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야의 투옥


보석같은 각주(RSG) 2012-01-29 / 추천수 0 / 스크랩수 1 http://blog.chch.kr/grace77/36678.html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말미암아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

미가야가 가로되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그날에 보리라

이스라엘 왕이 가로되 미가야를 잡아 부윤 아몬과 

왕자 요아스에게로 끌고 돌아가서 말하기를 왕의

말씀이 이놈을 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로 먹이라 하라

미가야가 가로되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될진대 여호와께서 나로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

또 가로되 너희 백성들아 다 들을지어다 하니라(열상22:24-28)





 

 


미가야의 투옥은 우리로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그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그것을 말함으로
아합 왕에 의해 투옥되었다.
그는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자가 아닌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는 자였고,
우리는 그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격어야 하리라는 바울의 말을 생각하게 된다.
미가야의 예언은 비록 아합에게는 흉한 예언이었지만
아합에게 구원의 말씀이기도 했다.
만약 아합이 '미가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면 
그의 장래는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합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십자가에 의해 처리된 귀가 없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길하든 흉하든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할 때
모두가 구원의 말씀이 된다.
아합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대신
미가야를 투옥시켰고 결국 그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여호와께서
다른 어떤 것 보다도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신다면서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고 말했다.
손종은 모든 일의 축복의 비결이다.




아가서에 있는영적체험의 지성소 안에서 거하는 단계


보석같은 각주(RSG) 2012-01-25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grace77/36537.html
그분의 부활을 체험한 후에 그분의 십자가를

휘장 안에 살도록 더욱 강하게 그리스도께

부르심받는 서이다 (5:2-6:13)



승천 안에, 곧 하늘에는 하나님의 성소가 있는데,
육체를 상징하는 휘장은 하늘의 
성소를 두 부분으로 나눈다(히 10:20)
하늘의 성소에 이르면, 이미 영적 체험의 절정에 
도달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절정에 이르렀을지라도 여전히 
하늘의 성소의 내소에 있지 않을 수 있다.
이 내소가 하나님 자신인 지성소이다.
지성소와 성소를 나누는 휘장은
그리스도께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둘로 갈라졌지만 (마27:51)
아직 제거되지 않았다.
휘장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
우리는 승천에 이른 후에 마침내 하늘의 성소에 내소가 있으며,
우리는 휘장 안으로 들어가 휘장 안에서,
즉 하나님 자신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휘장은 자아보다도 더 나쁜 육체를 상징한다.
첫 번째 단계 후에 우리가 처리할 대상은 자아이다.
그 후 네 번째 단계에서 우리가 처리할 
대상은 육체이다.
이는 십자가에 대한 전진된 체험을 필요로 하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십자가를 통해 
휘장 안의 지성소에서 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여전히 십자가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두 번째 단계에서도 십자가를 체험하지만,
네 번째 단계에서는 더 깊은 십자가의 체험이 필요하다.
6장 4절은 , " 내 사랑아 너의 어여쁨이 디르사 같고 
너의 고움이 예루셀렘 같고 엄위함이
 가치를 벌인 군대 같구나"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를 디르사와 
예루살렘으로 비유하는데,
이는 그녀가 하나님의 거처가 되었음을 가리킨다.
주님께서는 그녀를 처음 이끄실 때
그녀를 암말 즉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유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그녀를 사론의 수선화,
골짜기와 가시나무 가운데 있는 백합화, 
비둘기, 연기 기둥, 침상, 연, 동산, 
우물이 있는 샘으로 비유하신다.
4절에 있는 '예루살렘'은 새 예루살렘의 상징이며,
이는 그리스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궁극적으로 셩경의 최종 완결인 
새 예루살렘이 될 것임을 가리킨다.
여기에 있는 하나님의 지성소 안에서 
우리는 최고도의 영적 체험을 갖게 된다.






아가서에 있는영적체험의 승천의 단계


보석같은 각주(RSG) 2012-01-25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grace77/36536.html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새 창조로서

승천 안에 살도록 그리스도께 부르심받는 것이다 (36-5:1)



그리스도의 죽으심 뒤에는 부활이 있으며,
그분의 부활을 통해 우리는 새 창조가 된다.
새 창조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산물이다.
그리스도 안과 그분의 부활 안에 
있는 자는 누구든지 새 창조이다.(고후 5:17)
부활과 새 창조의 문제는
그리스도의 승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사실상,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은 하나이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부활 안에 있다면,
우리는 또한 그분의 승천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부활 안에서 산다면
분명 승천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아가서에 잇는 영적 체험의
 세 번째 단계가 승천 안에 살도록
부르심받는 것이라는 증거는 
4장 8절에 있다. "나의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 부터
나와 함께하고 레바논에서 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다 보아라".
여기서 '아마나'는 '진리'를 뜻하고,
'스닐'은 '부드러운 갑옷'을 뜻하며,
헤브몬'은 '파멸'을 뜻한다.
우리가 승천 안에 살 때, 우리는 진리를 갖게 되며,
대적에 대해 승리하게 된다. 
우리가 승천 안에 살때 전쟁이 끝나고,
승리를 쟁취했으며, 대적이 파멸되었음을 깨닫는다.
사자 굴과 표범산은 
사탄과 그의 악한 세럭들을 상징한다.
이 악한 권세들은 공중에 있지만,
우리가 승천 안에 산다면 우리는 그들보다
훨씬 높은 하늘에 있다.
우리가 승천 안에 살 때 자동적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새 창조이다
얼마나 놀라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