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마니형제님에대한 위광희형제님의 편지


은혜로은글 2020-04-20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54196.html

워치만니에 대한 위광희 형제의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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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집회가 끝나던 마지막 날 저녁, 워치만니는 먼저 복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워치만니 형제는 가족 앞에서 나에게 한 마디 작별의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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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오직 한 분이시지만 오늘 사역하는 사람들이 보는 관점은 각각 다르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지고 말았네. 만일 여기에서 우리에게 계시가 없다면 우리도 이와 똑같이 실패하고 말걸세. 오늘 허다한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이 그리스도와 접촉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의 뒤를 만지고, 손을 붙잡고, 주님의 옷자락을 찢기도 하네. 그러나 생명에 있어서는 주님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일세. 주님을 밀던 많은 사람 중에서 혈루병 든 여자만이 생명 안에서 치료를 받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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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실지로 벳세다의 그리스도를 알고, 참으로 경험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적( 異蹟 )을 보고, 심지어 기적을 행하기도 하며, 엠마오길에서 주님을 만난 두제자 처럼 감동력을 사용할수도 있다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다 중요한 것이 아닐세. 이 말은 내가 위 형제에게 하는 말일 뿐 아니라. 사역하는 모든 형제 자매에게 하는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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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형제, 자네가 만일 사람들에게 계시로 본 그리스도를 공급해 주지 못한다면, 내가 다시 말하거니와. 우리의 사역은 실패한 것일세. 우리는 항상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야 하네.자네가 사역에서 중시하고 있는 것은 성경 이해 ( 理解 )와 지식, 은사, 기적, 권능인가. 아니면 계시로 본, 한분의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공급해 주는 것인가?하는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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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 길을 가실 때.무리 에워싸 밀더니.병든그 여인 뒤에 와서.만지고 즉시 낫네 주님 만지기만 하면. 즉시 고침 받으리니.의심치 말고 와 만지라. 만질 때 고침 얻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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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초, 워치만 니 형제는 홍콩으로 왔고. 오래지 않아 위트니스 리(Witness Lee) 형제도 왔다. 하나님의 이 두 종이 동시에 (한지방)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한다는 것은 정말 자주 있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므로 그 집회에 축복이 있었다.원래는 300여 명이 모이던 집회가 단 시일 내에 삼천 명으로 증가되었다. 이것이 홍콩 교회의 첫 번째 대부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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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워치만니 형제는 귀국을 준비했다 그 때 시국( 時局 )은 긴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형제들은 모두 그에게 돌아가지 말라고 권했다. 그러나 그 때 워치만니 형제의 돌아가려는 의지는 참으로 굳은 것이었다. 사도 바울도 예루살렘에 가기 전에 그곳에 묶임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지만.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갔던 것이다. 나는 워치만 니 형제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가를 느꼈다. 그의 마음은 무거웠으나 워치만니는 주님과 같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자기를 기다리는 것들을 두려워 하지 않고 그것들을 향해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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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워치만니 형제는 진리로 인하여 공산당에게 구속되어 투옥되었고 15년을 언도를받았다. 그리고 감옥에서 20년 동안 우리는 워치만니의 소식을 들을 길이 없었다. 워치만니의 부인이 세상을 뜨기 전에는 2 , 3 주마다 한 번씩 워치만니에게 가서 몇 분간 만나고. 그의 일용품을 공급했다. 그러나 그 분( 부인 )도 1971년 11월, 워치만니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워치만니 형제의 심장은 보통 사람의 반 밖에 안 되어 장기간 심장병을 앓았으며 한 번 발작이 일어나면 심한 동통( 疼痛 )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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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든 환난 중에서도 그가 평생 사랑하고 섬겼던 주님은 한 번도 그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1972년 여름에 소식을 들음으로써 6월 1일에 워치만니 형제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수고를 그치고 쉬었고, 사역의 효과는 그를 따랐다( 계 14 : 13 ). 비록 그의 몸은 갇혔었고, 비록 그의 몸은 땅에 묻혔지만. 주님이 워치만니에게 주신 말씀은 온 세계에 무한량하게 전파되었다. 그의 말씀으로 인해 많은 성도들이 공급을 받고, 계시를 보고, 교회가 건축되며, 허다한 성경 진리가 회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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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만니는 참으로 하나님이 중히 쓰신 그릇이었다. 그는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었다( 행 13 : 36 ). 그는 실지로 우리에게 본이 되고 그 자취를 따라오게 했다( 벧전 2 : 21 ). 영광을 주님께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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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봄 홍콩에서 위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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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희 형제 (워치만니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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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에 계속 자네에게 편지하고 싶은 느낌이 있었네. 그러나 나는 나의 생각이 성숙하지 않은 것일까 두려워 계속 지체해 왔었네. 내 생각에 이제는 때가 된 것 같네. 나는 자네가 이 편지를 하나님 앞에 놓고 기도하길 바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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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하는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염려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모든 것을 주어야 하네. 자기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인도할 자격이 없어. 다른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는 훈련을 하고 자기가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주는 사람에게 주님은 축복을 하신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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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하는 사람의 속에 있는 역량이 밖으로 나오는 사역이 되야 하네. 만일 억지로 과장할 때는 흘러나오는 것이 적게 되며 이러한 상태는 다 주님 앞에 바른 것이 아닐세. 속이 풍성할 때는 억지로 하지 않아도 무엇이든지 다 흘러나오게 된다네. 오직 자네 자신이 영적인 사람이어야 하며, 영적인 사람인 것처럼 만들어서는 안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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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에 있어서 듣는 것을 배우게. 사도행전 15장의 가르침은 곧 듣는 것일세. 다른 형제의 뜻을 듣고 그 안에 있는 성령의 음성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하네. 마음으로 두려워해야 하네. 형제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성령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일세. 모든 사역자들과 장로들은 형제 자매의 말을 잘 들어야 하네. 반드시 형제 자매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게. 부드럽게, 부서져서, 들어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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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의 문제가 부서지지 않은 데 있네. 부서진다는 말은 들었지만 무엇이 부서지는 것인지를 모르는 것이지. 부서지고 나면 어떤 일에 대해서 함부로 단정짓지 않고, 어떤 말씀에 대해서도 함부로 단정짓지 않고,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자기가 잘 안다고 하지 않고, 어떤 일에 대해서도 잘 할 수 있다고 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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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권위를 쓰지 않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의 권위를 받아들이도록 요구하지도 않는다네. 또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모든 일에 신중하다네. 부서진 사람은 자기를 보호하지 않고 더 이상 자기 분석을 하지 않는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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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가운데에서나 교회생활 가운데에서 너무 긴장하지 말게. 교회 일에서 “자기 혼자” 하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하네. 많은 일을 형제 자매에게 나누어주고 그들이 결정하도록 하게. 자네는 다만 일하기 전에 그들에게 분명한 원칙을 알려주고, 일한 후에 그들이 어떻게 일했는가를 살펴보게. “자기 혼자” 한 일은 대부분이 착오를 낳는다네. 형제에게 맡겨주고 나눠주는 것을 배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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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은 교회 가운데에서 억지로 하시지 않는다네. 자네가 그에게 순종하지 않을 때 그는기름부음의 공급을 해주시지 않으므로 교회는 피로와 권태를 느끼게 돼. 자네의 영이 강할 때는 10분 내에 그것을 뚫고 청중을 제압할 수 있지만, 영이 약하면 “큰소리“로 “위협하는 말“을 하고 “많은 시간 동안” 얘기해도 그것으로 형제 자매를 도울 수 없고 오히려 해를 입히게 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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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 너무 많이 말씀을 전하지 말게. 그렇지 않으면 신도들의 영이 피로함을 느끼게 돼. 말씀이 많으면 마음이 무거워지므로 기도 집회는 실패하게 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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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내가 고령(鼓嶺)에서 다스린 것은 특별히 예외적인 것이었네. 사역하는 사람은 자기를 다스리는 것부터 배워야 해. 배우는 것이 적고, 아는 것이 적고, 부서지는 것이 적으면 결정을 옳게 내를 수 없고 사람을 다스릴 수 없어. 너무 급히 확신을 갖고 일하지 말고 두려우며 떨며 일을 해야 하네. 절대로 영적인 것을 쉽게 보지 말게. 마음속에서부터 배워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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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판단을 믿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하네. 자기가 옳다 여기는 것이라고 다 옳은 것이 아니고 자기가 그르다 여기는 것이라고 다 그른 것이 아닐세. 겸손을 배우는 데는 적어도 몇 년이 걸린다네. 그러므로 지금은 그렇게 확신 있게, 완벽히 하려 하지 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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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판단이 정확한 데 이르기 전에 사람들에게 듣도록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일세. 주님이 자네의 몸에서 역사하여 생각이 처리되고, 자신이 부서질 때만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권위를 가질 수 있네. 권위란 하나님의 뜻을 아는 데 그 근거를 두는 것이므로, 주님의 뜻과 마음이 없을 때에는 권위도 없게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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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종은 마땅히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 도량(度量)이 넓혀져야 하네. 나는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을 믿네. 자네 스스로 자신 속을 들여다 보지 말게. 들여다 볼수록 실망하게 된다네. 하나님께서 자네에게 인도하는 책임을 지게 하실 걸세. 홍콩의 사역은 인도하심을 따라 사람을 보내게 될 걸세. 우리는 다만 안식해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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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긴 편지를 자네가 주님 앞에서 자세히 읽기 바라네. 나는 이러한 것들이 어려운 것임을 알지만 주님이 자네를 깨뜨려 그의 손 안에서 유용하게 되기를 바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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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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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3월 1일 니 토생(워치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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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진리의말씀 2020-04-20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54195.html
아가서의 내용

