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기본진리 제 2과 하나님의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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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과 하나님의 계획

성경의 육십 육권 속에 있는 거룩한 계시는 지극히 심오하다.

1. 하나님의 선한 기쁘심 - 그분의 갈망 (엡1:4,5,9 갈4:5)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계획을 분명히 계시한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의 서신 가운데서 두 권의 책 -로마서와 에베소서-을 귀하게 여긴다. 로마서는 죄인, 즉 타락된 인간인 우리의 상태에서 시작되지만, 에베소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끌어 들임으로 시작된다. 로마서 1장에서는 죄인들인 우리의 상태를 볼 수 있으나, 에베소서 1장에서는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있는 무엇인가를 볼 수 있다.「선한 기쁘심」이라는 구절이 에베소서 1장에서 두 번이나 사용되었다(5, 9절).

하나님에게는 선한 기쁘심이 있다. 이 선한 기쁘심은 그분의 마음의 갈망이다. 영원 전에 하나님은 홀로 계셨다. 우리는 그 영원 전이 어떠했는지를 상상할 수 없으나, 에베소서 1장에서는 우주가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에게 마음의 갈망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분에게는 선한 기쁘심이 있었다. 그분이 원하셨던 것은「아들의 자격」(갈4:5)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될 수 있다. 아들의 명분이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이다. 에베소서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들의 명분에 이르도록 예정하셨다고 말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예정이 구원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에베소서에 따르면 영원 전에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있었던 첫 번째 생각은 구원이 아니었다. 그분의 첫 번째 생각은 아들의 자격이었다. 하나님은 그분의 피조물이 타락할 것을 미리 아셨다. 타락 때문에 구원의 계획이 있었다. 그러므로 구원은 아들의 자격을 위하여 뜻한바 된 것이다. 하나님의 갈망은 많은 아들들을 낳는 것이었다.

로마서 8장 29절에서는 하나님의 독생자가 많은 형제들 가운데 맏아들이 되었다고 말한다. 요한복음 1장 18절과 3장 16절에서의 하나님의 독생자는 부활을 통하여 맏아들이 되었다(행 13:33). 맏아들은 다른 아들들이 뒤따른다는 것을 내포한다. 하나님의 맏아들인 그리스도에게는 수백만의 형제들이 있다. 이 모든 아들들은 하나님의 맏아들의 형제들이다(요 20:17, 히 2:10-12). 하나님의 예정의 목표는 구원도 천당도 아닌 아들의 자격이다(엡 1:5).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은 이 시대에서뿐 아니라 영원 가운데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수많은 아들들을 갖는 것이다.

2. 하나님의 목적 - 그분의 계획(엡1:9)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에 근거하여 그분에게는 목적이 있었다(엡 3:11). 하나님의 목적은 그분의 기쁘심에 따라 만들어졌다. 에베소서 1장 9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한 기쁘심을 세우셨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분이 갈망하신 것에 따라 계획을 세우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선한 기쁘심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계획을 세우셨다.

3. 하나님의 경륜 - 그분의 행정적인 배열(딤전 1:4)

경륜(Economy)이란 헬라어 오이코노미아(oikonomia)에서 영어화된 단어이다. 그것은 가정의 법, 또는 가정의 행정을 뜻한다. 디모데 전서 1장 4절에서는 이 단어가 배열, 계획, 행정, 경영으로 쓰였다. 구약에서 바로의 집에는 어떤 집안 관리와 배열이 필요했으며 요셉은 그 경영을 담당하는 위치에 앉게 되었다. 그가 한 일은 주로 풍성한 식량을 배고픈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었으며(창 41:33-41, 54-57), 나누어 주는 그것이 분배였다. 바로의 집에서의 경영은 풍성을 백성들에게 분배하는 경륜이었다. 신약에서 이 단어는 주로 바울이 사용했다. 그러나 같은 단어가 누가복음 16장 2절부터 4절에서 주님이 청지기 직분에 대하여 언급하실 때 사용되었다. 요셉은 바로의 청지기로 생각될 수 있으며, 그의 임무는 청지기 직분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의 청지기 직분은 바로가 소유한 풍성한 식량을 분배하는 것이었다.

