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 4장 11-12절


봉사 2015-01-28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53931.html

엡 4:7절 그러나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은사의 분량에 따라 은헤를 주셨습니다.
엡 4:11-12. 그분께서 직접 어떤사람들은 사도로 어떤사람들은 신언자로 어떤사람들은 복음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들은 목자와 교사로 주셨습니다. 이것은 성도를 온전케하여 그 사역의 일을 하게 하려는 것
                   곧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7절에 있는 "각 사람" 은 그리스도의몸의 모든 지체를 포함하는 일반적인 은사를 받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언급된 네 종류의 은사 있는 사람들은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다.

신약안에는 몸의 건축을 위해 사람들 안에 그리스도를 분배하는 유일한 사역만이 있다. 성도들이 사역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온전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것은 몇몇 인도하는 자들에 의해 성취되지 않는다. 직접적인 건축의 일은 온전케된 성도들에 의해 수행된다. 우리 모두는 반드시 사도들로 선지자들로 복음전하는 자들로 목자들과 교사들로서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건축하는 지체들이 되어야 하며. 또 될수있다. 이러한 몸의 건축을 위해 필요한 것은 교리적인 가르침이 아닌 생명의 성장이다. 교리에 대한 강조는 그리스도인들가운데 하나를 파괴해 왔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분으로 영양을 공급받아 점차 교리적인 관념들을 제쳐 놓는다면 우리는 온전한 하나에 이르게 될것이다. 생명이 성장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더 기능을 발휘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 까지 이르러 사랑안에서 스스로 건축하는 데 이르도록 몸의 성장을 갖게 될것이다.



교회가 황폐할때 가져야할 태도


봉사 2014-02-02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51315.html
A.황폐함은 각 사람의 상태를 드러냄

1.교회가 황폐할때 우리는 그러한 황페함이 우리의 상태를 드러낸다는 것을 반드시 인식해야한다.
 (고전 11:19). 이것은 하나의 원칙을 보여준다. 교회가 황폐할때 나타나는 각종 혼란. 잘못. 타락한 것들의 기능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사람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누군가가 하나님 앞에서 시험을 거치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면 황폐힘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2.황폐함은 물론 좋은 것이 아니지만 황폐힘의 용도는 시험을 거치고 통과한 사람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황폐하지 않고 혼란 스럽지 않으며 잘못된 것이나 부폐한 것이없고 어두움이 없는 상황에서는 우리 각 사람의 상태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3.교회가 황폐할때 당신이 어떤사람이고. 주님 앞에서 당신의 상태가 어떠하며 어떤공과를 배웠고.
당신의 품고 있는 마음이 어떠한지가 다 드러나게 될것이다. 황폐함은 우리의 시험일뿐아니라
주님의 나타나심이다.

4.우리가 있는 곳의 교회가 반년 후. 혹은 일년후에 황폐하지 않으리라고 아무도 보장할수 없다. 그때가
되면 당신과 나의 참된 상황이 드러날 것이다. 황폐함은 사람을 드러낸다.

B.황폐할때 가져야 할 태도

1.우리가 교회의 황폐함을 대할 때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는   내가 어디에 있는가. 내가 품은 마음은
합당한가. 나의 동기는 순수한가. 하나님 앞에서 여전히 불순한 것은 없는가.
"나는 하나님의 다름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는가." 라고 항상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2.소요는 여러사람들의 마음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말씀이 옳음을 나타낸다.(고전 11:19)
홍수가 나는 것 같이 어떤 일은 많은 사람들을 떠내려가게 하고. 오직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시험을 거쳐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한다.

3.황폐함은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황폐함이 올때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황폐함이 우리를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황폐하고 타락한 일들이 일아나는 것은
우리들에 대한 시험과 확증이다.





교회생활


봉사 2013-12-08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50952.html
로마서 12-14장은 몸의 생활을 위해 최고의 미덕을 가진  교회생활를 말하고있다. 이러한 미덕들은 우리스스로 행할수없다. 오직 생명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릴때 그러한 생활을 살수가 있다.
우리의 교회생활을 점검해 본다면 우리는 거의 모든면에서 부족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생명안에서 왕노릇하는 것은 넘치는 은혜와 의 의선물을 받는 생활을 통하여 신성한 생명의 다스림안에 살면서 사는 생활이며 그 결과는 실지적인 몸의 생활이다.

