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자


진리의말씀 2014-02-09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51363.html
육십육권으로 이루어진 성경전체는 두가지 항목 곧 이기는 이들과 새 예루살렘으로 결론을 맺는다.
이기는 이들과 새 예루살렘이 성경의 마지막책인 요한 계시록에 계시된 두가지 주요항목이다.
요한 계시록 1장부터 20장까지 이기는 자들에 대한 완전한 기록을 보여주며 요한 계시록21장부터 22장 까지는
이기는 자들에 대한 결과와 나타남의 완결인 새 예루살렘을 계시한다.

새 예루살렘은 이기는 이들의 총체이다. 이기는 자들은 다가올시대 곧 천년왕국시대에 있을 새 예루살렘일 것이다. 믿는 이들중 비교적 적은부분만이 이기는 자들이 될것이다.
대다수의 믿는이들은 피로씻어지고 거듭났지만  패배당할 것이다.

주님은 다시 오실때 이기는 이들만을 데려가시고 다른 범주에 속한 나머지 믿는 이들은 남겨 두실것인데
그들은 신성한 생명안에서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천년왕국에서 이기는이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가운데 있을 것이지만 패배한 믿는 이들은 바깥어두운데서
징계를 받을것이다.

어떤 농작물이든 성숙하게 되려면 과정을 통과해야한다.
성숙하지 못한 이들은 천년동안 징계와 징벌이 있을 것이다.

요한 계시록 1장 16절은 그분의 오른손에는 일곱별이 있고 라고 말한다. 또한 12절은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몸을 돌이켰을 때 일곱 금등잔대를 보았다고 말하고   20절은 내 오른손에 있는 일곱별과 일곱금등잔대의 
비밀은 다음과 같다. 일곱별은 일곱교회의 전달자(사자)이고. 일곱금등잔대는 일곱교회이다.라고 말한다.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전달자(사자)이다". 이런 전달자들은 교회들안에 있는 영적인 이들로서 마치
별들처럼 그들은하늘에 속한 본성을 지니고있다.
등잔대들과 별들은 모두 어둠속에서 빛을 내기 위한 것이다. 각 지방에 있는교회를 대표하는 등잔대는 단체적인 방면을 말하고  교회의 (사자)전달자를  대표하는 별은 개인적인 존재이다.

그리스도는 교회들 가운데 거니실때 주님의 오른손에 인도하는이(사자)들을 붙들고 계신다.
이들은 주님의 오른손에 있기 때문에 위축되거나 약해지거나 뒤로 물러날 필요가 없다.
요한 계시록 에는 교회들안에 장로들이 없고 그보다 전달자들이 있다.
에베소에 잇는 교회의 사자에게 이렇게 편지하여라.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으시고 일곱 금등잔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계 1:1)

사도요한의 계시록은 일곱교회의 사자에게 쓴 것이므로 바울의 첫일곱서신과 는다르다.
바울의 서신서중 빌립보서만 성도와 감독과 집사들에게 썼으나 빌립보서를 제외한 모든 편지는
다 교회에썼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교회에게 직접 쓰지 않고 성령은 교회들에게 말씀하신다고 했으나
일곱 교회의 사자에게 쓴것이다.

일곱 별은 일곱교회의 사자이다. 사자라는 이 두글자는 영어로는 messenger(전달자) 이다 .
많은 사람들은 계시록 2.3장을 읽을때 여러가지 잘못된 해석을 사자에게 붙이고 있다.
그러면 이 사자는 과연 누구인가 여기에서 말하는 사자는 다 단수이므로 이 서신은 단수의 사자에게
쓴것이다.

그러나 여기의 단수는 단체적인 성질을 띠고 있다. 이것이 각 편지의 마지막에 복수의 이기는 자들을
부르시는 이유이다.  이사자는 단체적인 사자로서 능히 교회의 소수 이기는자를 대표할수있다.
이전에는 교회가 주님앞에섰으나 지금은 사자가 주님앞에 서있다.
주님은 꺼지지 않는별. 빛나는 별을 택하시고 이는 내사자라고 말씀하신다.

오늘 주님의 눈에는 한무리의 사람들이 사자이며. 교회의 성질이 그들에게 맡겨졌다.
종전에 교회의 대표는 지위와 직분을 가진 장로들이었지만 이제 교회를 대표하는 책임은
영적 사자에게 주어졌다. 이사자는 어떤 장로나 집사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교회를 대표할수있는 사자에게 교회의 책임을 지게 하신다.
오늘날 이것은 지위나 직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참된 영적인 권위를 갖느냐의 문제이며
하나님은 그들에게 책임을 위임하시다.
계시록은 하나님의 종들에게 쓴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종이 아니라면 이해할수 없다.(계 1:1)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에는 장로들이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의 움직임을 인도하는 이들이었다.
장로가 되는것은 다소 법적이며 형식적이다. 장로가 되기를 열망하지 말고.빛나는 별이 되기를 갈망하라.
단지 지위만을 가진사람이 되지말고 빛나는 별이되라.