1) 그분의 경륜
이「경륜」이라는 단어는 주로 어떤 사람의 풍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계획, 행정, 경영을 의미한다(엡 3:2, 1:9, 3:9). 바울은 하나님에게 그분의 풍성으로 공급해야 할 대가족이 있다고 생각했다. 에베소서 3장 8절에서 그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분배하도록 위임하셨다고 말한다. 이 풍성은 하나님의 가정 안에 있다. 측량 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분배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사도들(베드로, 요한, 야고보, 바울)을 청지기로 임명하셨다. 분배란 하나님의 가정 관리임을 결코 잊지 말라. 하나님에게는 대가족이 있다. 이 가정에서 그분은 그분 자신을 그분의 가족들에게 분배하는 어떤 행정과 계획과 경영이 필요하다. 모든 시대를 통하여 그분은 그분 자신을 그들 안에 나누어 주심으로써 그분의 아들들을 만드신다.

2) 그분의 분배함
에베소서 1장 10절과 3장 9절에서 오이코노미아(oikonomia)라는 단어는 가정 관리에 대해 쓰였는데, 그것은 그분 자신을 그분의 택한 백성들 안에 분배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에베소서 3장 2절, 골로새서 1장 25절, 고린도 전서 9장 17절에서는 같은 단어가 바울의 청지기 직분을 언급한다. 청지기 직분이라는 단어는 분배함의 의미로 쓰였다. 청지기라는 단어는 베드로 전서 4장 10절에서 사용되었는데, 그곳에서는 우리 모두가 선한 청지기가 되어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분배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풍성한 각양 은혜는 그것을 분배하는 많은 청지기를 필요로 한다. 이 분배하는 일이 그들의 청지기 직분이다. 오늘날 우리의 청지기 직분은 바울의 것과 똑같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이요, 그분의 계획이요, 그분의 행정이다.

4.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엡 1:4,5)
하나님에게는 선한 기쁘심이 있었고, 그분의 선한 기쁘심을 따라 그분은 계획을 세우셨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를 선택하셨는데, 그것은 세상의 기초를 세우기 전의 일이었다(엡 1:4, 벧전 1:1-2). 우리는 그분의 마음의 갈망이요, 그분의 선한 기쁘심이다. 하나님의 기쁘심은 달이나 해나 하늘이나 땅에 있지 않다. 그분을 만족시키는 것은 그분의 택한 백성이다. 우리는 그분의 선한 기쁘심이요, 그분의 계획은 우리를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선택하신 후에 하나님은 우리를 예정하셨다(엡 1:5, 롬 8:30). 다비(Darby)의 새 번역 성서에는 에베소서 1장 5절에 있는 이「예정했다」는 단어를「미리 점찍어 놓았다」로 번역했다. 세상의 기초를 놓기 전에 여러분을 점찍어 놓았다는 것을 깨달은 적이 있는가? 여러분은 하나님의 손을 벗어날 수 없다. 5. 하나님의 창조(창1:26) 하나님의 선한 기쁘심, 그분의 계획(배열, 행정, 경륜), 그분의 선택, 그분의 예정 후에 하나님은 창조를 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기록은 매우 간결하다. 겨우 두 구절뿐이다. 창세기 1장 26절은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고, 다음 구절은 모세의 기록이다. 이 두 구절 속에 세 가지 중요한 요점이 들어 있다.

1) 거룩한 삼일성
엘로힘(하나님)이라는 단어는 복수이며, 하나님은 그분의 대화에서「우리?와「우리의」라는 대명사를 사용한다.「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하나님을 가리키는 그 대명사는 복수이다. 이것이 거룩한 삼일성을 내포함을 깨닫기는 쉽다. 첫째로 거룩한 삼일성은 사람의 창조를 생각하기 위하여 회의를 열었다. 다른 것들을 창조하는 데 있어서는 그러한 대화가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창조에 있어서 사람은 하나님의 목적의 초점이었다.

2)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된 사람의 창조 두 번째로,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어졌다. 창세기 1장 26절에서는「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말한다. 형상은 내면적인 것을 의미한다. 모양은 밖의 표현을 말한다. 여러분은 골로새서 1장 15절을 언급할지 모른다. 그곳에서는 그리스도를「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 밖의 모양을 가질 수 있는가? 그것은 비밀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형상을 따라서 창조하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요 비밀이다. 심지어 타락된 후에도 사람은 여전히 기묘하다(시 139:14). 우리는 기묘한 존재이다.

