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기본진리
제1과 성경
우리가 구원받은 뒤에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성경을 알아야 한다. 이 천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한 가지 사실을 인식해 왔는데, 그것은 아무도 성경을 모르고서는 주님을 잘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적 유산은 한편으로 보이지 않는 성령이고, 또 한편으로 성경이다. 한편으로 성령은 우리 안에 있고, 다른 한편으로 성경은 우리 밖에 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은 이 두 면에 있어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안에 성령만 있고 밖에 성경을 갖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쉽사리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밖에 성경만 있고 안에 성령을 갖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활력이나 생기가 없이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마치 안의 추진력과 밖의 철로를 필요로 하는 기차와 같다. 이 두 방면-안과 밖의 방면-이 함께 협력할 때 기차는 움직일 수 있고, 심지어 매우 잘 달리게 된다. 이것은 우리 안에 있는 성령과 우리 밖에 있는 성경에 대해서도 분명한 사실이다. 만일 당신이 안에는 성령으로 채워지고 또한 밖으로 성경을 안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신은 생생하고도 안정되며, 또 활기차고도 정확한 사람이라 불리 울 수 있을 것이다.
1. 성경의 기원
1)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임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이다(딤후 3:16). 이것은 성경이 사람의 사고나 사람의 생각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며, 그 보다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각과 말씀을 그분의 영을 통해서 기자의 속으로, 또 기자로부터 호흡해 내신 것임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분의 냄새를 전달해 준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가장 큰 즐거움, 곧 우리의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의 호흡이신 말씀을 통해서 매일 그분을 접촉하고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2)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통하여 자신의 말씀을 호흡하신 것이므로 성경의 어떤 말씀도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이 없다.「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했다」(벧후1:21)는 말씀은 이중의 의미가 있다. 첫째는 사람이 그 영의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사람이 하나님께 받아 말했다는 것이다. 사람이 말하도록 인도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었고, 또한 하나님 속으로부터 말한 것은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입을 통해서 사람 속으로부터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사무엘하 23장 2절은「주의 영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은 다윗이 한 것이었다. 그는 그가 우리에게 한 말이 하나님의 영이 자신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며, 그의 혀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했다. 성령이 그를 통하여 말할 뿐만 아니라 그의 혀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고, 그의 입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나왔던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다.
3) 성경은 신언자들과 아들 안에서 하신 하나님의 말씀임
구약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 안에서 말씀하신 것이고, 신약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안에서 말씀하신 것이다(히 1:1-2). 그러므로 구약에서 선지자들로 말씀하셨든지 신약에서 주 예수로 말씀하셨든지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이며, 모두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다.
4) 성경은 성령의 계시임
「그러나 실재의 영께서 오시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모든 실재 안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스스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듣는 것만 말씀하시며 장차올 일들을 여러분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요 16:13). 여기서 주님의 말씀도 또한 그 영이 오신 후에 그분의 제자들이 말하고 기록한 것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열려진 것임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주님의 말씀은 그분이 승천하신 후에 그분의 제자들에 의해 쓰여진 신약의 모든 책들이 성령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며, 그것들의 거룩한 권위가 주님에 의해 인정되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2. 성경의 기능
1) 주 예수에 대하여 증거함
성경의 첫 번 째 기능은 주 예수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다(요 5:39). 주 예수님은 성경의 주제이며 내용이고, 성경은 주 예수에 대한 설명이자 표현이다.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시며, 성경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에는 그 실제로서 산 말씀이신 주 예수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단지 교리와 공허한 문자에 불과하다. 산 말씀이신 주 예수님은 그분의 표현으로서 기록된 말씀을 가지셔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은 비밀스럽고 알기가 어려우며 모호하여 붙잡기 힘든 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성경 안에 분명하고 명확한 설명과 명백한 계시가 있으므로 우리는 주 예수님을 실제적으로 알고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2)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함
성경의 기능에는 두 방면이 있다. 한 방면은 주님을 위한 것이고, 다른 방면은 우리를 위한 것이다. 한편으로 성경은 주 예수를 증거하고, 다른 한편으로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은혜를 받고 건축되게 한다. 우리에게 대한 성경의 첫번째 기능은 우리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는 것이다(딤후 3:15).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방법과 사람이 믿음으로 구원 얻는 방법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길을 알게 한다.
