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복음...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입니다.
이 아들은, 육체에 따라 말하자면 다웟의 씨에서
나셨고, 거룩한 영에 따라 말하자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셧습니다. 이분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롬 1:1, 3-3)
만물은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하고 또 하나님을
통하여 존재하므로, 하나님께서 많은 아들들을
영광 안으로 이끄시려고...(히 2:10)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을 보았다
이 복음은
아들의 자격에 대한 복음이다.
아들의 자격은
인정됨, 부활, 의롭게됨, 거룩하게됨, 변화,
같은 형상을 이룸, 영광스럽게됨, 나타남, 등을 포함한다.
우리는 현재 인정됨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즉,우리는 부활의 능력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들로 인정되어 가고 있다.
아들의 자격은 몸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 되려면
받드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어야 한다.
로마서를 읽을 때 우리
유죄판결, 의롭게 됨, 거룩하게 됨, 영광스럽게 됨,
등에는 주의를 기울일지 모르지만,
아들의 자격, 변화, 같은 형상을 이룸, 몸의 생활
등의 문제들은 소홀히 할지도 모른다.
로마서의 중심 사상은
유죄 판결이나 의롭게 됨이 아니며
거룩하게 됨이나 영광스럽게 됨도 아니다.
로마서 1장 1절과 3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분별되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복음의 중심 개념이
하나님의 아들과 관계있음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의도는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성경에 따른면 아들의 자격의 영적 의미는
아들이 아버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는 그분 자신을
단체적으로 표현하려는 것이므로,
그분은 많은 아들들을 갖기를 갈망하신다.
그분은 단지 독생자 안에서의
개인적인 표현을 원하시지 않고
많은 아들들 안에 있는 몸의 표현,
즉 단체적인 표현을 원하신다.
요한복음 1장 18절은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었을나,
아버지의 품속에 계시는 독생자이신
그분께서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셨다"라고 말한다
독생자 안에 있는 하나님의 표현도
경탄할 만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많은 아들들 안에서의 표현을 갈망하신다.
하나님의 의도는
독생자를 많은 형제들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 전에는 하나님께 다만 한 아들만 있었다.
즉 그분께는 개인적인 표현만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지금
하나님께는 수많은 아들들,
즉 단체적인 표현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을 거룩하게 되도록 선택하신 것은
그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여
신성한 아들의 자격에 참여하게
하시려는 목적을 위한 것이다.
만일 우리가 멸망에서 벗어나서
'천당'에 가는 것에 대히서만 말한다면,
우리는 가장 빈곤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주님을 믿으면
그들의 죄들이 용서받고,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구속받고
의롭다 함을 얻으며,
하나님과 화해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쁘게 받으신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들은 또한 그와 동시에 영 안에서 거듭나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을 갖게되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 안에 거하시면서 매일
그들을 새롭게 하시고
매 순간 그들을 변화시키시며,
이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형상을 이루고 결국 생명의 성숙에
이르고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완전히 영광스럽게 된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지체들로서
함께 동역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조성한다.
이 몸은 그리스도의 증거이자 표현으로서
이 땅에서 지방 교회들로서 실지적으로 표현된다
이것이 로마서에 있는 복음이다.
로마서는 죄들의 용서로 시작해서
거룩하게 됨과 변화와
그리스도의 몸의 조성을 거쳐,
결국 교회들 안에서 교회생활을 하는 것에
이르는 하나님의 완전한 복음에 관한것이다.
아침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중에서
혼 생명이 참으로 잃어버린 바 된 위치에 놓여질 때
세상의 어떤 사물도 믿는이의 마음을 요동케 할 수 없다.
혼 생명은 본래 세상에 속했기 때문에 혼 생명은 세상적인 사물을 버리기를 꺼려한다.
오직 믿는이들이 진심으로 혼 생명을 죽음에 넘기기를 원할 때
그는 마음에 요동함 없이 산상에서의 주 예수님의 가르침을 준행할 수 있다.
비록 우리가 산상수훈에서 주 예수님이 십자가의 기능을 언급하신 것을 볼 수 없지만,
믿는이가 진정 주님과 함께 죽은 체험―죄에 대하여 죽었을 뿐 아니라
「이미 죽은」 근거를 가지고 혼 생명을 거절함―을 가지고 있다면
주저함이 없이 산상수훈을 따를 것이다.
믿는이의 혼 생명 안에 십자가의 깊은 역사가 없다면,
비록 외적으로는 산상수훈을 좇아 행할 수 있을지라도
그는 안팎이 일치되지 않는다...
영에 속한 생명을 얻는 조건은 바로 무언가를 잃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얼마만큼 얻어야 부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부할수록 무언가를 더 많이 잃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얻은 것」으로 측정할 것이 아니라 「잃은 것」으로 측정해야 한다.
우리의 참된 분량은 남은 것이 얼마인가에 있지 않고 부어진 술이 얼마인가에 달렸다.
왜냐하면 가장 많이 잃어버린 자가 가장 많은 사람에게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능력은 사랑의 희생에서 보여지는 것이다.
만일 우리 마음이 아직 세상 재물을 사랑하는 것에서 격리되지 않았다면,
우리의 혼 생명은 아직 십자가 안에 있지 않은 것이고
우리가 아직 십자가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워치만 니
[영에 속한 사람, p.230-231 한국복음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