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한지체라면 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봉사 2013-11-24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50867.html
고전 12장18-20절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 뿐이라면 몸은 어디뇨.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우리 각 사람이 자신의 분량을 알고 또 이분량을 넘어서지 않는 것이 몸의 성장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고전 12장 18절은 각 지체에게 명확한 위치가 있고 명확한 배치가 있으며. 명확한 직임이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기능을 발휘할때 반드시 합당해야하며 질서를 따라야 한다.
몸안의 질서는 생명의 성장과 사역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다.

몸안에 있는 질서.즉 하나님께서 몸안에서 안배하신 순서를 알아야한다. 우리는 기꺼이 우리 분량에 제한 받아야 한다. 우리의 분량을 넘어설때  즉시 우리는 머리의 권위를 넘어서게 되고. 기름 바름의 가르침을
떠나게 된다. 우리가 우리의 분량을 넘어설때 우리는 몸의 질서를 방해 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몸은 유기적인 생명체이며. 사람의 안배로 좌우될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 지체는 반드시 머리로 부터 생명을 얻어야 하과 합당한 질서 아래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안에 두셨다. 우리의 각 지체들은 그리스도의 몸안에서 모두
자기의 위치가 있고 그 위치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그것을
받아야 한다.

롬12장 3절 
나에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나는 여러분 각 사람에게 말합니다. 마땅히 생각해야 할것 이상으로 자신을 더 높게 생각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에 따라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요.



사을아 사을아 어찌 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진리의말씀 2013-11-2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50861.html
행 9장 4-6절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 하느냐. 라고 하는 음성이 들렸다. 그래서 그가 주님 누구십니까. 라고 하니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거라.그러면 네가 해야 할일을 말해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주님은 다메섹으로 가고 있는 사울에게 나타나셨을때. 믿는 이들을 박해하는 것이 그분을 박해하는 것과
똑같다는 것을 그에게 보여 주셨다.
주님께서 자신을 사울에게 계시하셨던 그날이 바로 사울이 몸을 본 날이었다.

그러한 높은 것를 주신 이후에 주님은 사울에게 직접 말씀하지 않으시고 사울에게 시내로 들어가라고
명하셨고. 거기에서 그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말해 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 하셨다. (행 9:6)
이것 또한 몸에 대한 계시였다,

주님은 그분의 몸의 한 지체인 아나니아를 통해 사울을 몸에게 의탁하셨다.  그리하여 사울은 그리스도의 몸과의 동일화 안으로 이끌리게 되었다.
이것은 틀림없이 사울에게 그리스도의 몸의 중요성을 각인시켜 주었을 것이며.구원받은 믿는 이에게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왔을 것이다.

주님은 한 작은 제자 아나니아를 보내시어 사울에게 안수하게 하셨고, 아나니아는"사울형제님 형제님이 오던길에 형제님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형제님의 시력을 되찾을수있록 하신고 성령으로충일되도록 하셨읍니다"라고 하자.

이것을 통해 사울은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고.성령으로 충일 하게 되었으며.기름바름 아래 있게 되었다.
 
사도행전 9장에서 바울이 회개할때 얻은 계시에는 두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사울이 박해 하고 있는 분은 바로 그분 자신이요. 그분의 이름은 곧 예수라고 그에게 말하였다.이것은 사울에게 있어서 우주가운데 독특한 계시였다.

바울은 다메섹의 빛을 통하여 놀라운 나 를 보기 시작하였다.이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비밀인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그의 장래의 사역을 위해 그에게 깊은 인상과 영향을 주었고 그의 독특한 사역을 위하여 견고한 기초를 놓은 것이 분명하다.

둘째. 주님은 사울이 돌이킨 직후에 그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는지 그에게 직접말씀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사울이 어떤 통로를 통해 간접적으로 구원받지 않고 주님에게서 직접구원받아 주님께 이끌렸으므로
그를 그분의 몸과의 동일화 안으로 이끌어줄 뭄의 지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사울을 접축하라고 그분의 몸의 한 지체를 보내지 않으셨다면 어떤지체도 사울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렇게 높은 계시를 보여주신 후에  주님은 그에게  시내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가 해야할 일을 다른사람 아나니아를 사용해서  그에게 알리셨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관한 사울의 지식과 관련되며 나중에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그의 사역과 관련된다.

아나니아는 사울 형제님 형제님이 오던길에 형제님에게 나타난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형제님의 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하시고 성령으로 충일 되도록 하셨습니다.(행 9:17) 라고 말했다.


몸의 생활에 큰 장애물인 자아


봉사 2013-11-2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50842.html

마 16:23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뒤로 물러가거라. 너는 나를 실족하게 하는 자로다.
              왜냐하면 네가 생각을 하나님의 일에 두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에 두기 때문이다.

자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 따라서 몸으로부터도 독립을 선언한 타락한 혼이다. 몸에게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곧 몸을 가장 크게 좌절시키고 반대하는 것은 자아이다.