3) 사람을 거듭나게 함(벧전1:23)
성경은 사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사신 하나님의 생명을 담고 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성경의 말씀을 우리 안에 받아들일 때 그것은 생명의 씨와같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 안에 심는 것이다. 이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고 거듭나게 된다.
4) 믿는 이들의 영적인 젖이 됨(벧전 2:2)
우리가 처음 구원받을 때에는 영적인 일에 대해서 충분하고 분명한 이해가 없다. 그러므로 새로 거듭난 믿는 이들은 순전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는 갓 태어난 아이들처럼 성경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영적 생명은 자랄 수 없고, 그는 계속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로 머물게 된다(고전 3:1-2).
5) 믿는 이들의 생명의 떡이 됨(마 4:4)
마치 우리의 육신의 생명이 영양분을 필요로 하듯이 영적인 생명 또한 영양분을 필요로 한다. 영적 생명의 영양분은 성경의 말씀으로만 공급될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생생하고 강하게 되려면 우리는 떡에만 의존할 수 없고,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 즉 성경의 말씀에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음식으로 받아서 그것을 먹어야 하고(렘 15:16), 심지어 성경의 말씀을 음식보다 더욱 중하게 여겨야 한다(욥 23:12하).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영적 생명은 자랄 수 없다.
6) 믿는 이들을 온전케 함
성경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인내와 격려와 소망을 줄 수 있다(롬 15:4). 또한 성경은 우리가 훈계를 받고 깨어 있어 이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우리에게 경고가 되는 많은 것을 기록하고 있다(고전 10:11). 그러므로 거듭난 이후로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로 온전케 한다(딤후 3:16-17).
3. 성경의 저자와 기록 장소와 기록 연대
1) 구약
구약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39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들은 적어도 32명이다. 그들 중에는 학자와 정치가와 군인이 있었고, 또한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가 있었으며, 목동과 농부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이스라엘 사람이었고 몇몇은 이방인이었다. 구약은 여러 장소에서 기록되었는데, 어떤 것은 시내 산에서 기록되었고, 어떤 것은 광야에서, 어떤 것은 가나안 땅에서, 어떤 것은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어떤 것은 이방 땅에서 기록되었다.
2) 신약
신약은 마태복음으로부터 계시록까지 27권으로 되어 있다.
마태복음은 마태가 기록하였다. 마태는 낮은 신분의 세리였지만 그는 주님의 열 두 사도 중 하나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의 복음서는 아마도 유대 지방에서 쓰여졌을 것이다. 마가복음은 마가가 기록하였다. 마가는 매우 평범한 제자였다. 그의 복음서는 아마도 로마에서 쓰여졌을 것이다. 누가복음은 누가가 기록하였다. 누가는 이방인 의사였다. 그의 복음서는 이방 땅에서 기록되었을 것이다. 요한복음은 요한이 기록하였다. 요한은 교육받지 못한 갈릴리 어부였지만 주님의 열 두 사도 중의 하나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의 복음서 또한 이방 땅에서 기록되었을 것이다. 사도행전도 의사 누가가 기록하였다. 이 책도 또한 이방 땅에서 쓰여졌을 것이다. 로마서에서 히브리서까지는 모두 열 네 권의 책인데, 이것들은 모두가 바울에 의하여 쓰여졌다. 그의 모든 책들은 이방 땅에서 기록되었고, 어떤 책들은 로마의 감옥에서 쓰여졌다.
야고보서는 야고보가 기록하였다. 야고보는 주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였다(갈 1:19). 그는 또한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의 기둥이었지만(갈 2:9), 유대교의 배경을 많이 지니고 있었다. 그의 서신은 아마도 예루살렘에서 쓰여졌을 것이다. 베드로 전서와 후서는 베드로가 쓴 것이다. 베드로 역시 교육받지 못한 갈릴리 어부였지만 열 두 사도 중 첫 번 째 사도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의 두 서신은 모두가 이방 땅에서 기록되었을 것이다. 요한의 첫 번 째와 두 번 째와 세 번 째 서신은 요한이 쓴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이방 땅에서 기록되었다. 유다서는 유다가 기록하였다. 그도 또한 주님의 육신의 형제였다(유 1, 갈 1:19). 그의 서신은 유대 지방에서 쓰여졌을 것이다. 계시록도 또한 사도 요한이 기록하였다. 이 책은 아마도 밧모섬이라고 하는 이방 땅에서 기록되었을 것이다.