3) 하나님의 표현을 위하여 세 째로, 사람은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형상과 모양은 둘 다 표현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을 따라 그분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그분은 거룩한 생명을 사람 안에 넣지 않으셨다.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실 때까지는 거룩한 생명이 창조된 사람 속에 부어지지 않았다. 이제는 그분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된다(요 3:16).

4) 세 부분으로 된 사람 하나님은 어느 날 그분이 사람 속에 들어가시고 사람은 그분 자신을 받게 되리라는 의도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로마서 9장에서는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이 하나의 그릇임을 계시한다. 컵이 물을 담는 그릇인 것처럼, 사람은 하나님을 담는 그릇으로 만들어졌다. 창세기 2장 7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만들었는지를 말해준다. 먼저 그분은 흙으로 사람의 몸을 지으셨다. 그 후에 그분은 흙으로 된 이 몸의 코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 넣으셨고, 사람은 산 혼이 되었다. 여기 이 한 구절에 몸과 혼과 생명의 호흡이 있다. 창세기 2장 7절에 나오는 호흡에 대한 히브리어 단어가 잠언 20장 27절에서는「영」으로 번역된다. 그곳에서는「사람의 영은 여호와의 등이라」(축어역)고 말한다. 이것은 아담 속으로 들어간 그 생명의 호흡이 사람의 영이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만드는데 두 가지 재료가 사용되었다. 즉 흙과 생명의 호흡이다. 흙은 몸이 되었고, 생명의 호흡은 영이 되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졌을 때 한 가지 부산물이 나오게 되었는데 그것이 혼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 5장 23절에서 사람이 세 부분, 즉 영과 혼과 몸으로 되었다고 말한다.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을 따라 자기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담을 수 있게 한 것이다.

5) 중요한 부분 - 사람의 영 비록 사람이 창조될 때 사람에게 하나님의 생명은 없었지만, 하나님은 영을 가진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사람 속에는 영이 있고」(욥 32:8) 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물질적인 음식을 받도록 입과 위를 가진 우리를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받을 수 있는 영을 가진 우리를 창조하셨다. 하나님을 받는 우리의 수신기는 우리의 영이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서 주 예수님은「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실제로 예배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오직 영만이 영을 예배할 수 있다. 하나님 자신이 영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로 그분을 예배할 수 있게 하는 분명한 목적을 위하여 영을 가진 우리를 창조하셨다. 그분께 예배하는 것은 그분을 접촉하고 그분과 대화하고 그분을 받는 것을 포함한다. 그분은 우리의 영 안에 들어옴으로써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 로마서 8장 16절에서는, 그 영이 우리 영과 더불어 증거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주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의 영이 우리 영 안에 들어온다는 뜻이다. 고린도 전서 6장 17절에서는「주와 합하는 자는 한영」이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과 사람의 영이 있다. 우리가 주 예수를 믿을 때 이 거룩한 하나님의 영은 우리 영 안에 들어오신다. 하나님의 목적은 아들의 자격이고, 아들의 자격은 하나님 자신을 우리 안에 분배함으로 이루어진다. 이 분배함은 우리의 영 안에 있다. 요한복음 3장 6절에서는「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그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말한다. 여기 다시 두 영이 있다. 거듭나는 것은 우리 영 안에서 그 영이신 하나님으로 거듭나는 것이지 우리 부모로부터 거듭나는 것이 아니다. 스가랴 12장 1절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의 세 가지 중요한 것이 하늘과 땅과 사람의 영이라고 말한다. 거기에서는 여호와를「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사람의 영을 지으신 자」라고 말한다. 하늘은 땅을 위해 있고, 땅은 사람을 위해 있고,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있다. 우리는 그분의 형상을 따라 그분의 모양대로 그분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우리에게는 그분을 받을 수 있는 영이 있다. 거룩한 영이신 그분은 우리 사람의 영 안에 들어와, 우리를 그분의 표현이 되도록 그분의 아들들로 만드셨다. 이것이 그분의 계획이다. (출처: 성경의 기본계시)


성경의 기본진리 제 1과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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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기본진리
 