A.솔로몬왕이 쓴 아가서는 탁월한 결혼에 이르는 사랑의 시이며. 솔로몬왕과 술람미 여인의 최고 수준의 로맨스이다. 솔로몬은 남성형으로 평화라는 뜻이며 술람미는 동일한 명사의 여성형이다. 솔로몬은 예루살렘 수도의 왕궁에 있는 왕이고. 술람미는 시골 출신의 소녀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두사람은 어울리지 않았다. 결혼에 관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둘이 서로 어울려야 한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왕과 시골소녀는 격이 맞지 않았지만 사랑에 빠졌고 그 둘은 함께 연결되었다. 

B.성경전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시는 한편의 로맨스 이다. 아가서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믿는 이들 개개인과의 연결안에서 나누시는 사랑에 대한 묘사이다. 신약전체는 몸의 생활을 강조하고 개인적인 생활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가서는 단체적인 방식으로 몸을 강조하지 않고 개인적인 방식으로 믿는 이를 강조한다. 몸의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받드시 주님과 개인적인 접촉을 해야 한다. 주님과의 개인적인 교통을 기반으로 갖지 않는다면 합당한 몸의 생활은 실현될수없다.

C.시가서인 아가서에서 우리는 십자가, 부활. 승천 이라는 단어를 찾아볼수없다. 또한 새창조 혹은 휘장안에 라는 말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이 책이 그리스도인 생활의 여러단계를 밝혀 준다고 말할수 있는가.이 질문에 대답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아가서에서 다양한 상징들을 통해 계시되었거나 밝혀진 것들을 볼필요가 있다.

십자가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았지만 십자가의 상징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부활과 승천이라는 말 대신에 부활과 승천에 관한 상징들이 있다. 그러므로 이책을 읽을 때 가장 어려운점은 이 상징들을  해석하는 것이다.

1.아가서는 많은 상징들로 구성되어있다. 아가서의 내용은 개인적인 믿는이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교통을 점진적으로 체험해 가는것을 말하고있다.

1장2절-2장7절. 네 이름이 쏟은향기름 같고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으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같구나. 네가 일광에 쬐어서 거므스름할지라도 훌겨볼지 말것은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음이라 . 내마음에 사랑하는 자야 네가 양치는 곳과 정오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말하라. 내가 네 친구의 양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린자 같이 되랴. 여인중에 어여뿐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곁에서 너의 염소새끼를 먹일지니라. 

첫째단계에서 그리스도의 연인은 완전한 만족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를 추구하도록 이끌린다. (1;2-2:7) 그리스도의 연인은 매혹되어 그리스도를 쫓아달려간다. (1:2-4) 그녀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입의 입맞춤으로 그녀에게 입맞춤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2절)  이것은 가장 친밀한 입맞춤이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입맞춤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유쾌하게 하는사랑에 대한 반응인데 이 사랑은 포도주보다 더 낫다. 또 이것은 그분의 매료하는 이름에 대한 반응인데 이 이름은 바르는 기름의 쏟은향 기름(관유)와 같다.

1.아가서에 있는 연인은 그리스도를 추구하고 자신과 자신의 벗들이 그분을 좇아달려 가도록 그분께 자신을 이끌어 주시라고 요청한다.(1:4) 그리스도께 매혹된 모든 이들에게는 함께 그리스도를 따르는 벗들이 있다. 내가 주님게 이끌린 이래로 많은 이들이 나와 함게 주님을 따랐다. 사랑하는 분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셧을 때. 베드로는 그분께 매료되어 그물을 버리고 그분을 따랐으며  베드로의 벗들인 수많은 이들이 함게 그리스도를 따랐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를 때 우리는 다른이들 또한 그분을 따르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 된다.

2.그리스도와 그분의 연인의 교통의 결과로 그녀는 교회생활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양떼는 교회를 상징하는 또 다른 표징으로 수많은 믿는이들의 집합이다. 그녀가 사랑하는 분은 그분의 연인을 지성소(내실)인 그녀의 영안으로 이끌어서 그녀와 친밀한 교통을 갖는다. 여기에는 영이라는 단어가 없지만 여기에서 언급하는 내실은 우리의 영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은 그리스도의 거처이고 그분의 지성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교통할떼 그분의 연인은 그녀의 벗들과 주님의 사랑을 찬양하면서 즐거워 하고 기뻐한다. 왜냐하면 그녀들이 정말로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3.연인은 그녀가 사랑하는 분과 교통할때 자신이 아담안에서는 죄인임을 본다. 그녀가 게달의 장막처럼 검다는 것이 이것을 가리킨다. 게달의 장막은 아담안에 있는 한 죄인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었다. 그녀가 솔로몬의 휘장처럼 사랑스럽다는 것은 이것을 가리킨다. 장막은 햇빛아래 있지만 휘장은 내실 안에 있다.예루살렘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계달의 장막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같구나 (1장5절)

그러한 교통은 그리스도의 연인이 교회생활안으로 들어가도록 그녀를 안내한다. 그리스도의 연인이 교회생활안으로 들어온후. 성령은 그들과 교회안에 있는 성도들을 함께 변화되게 하신다. 그녀는 종파의 형제들 (내 어머니의 아들들 )에게 박해 를 받는다. 그리고 주님의 믿는 이들(벗들)의 교회들 (양때)에서 돌아섰다. 종파의 형제들이 비록 은혜(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지만 그녀를 박해했고 그녀가 교회들에서 멀어지게 하였다. 오늘날의 상황도 이와 같다. 