3) 기록 연대
구약의 처음 몇 권-모세 오경-은 거의 기원 전 1500년경에 기록되었으며, 마지막 책인 말라기는 기원 전 400년경에 쓰여졌다. 그러므로 구약 39권의 전부가 완성되기까지는 1100여 년이 소요되었다. 신약의 첫 번 째 책인 마태복음은 서기 37년과 40년 사이에 기록되었으며, 마지막 책인 계시록은 서기 94년과 96년 사이에 쓰여졌다. 그러므로 신약은 50년 이상에 걸쳐 완성되었다. 따라서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성경 전체가 완성되는 데에는 1500년 내지 1600년간의 시간 간격이 있었다.
4. 성경의 완성 - 성경의 권위에 대한 인정
1) 구약
A. 모세 오경
구약에 있는 모세가 쓴 다섯 권의 책은 오랜 동안 유대인들에 의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책이며 절대적인 거룩한 권위를 가지고 있는 책이라고 인정되어 왔다. 그것은 이 책들이 하나님에 의하여 계시되었고, 모세에 의해 기록되었으며, 조상들에 의하여 여러 세대 동안 전해져 왔기 때문이었다.
B. 이외의 책들
구약의 다른 책들은 그 가치와 권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들에 의해서 하나씩 하나씩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음을 인정받았다. 여러 세대를 거쳐 오는 동안 하나님의 백성 중 어떤 이들 이 모세 오경에 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자 하는 영감을 받았다. 그들이 기록한 책들은 상당한 기간의 시험이 지난 후, 하나님의 백성들에 의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임이 인정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글에 권위와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원전 457년에 율법 학자 에스라는 모세 오경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었던 권위 있는 기록들을 모아서 구약의 형태로 편성하였다.(그러나 두 권의 책-느헤미야, 말라기-은 그 당시 기록되지 않았었으므로 제외되었다) 권위 있는 유대의 역사학자 요세프스(Josephus)와 이방의 역사학자들이 이 사실을 입증한다. 에스라 이후 유대인 중에 대공회라고 불리우는 일단의 율법학자들이 있어서 그들이 편집과 검토를 했는데 이 일은 기원전 400년에 완성되었다. 그들이 확정한 구약은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책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기원전 400년에 구약의 기록이 완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구약이 확정되고 일반적으로 인정되었던 것이다. 어찌되었든 70명의 학자들이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했던 기원 전 277년 까지는 구약의 모든 책들의 확립되었음에 틀림없다.
2) 신약
A. 복음서
복음서와 구약은 초기의 교회 집회에서 자주 읽혔다. 그러므로 신약의 책들 가운데서 사복음서는 교회가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B. 이외의 책들
사도들이 지나간 후, 어떤 이들이 자신들을 다른 사도들과 동등하게 생각하여 책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혼돈이 발생했다. 그러므로 초기 교회의 인도자들, 소위 교부들은 사도들의 모든 기록을 모아서 그것들을 복음서와 같은 위치에 두었다. 폴리갑의 순교가 있은 바로 뒤에 모든 교회들은 히브리서와 야고보서와 베드로 후서와 요한 이삼서와 유다서와 계시록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그들의 신약에 대한 관점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이 일곱 책이 성경에 포함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견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 일곱 권의 책이 분명히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쓰여 졌고 거룩한 권위와 가치가 있었으므로 오랜 기간의 시험이 지난 뒤인 주후 397년에 아프리카 북부 카르타고에서 열린 회의에서 각 교회의 인도자들은 이 일곱 권의 책을 신약의 일부로써 인정하였다. 그들은 또한 신약이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것과 같이 27권으로 이루어짐을 선포했다. 그러므로 카르타고 회의가 열었던 주후 397년에 이르러 신구약을 포함하는 완전한 성경이 하나님의 백성들에 의해 인정되고 확증되었다.
