI 저널 잡지에 발표했다. 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면을 다 조사했으며, 각 나라에 있는 지방 교회들을 직접 방문하여 사람들을 만났다.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여 연구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이나 기존의 전통이나 사적인 판단에 따라 평가하지 않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건전한 신학에 기초하여 조사했다. 그 결과 CRI는 과거의 평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것을 공개적으로 시인했다.(p.3)

 

자신의 딸이 태어날 때부터 십칠 세가 될 때까지 투옥되었었던 상해의 한 믿는이에게 그레첸 파산티노는 “내가 틀렸었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도합 이십사 년을 감옥에서 고난당한, 푸칭(Fuqing)에 있는 한 형제에게 엘리옷 밀러는 “내가 틀렸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의 말은 단지 순간적인 감정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아니다! 그러한 말은 수년 동안 힘써 근본적인 연구를 한 후에 나온 말이었다. 종말론 같은 비본질적인 것들에 있어서 우리는 지방 교회들과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나의 저서인 계시록 코드(The Apocalypse Code)가 이 사실을 입증함), 순교자들이 수호하기 위해 피를 흘린 교리들인 그리스도인의 본질적인 교리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다.(p.73)

 

하나님의 은혜로 죠셉 타크는 “우리가 틀렸었다.” 라는 말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지금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와 지방 교회들에 대한 우리의 입장에 대해 똑같은 말을 한다. 그 대가는 실로 엄청났다. 우리의 성실성에 의문이 제기되었고, 동기에 대한 도전을 받았고, 중상모략이 잇따랐다. 그 결과 재정 지원이 위태롭게 되었다. 나는 “지방 교회들에게 그들의 거짓 교리와 실행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하라고 요구한 공개 서한(특집 기사를 보라)에 서명한 칠십 명의 그리스도인 인도자들이 어떻게 틀릴 수 있느냐? 분명 CRI는 본래의 모습을 잃었다.” 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이러한 소란 가운데서 나는 직원들에게, 우리의 사역은 인기 경쟁을 위한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우리의 사역은 강대상의 크기나 정치적인 결탁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한다. 왜냐하면 진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대가가 든다 할지라도, 중국과 전 세계에서 박해당한 교회가 겪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실재는 나의 뇌리 속에 순식간에 영원히 새겨졌다. 허가 받지 않은 집회에서 허가 받지 않은 자료들을 읽었다는 이유로 투옥된 체험을 말하던 중국 여인의 얼굴에는 빛나는 미소가 넘쳤다. 자기 연민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 오직 신약 기독교의 참된 실재를 체험한,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의 광채만 있었다. 교제를 마친 그녀는, 어떤 대가가 들더라도 진리를 위해 서 있는 나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나는 그때처럼 내가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직면한 것은 그 여인이나 그 여인과 같은 처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겪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내가 틀렸었다(I was wrong.)”라는 말보다 더 하기 힘든 말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왜냐하면 진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라는 격언을 실천하는 사역으로서, 기꺼이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 행크 해네그래프(p.74-75)

 

나는 지방 교회가 삼위일체와 관련하여 이단이고 정도에서 벗어났고 이중적이고 자가당착에 빠졌다는 혐의를 벗겨 주기 위해서 충분한 증거를 제시했다고 믿는다. 우리 CRI는 지방 교회가 양태론을 믿는다고 잘못 정죄한 사실을 인정했다. 나는 지방 교회들을 비판하는 다른 복음주의자들도 편견없이 공정하게 사고하고 정정하는 데 열려 있다면 비슷한 결론에 이르게 되리라 확신한다. 그것은 사사로운 역사들과는 무관하게 진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방 교회들이 말도 안 되는 거짓 정죄에 대해 때로는 논쟁적으로 반응했다는 사실이 그 정죄들 자체를 덜 터무니 없는 것이나 덜 거짓인 것으로 만들지는 않으며, 복음주의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도달하는 결론에 영향을 주어서도 안 된다. (p.111)

