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과는...


사역의 말씀 2011-12-0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grace77/352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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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과는 가장 배우기 어려운 공과이다.
또 이것은 하루 아침에 배워지는 것도 아니다.
실로 많은 나날을 거쳐야만 믿는이들은 자기의 육체가 믿을만하지 못하다는 것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가장 좋은 것 가운데에도 더러움이 섞여 있음과, 혹은 바울이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18절)라고 한 말에 동의하도록 하나님은 그로 로마서 7장의 체험을 많이 갖게 하신다.
이 말하기를 배우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믿는이들은 많은 고통스러운 실패를 거치지 않을 때에 항상 자기를 의지하고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천백번의 실패를 거칠 때에야 비로소 스스로 의롭다 하는 모든 것이 믿을 만하지 못하다
―육체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렇다고해서 종결되지 않는다.
이러한 자기 심판은 끊임없이 이어져야만 한다.

언제든지 믿는이들이 자기를 심판하지 않고, 육체를 무용지물로, 가장 형편 없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조금이라도 자기를 영화롭게 한다면, 하나님은 그의 찌끼를 불태우기 위하여
부득불 그로 불을 통과케 하신다.
스스로 낮추고 자신을 더러운 자로 인정하는 사람은 얼마나 적은지!
그러나 이렇게 하지 않는 한 하나님은 결코 그분의 역사를 그치지 않으신다.
육체의 영향력에서 한 순간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자기를 심판하는 마음도 한 순간도 쉴 수 없다.
그렇지 않을 때 다시 육체의 자랑 안에 떨어지게 된다...

우리는 십자가의 죽음이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아야 한다.
우리가 죽음의 단계를 버리고서는 결코 부활의 단계로 들어 갈 수 없다.
부활 생명을 얼마나 체험하는가는 당신이 얼마나 죽음을 체험하는가에 달렸다.
오, 죽음은 모든 것의 기초이다, 사람은 진보할 수 있어도 이 기초를 잃어버릴 수는 없다.
만일 육체가 죽어야 한다는 이 사실을 견고히 붙잡지 않는다면
부활하고 승천한 생명도 헛된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육체가 더 이상 우리를 미혹할 권리가 없을 정도로 신령하고 진보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대적은 우리로 십자가의 경계를 떨쳐 버리고 외형적인 신령함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육에 속한 사람의 많은 말,
즉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 나는 어떠어떠합니다. 더이상 과거와 같이 행하지 않습니다.』라는 말들은
누가복음 18장 11,12절의 기도 소리와 같다.
이들은 육체를 벗었다고 생각할 때에 육체에 의해 속임을 당하게 된다.
우리는 늘 주님의 죽으심 안에 거해야 한다.



워치만 니

[영에 속한 사람, p.152-153, 159-160, 한국복음서원]

 

 

 



우리가 빛안에 있다면 교회를 하나의 실재로 볼것이다


아침부흥 말씀 2011-11-30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grace77/352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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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요한일서5:20-21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이해력을 주시어 그 참되신
분을 알게 하셨다느 것을 압니다. 우리는

그 참되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


분은
참되신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어린 자녀 여러

분, 여러분 자신을 지켜 우상들을 멀리 하십시오.

 

빛 안에서 행할 때, 우리는 실재를 하나씩 하나씩 보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어둠 안에 있을 때는 아무것도 우리에게 실재가 아니다.

반대로 모든 것이 공허하고 헛되다.

어둠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실재도 갖지 못한다.

실재를 느끼는 대신 공허하고 허무한 느낌만 갖게 된다.

하나님 안에 거할 때 우리는 교통 안에 있다.

이 교통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빛 안에 있다.

그리고 빛 안에서 행하고 있을 때, 그리스도와 그 영과 교회와 몸과 몸의 지체들이 우리 모두에게 실재가 된다.

신성한 교통 안에 있으려면 우리는 빛이신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하며 신성한 빛 안에서 행해야 한다.

신성한 빛은 사탄적인 어둠과 대립된다.

여기서 참된 문제는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빛이냐 어둠이냐이다.

요한일서 1:6절을 읽어 보자.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을 갖는다고 말하면서 어둠 가운데 행한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실행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거짓말은 마귀에게 속한 것이다.