사랑하는 분은 연인이 교회들 (양때)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시며 또한 주님께서 목양하시는 그분의 교회. 곧 각 지방에있는 교회들 (목자들의 장막) 안에서 그녀의 영적인 자녀들 (어린 염소새끼들 )을 먹이게 하신다. (아 1:7-8)  이것은 교회들을 따르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교회들을 따를때 우리는 그분을 찾게 된다. 우리가 교회를 찾을 때 우리는 모든 어린 믿는이들(어린 염소새끼들)을 교회 안으로 이끌어 올것이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연인의 교통은 교회생활로 귀결된다. 아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가 ! 
(1장8절). 여인중에 어여쁜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 9절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그분의 연인은 또한 공개적으로 구속의 샘인 엔게디(새끼염소의 샘) 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포도원)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부활(고벨화송이)을 누린다.

아가 1장9-17절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 꿰미로 아름답구나 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 사슬에 은을 박아 만들리라. 왕이 침상(내실)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토하였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품 가운데 몰약 향량이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야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너의모습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로구나.

그리스도의 연인은 강하고 천연적인 사람(바로의 병거를 끄는 준마처럼)에서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며 살며(백합화 마6:28) 단일한 눈(비둘기. 마10:16)으로 그분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주님은 복종하는 그녀의 사랑스러움(땋은 머리가 드리워진 사랑스러운 두뺨)과 변화시키는 영과 그녀의 아름다움(보석 꿰미들로 꾸며진 목)을 감상하신다. 변화시키는 영과 그녀의 벗들(우리)은 그리스도의 구속의일(은장식)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을 그녀에게 조성시켜(금사슬)로 그녀을 단장해 준다.(11절)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연인과 앉아계실때 그리스도를 향한 그녀의 사랑은(나드) 향기를 뿜는다.(아 1:12) 우리의 소그룹에서 종종 주님은 보이지 않는 손님으로 우리와 함께 앉아계신다. 그리스도의 연인은 내밀힌 주님의 죽음(몰약)을 누린다. 그분의 연인은 또한 공개적으로 구속의 샘인 엔게디(새끼염소의 샘) 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포도원)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부활(고벨화송이)을 누린다.

주님의 연인이 그 영에 의해 단일한 눈(비둘기)으로 그분을 바라보는 것으로 인한 그녀의 아름다움을 감상하신다. 그분의 연인은 주님의 아름다움과 감미로움을 누리며. 또한 때 맞추어 자신을 공급하시는 풍성한 공급의 근원(사과나무)이신 그리스도를 감상한다. (2:3) 이것은 변화가 산출한 서로에 대한 감상이다. 

그분의 연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안식과 누림으로 만족한다. 그녀는 주님께서 감싸 안으시는 가운데(2:6) 그녀의 밤의 휴식처(침상)인 주님의 공급하시는 생명(푸름)안에서 안식함으로 만족하고. 피난처(들보와서까레)인 주님의 죽음(편백)과 부활(백향목) 안에서 안식함으로 만족한다.

2장8-3장5절.  십자가와 하나됨을 통해 자아에서 구출되도록 부르심을 받음

난 샤론의 수선화요 여자들중 내 사랑은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남자들 중 내 사랑은 수플속 사과나무라.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참 심히 기뻐하였고.그 실과 단맛 보았네.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치집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승리의 깃발이구나. 너희는 건포도로 나를 돕고 사과로 시원케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감당치 못할병이 났구나. 그의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게로 받쳐주시고. 그의 오른손은 그 품에 안아 주시니. 예루살렘 여자들아 노루와 들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하노니. 내 사랑 원하기전에 흔들고 깨우지 마라. 

그녀는 더 나아가 누림직한 교회생활(연회장)안에서 그녀 위에 나부끼는주님의 승리의 사랑(사랑의 깃발)으로 만족하고 생명의 떡으로(건포도)이신 그리스도로 기운을 돋으며 생명의 열매(사과)이신 그분으로 신성하게 되는 교회 생활 안에서 그녀의 사랑의병을 치유받는다.

그리스도는 참견하기 좋아하는 믿는이들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그녀가 그분에 대한 다음단계의 체험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할때까지 (그녀가 원할때까지) 그리스도에 대한 그녀의 체험.즉  자아를 벗어나고 자시성찰로 인하여 은둔하는데에서 벗어나 그분과 비밀한 교통 안으로 들어가는 체험에서 그녀를 깨우지 말라고명령하신다.

2장8-9절. 나의 사랑하는자의 목소리 내게 들린다. 보라 그가 산을 넘어 신속히 달려 오누나. 9절.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 들사슴으로 우리의 벽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 보며 창살틈으로 였보는 구나.

주님의 연인은 아가서 2장9절에서 내적성찰을 하는 자아인 우리의 벽 안에 있었다. 이벽은 자아 밑바닥에 있다. 그녀의 내적성찰은 그녀를 주님과 분리시킨 벽을 만들었다.

그리스도의 연인은 십자가와 하나 됨으로 자아에서 구출되도록 그분께 부름 받는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연인의 체험의 두번째 단계이다. 중요한 세단어가 이 부분을 해석하는 것을 도와 주는데 곧 십자가와 자아와 자기 성찰이다. 십자가는 바위틈과 낭떠러지 은밀한 곳으로 상징된다. 이것들은 안전한 장소 이기는하지만 울퉁불퉁하여 거의 누구도 그곳으로 가려 하지 않는다. 바위틈과 낭떠러지 은밀한 곳은 분명 타락한 사람에게 안전한 장소인 십자가를 의미한다.

비록 아가서에 자아에 대한 표시는 없지만 그리스도인의 체험에 따르면.두번째 단계에서 그것이 나타난다. 자아는 매우 간교하다. 자아는 자기 성찰이라는 거짓된 가면을 쓰고 들어온다. 사실상 자아는 자기성찰로 이루어져 있다. 자기성찰이란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살피는 것이다. 

우리가 자기성찰을 할때 자신이 어떤 일에서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죄를 자백할 것이다. 아마 우리는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반복해서 자백하면서 더 많이 자백할수록 더 많이 용서를 받는다고 생각 할 것이다. 사실상 이런 종류의 자백은 사탄적인 자아에서 나오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이러한 종류의 상태. 곧 자기 성찰로 인하여 산출된 침체된 상태에서 우리를 구출할수있다.

그리스도의 연인은 그분과의 교통으로말미암아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능력으로 십자가와 하나 됨으로 말미암아 자아에서 구출되도록 부름받는다. 

그녀가 사랑하는 분이 산을 넘고 언덕들을 넘어 오는 노루와 숫사슴처럼 뛰어오는것을 본다는 것은 그분의 부활능력을 상징한다. 그리스도와 우리의 교통에서
어려움은 모두 우리편에서 오는 것이다. 어떠한 산들이나 언덕들도 그분을 방해 할수없다. 우리는 낭떠러지 은밀한 곳(십자가)에 있을때 유일한 길은 그분의뛰어오르심과 뛰어넘으심을 의지하는 것 뿐이다.

그녀가 사랑하는 분이 우리 벽 뒤에서 서성이는 것은 연인의 문제인 자기성찰이 그녀와 그분 사이를 나누었음을 상징한다. 그분이 창문들 틈으로 들여다 보고 창살틈으로 엿보고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연인과 교통하시고 교제하시기 위해 마련하신 창구를 상징한다. 아무리 우리가 자신을 은밀하게 감추려고 해도 그리스도께서 보실수있는 창이 있다.