창세기 의 아브라함의 하나님


구약 2014-02-08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51361.html
창12:7-8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내가 이땅을 너의 씨에게 주겠다. 아브람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제단을 쌓았다.
그는 그곳을 떠나 벧엘 동쪽에 있는 산으로 옮겨가서 서쪽으로는 벧엘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아이가 보이는 곳에
천막을 쳤다. 그는 그곳에서도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1.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팔십육세 때에 아내 사라의말을 듣고 하갈을 아내로 취하고 그의 육체를 사용하여 아들을 얻은 사실때문에 침묵의 하나님이셨다.(창 16:1-4, 15-16)
이후로 아브라함이 구십구세가 될때까지 삼십년동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침묵하셨고 그후에야 다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창17장 1절)

2. 아브라함의 하나님은아브라함에게 세번째로 나타나시어  말씀하실때  모든것을 충족시키는
(엘사다이의 하나님) 이셨다.
엘샤다이라는 신성한 칭호는 두개의 히브리 단어로 구성된다. 엘은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뜻이고.
샤다이는 가슴혹은 유방을 의미하는 히브리단어에서유래 했다.

3.모든것을 충족시키는 하나님은 육체에 속한 우리의 타고난 사람이 끝나도록 십자가에 못 박으시는 하나님이고
새 창조물을 위해 우리의 새람이 발아되도록 부활시키는 하나님이시다.

4.아브라함의 하나님은 그분의 친밀한 친구인 아브라함을 기억하셔서 그의 조카롯과 그의 두딸을 멸망하는 소돔 밖으로 내보내 주실때 인간적인 우정을 가지신 하나님이셨다.

5.아브라함의 하나님은 그분의 친구인 아브라함의 나이 많은 종을 인도하셔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위해
신부를 얻게 하시는 것에서 인간적인 수준의 우정을 지닌 하나님이셨다.







목자손길아래서 주님을 따르는양떼


진리의말씀 2014-02-05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51331.html
요한복음 10:16절
또 나에게는  이 우리에 들어있지 않은 다른양들도 있습니다. 재가 그들도 이끄어와야 합니다.
그들도 내음성을 듣고 한목자 아래 한양떼가 될것입니다.

요한복음 11:51-52절
이 말은 가야바가 스스로 한 것이 아니다.그는 그해의 대 제사장으로서 예수님께서 그 민족을 위하여
죽으실 것과 또 그민족뿐 아니라 흩어져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예언한 것이었다.

마태복음21:43절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왕국을 빼앗길 것이고. 그 왕국의 열매를
맺는 백성은 받을 것입니다.

양무리는 두 백성 즉믿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포함하는 교회이다.주님은 이둘을 한양떼가 되게 하시고
한 목자의 돌보심 아래두신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자신의 양들을 구속가기 위해여 자신의 인간생명을 버리셨고.
풀밭이신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먹이심으로 우리를 목양하신다.(요 10:9)

주님은 부활하신 후 아직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머무셨다.한번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베드로에게 그분의 어린양들을 먹이고 목양하라고 위임하셨다.(요 21:15-17)

이것은 부활후에 주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그분의 하늘에서의 사역과 합병시켜하나님의 양떼인 교회를 돌보며
교회를 건축하도록 하신 것이며. 이 교회는 그리그도의 몸으로 귀결된다.


교회가 황폐할때 가져야할 태도


봉사 2014-02-02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51315.html
A.황폐함은 각 사람의 상태를 드러냄

1.교회가 황폐할때 우리는 그러한 황페함이 우리의 상태를 드러낸다는 것을 반드시 인식해야한다.
 (고전 11:19). 이것은 하나의 원칙을 보여준다. 교회가 황폐할때 나타나는 각종 혼란. 잘못. 타락한 것들의 기능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사람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누군가가 하나님 앞에서 시험을 거치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면 황폐힘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2.황폐함은 물론 좋은 것이 아니지만 황폐힘의 용도는 시험을 거치고 통과한 사람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황폐하지 않고 혼란 스럽지 않으며 잘못된 것이나 부폐한 것이없고 어두움이 없는 상황에서는 우리 각 사람의 상태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3.교회가 황폐할때 당신이 어떤사람이고. 주님 앞에서 당신의 상태가 어떠하며 어떤공과를 배웠고.
당신의 품고 있는 마음이 어떠한지가 다 드러나게 될것이다. 황폐함은 우리의 시험일뿐아니라
주님의 나타나심이다.