그는 거짓말쟁이의 아버지이다(요8:44).

마귀의 본성은 거짓말이고 죽음과 어둠을 가져온다.

어둠에는 진리와 반대되는 거짓이 있다.

사탄적인 어둠은 신성한 빛과 대립되며, 사탄적인 거짓말은 신성한 진리와 대립된다.

신성한 진리가 신성한 진리의 빛의 표현인 것처럼 사탄적인 거짓말은 사탄적인 어둠의 표현이다.

만일 우리가 빛이신 하나님과 교통이 있다하고 어둠 안에서 행한다면 우리는 거짓말 하는 것이고,

사탄적인 어둠의 표현 안에 있는 것이며, 신성한 빛의 표현 안에 있는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빛 안에 있다면 교회를 하나의 실재로서 볼 것이다.

또한 몸과 몸의 지체들도 실재로서 보게 될 것이다.

또한 자신이 몸의 한 특정한 지체라는 것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둠 속에 있다면, 실지로는 새끼 손가락처럼 작은 작은 지체이면서도

어깨처럼 몸의 큰 지체라고 스스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어둠 안에 있는 것이 공허와 허무함 안에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예이다.

그러나 우리가 빛 안에서 본 실재에 속한 것에 따라 행해지는 것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다.

잠언은 사람이 하나님을 접촉함으로 얻은 지혜, 곧 인간 생활에서 어떻게 처신해야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지혜를 강조한다.

전도서는 해 아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지혜로 깨달은 것이다.

어떤 것이 아무리 선하고 탁월하고 놀랍고 훌륭할지라도 옛 창조물에 속한 것이라면

그것은 해 아래 있는 헛되고 헛된 것의 일부이다.

'해 아래' 있지 않고 하늘들에 있는 새 창조물만이 헛되지 않고 실재이다.

요한일서5장 21절에서 요한은 "어린 자녀 여러분, 여러분 자신을 지켜 우상들을 멀리하십시오."라고 결론을 맺는다.

'지키다'라는 단어는 이단들의 공격과 같은 외부의 공격에 대하여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다.

'우상들'은 이 서신과 요한 복음에 계시되고 또 앞 절에 언급된 대로, 영지주의자들과 케린투스 추종자들이 가져와서

참되신 하나님을 대치하는 이단적인 대체물을 가리킨다.

여기에 있는 우상들 또한 참되신 하나님을 대치한 모든 것을 가리킨다.

참되신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인 우리는 참되시고 실재이신 하나님,

곧 우리와 유기적으로 하나이시고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을 대치하는 이러한

이러한 이단적인 대체물과 모든 헛된 대치물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깨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요한의 서신의 결론으로서, 연로한 사도가 어린 모든 자녀에게 주는 경고의 말씀이다.

 

아침 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 중에서 ...

, 어둠, 공허, 허무, 실재, 우상득, 대치물


목마름


라이프스타디 2011-11-30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grace77/352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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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

                                                    요한 계시록21:6

 

 

 

 

우리가 마실 수 있는 위치에 놓였다 할지라도 목마르지 않다면 우리는 마시지 않을 것이다.

생명수를 마시려면 목말라야 한다.(출17:3상,요7:37,계21:6)

오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향하여 목마르지 않다.

목마르다는 것은  어떠한 긍휼인가?

나는 매일 매일 생수를 향하여 목마름을 증거할 수 있다.

얼마 동안 기도하지 않으면 나는 나의 목마름을 의식하게 된다.

특별히 매우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혀 목마름이 없을 때

우리가 생수를 향해 목마름을 인식한다는 것을 증거할 수 있다. 

이 목마름은 우리가 기도하도록 하고 주님을 접촉하도록 한다.

단순한 방법으로 우리는

"주 예수여, 저는 당신을 향하여 목마르며 당신을 접촉하기 원합니다."라고 말할수 있다.

만일 우리의 목마름이 충분하지 않다면 우리는

"주님, 제 안에 목마름을 증가 시키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우리 모두에게는 주님을 향한 그러한 목마름이 필요하다.

 

                                                             출애굽기 라이프 스타디

생명수, 샘물, 목마름, 기도, 주님을 접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