교회는 사람들을 체포하는 경찰서나 사람들을 심판하는 법원이 아니라 믿는 이들을 양육하는 가정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나빠질수록 그들에게 더 많은 양육이 필요함을 알고있다.
교회는 어린아이들을 양육하기 위한 사랑이 가득한 가정이다 .
교회는 또한 병을고치고 병든 이들을 회복시키는 병원이다.
교회는 배우지 못한 이들을 가르치고 온전케하는 학교이다.


모두가 한지체라면 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봉사 2013-11-24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50867.html
고전 12장18-20절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 뿐이라면 몸은 어디뇨.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우리 각 사람이 자신의 분량을 알고 또 이분량을 넘어서지 않는 것이 몸의 성장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고전 12장 18절은 각 지체에게 명확한 위치가 있고 명확한 배치가 있으며. 명확한 직임이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기능을 발휘할때 반드시 합당해야하며 질서를 따라야 한다.
몸안의 질서는 생명의 성장과 사역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다.

몸안에 있는 질서.즉 하나님께서 몸안에서 안배하신 순서를 알아야한다. 우리는 기꺼이 우리 분량에 제한 받아야 한다. 우리의 분량을 넘어설때  즉시 우리는 머리의 권위를 넘어서게 되고. 기름 바름의 가르침을
떠나게 된다. 우리가 우리의 분량을 넘어설때 우리는 몸의 질서를 방해 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몸은 유기적인 생명체이며. 사람의 안배로 좌우될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 지체는 반드시 머리로 부터 생명을 얻어야 하과 합당한 질서 아래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안에 두셨다. 우리의 각 지체들은 그리스도의 몸안에서 모두
자기의 위치가 있고 그 위치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그것을
받아야 한다.

롬12장 3절 
나에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나는 여러분 각 사람에게 말합니다. 마땅히 생각해야 할것 이상으로 자신을 더 높게 생각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에 따라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요.



몸의 생활에 큰 장애물인 자아


봉사 2013-11-2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50842.html

마 16:23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뒤로 물러가거라. 너는 나를 실족하게 하는 자로다.
              왜냐하면 네가 생각을 하나님의 일에 두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에 두기 때문이다.

자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 따라서 몸으로부터도 독립을 선언한 타락한 혼이다. 몸에게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곧 몸을 가장 크게 좌절시키고 반대하는 것은 자아이다.

자아의 기원은 사람의 생각속에 사탄의 사상이 주입된것이다. 이제 우리는 자아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는 혼이라는 것을 볼 필요가 있다. 혼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일때 그혼은 즉시 자아가 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창조하실 때 사람은 항상 그분을 의지하는 혼이었다. 사람은 혼으로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의지해야한다.(창2:7)
그러나 혼은 자아가 되었다. 자아는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혼이다. 우리가 자아에 대한 이상을
보았다면 자아가 무었인지를 보았을 것이다.자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혼이다.

이 이상을 본다면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적일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오히려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나는 항상 하나님을 의지해야한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의지해야한다.".

자아는 독립적인 것이기 때문에 몸의 건축에 가장큰 문제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할뿐 아니라.
몸 곧 형제 자매들을 의지해야 한다. 형제자매들로 부터 독립적일때 우리는 자아 즉 독립적인 혼안에 있게 된다.
이것은 교리의 문제가 아니라 체험의 문제이다.

여러분의 체험을 살펴보면 형제 자매들로 부터 독립적일때 하나님으로 부터도 독립적이라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형제자매들로부터 고립되어 있을때. 하나님으로부터도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자아의 이상을 보는 것은 몸과 큰관련이 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회복안에 있다. 회복은 결국 이 중요한 문제 곧 몸의 건축에 이를 것이다. 몸의 원수는 자아이다.
몸에게 가장큰 문제가 되는 것 곧. 몸을 가장크게 좌절시키고 반대하는 것은 자아이다.
자아가 있다면 몸은 없는 것이다. 몸이 있다면 자아는 없는 것이다.

몸을 건축되기 위해 자아. 곧 독립적인 혼은 반드시 처리되아야 한다. 자아는 독립적인 "나"이다.
독립적일때 우리는 자아안에 있고. 몸은 사라지며 평강은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