제1과 성경
우리가 구원받은 뒤에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성경을 알아야 한다. 이 천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한 가지 사실을 인식해 왔는데, 그것은 아무도 성경을 모르고서는 주님을 잘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적 유산은 한편으로 보이지 않는 성령이고, 또 한편으로 성경이다. 한편으로 성령은 우리 안에 있고, 다른 한편으로 성경은 우리 밖에 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은 이 두 면에 있어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안에 성령만 있고 밖에 성경을 갖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쉽사리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밖에 성경만 있고 안에 성령을 갖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활력이나 생기가 없이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마치 안의 추진력과 밖의 철로를 필요로 하는 기차와 같다. 이 두 방면-안과 밖의 방면-이 함께 협력할 때 기차는 움직일 수 있고, 심지어 매우 잘 달리게 된다. 이것은 우리 안에 있는 성령과 우리 밖에 있는 성경에 대해서도 분명한 사실이다. 만일 당신이 안에는 성령으로 채워지고 또한 밖으로 성경을 안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신은 생생하고도 안정되며, 또 활기차고도 정확한 사람이라 불리 울 수 있을 것이다.

1. 성경의 기원
1)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임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이다(딤후 3:16). 이것은 성경이 사람의 사고나 사람의 생각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며, 그 보다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각과 말씀을 그분의 영을 통해서 기자의 속으로, 또 기자로부터 호흡해 내신 것임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분의 냄새를 전달해 준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가장 큰 즐거움, 곧 우리의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의 호흡이신 말씀을 통해서 매일 그분을 접촉하고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2)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통하여 자신의 말씀을 호흡하신 것이므로 성경의 어떤 말씀도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이 없다.「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했다」(벧후1:21)는 말씀은 이중의 의미가 있다. 첫째는 사람이 그 영의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사람이 하나님께 받아 말했다는 것이다. 사람이 말하도록 인도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었고, 또한 하나님 속으로부터 말한 것은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입을 통해서 사람 속으로부터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사무엘하 23장 2절은「주의 영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은 다윗이 한 것이었다. 그는 그가 우리에게 한 말이 하나님의 영이 자신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며, 그의 혀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했다. 성령이 그를 통하여 말할 뿐만 아니라 그의 혀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고, 그의 입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나왔던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다.

3) 성경은 신언자들과 아들 안에서 하신 하나님의 말씀임
구약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 안에서 말씀하신 것이고, 신약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안에서 말씀하신 것이다(히 1:1-2). 그러므로 구약에서 선지자들로 말씀하셨든지 신약에서 주 예수로 말씀하셨든지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이며, 모두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다.

4) 성경은 성령의 계시임
「그러나 실재의 영께서 오시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모든 실재 안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스스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듣는 것만 말씀하시며 장차올 일들을 여러분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요 16:13). 여기서 주님의 말씀도 또한 그 영이 오신 후에 그분의 제자들이 말하고 기록한 것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열려진 것임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주님의 말씀은 그분이 승천하신 후에 그분의 제자들에 의해 쓰여진 신약의 모든 책들이 성령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며, 그것들의 거룩한 권위가 주님에 의해 인정되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2. 성경의 기능

1) 주 예수에 대하여 증거함
성경의 첫 번 째 기능은 주 예수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다(요 5:39). 주 예수님은 성경의 주제이며 내용이고, 성경은 주 예수에 대한 설명이자 표현이다.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시며, 성경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에는 그 실제로서 산 말씀이신 주 예수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단지 교리와 공허한 문자에 불과하다. 산 말씀이신 주 예수님은 그분의 표현으로서 기록된 말씀을 가지셔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은 비밀스럽고 알기가 어려우며 모호하여 붙잡기 힘든 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성경 안에 분명하고 명확한 설명과 명백한 계시가 있으므로 우리는 주 예수님을 실제적으로 알고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2)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함
성경의 기능에는 두 방면이 있다. 한 방면은 주님을 위한 것이고, 다른 방면은 우리를 위한 것이다. 한편으로 성경은 주 예수를 증거하고, 다른 한편으로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은혜를 받고 건축되게 한다. 우리에게 대한 성경의 첫번째 기능은 우리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는 것이다(딤후 3:15).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방법과 사람이 믿음으로 구원 얻는 방법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길을 알게 한다.