 

(신화 진리에 관한) 이러한 표현은 뉴 에이지나 힌두교 지도자들도 사용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비기독교적이거나 우상 숭배에 관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몰몬교도들이나 암스트롱 교도들도 그러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데, 그럴 경우에 그것은 사이비 기독교이거나 이단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믿음의 말씀(Word of Faith)이나 늦은 비(Latter Rain) 교사들이 사용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가장 우호적으로 말해서 정도를 벗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 교회 교부들과 동방 정교회 신학자들도 이러한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정통 교리의 범주 내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맥의 전후 관계와 용어의 정의를 제공하지 않은 채 이러한 인용문들을 정통이 아니라는 증거로 공표한 것은 학자답지 않고, 감정적이며, 무책임하고,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비판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지방 교회의 실제 가르침과 관련이 없다.(p.114)

 

이단 변증/감별 사역은 그리스도의 몸에 큰 유익을 제공하지만, 이 일에 관여한 우리는 변증과 분별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이단 사냥’의 정죄와 늘 싸워야 했다. 그러나 연구자들이 전후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채, 어떤 종교 지도자나 그의 단체에 대해 일반인들이 등을 돌리게 하려고 그 종교 지도자의 이단처럼 보이거나 언어 도단인 것 같은 진술의 충격적 가치를 이용하기 위해 그런 진술들을 찾는 일을 할 때, 그러한 이단 변증 연구는 참으로 가장 나쁜 종류의 ‘이단 사냥’이 된다. 나는 공개 서한에 관여한 많은 분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과거의 일을 ‘이단 사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위트니스 리의 신화에 대한 가르침을 취급한 방법에 관한 한, 그것이 이단 사냥이었다는 정죄에 맞서 그들을 변호하기가 어렵다.(p.115)

 

우리가 보았듯이, 하나님과 사람의 본성에 관한 그들의 가르침에는 이단적인 것이 전혀 없다. 바로 이러한 분야에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몸의 나머지 부분에 기여하지 않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나 개인적으로는 믿는 이들이 하나님이 된다거나 하나님-사람들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편치 않다. 그러나 나는 지방 교회가 대부분의 전통적인 기독교보다 영화롭게 됨의 본질과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에 관해 더 깊이 연구하고 생각하고 기도해 왔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침례교인들은 침례에 대해, 장로교인들은 오늘날의 교회 내에서의 언약의 지위에 대해, 감독파 사람들은 사도적 승계에 대해, 오순절파 사람들은 성령 침례에 대해, 웨슬리 교인들은 성결의 중요성에 대해, 세대주의자들은 문자적 성경 해석에 대해, 가정 교회들은 몸의 생활에 대해 자신들이 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고 믿듯이, 지방 교회도 자신들이 하나님의 계시의 이러한 방면에 관해 보다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믿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p.120-121)

 

일부 복음주의자들이 루이스 스프레이 쉐퍼(Lewis Sperry Chafer)가 가르쳤던 그러한 고전적인 세대주의가 정통교리를 위태롭게 한다고 믿는 것같이, 다른 복음주의자들 역시 신화에 대한 지방 교회의 가르침이 정통 교리를 위태롭게 한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감독파 교인들의 침례에 의한 거듭남의 교리나, 루터교의 성찬 ‘안에서, 함께, 아래’ 계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실지적 임재’에 대한 신앙이나, 나사렛파의 ‘두 번째 축복’에 대한 신앙에 대해서는 왜 문제 삼지 않는가? 그러한 특징들이 비성경적이고 본질적 교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 복음주의자들은 그러한 단체들의 교리적 특성들은 기꺼이 관용하면서 왜 지방 교회들에 대해서는 동일하게 대하지 않는가?(p.121)

 