(찬송가992장) 그 사랑 내 위에 기라.그 사랑 내 위에 기라.날 잔치 집으로 데려가니.그 사랑 내 위에 기로다. 그 사랑이.내 위에 깃발이라네.그 실과 내 입에 달아 그 실과 내 입에 달아 나 그 그늘 아래 기뻐하네 그 실과 내 입에 달았네. 달고 다네 그 실과 내 입에 다네 .나 그 그늘 아래 기뻐 하네 그 실과 내 입에 달았네

주님은 그분의 연인이 그분 안에서 안식하기를 원하신다.(아2:7) 그분은 참견하기 좋아하는믿는 이들(예루살렘의 딸들)에게 그분의 연인이 그분에 대한 두번째 단계의 추구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할 때까지는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체험하고 있는 그분의 연인을 깨우지 말라고 엄명하신다. 그리스도인의 생활 가운데서 그녀는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하고 그분을 체험하며 교회생활 안에서 만족하는 목표에 이르렀다. 

2장10-17절.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 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아가 2장10-13절까지에서 그분의 연인은 그녀의 사랑하는 분께 반응하기를 간청 받으며 또한 겨울이 지나고 부활의 넘치는 풍성의 봄이 이미오고 있음으로 인하여 격려 받는다. 10절에서 "내 사랑하는 이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일어나서 함께가자"는 그리스도의 연인이 그분과 교통하면서 그분께 응하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녀가 자신의 상태안에 침체되어 있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분의 사랑안에서 그녀를 일으키신다. 우리가 영적인 추구에서 어떤성취가 있을때마다. 낮은 상태로 떨어질수있다.이러한 상태는 우리의 자아로 인한 것이다. 11절의 겨울과 시련의 때가 지나가고 부활의 봄의 때가 오고 있음을 가리킨다.

14절에서 그리스도는 십자가 바위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표정을 보고 싶어하시고 그녀의 달콤한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신다.그분의 부활능력 안에서 그분을 추구하는 이를 부르시는 것은 십자가에 대한 체험안으로 들어가게 한다.

15절에서 그리스도는 그분의 연인에게 그녀의 특이함과 습관과 자기성찰. 곧 작은여우을 주의 하라고 명령하신다.이러한 것들은 모두 그분을 위한 연인의 부활. 꽃이만발하는 포도원을 망친다. 포도원의 꽃을 망치는 작은 여우들은 우리의 특이함과 습관과 자기성찰을 상징하고 포도원들은 교회생활을 상징한다. 이러한 특이함은 교회에 어려움이 된다. 오직 십자가만 우리를 특이함에서 벗어나게 한다.

2장16절부터 3장1절까지에서 우리는 그분의 연인이 거절과 그녀의 실패하는 것을 본다. 17절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라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의 느낌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속하셨고 자신이 그리스도께 속하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분은 그녀와 함께 계시지 않고 그녀에게서 떨어져 순수하고 신실하게 그분을 따르는 이들을 먹이고 계신다. 이 시점에서 그녀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아니다.

"내 사랑하는 자야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의 노루와 어린 사슴처럼 되어주세요."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녀는 그분을 거절한다. 그녀는 그분께 그녀의 침체된 상태가 끝날때까지 기다리셨다가 그들이 분리되어 있는 동안 베데르 산들에서 노루와 수사슴처럼 부활안에서 자신에게 돌아와 주시기를 요청했다. 이 분리는 그녀가 아닌 오직 그분에 의해서만 제거 될수있다. 베데르라는 말은 분리를 뜻한다. 

사랑하는 이는 이렇게 말하는 것같다."주님 저는 준비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지금 오시지 마시고 내 상태가 끝날때까지 기다려 주시기 원합니다. 분리의 산에있는 노루처럼 되어 주세요" 그녀는 자기 성찰안에 자신의 낮은 상태안에 있는 동안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분을 찾으려해도 그분를 찾는데 실패한다.(3:1)

아가 3장1-4절.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 안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노라.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로,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아가서3장 2절과 4절에서 그분의 연인은 깨어나고 침체되었던 그녀의 상태에서 회복된다. 그녀는 자신 안에서 나와서 다시는 자기성찰로 돌아가지않는다. 이전에 그리스도의 연인은 자기성찰이라는 상태에 빠져 있었지만. 어느날 그녀는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나는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하늘에 속한 예루살렘의 방식과 방법으로 그녀가 사랑하는 분을 찾으려고 한다. 하늘에 속한 예루살렘에 이르는 노정에서 그녀는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는 이들을 만나게 되고 그녀는 그들에게 "내 혼이 사랑하는 그이를 보셨나요"(3:3) 라고 묻는다. 그녀는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그녀가 사랑하는 분를 찾았고 비밀한 교통을 갖기 위해 자신을 거듭나게 한 "은혜의 영안으로" 그분을 모셔들이기 까지 그분을 붙잡고 놓으려 하지 않았다. 

아가3장4절에서 그분의 연인은 "나 그들이 지나치나마자 내혼이 사랑하는 그이를 찾고는 그이를 붙잡고 놓으려 하지 않았에 내 어머니의 집으로 나를 잉태하신 이의 방으로 그이를 이끌어 들이기까지"라고 말한다. 어머니의 집은 그녀가 태어난 곳이며 어머니의 방은 그녀가 잉태된 곳이다.

그분의연인이 깨어났을때 소생되었고 그녀가 사랑하는 분을 찾고서는 붙잡고 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마도 이전에 그녀가 놓친 이유는 꼭 붙잡지 않아서였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분을 꼭 붙잡은 것이다. 그녀는 비록 마땅히 자신에게서 나와서 주님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여전히 느낌에서의 그분의 임재를 추구하고 사모하고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녀가 아직 배우지 못한 공과가 많고 아직 모르는 일이 많지만 주님은 기꺼이 그녀를 만나주시고 그녀에게 붙잡혀 끌려가신다. 그녀는 아직 영과 혼을 분리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은 여기서 그녀을 탓하지 않으신다. 그녀는 그리스도를 그녀의 어머니의집.곧 그녀가 은혜로 태어난 곳으로 이끌어들였으며 그녀가 사랑으로 잉태된 곳으로 이끌어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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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정하신 길 - 제 29 과 - 전시간 봉사자들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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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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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를 다녀와서


은혜로은글 2017-12-1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541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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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는 20여년전 회복의 복음이 전해졌읍니다. 회복안에 성도수는 3000명이며 50여지방교회가있읍니다.미얀마에서 주님는 가난한 시골오지에서 성도들을 불렀습니다.그러므로 성도들은 주님께 절대적입니다. 오늘 훈련센타에 가보았습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순수한 젊은이들이 훈련받는 모습을 보았읍니다.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주님을따르고 있었습니다. 한끼 식사가 한화로 500백원 이라고 합니다.식단을 보았는데 쌀밥에 닭발국 채소볶음. 변변치 않지만  맛있게먹고 있었읍니다.

오후에는 아웅산 폭발사고가 났던곳에 갔습니다.그리고 쉐다곤파고다에 가보았는데 말못하는 우상의 우매한사람들과 거짖으로 가득찬 불교사원을 보았읍니다.마치 바울이 아테네에 갔을때 알지못하는 신의 제단들을 본것 처럼 우매한우상들로 가득했읍니다.

