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베드로에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러라, 너는 나를 실족하게
하는 자다. 왜냐하면 네가 생각을 하나님의 일에 두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에 두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십시오." 마 16:23-24
이 메시지에서 나의 부담은
해석이 아니고 적용이다.
역사를 통해 볼 때 교회는 유대교나 영지주의에 의해
손상을 입은 것이 아니라,
주로 자아에 의해 손상을 입었다.
마르틴 루터는 언젠가 말하기를 그가 교황을 두려워하지만,
그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더 강한 교황,
즉 자아를 더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어떤 것도 자아보다 더 교회의 건축을
손상시키고 좌절시키는 것은 없다.
자아는 혼 생명의 체현이고 생각을 통해 표현된다.
따라서 자아와 혼 생명과 생각은 하나안의 셋이다.
이 셋의 배후에는 교회를 손상시키기 위해 자아를 조종하는 사탄이 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을 위해 이러한 말씀을 경고로 받아야 한다.
내가 여러분 모두에게 사랑으로
정직하게 한마디 하는 것을 하락하기 바란다.
실족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실족하게 할지라도
여러분은 항상 먼저 견뎌야 한다.
나는 한편으로 실족하게 하는 모든 것들을 책망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여러분이 실족한 것에 대해 어떤 변명도
있을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 안에 있지 않다면 실족할 수 없다.
자아를 감금하는 자아부인의 열쇠를 사용한다면,
실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실족하는 이유는 자아가 너무 열려서 우세하기 때문이다.
자아의 열린 문을 통해 사탄은 나오고 우리는 실족한다.
아마도 어떤 문제에 있어서는 교회가 틀릴 수도 있지만, 교회가 틀렸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말라...
교회가 옳든 그르든 그것은 여전히 교회이다.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어떤 일이나 누군가에 의해 실족했다
할지라도 여러분 자신을 위해 어떤 변명도 하지 말라.
이것은 교회의 건축을 좌절시킨다.
마태복음 16장은
교희의 건축과 음부의 문들과 천국의 열쇠들에 관해 말한다.
교회는 문들을 잠그는 열쇠들이 없이는 건축될 수 없다.
이러한 열쇠들을 사용하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교회는 아직도 건축되지 못했다.
우리는 건축에 관해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지만,
우리를 만지는 어떤 일들이 발생할 때에는 자아가 열린다.
우리가 음부에게 열리기 때문에 음부로부터 어떤것,
곧 사탄이 나온다.
자아를 걸어 잠그는 자아 부인의 열쇠를 얼마나 사용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실족하지 않는 길은 자아를 부인함으로서
자아를 걸어 잠그는 것이다.
실족하지 하지 않는 이들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자아의 기원은
생각 속에 사탄의 사상의 주입된 것이다....
자아는...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한 혼이다....
혼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일 때 그 혼은 즉시 자아가 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적이라면 자아 안에 있다.
우리가 자아에 대한 이상을 보았다면
자아가 무엇인지를 보았을 것이다.
자아는 하나님에게서 독립을 선포하는 혼이다
이 이상을 본다면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오히려 다음과 같이 말할것이다.
"나는 항상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하든, 어떠한 사람이든 하나님을 의지해야한다."
자아는 독립적인
어떤 것이기 때문에 몸의 건축에 가장 큰 문제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할 뿐 아니라 몸,
곧 형제자매들을 의지해야 한다.
형제자매들로 부터 독립적일 때 우리는 자아,
즉 독립적인 혼 안에 있게 된다.
오늘 우리가 몸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는 것과 똑 같다.
이것은 교리의 문제가 아니라 체험의 문제이다.
여러분의 체험을 살펴보면 형제자매들로부터
독립적일 때 하나님으로부터도
독립적이라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형제자매들로부터 고립되어 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도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