누구든지 지방 교회 측의 자료들을 전후 문맥을 고려하며 연구하고, 지방 교회 측의 인도자들이나 소속원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개인적인 그리스도인 생활과 단체적인 교회 생활을 살아 내는 것을 관찰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들인다면,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일 뿐만 아니라 많은 방면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본이 되는 단체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으로 대부분의 서방 기독교 단체들을 부끄럽게 할 제자 직분의 수준을 지닌 믿는 이들이다. 그들은 불 같은 핍박을 받으며 시험 받아왔고, 인내했으며, 그 결과 그리스도의 형상이 감동스러울 정도로 새겨졌다.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사랑은 압도적이다. 그들의 희생적인 삶은 마음을 굴복시킨다.(p.123)

 

중국 정부는 표면적으로는 종교를 반대하지 않으며, 사실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가 사회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증가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우려하는 것은 중국 밖에서 시작되어 밖으로부터 계속적인 인도를 받고 있는 모든 종교 단체들이다. 중국 정부는 모든 허가된 종교적 표현은 완전히 토착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중국 토속의 성공적인 기독교 운동에서 지방 교회라는 더 나은 예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보았듯이, 그 운동은 워치만 니에 의해 중국에서 세워졌고, 중국의 사역자들, 특히 잘 알려진 위트니스 리에 의해 인도되었다. 그들은 정통이기는 하지만 독특하게 중국적이면서도 서방에서 발견되는 것과는 다른 신학과 교회생활에 대한 접근법을 발전시켰다. 우리가 본 것과 아래에서 더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이 가진 교회론 모델은 상당히 지방적(local)이므로 나라 밖은 물론이고 해당 지방 교회가 있는 도시 밖의 어떤 교회 조직의 통제도 거부한다. 더욱이 지방 교회들은 정치와 무관하다. 즉 그들은 혁명적이거나 선동적인 야심이 없다. 그들은 소속원들에게 정부 권위에 순종하고 모범적이고 생산적인 시민이 되라고 가르친다. 바꾸어 말하면, 지방 교회는 중국 정부가 기독교 단체에서 보기 원하는 기준에 거의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 같다.

 

따라서 여기에 크고 비극적인 아이러니가 있다. 기독교계의 보편적인 진리들에 관한 지방 교회들의 특유한 중국식 접근법이 서방에서 오해받아 이단으로 잘못 분류된 데 일조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중국 관료들은 서방에서 자신들에 대한 편견에 찬 반응에 직면한 이 토착 중국인의 기독교적인 표현을 지지하는 대신, 서방 문헌에서 사용한 ‘이단’이라는 선동적인 말에 반응했고, 통제가 느슨해지지 않도록 계속 그 단체를 탄압했다.(p.126-127)

 

이단 변증 단체들 사이에서는 지방 교회 측이 영적 사이비 연구소(SCP)에 악의적인 타격을 가해 SCP를 다시는 회생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말이 흔히 떠돌았다. 사실 지방 교회 측에게 공정하게 말한다면, SCP는 명예를 훼손하는 책을 출판하여 타격을 자청한 것이다. 지방 교회들에 관한 SCP의 신학적 결론을 공유했던 이단 변증 단체들과 변증자들 모두가「 하나님-사람들」이라는 책을 전적으로 지지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나와 월터 마틴과 파산티노 부부는「 하나님-사람들」이 진술한 지방 교회 측의 심리학적 사회학적인 범죄 혐의를 밝혀 줄 어떤 것도 알지 못했으며,「 하나님-사람들」이 ‘이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비신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거북했었다.(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출판물에서 지방 교회들을 다룰 때는 엄격한 신학적 접근을 취했다.)