3) 사람을 거듭나게 함(벧전1:23)
성경은 사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사신 하나님의 생명을 담고 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성경의 말씀을 우리 안에 받아들일 때 그것은 생명의 씨와같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 안에 심는 것이다. 이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고 거듭나게 된다.

4) 믿는 이들의 영적인 젖이 됨(벧전 2:2)
우리가 처음 구원받을 때에는 영적인 일에 대해서 충분하고 분명한 이해가 없다. 그러므로 새로 거듭난 믿는 이들은 순전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는 갓 태어난 아이들처럼 성경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영적 생명은 자랄 수 없고, 그는 계속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로 머물게 된다(고전 3:1-2).

5) 믿는 이들의 생명의 떡이 됨(마 4:4)
마치 우리의 육신의 생명이 영양분을 필요로 하듯이 영적인 생명 또한 영양분을 필요로 한다. 영적 생명의 영양분은 성경의 말씀으로만 공급될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생생하고 강하게 되려면 우리는 떡에만 의존할 수 없고,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 즉 성경의 말씀에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음식으로 받아서 그것을 먹어야 하고(렘 15:16), 심지어 성경의 말씀을 음식보다 더욱 중하게 여겨야 한다(욥 23:12하).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영적 생명은 자랄 수 없다.

6) 믿는 이들을 온전케 함
성경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인내와 격려와 소망을 줄 수 있다(롬 15:4). 또한 성경은 우리가 훈계를 받고 깨어 있어 이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우리에게 경고가 되는 많은 것을 기록하고 있다(고전 10:11). 그러므로 거듭난 이후로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로 온전케 한다(딤후 3:16-17).

3. 성경의 저자와 기록 장소와 기록 연대

1) 구약
구약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39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들은 적어도 32명이다. 그들 중에는 학자와 정치가와 군인이 있었고, 또한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가 있었으며, 목동과 농부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이스라엘 사람이었고 몇몇은 이방인이었다. 구약은 여러 장소에서 기록되었는데, 어떤 것은 시내 산에서 기록되었고, 어떤 것은 광야에서, 어떤 것은 가나안 땅에서, 어떤 것은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어떤 것은 이방 땅에서 기록되었다.

2) 신약
신약은 마태복음으로부터 계시록까지 27권으로 되어 있다.
마태복음은 마태가 기록하였다. 마태는 낮은 신분의 세리였지만 그는 주님의 열 두 사도 중 하나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의 복음서는 아마도 유대 지방에서 쓰여졌을 것이다. 마가복음은 마가가 기록하였다. 마가는 매우 평범한 제자였다. 그의 복음서는 아마도 로마에서 쓰여졌을 것이다. 누가복음은 누가가 기록하였다. 누가는 이방인 의사였다. 그의 복음서는 이방 땅에서 기록되었을 것이다. 요한복음은 요한이 기록하였다. 요한은 교육받지 못한 갈릴리 어부였지만 주님의 열 두 사도 중의 하나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의 복음서 또한 이방 땅에서 기록되었을 것이다. 사도행전도 의사 누가가 기록하였다. 이 책도 또한 이방 땅에서 쓰여졌을 것이다. 로마서에서 히브리서까지는 모두 열 네 권의 책인데, 이것들은 모두가 바울에 의하여 쓰여졌다. 그의 모든 책들은 이방 땅에서 기록되었고, 어떤 책들은 로마의 감옥에서 쓰여졌다.

야고보서는 야고보가 기록하였다. 야고보는 주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였다(갈 1:19). 그는 또한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의 기둥이었지만(갈 2:9), 유대교의 배경을 많이 지니고 있었다. 그의 서신은 아마도 예루살렘에서 쓰여졌을 것이다. 베드로 전서와 후서는 베드로가 쓴 것이다. 베드로 역시 교육받지 못한 갈릴리 어부였지만 열 두 사도 중 첫 번 째 사도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의 두 서신은 모두가 이방 땅에서 기록되었을 것이다. 요한의 첫 번 째와 두 번 째와 세 번 째 서신은 요한이 쓴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이방 땅에서 기록되었다. 유다서는 유다가 기록하였다. 그도 또한 주님의 육신의 형제였다(유 1, 갈 1:19). 그의 서신은 유대 지방에서 쓰여졌을 것이다. 계시록도 또한 사도 요한이 기록하였다. 이 책은 아마도 밧모섬이라고 하는 이방 땅에서 기록되었을 것이다.