5. 성경의 주제와 중심사상
성경의 주제는 “하나님은 계획하시고 창조하셨으며, 사탄은 반역하고 손상시켰고, 사람은 타락하고 잃어버린바 되었으며, 그리스도는 구속하시고 건축하신다.” 라고 말할 수 있고 성경의 중심사상은 위대한 비밀(엡5:32)인 그리스도와 교회이다.
질문
1) 성경의 기원은 무엇인가?
2) 성경의 기능은 무엇인가?
3) 성경의 주제와 중심사상은 무엇인가?
중심요절: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것이며, 가르치고 책망하고 바로잡고 의로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
<출처: 진리공과 1단계 1권>
그동안 교회생활 하면서
항상 짐 같이 생각되는 것은 복음과 목양입니다.
나름 한다고 하지만 항상 부족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시편 23편을 말씀을 통해
목양이 저에게 조금은 구체적이고 주관적으로 다가 온 느낌입니다.
목양의 사역은 너무나 중요하다고 합니다.
몸을 건축하고 신부를 예비함으로
다음 시대에서 그리스도께서 왕이되시도록 하는
하늘에 사역과 협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목양한다면 교회 안에 큰 부흥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교회 가운데 목양의 분위기가 많다고 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목양하는 사람이 되도록 목양을 받지 못해서 일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의 베드로는 어떤 사람입니까?
주님을 3번씩이나 부인하고 주님을 배반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앞장서서 제자들을 이끌고 고기잡으로 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주님이 직접 목양하러 오셨습니다.
고기도 잡게 하고, 생선과 떡으로 조반도 먹이고,
또 친근하게 "그대가 나를 더 사랑하십니까?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어린양들을 먹이고, 내 양들을 목양하십시오" 라고
교회를 목양하도록 위임을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주님의 직접적인 목양을 받은 베드로는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목양은,
주님 자신을 향한 베드로의 사랑을 회복시키고 계셨고,
교회를 목양하는 부담을 가지게 하셨고,
심지어는 순교하도록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주님의 목양을 받은 베드로는 깊은 인상을 받고
그의 첫번째 서신에서,
우리가 길 잃은 양과 같이 목자없이 방황하였으나
이제는 혼의 목자이신 주님께 돌아왔다고 합니다 (벧전2:25).
또 " 여러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라"고 합니다 (벧전5:2).
그는 주님의 목양을 받고 목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놀라운 목양으로 베드로는 변했습니다.
목양은 이렇게 주님의 일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우리는 혼의 목자이신 주님의 목양이 필요합니다.
특히 복잡하고 문제 투성이인 우리의 혼이 목양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혼의 목자이신 주님께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먼저 목양 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목양할 수 있는 힘과 부담이 없습니다.
아니면 목양을 한다고 해도,
오히려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마음을 상하게 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께 목양 받는 다는 것은 무었이겠습니까?
시편 23편에 5단계의 주님의 목양을 볼 때,
우리가 어느 상황과 형편과 장소와 위치에 있던지
그 때마다 주님을 누리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어린 아이 같든지,
의의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든지,
죽음의 그늘의 골짜기에 있는 사람이든지,
대적들의 목전에서 전쟁할 수 있는 사람이든지,
평생에 하나님의 집에 거하기를 구하는 사람이든지...
우리가 주님을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혼을 소생시키시는 분으로, 우리의 의와 길로,
우리를 보호하시는 지팡이로, 안내하고 훈련하고 부축하는 막대기로,
우리의 선하심(은혜)와 인자하심(사랑) 이신 분으로,
누리고 체험하는 것이 우리가 주님께 목양 받는 것입니다.
목양을 하고자 하는 부담 만으로는 아직 부족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목양을 하기 까지는
베드로를 찾아오신 주님의 목양이 필요합니다.
우리 혼이 소생되어야 합니다.
또 다른 필요는 우리가 목양하는 것입니다.
양들을 목양 할 때 우리는 또 목양 받습니다.
이번 주에 기독교에 있는 어떤 자매님을 만났는데,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서를 가지 신 분였습니다.
제가 안 것은 그 분이 저를 많이 목양 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목양하는 분위기가 다시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어느 가정에 10년 동안 한 번도 심방을 오지 않아서
그 가정이 이사가면서 형제님들을 초대한 일이 있다고 합니다.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웃으며 얘기 하였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오늘,
그대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들을 목양하십시오" 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