"사도행전17장16절.바울이 아테네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동안에 그도시에 우상들이 가득한 것을 보고 그의 영이 속에서 격분하였다.그래서 바울은 회당에서 유대인들및 경건한사람들과 더불어 변론하였고 또 날마다 광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도 변론하였다. 어떤 에피쿠로스 철학자들과 스토아철학자들도 바울과논쟁하였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하려고합니까.라고 하였고 또 어떤사람들은 다른나라 신들을 전하는사람인가 봅니다.라고하였다. 이것은 바울이 예수님과 부활을 복음으로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얀마전체인구는 5000만 이며 국토는 남한의 7배입니다.양곤은 인구가 700만명이 사는 대도시입니다. 인구의 85퍼센트가 버마종족이고 15퍼센트는 소수민족으로 이루져있습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불교이고 인구의 5퍼센트는 천주교 기독교.회교도이며 심지어 유대인의 회당도 있습니다.

경제는 부존자원은 많지만 아시아 최빈국중 하나 입니다.극소수의 사람들이 부를 차지하고 있으며 많은사람들은 가난합니다.도심에서 벗어난 시골에는 전기도없이 농사를 지으며 사는 농업국가입니다.전기 보급률은 30퍼센트 밖에 안됩니다.

어제 우리는 아웅산묘지 앞에있는 쉐라곤파고다에 갔습니다.이사원은 매우큰 규모의 사원으로 세계 각곳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옵니다.우리도 신발과 양말까지 벗고 올라갔습니다. 한국에서도 불교인들이 왔는데 스님이 불경을 외우고 예불을 드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규모는 상당히 컷고 수많은 탑과 불상들이 있었읍니다.지금도 불탑을 세우는 공사를 하고 있었읍니다.1800년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을때 찍은사진을 보면 중앙에있는 쉐다곤탑과 몇몇개의 불상만 있었읍니다.

요한계시록 18:2-3.
"그분은 힘찬 음성으로 외쳐 말씀하셨습니다. “무너졌다! 큰 바빌론이 무너졌다! 바빌론은 귀신들의 거처가 되었고, 온갖 더러운 영의 소굴과 더럽고 가증한 온갖 새의 소굴이 되었다.  왜냐하면 모든 민족이 그 여자의 음행으로 말미암은 분노의 포도주를 마셨고, 땅의 왕들이 그 여자와 음행을 하였으며, 땅의 상인들이 그 여자의 과도한 사치 덕분에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로마서8장12절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육신에게 빚진자가 아니므로 육신대로 살것이 아니니라” 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도 여전히 육을 따라 살 가능성이 있음을 증명한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왜 바울은 우리가 육신에 빚진자가 아님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려 하는가.우리의 육이 우리가 구원받기전보다 더 났다고 생각하지 말라 사람이 구원받든 안받든 육은육으로 남아있다.

육신을 따라살지않음

8:13절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말한다.이구절은 구원받은 사람도 육신을 따라 살수있음을 말하는 또 하나의 증명이다. 육신을 따라 산다는 것은 먼저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고 마찬가지로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것은 주로 육신을 따라사는 것을 의미한다.우리는 몸의 행실을 죽이기 위해 영의일을 생각하고 영을 따라 행해야 한다.

그여자의 과도한 사치덕분에 부자가되었기 때문이다.요한계시록 18:3.사원은  성스러운  곳이라고하여  신발뿐아니라 양말도 벗고 들어가야했읍니다.이것이 법이기때문에 이것을 어기면 안됍니다.그러나 사원입구부터 많은상점들이 있고.우상들을 팔고 있었읍니다. 그리고 사원안은 많은 관광객들로  분비고 있었읍니다. 아마 관광수입이  엄청날것같습니다.

그래서 미얀마의 불교는 돈이많다고 합니다. 젊은이들이 승려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승려가되면 먹고사는 문제와 편하게 살수 있기때문 입니다.로마의 베드로성당에 갔을때도 같은 모습을  보았는데 이곳에서도 사탄은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말 장이 인것을 알수있었습니다.

펨버는 그의 저서 "위대한 예언들"에서 심지어 부처가 성 조세패드 라는 이름으로 천주교 안에 들어왔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천주교의 달력에는 사실상 부처의 이야기와 같은 이야기를 가진 조세패드 라는 이름을 가진 성자가 있다.바벨론교(신앙)가 불교 안으로 들어갔으며 바벨론교가 더한층 발전된 것인 불교가 천주교 안으로 동화 되었다.

이제 우리는 펨버가 저술한 “위대한 예언들” (104쪽) 의 한단락을 읽어보자.
“벨사살의 사후 1세기도 못되어서 새로운 신앙이 인도에 퍼졌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바벨론교를 약간 수정한 불교였다". 사실 부처 자신은 성 조세패드라는 이름으로 로마 천주교 달력안에 있는 한 성자이다.”

이처럼 부처의 이야기가 천주교 속으로 들어갔다. 이것은 이교 신앙이 로마 천주교회로 동화된 한가지 예이다.또하나의 실례는 크리스 마스이다. 크리스 마스는 그리스도께 대한 모독이므로 순수한 양심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그것과 아무 관련도 맺지 말하야 한다. “두 바벨론”이란책이 입증하듯이 크리스마스는 유럽의 이교 신앙에서 기원되었다. 기원전 몇세기 동안 유럽의 이교도들은  12월 25일을 태양의 탄생일로 경축했다.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받아들였을때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독려했으며. 침례받은 수천명의 사람들에게 상을 내리기도 하였다. 그리스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는 사람들이 기독교계 안으로 들어오면서 그들이 이교적인 관습들을 함께 가지고 들어왔다.얼마후 태양신의 탄신을 경축하는 12월25일에 그리스도의 이름이 부착되었다.크리스 마스. 부활절.  마리아 숭배등은 모든  이교신앙이 로마 천주 교회로 동화 된 것이다.

로마 천주교안에 참된 것이 있음을 아무도 부인 못한다. 그러나 음녀는 금잔을 쥐고 있으며 그 음녀는 가증한 것들과 더러움과 영적음행으로 가득 차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바벨론의 문제이다.신부나목사를 성직자로 부르는 것.그것이 바로 바벨론에 속한 것이다. 크리스마스 츄리를 세우고 산타클로스를 존경하는 것. 그것이 바벨론 에속한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선해지려고 노력하고 율법을 이루려고 노력 할수록 내적인 정죄가 더있다. 만일 우리가 주의하지 않고 선을 행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내적인 정죄를 체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나는 올바르고 완전해야 한다" 라고 말한다면 자신에 의해 정죄를 받을것이다. 자신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당신은 더욱 자기 정죄 아래 있을것이다".

불공을  드리는 스님처럼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면 헛되이 섬기게되고 불교신도들을 거짓된 가르침으로 인도하게 됩니다.미얀마의 불교는 옛날부터 부자 라고합니다. 그것은 불교는  윤회설을 가르치기  때문에 사람들이 죽을때 극락에 가고 싶어하고. 좋은것으로 환생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모은재산을 죽기전에 절 에다 기부를 하며.돈다발을 쌓아놓고 길가에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옛날에 어떤 왕조는 (불교는 돈이  많은데) 자기왕국은  돈이 없어서 망한 왕조도 있었습니다.이렇게 미얀마에서 불교는 돈이 많아졌고 "도심의 중심지의 좋은 땅은 모두 불교의것" 이라고 합니다.