 

그러나 SCP의 신학적인 결론이 우리와 유사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다른 혐의에 대한 불신은 일단 접어두고 소송 문제에서 그들을 지지했던 것이다. 또한 우리는 공동의 대의와 동지애를 위해 진실을 억누름으로써, SCP가 지방 교회들에게 지은 죄에 참여했다. 나아가, 우리는 그리스도 안의 참된 형제자매들을 거짓되게 이단으로 낙인찍는 죄를 지었다.(p.145)

 

그러나 나는 중국을 방문한 후에 이것을 이해했다. 그곳에서 나는 그리스도 안의 형제들과 함께 식사했다. 그들은 관계 당국이 ECNR과 상소 법원의 판결을 근거로 그들을 반대하는 데 더 대담하게 된 후 징역형을 치러야 했던 형제들이다.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단 단체에 속해 있다는 딱지는 다만 굴욕을 감수해야 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시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것은 우리가 여기에서 생각도 못할 핍박을 가져올 수 있다.(p.151)

 

아시아에서의 상황 때문만이 아니라, 지방 교회 측에게 있어서 소송은 늘 상대방이 자신들을 그리스도 안의 형제로 만나기를 단호하게 거절했을 때에만 취했던 최후의 해결 방법이었다. 실제로, 소송은 하비스트 하우스가 지방 교회 측에게 먼저 소송을 제기한 데서 시작되었다. 지방 교회 측이 하비스트 하우스에게 함께 만나서 차이점들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고 지속적으로 요청한 것을, 하비스트 하우스는 지방 교회 측이 ‘자신들을 괴롭힌다’며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이것은 단지 사건의 전말을 지방 교회의 관점에서 본 것이 아니다. 쌍방의 모든 대화는 문서로 남아 있고, 우리는 그 모든 복사본을 가지고 있다.(p.152)

 

(지방교회측의 변호) 우리가 초기의 두 책에 대해 최후로 법원에 해결을 구했을 때, 우리는 경솔하거나 이유 없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이 나라에서 사역과 교회와 수 많은 교회 소속원들이「 하나님-사람들」과 마인드 벤더스에 실린 거짓된 비난들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받아야했다. 그러한 비난들은 다른 책들과 기사와 방송에서 최소한 삼백 번 이상 반복되었다.「( 하나님-사람들」은 심지어 중국어로 번역되어 중국에 유포되었다.) 교회들의 성장은 멈추었고, 위트니스 리 형제의 사역은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이 두 권의 책으로 인해 교회 안의 가족들은 불화를 겪었고, 이혼 당했으며, 직장을 잃었다. 어떤 소속원들은 육체적인 손상을 입었고, 우리의 자녀들은 ‘이단 종파’라는 정죄에 직면했다. 많은 사람들이 굴욕과 수치를 당했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이러한 고난은 신앙의 자유가 없는 나라들에서 ‘이단 종파’라는 비난으로 인해 지방 교회들과 개인들이 겪은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한 나라에서 교회 성도들은 체포되고 감금되고 더 심한 상황에까지 내몰렸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가 행동을 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열려 있는 다른 길이 없을때, 우리는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최근에 우리가 하비스트 하우스와 그 저자들에게 소송을 속행하기로 결정했을 때도, 이와 같은 비극적인 역사가 또 다시 우리 앞에 있었다. 그들의 책들로 인하여 몇몇 동일한 일들이 다시 발생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이것을 막는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위에서 언급한 나라들에 있는 교회들과 개인들에게 닥칠 피해를 참을 수 없었다.(p.155-156)

 

우리의 기도는 우리 CRI가 지방 교회들에 관해 다룬, 다음과 같은 항목들을 포함한 동일한 항목들에 관해 이단 변증 단체 전체가 깨닫게 되는 것이다.


1. 진리는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가 틀렸었다는 것을 인정할 만큼 중요한가?


2. 하나님과 올바르게 되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가 오랫동안 비방했던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할 만큼 중요한가?


3.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 사이에 여전히 많은 문화적이고 비본질적인 신학적 차이점들이 존재할지라도 한때 우리가 불신하고 분개했던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의 교제 안에 포용할 만큼 중요한가?

 

재평가된 지방교회 1-160 페이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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