자아의 기원은 사람의 생각속에 사탄의 사상이 주입된것이다. 이제 우리는 자아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는 혼이라는 것을 볼 필요가 있다. 혼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일때 그혼은 즉시 자아가 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창조하실 때 사람은 항상 그분을 의지하는 혼이었다. 사람은 혼으로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의지해야한다.(창2:7)
그러나 혼은 자아가 되었다. 자아는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혼이다. 우리가 자아에 대한 이상을
보았다면 자아가 무었인지를 보았을 것이다.자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혼이다.

이 이상을 본다면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적일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오히려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나는 항상 하나님을 의지해야한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의지해야한다.".

자아는 독립적인 것이기 때문에 몸의 건축에 가장큰 문제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할뿐 아니라.
몸 곧 형제 자매들을 의지해야 한다. 형제자매들로 부터 독립적일때 우리는 자아 즉 독립적인 혼안에 있게 된다.
이것은 교리의 문제가 아니라 체험의 문제이다.

여러분의 체험을 살펴보면 형제 자매들로 부터 독립적일때 하나님으로 부터도 독립적이라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형제자매들로부터 고립되어 있을때. 하나님으로부터도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자아의 이상을 보는 것은 몸과 큰관련이 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회복안에 있다. 회복은 결국 이 중요한 문제 곧 몸의 건축에 이를 것이다. 몸의 원수는 자아이다.
몸에게 가장큰 문제가 되는 것 곧. 몸을 가장크게 좌절시키고 반대하는 것은 자아이다.
자아가 있다면 몸은 없는 것이다. 몸이 있다면 자아는 없는 것이다.

몸을 건축되기 위해 자아. 곧 독립적인 혼은 반드시 처리되아야 한다. 자아는 독립적인 "나"이다.
독립적일때 우리는 자아안에 있고. 몸은 사라지며 평강은 없어진다.



하나님께서 정하신길의 실행


봉사 2013-11-1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50781.html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의 목적은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하기 위함이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신성한 계시의 최고봉에 도달했다. 이것은 과거 20세기에 걸쳐
믿는이들에 의해 밝혀졌다.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실천해야한다.
첫째로 큰 결심이 있어야하고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훈련해야한다.(딤전 4:7절)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에는 4단계와 4개의 구조가 있다. 생양교건.복가소지.
그러므로 우리는 결심하고 훈련하며 활력군이 되어야한다.

생활과 실행과 행위가 없는 사람은 천년왕국에서 상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맏기신 달란트를 묻어둔다면 천년동안 밖갇어두운곳에서
슬피울며 이를 갈게 될것이다.

우리는 활력군에 입대해야한다. 활력군의 실행결과 기능을 발휘하게 되고 온전케되며.
인수증가와 활력화 될것이다.
활력군의 구성과 단위
호스트. 조력자.새가정(새신자)

교회생활을 쉬고있는 사람과 친구친척
명단를 작성하여 기도하고 접촉한다.

사역의 인도는 신성한 계시의 고봉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살아야하고
하나님을 따라 목양하는 생활을 살아야하며.
이기는 자가 될수있도록 미지근함과 죽어있음과 열매없음을 이겨야한다.

고전 6장 19-20절 여러분은 여러분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값을 치루고
                         사오셨기 때문입니다.







방주이신그리스도


구약 2013-11-08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50756.html
창 8:4  방주는 아라랏 산위에 멈추게 되었다.
홍수후에 방주는 아라랏 산에 머물렀다.이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성경에 따르면 방주는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방주가 그리스도의 예표이기때문에 방주가 물을 통과하여 물에서 나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아래서
죽음의 물을 통과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방주안에 여덞사람은 신약의 믿는 이들인 우리를 상징한다. 내가 젊은 그리스도인이었을 때.
나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하는 성경구절을 이해하려고 생각을 많이 사용했다.
나는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있는 가를 이해 하려고 애썼다. 나는 이것을 실재로 볼수 없었고 
그 의미를 이해 할수없었다. 어느날 나는 노아의 방주가 무었을 통과 했는지를 생각 하고 있었다.

그때 주님은 나에게 방주안에 여떫사람이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있을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그림이라는 것을 알게 하셨다.
이들 여덟사람들은 방주가 홍수를 통과 하고 있을때 방주안에 있었다.
따라서 그들또한 방주 안에서 홍수를 통과했지만 그들 자신은 홍수를 겪지 않았다.
홍수의 물을 통과한 것은 바로 방주였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어떻게 우리의 것의 될수있고.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다. 방주가 홍수에서 나왔을때 그안내 있던여덟 사람들
또한 밖으로 나왔다.

방주가 산꼭대기에 머물렀을때 여덟사람들 또한 방주안에서 부활했고 산꼭대기에 머물렀다.
여덟사람은 방주가 홍수를 통과할때에나 방주가 산위에 멈추게 되었을 때에도 방주 안에 있었다.
그러므로 방주가 체험한 모든 것은 방주 안에 있던 여덟사람이 체험한 것이기도 하였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그분의 체험이 우리의 체험이된다.

로마서 6장과 엡 2장6절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고 부활하여 새 생명가운데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미 출생하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했다. 그러므로 교회안에 있는 우리들은 부활한 사람들이다