불교가 85퍼센트인  이땅에 한국형제님들의 수고로 주님의 회복이 확산되고 있읍니다.최근 몇년사이에 성도들이 빠른속도로 증가하여 3000명이  되었습니다.가난한  중에서도 절대적으로 주님께 헌신하는  성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주님은 이땅에서  움직이고 계십니다. 

회복역 신구약성경을 최초로 미얀마 젊은형제들이 번역하였습니다.형제들의 학력은 중.고등학교 졸업정도의 수준이지만 뉴질랜드.필리핀등지에서 훈련을 받고 영어를 잘하며 주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상당히 좋은수준의 번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5퍼센트인 이땅의 사람들에게  복음이 확산되고 있읍니다.그래서 다른단체와 연결되는 역할을하고 있읍니다.최근에는 한무리의 기독교단체 200명이 들어 왔읍니다.그리고 각교파의 기독교에서 미얀마성경이 필요하므로 성경책을 달라고 요청도하고 있읍니다.

그리고 이나라의 두명의 부통령 중 한사람이 기독교인 이라서 이번국제집회도 허락 되었읍니다.2년전만  해도 될수 없던  일이었는데 주님께서 허락 하셨읍니다. 이나라는 공산주의 나라여서 예전에는 거주이전의 자유가없었읍니다.그래서 곳곳의 도로에  검문소가 있어고 모든자동차가 지나갈때 한사람씩 한사람씩 통행증 검사를 하였으나 지금은 자유로워졌읍니다.

어제 랑군에서 새벽5시에 출발하여 인레호수로 갔습니다.그리고 오늘새벽 3시30분 내피도 집회장소 호텔에 도착하였읍니다.우리는 어제 인례호수에서 하루종일 보트를타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놀라운 창조물을 누렸읍니다.이곳의 도로사정이 좋지않아 버스가 매우 흔들려서 이동중에는 글쓰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네피도에서 국제 섞임집회 2017.12.1-3일

오늘 부터 1-3일까지 네피도에서 국제 섞임 집회가 있습니다.  전국 오지에서 성도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어서 낮에는 집회를 시작하기에는 아직도 지체들이 달려오고 있기에, 기다렸다가 저녁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원근각처에서 몇날 몇칠이 걸려서 이곳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훈련생들의 구성을 보면 3분의2가 성경을 배우기 위해 타기독교에서 왔습니다.회복역 성경을 접하고서 성경공부을 하기 원해 왔습니다.훈련생들은 졸업후 각지로 돌아가 지방교회에서 봉사 하고 있습니다.올해안에 구약회복역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미얀마는 200년전에 번역된 성경밖에 없기 때문에 회복역이 나오면 각기독교 지도자들이 이성경을 구입하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생명은  하나님의생명 신성한 생명 일뿐아니라 교통의 생명입니다.하나님은 우리를 "아들의교통안으로 부르셨읍니다".이 아들의 교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주신 몫이신그리스도입니다. 이번집회는 미얀마 성도들의 몫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놀라운 집회였습니다.

이곳에은 장로교는 없고 형제회 계통과  침례회계통의  믿는이들이 있읍니다.성도들의 구성요소를보면 대부분 10-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많고 간혹 40.50대가 있습니다. 이것은 40년전 한국교회를 생각나게 합니다.최근 미얀마 지방교회들은 정부에 기독교단체로서 유일하게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네피도에서 국제집회를 할수있도록 허락된 것입니다.이번집회는 800여명의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작년보다. 작은인수가 모였지만, 이나라 수도에서 한다는 큰의미가 있읍니다. 이것은 주님의 간증이 미얀마 땅에서  선포된 것입니다.미얀마 서 북쪽에는 소수민족인 친족이 살고 있는데 이곳에 인구는 10만명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인구의 90퍼센트가 기독교 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회복안의 성도가 1500명 입니다.


작년에 이곳 친(state)주 마투피라는 지방에서 국제섞임집회를 가졌는데 그곳의 성도들이 이곳 저곳에서 차편이  없어 3일 동안 걸어서 왔고. 앙곤의 지체들이 가는데에도 15시간 동안 차를 타고 갔습니다.그곳은 해발 2000미터 되는곳에 위치해있는 오지로서 그곳의 성도들이 집회에 참석키 위해 걸어서 버스로 삼일동안 온 형제들 100여명이 참석하였습니다.

미얀마는  폐쇠된 국가 였었읍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수도 네피도에 있는 밍갈라띠리호텔에서 자유롭게 800명이  넘는성도들이 아무 제한과 감시 없이 829장 찬송을 부르며 주님의 떡과잔을 나누며 주님의 상을기념했읍니다.
이것은 불과 2년전만  해도 불가능한 일 이었습니다.주님이 역사하셨읍니다. 태국은 민주화를 외치며 데모를 했지만 군부로 되돌아갔습니다.


이 나라는 누군가가 뒤에서 밀어내어 개방 되었다고 어떤 장관이 말하였습니다. 6년전만 해도 몇명이 모이는 집회신고를 하면 정부요원들이 참관하였읍니다. 그러나 행정수도인 네피도에서 국제집회가 열릴거라고는 상상도하지 못한  일이었읍니다. 
  
마지막으로 훈련생들의 찬송전람이 있었습니다.초롱 초롱한 눈망울 가진 단순하고 순수하게 주님을 사랑하는 젊은 사람들을 보았읍니다.훈련생들이 부른 찬송가는 우리의 영을 불타게 했습니다. 

주님께 사로잡히고 주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젊은이들의 모습을보며 눈물을 흘리며 감동되었읍니다.주예수님 ! 우리나라에는 주님께 사로잡힌 이런젊은 사람들을 찻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지방교회.워치만니.위트니스리


터키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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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 카르도(길)로서 주변에 상가와 신전이있다.

 

20161212_140145에베소 항구로부터 에베소로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원형극장.