3) 기록 연대
구약의 처음 몇 권-모세 오경-은 거의 기원 전 1500년경에 기록되었으며, 마지막 책인 말라기는 기원 전 400년경에 쓰여졌다. 그러므로 구약 39권의 전부가 완성되기까지는 1100여 년이 소요되었다. 신약의 첫 번 째 책인 마태복음은 서기 37년과 40년 사이에 기록되었으며, 마지막 책인 계시록은 서기 94년과 96년 사이에 쓰여졌다. 그러므로 신약은 50년 이상에 걸쳐 완성되었다. 따라서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성경 전체가 완성되는 데에는 1500년 내지 1600년간의 시간 간격이 있었다.

4. 성경의 완성 - 성경의 권위에 대한 인정

1) 구약

A. 모세 오경
구약에 있는 모세가 쓴 다섯 권의 책은 오랜 동안 유대인들에 의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책이며 절대적인 거룩한 권위를 가지고 있는 책이라고 인정되어 왔다. 그것은 이 책들이 하나님에 의하여 계시되었고, 모세에 의해 기록되었으며, 조상들에 의하여 여러 세대 동안 전해져 왔기 때문이었다.

B. 이외의 책들
구약의 다른 책들은 그 가치와 권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들에 의해서 하나씩 하나씩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음을 인정받았다. 여러 세대를 거쳐 오는 동안 하나님의 백성 중 어떤 이들 이 모세 오경에 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자 하는 영감을 받았다. 그들이 기록한 책들은 상당한 기간의 시험이 지난 후, 하나님의 백성들에 의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임이 인정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글에 권위와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원전 457년에 율법 학자 에스라는 모세 오경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었던 권위 있는 기록들을 모아서 구약의 형태로 편성하였다.(그러나 두 권의 책-느헤미야, 말라기-은 그 당시 기록되지 않았었으므로 제외되었다) 권위 있는 유대의 역사학자 요세프스(Josephus)와 이방의 역사학자들이 이 사실을 입증한다. 에스라 이후 유대인 중에 대공회라고 불리우는 일단의 율법학자들이 있어서 그들이 편집과 검토를 했는데 이 일은 기원전 400년에 완성되었다. 그들이 확정한 구약은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책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기원전 400년에 구약의 기록이 완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구약이 확정되고 일반적으로 인정되었던 것이다. 어찌되었든 70명의 학자들이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했던 기원 전 277년 까지는 구약의 모든 책들의 확립되었음에 틀림없다.

2) 신약

A. 복음서
복음서와 구약은 초기의 교회 집회에서 자주 읽혔다. 그러므로 신약의 책들 가운데서 사복음서는 교회가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B. 이외의 책들
사도들이 지나간 후, 어떤 이들이 자신들을 다른 사도들과 동등하게 생각하여 책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혼돈이 발생했다. 그러므로 초기 교회의 인도자들, 소위 교부들은 사도들의 모든 기록을 모아서 그것들을 복음서와 같은 위치에 두었다. 폴리갑의 순교가 있은 바로 뒤에 모든 교회들은 히브리서와 야고보서와 베드로 후서와 요한 이삼서와 유다서와 계시록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그들의 신약에 대한 관점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이 일곱 책이 성경에 포함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견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 일곱 권의 책이 분명히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쓰여 졌고 거룩한 권위와 가치가 있었으므로 오랜 기간의 시험이 지난 뒤인 주후 397년에 아프리카 북부 카르타고에서 열린 회의에서 각 교회의 인도자들은 이 일곱 권의 책을 신약의 일부로써 인정하였다. 그들은 또한 신약이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것과 같이 27권으로 이루어짐을 선포했다. 그러므로 카르타고 회의가 열었던 주후 397년에 이르러 신구약을 포함하는 완전한 성경이 하나님의 백성들에 의해 인정되고 확증되었다.

