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h 2:18
For through Him we both have access in one Spirit unto the Father
하나님의 삼일성을 인간의 관념과 언어로 이해하기란 매우 곤란하다
하지만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삼일성에 관련된 것들은 매우 일관적이며 중심적이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시지만
그분의 경륜(God's Economy)을 수행하시는데 있어서 그분은 삼일성이시다
특히 우리에게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을 적용하시어 우리가 구원을 얻고 하나님을 체험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은 아버지, 아들, 그영이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체험하는데 있어 그분이 하나이자 셋이신 분임을 적용하고 체험할 수 있다
먼저 하나님의 구원을 성취하시는 아들 하나님이 계시고
아들 하나님이 성취하신 구원을 적용하시는 영 하나님이 계시며
끝으로 구원의 결과이자 근원으로 우리가 누리게될 아버지 하나님이 계신다
그러나 이 셋은 서로 분리된 세 분의 하나님들이 아니라
유일하신 한 하나님이시다
왜냐하면 아들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속하셔서 구원을 성취하실 때에
아버지와 영이 아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행20:28, 히9:14)
마찬가지로 그 영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려고 아들이 성취한 구원을 적용하실 때에도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하신다. (벧전1:3, 요일5:12)
그래서 아들이 성취하실 때에 삼일하나님이 아들 안에서 성취하시는 것이요
그 영이 적용하실 때에도 삼일하나님이 그 영 안에서 적용하시는 것이요
근원이신 아버지께 나아가 그분을 접촉하고 누릴 때에도 물론 삼일하나님을 접촉하는 것이다.
우린 결과적으로 삼일하나님을 누리고 체험하는 것이지만
성취하시는 분은 아들로, 적용하시는 분은 그 영으로, 도달하여 접촉하게 되는 분은 아버지로 체험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18절에서는
"주님을 통하여" "그 영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간다" 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통하여"란, 통로와 수단을 의미한다
우리가 아버지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아들(의 성취)를 통로로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요14:6)
"안에서"는 범위와 연합을 의미한다
아버지를 접촉하는 범위가 그 영이요, 아버지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그 영과 연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나아간다"라는 의미는
영적인 체험과 적용 등의 모든 것의 기원이 아버지요 그 목표도 아버지이시라는 것이다
즉 우리는 아버지를 접촉하고 체험하고 누리기 위해 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아버지 만이 계신 것이 아니라 아들과 그 영이 모두 함께 계신다.
이것의 가장 명쾌한 그림이 바로 누가복음 15장의 3가지 비유이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잃은 양을 위해 오시는 목자 즉 아들 하나님과
잃은 드라크마(동전)을 찾기위해 불을 켜고 쓸고하는 여인 즉 영 하나님과
돌아오는 탕자를 애정어리게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 즉 아버지 하나님이
모두 함께 삼일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묘사하기 위해 배열되어 있다
목자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밖에서 오셨고 여인은 우리의 속 존재에서 비추고 찾기 위해 우리 안으로 오셨고
우리가 돌아갈 아버지는우리의 최종적인 누림을 위해 기다리고 계신다.
하지만 아버지, 아들, 그 영이 분리된 분이 아니기에
우리의 체험과 실행은 단순하다
다만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아들이신 그 영을 영접하고 그 영과의 연합으로 아버지를 접촉한다.
아들의 인격은 바로 그 이름에 있으며 이 이름의 Reality는 바로 그 영이시다
즉 부르는 것은 아들의 이름이지만 오시는 분은 그 영이시라는 것이다. (요14:26)
오셔서 연합되신 분은 그 영이시지만 우리가 접촉하러 들어가고 돌아가게 되는 분은 또한 아버지이시다.(요14:6, 엡2:18)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결론인 요한계시록에서 새예루살렘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4방면 모두 문이 3개씩 있는 것이다.
모든 방면에 대해 열려진 하나님의 구원이 그분의 삼일성으로 입구가 되신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과 요한일서 1장에서 우리는 'word'를 본다
인간의 언어와 관념은 얼마나 제한적인지...
위의 성경구절에서 보는 'word'는 우리가 통상 이해하는 말을 초월하는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 '말씀'이 영원과거인 태초부터 계셨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 말씀이 영원한 것과 이 말씀이 인격인 것을 내포하고 있다
더구나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는 이 '말씀'이 육체가 되셨다고 말한다
곧 육체되신 그리스도의 영원 안에서의 신성한 존재가 '말씀'인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이 또한 하나님과 함께 계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라고 한다
함께 계셨다는 의미는 하나님과 분리된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며
말씀이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표현되신 그분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이지 아니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은
영원전부터 '말씀'으로 그분 자신을 표현하고 계시며
이 '말씀'이 시간 안에서 육체가 되어 사람들이 보고듣고 만질 수 있는 분이 되셨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요일1:1-2)
아! 얼마나 놀라운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다니..
오늘 하루도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말씀을 통해 체험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