2016년12월7일저녁 이스탄불에 도착하여 하루밤을 지내고.12월8일 오전부터 콘스탄틴노플 고대 로마전차경기장 이었던 히포드롬광장 과 블루모스크에 갔다. 그리고 유럽에서 아시아로 연결되는 보스포러스 다리를 건너서 북쪽 지방 비두니아 폰투스(본도) 산맥을 넘어 샤프란불루지방으로 갔다. 가는 길은 이미 눈이 온터라 날씨가 추을뿐 아니라.산에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샤프란블루 마을에 갔을때. (행 16:6-7절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므로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역을 거쳐 무시아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하였지만 예수님의영 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다”10절:바울이 그 이상을 본뒤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다는 결론을 내리고 즉시 마게 도니아로 가기를 힘썼다”)
왜 성령은 바울로 비두니아로 가는것을 허락하지 않았는지 주님의 뜻을 알수 있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곳은 산악지역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기에는 부적합 지역이었고. 주님은 마게도니아 쪽으로 가는 것을 원하셨다.성령은 그들의 왼쪽으로  곧 아시아로 가는 것을 막으시고 예수님의 영은 그들이 오른쪽으로 곧 비두니아로 가는 것을 허락지 않으심으로 사도와 그의 동역자들에게 직진하는 방향을 지시 하셨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무시아와 드로아를 거쳐 마케도니아로 직행했다.
우리는 비두니아를 거쳐 앙카라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갈라디아를 거쳐 갑바도기아로 가는 길에 소금호수에 도착하였다.가는길에는 산에 나무를 볼수가 없었는데 이곳은 화산이 분출된 지질때문에 나무가 자랄수없다고 한다.  터기의 여름는 비가 젼혀오지않고 겨울부터 우기가 시작된다.
소금호수는 이곳이 이전에 바다였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수심은 깊지 않고(1m정도) 여름철의 강렬한 햇빛으로 물이증발하여 소금이들어나고. 겨울에 물이다시 채워지는데 터키에서 두번째로 큰 호수로 변한다고하며.이곳에서 생산되는 소금으로 터키내 소비 3분의 2를 공급한다고 한다.
벧전1장1절. “예수그리스도의 사도인 베드로는 본도와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사는체류자들에게편지합니다.”
예루살렘의 핍박으로 인해 사도들이 각지로흩어졌고. 벧전1장의기록처럼 베드로와 안드레.마태와 바돌로매는 본도.갑바도기아.갈라디아.비두니아.아시아로가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갑바도기아에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생활은 로마제국의 핍박을 피해 이 먼곳에 지하동굴 도시(데린구유)를 건설하였다. 사도들은 이 척박한땅.지하동굴이 있는 갑바도기아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였고. 아시아와 유럽으로 복음 이 급속도로 전파하게 하였다.
우리는 어제까지 베드로의 사역루트을 따라 마케도니아지방에서 동서양을 연결해주는 보스포러스해협을 건너 비두니아를거쳐 갈라디아.갑바도기아 에도착하여 하루밤을 묵었다. 베드로.바울시대의 환경과는 다르지만 지금도 사탄 마귀는 이곳에서도 사람들을 미혹하고있었다.
우리는 이곳 갑바도기아 관광청에보여주는 이슬람 종교의식춤 을 보았는데  이춤은 콘야지방(이고니온)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어둡게 만들어진 이슬람건물안으로 들어갔다. 알라를 위한춤(세마) 이라고 한다.그춤은 이슬람왕궁에서 추는 춤으로 무희들 여러명이 전통복장을 하고 어지러울 정도로 계속 빙글빙글 돌며 그춤을통해 무아지경에 이르고 알라를접촉한다고 한다. 함께간 사람들은 “저승사자가 오는줄 알고 무섭고 두려웠다”.고 했다. 또 이슬람 궁중무용도 함께 보았는데. 가슴을 드러내고 엉덩이로 추는 춤으로 오늘날의 밸리댄스였는데 이댄스는 이슬람에서부터 시작 되었다고 한다.그것을보면서 사탄이 어떻게 이슬람속에서 활동을 하는지 보게되었다.
오늘은 지중해 남쪽 앗달리아로 가게됩니다. 가는길은 바울의1차사역 여행 방향입니다. 더베와 이고니온(콘야).루스드라와 밤빌리아의 버가를 거쳐 저녁에 앗달리아에도착할 예정입니다.
이고니온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은 평지입니다. 옛날부터 이곳은 농사를 많이 짓는곳 이라고 합니다.앗달리아에서 이곳에 오기위해 바울형제님은 해발 3900m. 산맥의 길이가 800km 되는 토러스산맥을 넘어야 했습니다. 버스로 가도 9시간이 걸리는 이길을 바울형제님은 어떻게 가셨는지 궁굼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어떤댓가라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바울의 영이 느껴집니다.
이런환경에서 바울형제님은 1.2.3.차 복음사역을 위해이곳에 오셨는데 아마 낙타나 나귀를 타고 다니지 않았을까 생각 됩니다.실크로드 대상들이 낙타를 타고 묵었던 숙소(카라반 사라이)가 이곳에있습니다.이고니온은 11세기 셀주크투르크왕국이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갑바도기아에서 이고니온 루스드라를 거쳐 토러스산맥을 넘어 9시간만에 앗달리아에 토착하였는데 날이 어두워졌습니다.이곳는 지중해 해안도시로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개선문이 있었읍니다.”행 14장25절.버가에서 말씀을 전한후에 앗달리아로 내려가”거기서 배를 타고 안디옥으로 떠났다.
앗달리아에서 하루밤을 묵은후 아침일찍 지중해로 가서 범선을타고 항해하였다. 그리고 앗달리아에 있는 올림프스산 으로갔다. 그 곳 정상까지 올라가는 케이불카를 타고 올라갔는데 경치가 아름답고 웅장했다. .이산은 2365m 되는 아주높은 산으로 신들의 고향이라고 불린다고한다. 아마 그당시의 사람들은 어마어마하게 높은 산에 압도되어 그곳에 산신령이 있다고 생각했을것이다. 행전14장11절에서 “신들이 사람의 모양으로 우리가운데 오셨읍니다”.라고하며 바나바를보고 제우스라고하고 바울을보고 헤르메스라고 불렀다”. 토러스산맥은 높은산으로 지중해 앞쪽에 동서로 가로놓여진 높은 산맥이다.
그리고 히에라볼리로 떠났는데 날씨가 12월인데도 완전 봄날씨 처럼 따뜻했다. 우리가 가는 길에 산들은 벌거벗은산들 이었습니다.나무가 자라지 않는가 봅니다. 앗달리아에서 골로새 지방을 지나가고있습니다. 히에라볼리에 가까이갈수록 산에 나무가 많이있습니다.
히에라볼리는 고대로마도시국가 였었읍니다. 크고번창했던 도시가 지금은 페허의무더기만 있군요. 기원전133년 페르가몬왕조는 로마의 속국이 되어 더욱번창하게 되었다. 히에라는 페르가몬왕조 첫번째 왕비(히에라) 이름에서 유례되었다. 페르가몬은 성경에나오는 버가모인데 히에라폴리스는 버가모왕국에 속한 도시국가였다.
바울은 골로새교회에보낸서신에서 히에라볼리사람들을 위해서수고하는 에바브라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골로새.라오디게아.히에라볼리는 인근에있는 지방교회들이었다.거리상 골로새.라오디게아.히에라볼리.3개교회가 20km정도 안팍에 가까곳에 위치해있었기때문에 바울에게서오는서신을 3개교회가돌려가면서 회람을했었을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묵은숙소는 히에라볼리에 있는 골로새 리조트호텔 입니다. 이곳에는 온천이 있습니다. 아마 온천수가 나오기 때문에 고대에 도시국가를 세운것 같습니다.그곳에는 로마시대의 수로가 많이설치되어 있었습니다.히에라볼리 유적지를 보면서 그당시 지방교회들이 있는 도시에 성도들은 어떻게 살며 교회생활을 하였는지 상상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히에라볼리에서 라오디게아를 거쳐 에베소로 갈 예정입니다. 주님께서 여행내내 좋은 날씨를 주셨읍니다.
“골 4:13. 내가 그에대하여 증언해 줄수있습니다. 그는 여러분과 라오디게아에 있는 사람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많은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사랑하는 의사 누가가 여러분에게 문안하고 데마도 문안 합니다.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의 집에 있는 교회에게 문안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이편지를 읽은후에 라오디게아 사람들의 교회에서도 읽게하고 라오디게아에서 오는 편지를 여러분도 읽으십시오”.
(눔바의 집에 있는 교회는 라오디게아 지방에 있는 교회였으며 그 교회는 눔바의 집에서 모였다.)