5. 성경의 주제와 중심사상
성경의 주제는 “하나님은 계획하시고 창조하셨으며, 사탄은 반역하고 손상시켰고, 사람은 타락하고 잃어버린바 되었으며, 그리스도는 구속하시고 건축하신다.” 라고 말할 수 있고 성경의 중심사상은 위대한 비밀(엡5:32)인 그리스도와 교회이다.

질문
1) 성경의 기원은 무엇인가?
2) 성경의 기능은 무엇인가?
3) 성경의 주제와 중심사상은 무엇인가?
중심요절: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것이며, 가르치고 책망하고 바로잡고 의로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
<출처: 진리공과 1단계 1권>


그대가 나를 사랑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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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 교회생활 하면서

항상 짐 같이 생각되는 것은 복음과 목양입니다.

나름 한다고 하지만 항상 부족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시편 23편을 말씀을 통해

목양이 저에게 조금은 구체적이고 주관적으로 다가 온 느낌입니다.

목양의 사역은 너무나 중요하다고 합니다.

몸을 건축하고 신부를 예비함으로

다음 시대에서 그리스도께서 왕이되시도록 하는

하늘에 사역과 협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목양한다면 교회 안에 큰 부흥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교회 가운데 목양의 분위기가 많다고 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목양하는 사람이 되도록 목양을 받지 못해서 일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의 베드로는 어떤 사람입니까?

주님을 3번씩이나 부인하고 주님을 배반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앞장서서 제자들을 이끌고 고기잡으로 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주님이 직접 목양하러 오셨습니다.

고기도 잡게 하고, 생선과 떡으로 조반도 먹이고,

또 친근하게 "그대가 나를 더 사랑하십니까?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어린양들을 먹이고, 내 양들을 목양하십시오" 라고

교회를 목양하도록 위임을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주님의 직접적인 목양을 받은 베드로는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목양은,

주님 자신을 향한 베드로의 사랑을 회복시키고 계셨고,

교회를 목양하는 부담을 가지게 하셨고,

심지어는 순교하도록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주님의 목양을 받은 베드로는 깊은 인상을 받고

그의 첫번째 서신에서,

우리가 길 잃은 양과 같이 목자없이 방황하였으나

이제는 혼의 목자이신 주님께 돌아왔다고 합니다 (벧전2:25).

또 " 여러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라"고 합니다 (벧전5:2).

그는 주님의 목양을 받고 목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놀라운 목양으로 베드로는 변했습니다.

목양은 이렇게 주님의 일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우리는 혼의 목자이신 주님의 목양이 필요합니다.

특히 복잡하고 문제 투성이인 우리의 혼이 목양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혼의 목자이신 주님께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먼저 목양 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목양할 수 있는 힘과 부담이 없습니다.

아니면 목양을 한다고 해도,

오히려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마음을 상하게 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께 목양 받는 다는 것은 무었이겠습니까?

시편 23편에 5단계의 주님의 목양을 볼 때,

우리가 어느 상황과 형편과 장소와 위치에 있던지

그 때마다 주님을 누리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어린 아이 같든지,

의의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든지,

죽음의 그늘의 골짜기에 있는 사람이든지,

대적들의 목전에서 전쟁할 수 있는 사람이든지,

평생에 하나님의 집에 거하기를 구하는 사람이든지...

 

우리가 주님을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혼을 소생시키시는 분으로, 우리의 의와 길로,

우리를 보호하시는 지팡이로, 안내하고 훈련하고 부축하는 막대기로,

우리의 선하심(은혜)와 인자하심(사랑) 이신 분으로,

누리고 체험하는 것이 우리가 주님께 목양 받는 것입니다. 

 

목양을 하고자 하는 부담 만으로는 아직 부족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목양을 하기 까지는

베드로를 찾아오신 주님의 목양이 필요합니다.

우리 혼이 소생되어야 합니다.

또 다른 필요는 우리가 목양하는 것입니다.

양들을 목양 할 때 우리는 또 목양 받습니다.

이번 주에 기독교에 있는 어떤 자매님을 만났는데,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서를 가지 신 분였습니다.

제가 안 것은 그 분이 저를 많이 목양 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목양하는 분위기가 다시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어느 가정에 10년 동안 한 번도 심방을 오지 않아서

그 가정이 이사가면서 형제님들을 초대한 일이 있다고 합니다.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웃으며 얘기 하였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오늘,

그대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들을 목양하십시오"  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