4.우리가 있는 곳의 교회가 반년 후. 혹은 일년후에 황폐하지 않으리라고 아무도 보장할수 없다. 그때가
되면 당신과 나의 참된 상황이 드러날 것이다. 황폐함은 사람을 드러낸다.

B.황폐할때 가져야 할 태도

1.우리가 교회의 황폐함을 대할 때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는   내가 어디에 있는가. 내가 품은 마음은
합당한가. 나의 동기는 순수한가. 하나님 앞에서 여전히 불순한 것은 없는가.
"나는 하나님의 다름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는가." 라고 항상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2.소요는 여러사람들의 마음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말씀이 옳음을 나타낸다.(고전 11:19)
홍수가 나는 것 같이 어떤 일은 많은 사람들을 떠내려가게 하고. 오직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시험을 거쳐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한다.

3.황폐함은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황폐함이 올때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황폐함이 우리를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황폐하고 타락한 일들이 일아나는 것은
우리들에 대한 시험과 확증이다.





창세기.두여인의 비유


구약 2014-01-28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51298.html
1.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와 아브라함의 첩인 하갈은 두 언약. 곧 약속의 언약과 율법의 언약에 대한 비유이다.
사라는 약속의 언약을 상징하는 데 이언약은 은혜의 언약으로서 사라는 은혜로 말미암아 이삭을 산출했다.
신약의 언약과 관련된다. 이 언약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씨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2. 하갈은 율법의 언약을 상징한다. 아브라함의 첩인 하갈은 율법을 상징한다. 이것은 율법의 위치가 첩의 위치라는 것을 알수있다.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것은 사람이 율법과 협력함으로 육체의 노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것을 상징한다.
아브라함은 육체의 노력으로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산출했다.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산물인 이스마엘은
하나님께거절되었다. 타고난 능력으로하는 것은 거절되었다.

3. 창세기 16장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육체를 사용하여 이스마엘을 낳았다.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육체를 잘라낼것을명하셨다. 그결과 은혜로 이삭을 산출했다.

할례의 영적인의미는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통해 육체를 벗어버리는 것이다.(자아와 옛사람)
육체와 자아와 옛사람이 종결될때 이삭을 산출할수있다. 
우리는 좋은 육체나 선한육체사용해서는 안된다.

4.우리는 창세기에 있는 아브라함의 체험의 빛안에서 갈라디아서 4장21절부터 31절까지를 고찰해야한다.
갈라디아서 4장21절부터 31절까지에서 바울은 하갈이 땅에속한 예루살렘으로상징되는 율법을 상징하고
사라는 하늘에 속한 예루살렘으로 상징되는 은혜를 상징한다.

5. 하갈과 사라는 두 언약 곧 율법과 은혜를 대표한다.
율법은 사람이 무언가를 산출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으로 수고하는 문제인 반면.
은혜는 하나님자신이다.
신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의 연속이다.

6.두언약으로 태어난 두부류의 자녀들은 성질상 서로 다르다.
율법의 언약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자녀들은 육체를 따라태어났다.
약속의 언약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자녀들은 그 영에 따라 태어난다.

갈 4장 28-31절
형제님들  여러분은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들 입니다.그러난 그 당시에 육체를 따라 태어난 사람이 그 영을 따라태어난 사람을 박해 했는데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그런데 성경은 무어라 말씀합니까.
여종과 그아들을 쫓아내십시오.여종의 아들은 결코 자유가 있는 여자의 아들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없읍니다.
라고 하였습니다.그러므로 형제님들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자유가 있는 여자의 자녀입니다.

7.갈 4장 26절 그러나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가 있는 여자 곧 우리의 어머니 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은 믿는 이들의 어머니 곧 위에 있는 예루살렘인 새 예루살렘으로 상징되는 은혜의 새 언약임을 계시한다.
새언약은 우리를 자유가 있는 자녀들로 산출하였기 때문에 우리의 어머니 이다.
우리는 새언약 아래서 태어났고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우리의 어머니이다.
이 여자는 새언약과 우리의 어머니이며, 우리의 어머니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8.새 언약을 받고 이 언약을 지키는 것은 하늘에 속한 예루살렘과 교회에 나아가는 것이다.
새언약과 하늘에 속한 예루살렘과 교회는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