우리는 사도행전 18 19 20장 배경이되는곳인 에베소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라오디게아 지역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곳에도 페허가된 로마유적지가 보입니다. 과거 이곳이 번창한 곳이었구나. 라는것을 알수있습니다.
관광가이드는 에베소에가기전 먼저 우리를 가죽옷을 파는 매장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그곳에서 가죽옷 패션쇼를 보았는데 모델 남여 다섯명과 관람객들이 함께하는 이벤트를 보았다. 한국에서 간사람들 중에 끼가 있는 몇명의 사람들이 우리를 매우 즐겁게 해주었다. 쇼가 끝나고 그들은 우리를 매장안으로 들어가서 소위 명품 가죽옷을 사도록 충동하였다. 몇명의사람들이 구입을하였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입하지 않았으므로 인솔자들의 안색이 안좋았다. 이것을 보면서 바울시대에 에베소에서 데오드리오가 아데미여신상을 팔지 못하게되자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과제자들을 에베소 원형극장에서 군중재판을 하였던것과 같다는생각이 들었다.
로마제국시대에 4 개의 큰 대도시는 로마.안디옥.알렉산드리아.에베소였습니다. 에베소는 에게해에 인접한 고대항구도시로 바울당시 에베소는 얼마나 큰도시인지 한 눈에 알수있었습니다. 은장이 데메드리오와 그 같은직종에 속한사람들에 의해 선동되었던 장소에 가보았습니다. 사도바울의 사역여행이 생동감 있게 다가오는군요.
에베소에 와 보기 전에는 이렇게 큰 로마 도시 인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에베소는 우리나라지형과 비슷한 산속에 건설된 도시로서 로마에 있는 도시와는 형태가 매우 다릅니다. 바실리카 정부 건축물과 신전과 공공장소인 포럼과 경기장인 야외 원형극장과 셀수스서원(두란노서원) 또 바다와 쉽게연결 되어있는 항구로갈수 있는 도로가 있고 그당시 인구 20만이 사는 아주큰도시 였습니다.
바울형제님은 에베소에서 3년동안 사역 하시면서 온 도시에 복음이전파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데미 여신상을 파는 사람들이 장사가안되어 데메드리오가 자기직공과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선동하여 소동을일으켜 바울의 동역자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 원형극장으로 끌고가서 고난을받게한 장소 입니다.직접 그곳에 가보니 바울과동역자들의 주님을위해서 어떻게 고난을 받으며 사역을 하였는지 알수가 있었습니다.
“19장30:.바울이 군중속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제자들이 말렸고 또 바울의 친구인 아시아 관리들중 몇사람도 그에게 사람을보내어 극장에 들어가는 모험을 하지 말라고 권했다. 그런데 어떤사람들은 이렇게 또 어떤사람들은 저렇게 외쳐대니 모인사람들이 혼란에빠졌으며 대부분은 자기들이 무엇때문에 모였는지도 몰랐다. 어떤사람이 알렉산더가 조용히 하라고 손짓을 해가며 군중에게 해명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유대인것을 알고 모두 한 목소리로 위대하다 에베소 사람들의 아데미여!라고 하면서 약2시간동안이나 외쳤다.”
“35절.그러자 그도시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며 말하였다. 에베소사람여러분 에베소사람들의 도시가 위대한 아데미와 및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신상을 모시는 신전 수호자인.줄을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일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것이니 여러분은 진정하시고 무엇이든지 경솔하게 행동하지 마십시요. 여러분이 끌고온 이 사람들은 신전물건을 훔치지도 않았고.우리 여신을 모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있는 직공들이 어떤사람들을 고소할일이 있다면 법정도 열려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당사자들이 서로 고소하도록 하십시요.”
“19장39절.만일 여러분이 그밖에 요구할것이 있다면 합법적인 집회에서 해결해야 할것입니다. 아무 이유도없는 오늘의 이 일에대한 소요로 우리가 문책을 받을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이 난폭한 집회에 대하여 해명할 말이 없을것 입니다.이렇게 말하고 그는 그 집회를 해산시켰다.”
어제 에베소에서 에게해변을따라 서머나로갔습니다.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아드라뭇데노를 지나 무시아지방 드로아로 떠났습니다. 드로아(트로이)에 도착하였습니다.이곳은 기원전 3000년 경부터 고대 사람들이 살던 유적지가 시대별로 발굴된 곳이었습니다. 아마 바울시대에 큰 해변도시였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사역 여행을 보면 이곳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을 거쳐 마케도니아로쪽으로 가습니다.  이스탄불로 가기 위해 북쪽으로 1시간가량 가니 차나칼레 훼리선착장에 도착하였습니다. 훼리선을 타고 차나칼레해협을 건너유럽땅 게리볼루에도착하였습니다.
게리볼루에서 맛있는 고등어생선요리와 빵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마르마라바다 해변을 따라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하여.비잔틴 제국의 유적지인 성소피아 성당에 가 보았다. 1453년 비잔틴제국이 멸망하고나서 오스만제국은 이곳을 이슬람 모스크로 사용하였는데.그들은 내부를 그리스정교회 모자이크 성화에 회벽칠를 하고 이슬람문향으로 모두 바꾸었다. 1920년 터키가 공화국이 되면서 소피아성당을 박물관으로 사용하고있으며.내부에 회벽을 긁어내는 작업을 진행하고있다. 작업이 진행되면서 비잔틴시대의 성화가 조금씩 나타나고있었다.
하나님은 세계역사를 통하여 아나톨리오땅인 터키를 이슬람인 셀즈크.오스만제국 터키공화국으로 이어지는 1000년의 긴 기간동안 이슬람이 통치 하게 하였다. 비잔틴제국의 멸망후 서양의 기독교인 천주교와 그리스정교회는 오스만제국의 장벽에 막혀서 동양쪽으로 나아갈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정교회는 러시아로 갈수밖엔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서양과 동양의 전쟁에서 비잔틴제국보다 못한나라인 이슬람이 이기게하셨는데 이것은 세계정세가 하나님  손에 있다는것을 말해준다. 만약 서양에속한 비잔틴제국이 이겼다면 우리가 갔었던 히에라볼리.에베소에 성당을세워 아주 지저분한 장소가 되게하였을 것이다. 어째든 이슬람을 통해 순수한 바울형제님의 사역의 발자취를 따라 하나님의 경륜의 이상을 조금더 깨닫게 되었다.
오늘 터키에서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안전하게 집에도착하였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주님께서 저의 안전이 되어 주심을 체험 하였습니다. 저희 보다 앞선팀은 여행내내 비가왔었다고 합니다. 터키는 겨울이 우기 이고. 날씨도 많이 춥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가는 날부터 여행 내내 날씨가 맑고 그렇게 많이춥지 않았습니다.
가이드는 계속 의아한듯 날씨가좋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 전날 에베소로 갈때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날씨가 어두어 졌었는데요. 점심 먹고 에베소갈때는 날씨가 화창해 졌습니다. 이런일이 여러번계속되다보니 함께간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는데요. 왜 그렇게 된것인지. 우리부부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께 감사했읍니다.
행27장22절 이제 또 내가 여러분을 권합니다.기운을 내십시요. 여러분가운데 한사람도 목숨을 읽지 않을것이고 배만 일을것입니다. 내가 속해있고 또 내가 섬기는 하나님 그분의 천사가 바로 이 밤에 내 곁에서서 말하였습니다. 바울이여 두려워 하지 마십시요. 그대가 반드시 가이사앞에 서아합니다. 보십시요 하나님 께서 그대와 함께 항해하는 모든 사람을 그대에게 주셨습니다.
터키는 남한의 8배가 되는 면적을 가진 나라인데요.우리가 자동차로 달린 거리가 3000km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긴여행동안 주님은 저희의 안전이 되어 주셨읍니다.이번 여행을 통하여 바울형제님과 사도들이 어떤 고난을 받으면서 복음을 전파하시고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인 그리스도의 몸을위해 어떤 삶을 사셨는지를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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